11-12세기 중세신학의 대표자들중 크레르보의 베르나르는
이성의 자리에서 주관성을 생각했던 아벨라르와는 다르게
그리스도교화된 신비주의적 경험의 자리에서 주관성을 시도했군요.
중세의 신비주의자들은 유대인이 모세를 따르는 방식이 아니라 예수의 영에게 참여하는것으로 그리스도에 대한 복종을
율법적으로 해석하는일을 극복했네요.
베르나르의 신비주의는 그리스도교의 전통에 서있다고 할수있군요.
12세기에 가장 큰 영향력을 가졌던 신학자의 한사람인
성 빅토르 위고는 안셀무스나 아벨라르나 베르나르 이상으로
신학의 체계적 사고를 완성했던 사람이네요.
성례전의 개념을 가장 넓은 의미로 이해하고
모든것은 불가시한 신적근거의 가시적 구현으로 봤으나
범신론으로 끌고 가지는 않았군요.
플로리스의 요아킴은 그리스도의 천년왕국의 도래라는 개념을 새롭게 했고,
세가지 질서에 관해서 언급했네요.
첫째시기는 아담으로 부터 예수 그리스도에게 이르는 시기이며,
노예제도와 봉건제도가 이시대를 규정하는 율법의 시대이고
다음시기는 우시아왕으로 부터 1260년에 이르는 시기이며
이때는 성례전적인 실재가 율법을 필요 없는것으로 만들어
업적이 아니고 은총을 받아들이는 신앙의 시대이고
제3의 질서, 영의 질서는 6세기 베네딕트 동방 수도원제도 창시자로 부터 시작되며
셋째단계는 온인류를 포섭하는 수도원제도가 도래하네요.
제3의 질서는 권위적 인것이 아니고 자율적인 것인데
이성의 자율이 아니고 신적인 영의 현존으로 채워진 신율로
율법이나 문자에 의존하는 앎이 아니고
영에 의해서 살게되는 앎이 성령을 통해서
신과 직접적으로 관계를 맺는군요.
토마스는 교회의 고전적시대를 사도시대라고 보았으며
교회기초를 역사안에 가지고 있지만,
교회 그 자체는 역사를 넘어 역사의 종말에 있다고 보았는데요,
요아킴은 새로운것은 역사의 내부에서 이루어진다고 했네요.
더위가 맹렬한 기세로 이땅을 달구는 오후입니다.
존재하는한 존재한다는 한가지 이유가 가장 큰 힘이 됩니다.
오늘 강독도 감사합니다.
11-12세기 중세신학의 대표자들중 크레르보의 베르나르는
이성의 자리에서 주관성을 생각했던 아벨라르와는 다르게
그리스도교화된 신비주의적 경험의 자리에서 주관성을 시도했군요.
중세의 신비주의자들은 유대인이 모세를 따르는 방식이 아니라
예수의 영에게 참여하는것으로 그리스도에 대한 복종을
율법적으로 해석하는일을 극복했네요.
베르나르의 신비주의는 그리스도교의 전통에 서있다고 할수있군요.
12세기에 가장 큰 영향력을 가졌던 신학자의 한사람인
성 빅토르 위고는 안셀무스나 아벨라르나 베르나르 이상으로
신학의 체계적 사고를 완성했던 사람이네요.
성례전의 개념을 가장 넓은 의미로 이해하고
모든것은 불가시한 신적근거의 가시적 구현으로 봤으나
범신론으로 끌고 가지는 않았군요.
플로리스의 요아킴은 그리스도의 천년왕국의 도래라는 개념을 새롭게 했고,
세가지 질서에 관해서 언급했네요.
첫째시기는 아담으로 부터 예수 그리스도에게 이르는 시기이며,
노예제도와 봉건제도가 이시대를 규정하는 율법의 시대이고
다음시기는 우시아왕으로 부터 1260년에 이르는 시기이며
이때는 성례전적인 실재가 율법을 필요 없는것으로 만들어
업적이 아니고 은총을 받아들이는 신앙의 시대이고
제3의 질서, 영의 질서는 6세기 베네딕트 동방 수도원제도 창시자로 부터 시작되며
셋째단계는 온인류를 포섭하는 수도원제도가 도래하네요.
제3의 질서는 권위적 인것이 아니고 자율적인 것인데
이성의 자율이 아니고 신적인 영의 현존으로 채워진 신율로
율법이나 문자에 의존하는 앎이 아니고
영에 의해서 살게되는 앎이 성령을 통해서
신과 직접적으로 관계를 맺는군요.
토마스는 교회의 고전적시대를 사도시대라고 보았으며
교회기초를 역사안에 가지고 있지만,
교회 그 자체는 역사를 넘어 역사의 종말에 있다고 보았는데요,
요아킴은 새로운것은 역사의 내부에서 이루어진다고 했네요.
더위가 맹렬한 기세로 이땅을 달구는 오후입니다.
존재하는한 존재한다는 한가지 이유가 가장 큰 힘이 됩니다.
오늘 강독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