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연말 정말 우연히 다비아를 알게 되고 충동적?으로 온라인 강의를 신청했습니다. 어느새 강좌가 절반가량이나 끝나가고 있네요... 정목사님의 설교비평을 빠짐없이 읽으면서... 그동안 교회를 다니며 마음에 묻어 두었던 응어리들이 조금씩 녹아내리는 경험을 하였습니다. 아직도 읽지 못한 글들이 많이 있지만... 이제는 다비아의 분위기?를 어렴풋이나마 알것도 같습니다....

인문학적 성서읽기...를 들으면서 정 목사님의 신학/철학적 사유의 깊이에 감동하면서도.. 한편으로 불편한 부분이 있습니다. 저는 어릴적부터 제일 보수적이라는 장로교 합동측 교회를 다녔고 칼빈주의에 심취하신 목사님을 멘토로 신앙에 입문하였습니다. 당연히 대학시절을 지나는 동안 술, 담배는 악마와의 키스 쯤으로 여겨왔고 문자 그대로의 '축자영감설'만을 진리로 알고 있었지요....

다행히  이후로 진리에 대한 물음을 놓지 않은 덕분에... 좋은 책들과 다양한 신앙의 선배들의 도움으로 ... 지금은 많은 부분에서 당시보다는 훨씬 유연하고 자유한 신앙관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교회도 장로교 통합측으로 옮기게 되었으니까요...)  하지만, 이런 저에게  정 목사님의 강의중에 언급되는몇 가지 내용들은 감당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정 목사님은 성경에 기록된 초자연적 이적과 기사들을 역사적 사실로 보지 않고 단지 저자들이 당시 공동체의 필요에 의해 내린 해석으로 보시는 것 같습니다. (제가 잘못 이해했다면 용서하시구요.....)  

성경의 기록의 역사적 사실 여부가 중요하기 보다는 당시에 어떤 의미로 쓰여졌는지... 그리고 지금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데에도 동의하구요......

구약과 신약의 기록배경과 정경화 과정에 대한 강의를 듣다보니...  창세기의 창조기사를 신화적인 해석으로.. 광야의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화산폭발로 ... 홍해바다의 기적을 갈대밭으로의 지나감 일수도 있다고 언급하시는 것들은.... 아! 그럴 수도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기독 신앙의 기초중에 근본이라 할 수 있는 사도신경에 언급된 예수의 동정녀 탄생이나 부활사건에 대한 목사님의 언급은 솔직히 동의가 잘 안됩니다. 저나 목사님도...축자영감설부터... 극도의 자유주의적 신학적 견해까지 다양한 성경 해석의 스펙트럼사이에서 어떤 지점에 서 있는 것이겠지요.  

제 질문은 성서의 이적들을 우리의 이성(인문학적으로?)이 허용하는 범위내에서만 해석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하는 것입니다...  철학자들이 찾아 헤매던 우주의 궁극 원인으로서의 신이 아니라 살아계시고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제 입장에서는 성경의 초자연적 기사와 이적을 왜 사건 그대로 받아들이면 안 되는지 궁금합니다... 다비아를 알기 전에 제 입장은 구약시대에는 인간의 이성이 제대로 발달하기 전인지라 하나님께서 기적과 이적으로 유대인들에게 창조주에 대한 인식을 촉구하셨고, 신약시대에서는 성경을 통해 계시가 완성? 되었으므로 더 이상의 이적은 필요없게 되었다... 이렇게 정리하고 있었으니... 헷갈리는 제 맘 이해가 가시는지요?  (사실 강의를 들으며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에 대해서도 뒤죽박죽입니다........ 대학 시절 저는 예수전도단이라는 선교단체에서 마치 알라딘의 마술램프의 지니와 같은 하나님을 찾아 헤매기도 했었거든요.... 지금은 오히려 이신론쪽에 더 가깝다고 느껴지기도 하는데...이 부분도 강의 중에 다루어 주셨으면 합니다...)

제 물음이 다비아의 전반적인 분위기와는 많이 다를 것 같아 우려됩니다. 사실 글 솜씨 좋으신 다른 분들이 비슷한 질문을 해 주셨으면 하는 바램도 있었는데... 더 이상 제 물음들을 덮어 두고 가는 것도 다비아스럽지 않다는 생각에 용기를 내었습니다.  마침 정 목사님도 주일 저녁 질답시간에 질문이 없다고 언급하시기도 하셨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