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에게 감사와 즐거움을 넘쳐나오게 하는 비가 연이틀 내리고 있고,
풀과 나무들이 반갑게 물기를 받아들이는 모습이 흐믓합니다.
한편으론 뉴스에 물난리가 난 지역도 있는데, 마냥 좋아할수도 없네요.
변증법적 방법의 창시자로 스콜라주의를 발전시키는데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신학자의 한사람인
아벨라르의 주관성은 감정의 영역에서도 나타나 있는데
그의 로망주의적 사랑의 관계는
당시 가부장적 권위와 교육과 개화의 시대에서는
무언가 위험스러운 것으로 시대를 앞섰던것이었네요.
아벨라르의 주관주의적 윤리이론을 보면
우리를 죄되게 하는것은 자연, 욕망, 감성이 아니고
의도나 의지라고 하는군요.
도덕체계의 내용자체는 구체적인 상황에 적용될 경우
언제나 의심스러운것이 되고
도덕체계의 내용이 아니라 양심이 결정적이라고 하네요.
그렇지만 이러한 형식은 교육적 측면을 소홀히 하게될것인데,
미개한 대중들에게 객관적 규범을 주지 않고
자유에 맡겨 둔다면 간단하게 그릇된 길로 접어들게 될것이라는군요.
윤리문제에 관해서 아벨라르는 그시대에 앞서 있었고
그가 선취했던 모든 사상은 18세기 프랑스에서 관철되었네요.
신학에 나타난 그의 주관성을 보면
의지의 참여가 없는 죄에 대해서 아담의 죄는 우리의 죄가
아니다고 하는 주관적인 고찰 방식은 원죄의 교리를 위태롭게 하는군요.
원죄의 교리는 주관적 측면보다 죄의 비극적 측면인
객관적 측면을 표출하고자 하는것인데요.
그는 그리스도론에서는 그리스도의 인간성을 강조했고,
프로테스탄트에서는 그의 속죄론을 따르고 있다고 하네요.
안셀무스는 속죄를 신과 그리스도 사이의 하나의 거래로서 서술하는
양적개념으로 말했지만
아벨라르는 그리스도교의 십자가의 죽음에서 볼수있는 신의 사랑이
우리속에 사랑을 불러일으켜서 그사랑에 의해 사랑하는 사람은
그의 죄를 용서 받는다는 속죄론을 말했군요.
신의 용서란 사랑의 행위라는 새로운 형태의 속죄론을 창출했으며,
이성의 자율과 인격중심주의에 관한 교설과
프로테스탄티즘의 선구자가 되었네요.
만물에게 감사와 즐거움을 넘쳐나오게 하는 비가 연이틀 내리고 있고,
풀과 나무들이 반갑게 물기를 받아들이는 모습이 흐믓합니다.
한편으론 뉴스에 물난리가 난 지역도 있는데, 마냥 좋아할수도 없네요.
변증법적 방법의 창시자로 스콜라주의를 발전시키는데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신학자의 한사람인
아벨라르의 주관성은 감정의 영역에서도 나타나 있는데
그의 로망주의적 사랑의 관계는
당시 가부장적 권위와 교육과 개화의 시대에서는
무언가 위험스러운 것으로 시대를 앞섰던것이었네요.
아벨라르의 주관주의적 윤리이론을 보면
우리를 죄되게 하는것은 자연, 욕망, 감성이 아니고
의도나 의지라고 하는군요.
도덕체계의 내용자체는 구체적인 상황에 적용될 경우
언제나 의심스러운것이 되고
도덕체계의 내용이 아니라 양심이 결정적이라고 하네요.
그렇지만 이러한 형식은 교육적 측면을 소홀히 하게될것인데,
미개한 대중들에게 객관적 규범을 주지 않고
자유에 맡겨 둔다면 간단하게 그릇된 길로 접어들게 될것이라는군요.
윤리문제에 관해서 아벨라르는 그시대에 앞서 있었고
그가 선취했던 모든 사상은 18세기 프랑스에서 관철되었네요.
신학에 나타난 그의 주관성을 보면
의지의 참여가 없는 죄에 대해서 아담의 죄는 우리의 죄가
아니다고 하는 주관적인 고찰 방식은 원죄의 교리를 위태롭게 하는군요.
원죄의 교리는 주관적 측면보다 죄의 비극적 측면인
객관적 측면을 표출하고자 하는것인데요.
그는 그리스도론에서는 그리스도의 인간성을 강조했고,
프로테스탄트에서는 그의 속죄론을 따르고 있다고 하네요.
안셀무스는 속죄를 신과 그리스도 사이의 하나의 거래로서 서술하는
양적개념으로 말했지만
아벨라르는 그리스도교의 십자가의 죽음에서 볼수있는 신의 사랑이
우리속에 사랑을 불러일으켜서 그사랑에 의해 사랑하는 사람은
그의 죄를 용서 받는다는 속죄론을 말했군요.
신의 용서란 사랑의 행위라는 새로운 형태의 속죄론을 창출했으며,
이성의 자율과 인격중심주의에 관한 교설과
프로테스탄티즘의 선구자가 되었네요.
이분은 그냥 중세사람이 아니라 몇백년을 앞선 사람이군요.
와~ 아벨라르님, 이분을 꼭 기억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