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공부, 201632일 저녁 7:30, 대구샘터교회

40: 여호와의 말씀(3)

 

욥기는 기원전 4-3세기에 완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바벨론 포로 사건이 일어난 기원전 6세기 이후 하나님에 대한 전통적 이해인 지혜 전통이 다 해명하지 못하는 신학적 주제를 들고 나온 것이다. 지혜 전통은 인간의 복과 화는 다 자기의 책임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의로운 사람에게 복을 주고 악한 사람에게 화를 내린다. 그 논쟁이 4-31장까지 욥과 세 친구 사이에 이어진다.

욥은 재앙이 죄로 인한 것이라는 친구들의 주장을 거부하고 자기의 의를 포기하지 않는다. ‘무죄한 자의 고난앞에서 욥은 친구들만이 아니라 하나님에게도 강력하게 저항한다. 하나님은 모순적인 존재로 비친다. 죄가 아니면 징벌을 내리지 않는 하나님이라는 전제 아래서 죄 없이 화를 당한 자의 불안과 고통이 욥에게서 표출된 것이다. 욥의 이런 입장을 끝까지 밀고 나가면 하나님은 의롭지 못한 존재가 된다. 주제 사라마구 카인참조.

여호와의 말씀(38-41)이 제시하는 해결책은 사람이 다 이해할 수 없는 창조의 능력과 그 신비를 직시할 때 예상하지 못하는 재앙과 불행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욥기 38-41장은 지루할 정도로 장황하게 창조 세계의 신비를 묘사한다.

 

1-5

여호와는 욥에게 할 말이 있으면 하라고 다그친다. 2절에 트집 잡는 자전능자’(엘샷다이)가 대립되어 있다. 전능자 앞에서 시시비비를 따지는 것은 트집 잡는 것이다. 욥은 침묵할 수밖에 없다고 고백한다. 하나님을 경험한 자들은 다 입을 다문다. 자기 부정이다. 모든 불평도 사라진다. 욥이 한번 말한 것’(5)9:2-4, 19-20절을 가리킨다. 거기서 그는 하나님을 자기가 아는 것처럼 말했다. 어제 밤11시 넘어서 마당에 나가 밤하늘을 보았다. 그 광경은 입을 다물게 한다. 어떤 별의 생몰을 우리가 선악으로 판단할 수 없는 것처럼 인간의 삶에서 일어나는 복과 화를 판단할 수 없다. 악을 합리화하는 게 아니라 그것마저 하나님의 선한 의지 안에서 작동된다는 사실을 말하는 것이다.

 

6-14

욥이 입을 다물겠다고 했지만 여호와는 계속 말씀하신다. 욥이 자신의 의에 묶여서 결국 하나님의 공의를 부정했기 때문이다. 8네가 내 공의를 부인하려느냐...’ 12,13절에서 하나님이 악을 방기한다는 욥의 불평도 거론된다. 욥은 앞에서 이런 불평을 쏟아냈다. 9:24, 21:7-33, 24:1-12절 참조. 악인을 벌할 힘이 하나님께만 있는 게 분명하나 구체적인 모든 사건에서 우리가 그걸 확인할 수 있는 건 아니다.

 

15-24

지상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자랑하는 동물인 베헤못’(하마)이 나온다. 41장에서는 리워야단(악어)가 나온다. 16절에 나오는 힘은 허리에 있고는 번식력을 뜻한다. 하나님이 만드신 것 중에서 으뜸이라고 했다(19). 고대인들과 달리 지금 인간이 자연과 우주를 많이 알고 있긴 하지만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창조로서 그것은 우리의 인식을 초월한다. 이런 시각에서만 우리는 온갖 불행, 모순, 불의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다. 그게 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