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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저녁 강의를 듣고 satya님의 지난 목요일 강의글을 읽다가 궁금한 점이 있어서요... 동정녀 탄생에 대한 언급에서 예수님의 인성을 강조하셨는데요... 예수님이 온전한 인간이라는 점을 부각시키려 했다면 다윗의 혈통인 요셉과 마리아의 장자로 충분했을텐데... 그것이 당시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의 인성을 논증하기에 더 좋지 않았을까요? 그렇다면 마리아의 '동정녀 수태'의 의미는 어떤 것일런지요...? 과거에 제가 다니던 교회에서 배운 교리 공부에서는 '원죄로부터 자유함'때문이라고 배운 것 같은데... 어떻게 보시는지요?
목사님의 설교비평들을 읽으면서... 하나님이 소외된채, 신학의 본질을 외면한채, 변죽만 울리는 설교자들의 문제를 주로 비판하시는 시각이 보였습니다. 내노라 하는 한국 교회의 설교자들이 이런 평가를 받고 있다면, 도데체 한국의 신학교에서는 신학을 어떻게 가르치길래... 하는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목사님처럼 독일같은 곳에 가야만 제대로된 신학을 배우게 되는 건가요? 만일 한국의 신학교에서도 제대로 신학강의가 이루어진다면, 지금 제 주변의 많은 교회 목사님들은 그런 내용을 잘 알면서도, 필요에 의해서, 혹은 교인들의 수준이 낮아서, 예화중심의 하나님 없는 메시지만 전하고 있는 건가요? 그냥 궁금해서... 답답해서... 여쭈어 봅니다.
편안한 밤, 모처럼 쉽이 있는 설명절 되시기를...
* 1/27. 31일 강의 녹음 파일 있으신 분 좀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drloved@hanmail.net
목사님의 설교비평들을 읽으면서... 하나님이 소외된채, 신학의 본질을 외면한채, 변죽만 울리는 설교자들의 문제를 주로 비판하시는 시각이 보였습니다. 내노라 하는 한국 교회의 설교자들이 이런 평가를 받고 있다면, 도데체 한국의 신학교에서는 신학을 어떻게 가르치길래... 하는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목사님처럼 독일같은 곳에 가야만 제대로된 신학을 배우게 되는 건가요? 만일 한국의 신학교에서도 제대로 신학강의가 이루어진다면, 지금 제 주변의 많은 교회 목사님들은 그런 내용을 잘 알면서도, 필요에 의해서, 혹은 교인들의 수준이 낮아서, 예화중심의 하나님 없는 메시지만 전하고 있는 건가요? 그냥 궁금해서... 답답해서... 여쭈어 봅니다.
편안한 밤, 모처럼 쉽이 있는 설명절 되시기를...
* 1/27. 31일 강의 녹음 파일 있으신 분 좀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drloved@hanmail.net
2008.02.05 11:16:17
가능할 것 같지는 않지만... 기회가 된다면 신학을 제대로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기독교를 모르는 설교자'를 양산하는 것이 한국의 신학교라면 목사님과 같은 기독교 이해는 '독일'같은 곳에서만 가능하다는 뜻이 되나요..? 한국에는 기독교를 제대로 가르치는 신학교나 학자가 없다는 뜻이 되나요..?? 속상하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하고...
2008.02.05 12:46:08
슬로우앤이지님!
기회가 된다면 제대로 신학을 공부하고 싶으시다구요.
그 기회는 저절로 오진 않을 가능성이 많구요, 아마도 님이 그 기회를 만드실 수 있도록 노력하시는게 더 빠를 것입니다.
그리고 '기독교를 모르는 설교자'를 양산하는 것이 한국의 신학교 전체라고 할 수는 없겠지요.
신학교에서 개떡같이 가르쳐도 어떤 사람은 하늘의 떡으로 받아먹을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서양철학이 합리적 이성을 바탕으로 했다면, 동양철학은 직관을 바탕으로 우주의 섭리를 이해하고 있지요.
아마도 동양적인 철학사상을 바탕으로 기독교를 이해하신 분 들 중에는 토착적 기독교를 말씀하시는 분이 꽤 계시는데 저는 그 분들의 신학도 상당히 좋아합니다.
분명 외국에 나가지도 않았고 한국에서 공부를 하신 분 들 중에도 충분히 더 나으신 분도 있으십니다.(사실 비교를 할 수는 없습니다. 각자의 달란트가 다르니까요.)
그러니 정목사님과 같은 기독교 이해는 '독일'같은 곳에서만 가능하다는 뜻은 아니겠지요.
하다못해 다비아를 통해서 신학을 공부할 수도 있잖아요?
그러니 한국에는 기독교를 제대로 가르치는 신학교나 학자가 없다고 말할 수는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다만 아쉬운것은 한국의 신학교라는 곳이 너무나 닫혀있어서 변선환 총장과 같은 위대한 신학자를 몰아내시는 것이라든지, 오강남 교수나 김준우 교수 등을 몰아내는 것을 보아서는 그 한계를 쉽게 알 수는 있습니다만 그래도 자신의 출신 신학교가 꼭 그의 신앙을 담보하지는 않더군요.
무슨 말이냐믄 꼭 출신학교를 따라서 목회활동을 하지만은 않더란 것입니다.
총신을 나와서도 진보적 목회활동을 하시는 분이 있는가하면, 한신을 나와서도 보수적 목회활동을 하시는 분도 계신다는 뜻입니다.
아니 정말 기독교가 무엇인지, 또는 하나님나라가 무엇인지, 구원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하는 영성이시라면 한국에서 안되면 외국으로라도 가시겠지만, 먼저 외국에서부터 찾을 이윤 없을 것입니다.
아마도 학문적인 깊이로 본다면 저는 오히려 미국이 더 낮다고 보이지만
그 내공의 깊이는 독일이나 화란쪽의 신학도, 또 영국의 신학도 매력이 있더군요.(제가 아는 것이 아니라 그냥 그렇게 보인다는 것입니다. 제가 뭐 압니까?)
댓글이 길어지다보니 또 논지를 잃어버린 것 같아 일단을 끝을 맺고 다시 함 살펴봐야겠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제대로 신학을 공부하고 싶으시다구요.
그 기회는 저절로 오진 않을 가능성이 많구요, 아마도 님이 그 기회를 만드실 수 있도록 노력하시는게 더 빠를 것입니다.
그리고 '기독교를 모르는 설교자'를 양산하는 것이 한국의 신학교 전체라고 할 수는 없겠지요.
신학교에서 개떡같이 가르쳐도 어떤 사람은 하늘의 떡으로 받아먹을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서양철학이 합리적 이성을 바탕으로 했다면, 동양철학은 직관을 바탕으로 우주의 섭리를 이해하고 있지요.
아마도 동양적인 철학사상을 바탕으로 기독교를 이해하신 분 들 중에는 토착적 기독교를 말씀하시는 분이 꽤 계시는데 저는 그 분들의 신학도 상당히 좋아합니다.
분명 외국에 나가지도 않았고 한국에서 공부를 하신 분 들 중에도 충분히 더 나으신 분도 있으십니다.(사실 비교를 할 수는 없습니다. 각자의 달란트가 다르니까요.)
그러니 정목사님과 같은 기독교 이해는 '독일'같은 곳에서만 가능하다는 뜻은 아니겠지요.
하다못해 다비아를 통해서 신학을 공부할 수도 있잖아요?
그러니 한국에는 기독교를 제대로 가르치는 신학교나 학자가 없다고 말할 수는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다만 아쉬운것은 한국의 신학교라는 곳이 너무나 닫혀있어서 변선환 총장과 같은 위대한 신학자를 몰아내시는 것이라든지, 오강남 교수나 김준우 교수 등을 몰아내는 것을 보아서는 그 한계를 쉽게 알 수는 있습니다만 그래도 자신의 출신 신학교가 꼭 그의 신앙을 담보하지는 않더군요.
무슨 말이냐믄 꼭 출신학교를 따라서 목회활동을 하지만은 않더란 것입니다.
총신을 나와서도 진보적 목회활동을 하시는 분이 있는가하면, 한신을 나와서도 보수적 목회활동을 하시는 분도 계신다는 뜻입니다.
아니 정말 기독교가 무엇인지, 또는 하나님나라가 무엇인지, 구원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하는 영성이시라면 한국에서 안되면 외국으로라도 가시겠지만, 먼저 외국에서부터 찾을 이윤 없을 것입니다.
아마도 학문적인 깊이로 본다면 저는 오히려 미국이 더 낮다고 보이지만
그 내공의 깊이는 독일이나 화란쪽의 신학도, 또 영국의 신학도 매력이 있더군요.(제가 아는 것이 아니라 그냥 그렇게 보인다는 것입니다. 제가 뭐 압니까?)
댓글이 길어지다보니 또 논지를 잃어버린 것 같아 일단을 끝을 맺고 다시 함 살펴봐야겠습니다.
정확하고 좋은 질문입니다.
이런 질문은 뭔가를 가르치는 사람에게 큰 자극이 됩니다.
제가 정확한 답을 드릴 수 있을지 모르겠군요.
1. 동정녀 설화 자체가 예수님의 인성을 강조하는 건 아닙니다.
마리아의 몸이 바로 핵심이지요.
동정녀 설화가 마리아의 몸과 통합된 이유는
헬라 사상에 영향을 받은 지역의 기독교인들에게
예수의 메시아 성을 전하려 했다는 데에 놓여 있습니다.
그들은 위대한 인물의 출생이 뭔가 달라야 한다고 생각했던 거지요.
헬라 신화에도 동정녀 출생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듯이 말입니다.
동정녀의 핵심은 '동정'이 아니라 '녀'에 있다는 사실을 놓치지 말아야지요.
2. 동정녀와 원죄의 관계는 너무 복잡하군요.
이를 설명하려면 일단 죄가, 특히 원죄가 무엇인지를 말해야지요.
동정녀 출생으로만 죄가 없다고 한다면
성관계 자체가 죄라는 말이 되네요.
또는 원죄의 유전이 성관계로 가능하다는 말도 되겠구요.
그런 교리가 지난 2천년 기독교 역사에서 나오기는 했지만
그렇게 중요한 교리로 자리를 잡지는 못했습니다.
동정녀와 예수의 '죄 없음'은 틀렸다고 말할 수는 없어도,
옳다고도 말할 수 없습니다.
3. 오늘의 설교가 하나님, 하나님 나라, 통치, 계시에 집중하지 못하고
신자들의 삶에 적용하는 것에만 기울어진 이유는
좀 거칠게 말해서,
설교자들이 기독교를 모른다는 데에 있습니다.
음악을 모르고 레슨을 주는 음악선생들과 비슷하지요.
소리에 대한 존재론적 경험이 없어도 레슨을 가능하답니다.
음악의 실용성만 잘 전하면 되니까요.
음악을 기술로만 전하면 되니까요.
신자들은 그런 기술을 더 좋아하지요.
좋은 설을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