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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수 509
전통적인 기독교 신앙중에 인간의 구원에 대해 "동정녀의 몸에서 원죄없이 태어나신 예수만이 하나님께 온전한 희생제물이 될수가 있었고, 그가 십자가에서 희생되어 인간의 죄를 대속하셨기 때문에 예수를 믿을때 나의 죄가 용서받을수 있다"는 중요한 가르침이 있습니다. 이는 사도신경에서도 분명히 언급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토록 구원론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원죄없는 탄생" 교리와 이를 뒷받침하는 "동정녀 탄생" 교리에 관해 초대교회의 이론적 배경의 근본이 되는 사도 바울의 서신에는 왜 한마디도 언급이 없는 것일까요?
어떤 사람들은 동정녀 탄생이 그 당시에는 너무나 당연한 가르침이었기에 바울이 언급하지 않았다고도 설명하는데, 제가 볼때는 동정녀 탄생의 교리는 율법이 아닌 새로운 아담(예수)으로 말미암은 은혜로 구원을 얻게 됨을 매우 강조했던 바울의 사상을 더욱 심화시킬수 있는 좋은 소재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논리정연한 사도 바울이 이런 내용을 알면서도 언급하지 않았다는 것은 상상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바울은 과연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던 것일까요? 그의 글들을 읽어보면 바울은 정녕 예수의 동정녀 탄생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있었던 것일까 하는 의심이 많이 듭니다.
만약 바울이 예수의 동정녀 탄생에 관한 사실을 몰랐다면, 그는 동정녀 탄생의 믿음 없이도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에 관한 믿음만으로 구원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일까요? 사도 바울이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던 동정녀 탄생의 교리는 도대체 언제부터 사도신경의 중요한 고백의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고 급기야는 구원론의 핵심 배경이 된 것일까요?
마가복음과 요한복음에는 드러나지 않았던 동정녀 탄생의 기사가 느닷없이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구체화되어 나타나는것은 도대체 어느 전승에서 기인하는 것인지요?
질문의 핵심을 다시 한번 언급하자면, 사도 바울도 몰랐던 (혹은 몰랐다고 생각되는) "동정녀 탄생" 의 교리가 기독교 구원론에서 과연 절대적으로 필수적인 요소인 것인가요?
=============================================================
아래의 덧글들중에 질문자의 질문의도를 구체적으로 알고 싶다는 내용이 있어서 좀더 구체적으로 다시 질문을 적습니다.
(1) 예수님이 처녀 마리아의 몸에서 성령으로 태어났다는 말이 문자그대로 진짜 역사상에서 일어났던 일일까?
정말로 그랬다면 왜 사도 바울이나 마가복음, 요한복음은 한마디 언급도 안 할까?
실제로 일어났던 일인데 다만 전승과정에서의 문제로 초기에 폭넓게 알려지지 못했던 것 뿐일까? 아니면 후대에 예수의 일생이 신화화되는 과정에서 전설로 덧붙여진 이야기의 하나일까?
(2) 만약, 처녀의 몸에서 태어났다는 이야기가 후대에 덧붙여진 (실제로는 안 일어났던) 이야기라면
"그리스도는 처녀의 몸에서 성령으로 잉태되었으므로 원죄없이 태어난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전 인류의 죄를 대속하는 온전하고 깨끗한 제물로써 하나님께 바쳐질 수 있었고,
그런 예수를 구세주로 믿을때 비로서 우리의 영혼이 구원받을 수 있다"
이렇게 가르치는 보수적인 교회의 구원론이 근본에서부터 무너지는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는 것이지요... 즉, 원죄의 굴레속에 있는 예수가 다른 사람들의 죄까지 어떻게 걸머지고 해결할 수 있겠느냐는 이야기입니다.
(3) 재미있는 사실은, 사도 바울은 동정녀 탄생을 전혀 언급하지 않으면서도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이 온전한 것이었음을 확신하고 있었다는 점인데, 왜 후대의 교회에서는 이성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동정녀 탄생의 전승을 구원론과 연결시켜서 반드시 믿어야 되는 사도신경의 범주에까지 포함시키는 무리수(?)를 두었을까 하는 것입니다. 도대체 왜, 누구에 의해, 언제부터? 이 세가지가 (3)번질문의 세부적인 사항이지요.
정목사님이 과거에 쓰셨던 아티클은 (1)번 질문에 대한 대략적인 범주의 답변으로 생각해도 될 듯 합니다. 그러나 (2)번과 (3)번의 의문점은 여전히 남는군요... 이 점에 대해 좋은 답변 부탁드립니다.
그런데, 이토록 구원론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원죄없는 탄생" 교리와 이를 뒷받침하는 "동정녀 탄생" 교리에 관해 초대교회의 이론적 배경의 근본이 되는 사도 바울의 서신에는 왜 한마디도 언급이 없는 것일까요?
어떤 사람들은 동정녀 탄생이 그 당시에는 너무나 당연한 가르침이었기에 바울이 언급하지 않았다고도 설명하는데, 제가 볼때는 동정녀 탄생의 교리는 율법이 아닌 새로운 아담(예수)으로 말미암은 은혜로 구원을 얻게 됨을 매우 강조했던 바울의 사상을 더욱 심화시킬수 있는 좋은 소재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논리정연한 사도 바울이 이런 내용을 알면서도 언급하지 않았다는 것은 상상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바울은 과연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던 것일까요? 그의 글들을 읽어보면 바울은 정녕 예수의 동정녀 탄생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있었던 것일까 하는 의심이 많이 듭니다.
만약 바울이 예수의 동정녀 탄생에 관한 사실을 몰랐다면, 그는 동정녀 탄생의 믿음 없이도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에 관한 믿음만으로 구원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일까요? 사도 바울이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던 동정녀 탄생의 교리는 도대체 언제부터 사도신경의 중요한 고백의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고 급기야는 구원론의 핵심 배경이 된 것일까요?
마가복음과 요한복음에는 드러나지 않았던 동정녀 탄생의 기사가 느닷없이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구체화되어 나타나는것은 도대체 어느 전승에서 기인하는 것인지요?
질문의 핵심을 다시 한번 언급하자면, 사도 바울도 몰랐던 (혹은 몰랐다고 생각되는) "동정녀 탄생" 의 교리가 기독교 구원론에서 과연 절대적으로 필수적인 요소인 것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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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의 덧글들중에 질문자의 질문의도를 구체적으로 알고 싶다는 내용이 있어서 좀더 구체적으로 다시 질문을 적습니다.
(1) 예수님이 처녀 마리아의 몸에서 성령으로 태어났다는 말이 문자그대로 진짜 역사상에서 일어났던 일일까?
정말로 그랬다면 왜 사도 바울이나 마가복음, 요한복음은 한마디 언급도 안 할까?
실제로 일어났던 일인데 다만 전승과정에서의 문제로 초기에 폭넓게 알려지지 못했던 것 뿐일까? 아니면 후대에 예수의 일생이 신화화되는 과정에서 전설로 덧붙여진 이야기의 하나일까?
(2) 만약, 처녀의 몸에서 태어났다는 이야기가 후대에 덧붙여진 (실제로는 안 일어났던) 이야기라면
"그리스도는 처녀의 몸에서 성령으로 잉태되었으므로 원죄없이 태어난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전 인류의 죄를 대속하는 온전하고 깨끗한 제물로써 하나님께 바쳐질 수 있었고,
그런 예수를 구세주로 믿을때 비로서 우리의 영혼이 구원받을 수 있다"
이렇게 가르치는 보수적인 교회의 구원론이 근본에서부터 무너지는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는 것이지요... 즉, 원죄의 굴레속에 있는 예수가 다른 사람들의 죄까지 어떻게 걸머지고 해결할 수 있겠느냐는 이야기입니다.
(3) 재미있는 사실은, 사도 바울은 동정녀 탄생을 전혀 언급하지 않으면서도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이 온전한 것이었음을 확신하고 있었다는 점인데, 왜 후대의 교회에서는 이성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동정녀 탄생의 전승을 구원론과 연결시켜서 반드시 믿어야 되는 사도신경의 범주에까지 포함시키는 무리수(?)를 두었을까 하는 것입니다. 도대체 왜, 누구에 의해, 언제부터? 이 세가지가 (3)번질문의 세부적인 사항이지요.
정목사님이 과거에 쓰셨던 아티클은 (1)번 질문에 대한 대략적인 범주의 답변으로 생각해도 될 듯 합니다. 그러나 (2)번과 (3)번의 의문점은 여전히 남는군요... 이 점에 대해 좋은 답변 부탁드립니다.
2007.11.01 09:38:39
여기 홈피에, 신학마당, 온라인강의실, 여성신학, 13번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에 관한 신학적 고찰
을 읽어보시면 어떨까요? 정용섭 목사님이 쓰신 글입니다.
을 읽어보시면 어떨까요? 정용섭 목사님이 쓰신 글입니다.
2007.11.01 20:21:35
이부분에 대해선 중세철학적 고찰도 조금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천상의 핮가라고 인정받아 그의 모든 체계를 가톨릭 신학으로 인정받은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체계에서도 동정녀설은 중요치않게 생각되었는데 오히려 교황청에서는 배척한 둔스 스코투스에게서 동정녀론을 취사선택했거든요. 중세철학적 존재론에서 좀 다루어야할 문제같습니다. 아무래도 마리아론은 그 때 확립된것이니까요.
2007.11.01 23:18:11
성모님에 대한 4가지 교리 중에서,
① '하느님의 어머니'
- 이 명제야, 1차적으로는 성모님께 대한 게 아니라,
예수님의 참 하느님이자 참 인간 되심을 나타낸 명제이므로,
(사실, 마리아론은 교회론에 종속되는 각론이고,
성모 공경 역시 그리스도론적, 즉, 예수님을 믿는 신앙 안에서 의미있고 유효한 것임)
개신교 역시 받아들이는, 범 그리스도교의 정통 교리 중에서도 알짬이니, 별 문제가 없는데,
나머지 세 가지,
② 평생 동정
③ 무염시태
④ 몽소승천
- 이 교리들은,
애초(신약성서 및 사도신경/니체아신경)의 마리아론의 확장이라 볼 수 있고,
그 확장이 부당하다고 생각되어, 개신교는 폐기한 것이고,
위의 닥터K님 질문 역시,
예수님 수태 당시의 성모님의 동정 교리에만 한정되므로,
야고보의 언급은, 너무 나간 게 아니냐는 것이고,
물론, 이 네 교리들은, 서로 맞물려 연관되어 있기는 하지.
참고로, 성모님의 무염시태(성모님이 성모님의 어머니 뱃속에 잉태될 때부터,
원죄의 사함을 받았다) 교리는,
전 교회(가톨릭)의 '박사' 칭호를 받았으며, 가톨릭 신학을 건축한 토마스 아퀴나스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성모님 역시 인간이고, 예수님의 제자일 따름인데, 무염시태라니, 분에 넘치는 것이라고 일축했지만,
반면, 또 많은 사람들은, 성자 하느님의 어머니로,
하느님의 구원사에 결정적 순종으로 화답하여 쓰임받은 성모님이므로,
구세주 성자 하느님을 수태하는 도구로서 불림받은 인간이라면,
당연히 원죄의 오염이 없어야 한다는 주장을 폈고,
둔스 스코투스는, '성모님께 대한 하느님의 선취적 구원'이라는 신학적 변증으로,
성모님의 무염시태를 옹호, 주장했던 것인데,
사실, 이 무염시태 교리는,
20세기 중반에 와서야 공식적으로 채택되었고,
위 본문의 질문에서 너무 벗어났다는 게,
내가 지적하려는 바이고,
① '하느님의 어머니'
- 이 명제야, 1차적으로는 성모님께 대한 게 아니라,
예수님의 참 하느님이자 참 인간 되심을 나타낸 명제이므로,
(사실, 마리아론은 교회론에 종속되는 각론이고,
성모 공경 역시 그리스도론적, 즉, 예수님을 믿는 신앙 안에서 의미있고 유효한 것임)
개신교 역시 받아들이는, 범 그리스도교의 정통 교리 중에서도 알짬이니, 별 문제가 없는데,
나머지 세 가지,
② 평생 동정
③ 무염시태
④ 몽소승천
- 이 교리들은,
애초(신약성서 및 사도신경/니체아신경)의 마리아론의 확장이라 볼 수 있고,
그 확장이 부당하다고 생각되어, 개신교는 폐기한 것이고,
위의 닥터K님 질문 역시,
예수님 수태 당시의 성모님의 동정 교리에만 한정되므로,
야고보의 언급은, 너무 나간 게 아니냐는 것이고,
물론, 이 네 교리들은, 서로 맞물려 연관되어 있기는 하지.
참고로, 성모님의 무염시태(성모님이 성모님의 어머니 뱃속에 잉태될 때부터,
원죄의 사함을 받았다) 교리는,
전 교회(가톨릭)의 '박사' 칭호를 받았으며, 가톨릭 신학을 건축한 토마스 아퀴나스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성모님 역시 인간이고, 예수님의 제자일 따름인데, 무염시태라니, 분에 넘치는 것이라고 일축했지만,
반면, 또 많은 사람들은, 성자 하느님의 어머니로,
하느님의 구원사에 결정적 순종으로 화답하여 쓰임받은 성모님이므로,
구세주 성자 하느님을 수태하는 도구로서 불림받은 인간이라면,
당연히 원죄의 오염이 없어야 한다는 주장을 폈고,
둔스 스코투스는, '성모님께 대한 하느님의 선취적 구원'이라는 신학적 변증으로,
성모님의 무염시태를 옹호, 주장했던 것인데,
사실, 이 무염시태 교리는,
20세기 중반에 와서야 공식적으로 채택되었고,
위 본문의 질문에서 너무 벗어났다는 게,
내가 지적하려는 바이고,
2007.11.02 00:06:48
무염시태 교리야 최근에 와서 인정받은 터이지만 가톨릭의 입장이란 것이야 뭐 확고부동한 것 아녔습니까?ㅋㅋ
말씀하신 것 처럼 4가지 교리는 어느것 하나도 따로 떼어서 생각할 수 없는 것이고.
근데 제가 말씀드리고자 했던 바는 가톨릭이 받아들인 聖 아퀴나스의 철학 체계내에서 (신학이 아니라) 둔스 스코투스의 무염시태를 (물론 평생동정과 '강한'연관관계를 가진다는 가정하에) 가져갔다는 사실자체에서 알 수 있듯 뭔가 (현재의) 평생동정 교리가 확립된 정당성 자체가 논리체계상 좀 모순적이지 않은가를 지적하기위함이었습니다. 그 이후에 신학자들이 어떻게든 조합시켰겠지만, 聖 토마스 아퀴나스와 둔스 스코투스는 엄연히 다른 철학체계이니까요.
말씀하신 것 처럼 4가지 교리는 어느것 하나도 따로 떼어서 생각할 수 없는 것이고.
근데 제가 말씀드리고자 했던 바는 가톨릭이 받아들인 聖 아퀴나스의 철학 체계내에서 (신학이 아니라) 둔스 스코투스의 무염시태를 (물론 평생동정과 '강한'연관관계를 가진다는 가정하에) 가져갔다는 사실자체에서 알 수 있듯 뭔가 (현재의) 평생동정 교리가 확립된 정당성 자체가 논리체계상 좀 모순적이지 않은가를 지적하기위함이었습니다. 그 이후에 신학자들이 어떻게든 조합시켰겠지만, 聖 토마스 아퀴나스와 둔스 스코투스는 엄연히 다른 철학체계이니까요.
2007.11.02 00:18:52
꼭 그렇지만도 않어~
무염시태 교리는, 1950년대에 공식 선포될 때까지도, 의견이 분분했지.
가톨릭이야, 교도권의 차원에서 공식 선포하면, 거기에 따라야 하며,
신학적인 자율성도, 그 범위 안에 묶이니까, 지금으로서는 딴 말을 붙이기 어렵긴 한데.
그리고, 평생 동정 교리는, 신학적 유추와 변증에 따른 것이라기보다는,
전승에 근거한 것 아닌가?
가톨릭은, 성서와 성전(전승)을 신앙의 두 원천으로 놓으니까.
(성서 또한 전승의 일부라는 가톨릭의 입장은, 상당한 해석학적 타당성과 설득력이 있는 게 사실임)
개신교 측은, 성전의 정경(Canon)성(준거적 권위)을 인정하지 않으니까,
오직, 복음서의 증언에만 근거하여, 성모님이 예수 수태, 출산 때까지만 동정이었다고 보는 거고.
여담인데, 현재 가톨릭 교회가, 성모님에 대한 네 가지 교리를,
'믿을 교리'로 가르치고는 있지만,
가톨릭 내의 진보적, 자유적 신학자들은 물론이고,
교회의 공식적 차원에서도, '의미론'적으로 설명하고 가르치는 감이 있지요~
물론, 가톨릭 보수근본주의자들은,
이같은 '자유주의적' 흐름에 강력히 반발하고 있고.
무염시태 교리는, 1950년대에 공식 선포될 때까지도, 의견이 분분했지.
가톨릭이야, 교도권의 차원에서 공식 선포하면, 거기에 따라야 하며,
신학적인 자율성도, 그 범위 안에 묶이니까, 지금으로서는 딴 말을 붙이기 어렵긴 한데.
그리고, 평생 동정 교리는, 신학적 유추와 변증에 따른 것이라기보다는,
전승에 근거한 것 아닌가?
가톨릭은, 성서와 성전(전승)을 신앙의 두 원천으로 놓으니까.
(성서 또한 전승의 일부라는 가톨릭의 입장은, 상당한 해석학적 타당성과 설득력이 있는 게 사실임)
개신교 측은, 성전의 정경(Canon)성(준거적 권위)을 인정하지 않으니까,
오직, 복음서의 증언에만 근거하여, 성모님이 예수 수태, 출산 때까지만 동정이었다고 보는 거고.
여담인데, 현재 가톨릭 교회가, 성모님에 대한 네 가지 교리를,
'믿을 교리'로 가르치고는 있지만,
가톨릭 내의 진보적, 자유적 신학자들은 물론이고,
교회의 공식적 차원에서도, '의미론'적으로 설명하고 가르치는 감이 있지요~
물론, 가톨릭 보수근본주의자들은,
이같은 '자유주의적' 흐름에 강력히 반발하고 있고.
2007.11.02 00:16:26
그나저나 4가지 교리와 상관없이 저는 나름 성모님을 사랑하는 성모신심 깊은 자라고 자부하는데 저같은 2단도 아닌 3단같은 자는 어디서 발을 붙여야 하나요? ㅋㅋ 오늘도 자기전에 성모송을 외우고 잡니다. ㅋㅋㅋ
2007.11.02 00:23:25
본래 이 꼭지의 질문과는 좀 엉뚱하게 새버리는 것 같긴 한데,,
개신교 역시, 사도신경과 니체아신경을 통하여,
'성도의 교제(성인들의 통공)'라는, 교회론의 교리를 고백하고 있을진대,
먼저 간 선배 신앙인들, 특히, 가장 모범과 정점에 위치하는 성모님께,
저 위해 좀 기도해 주슈~ 부탁하는 건 대단히 훌륭한 신앙이지요.
하느님 앞에서는, 산 이나 죽은 이나 모두 다 살아 있다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거니와.
개신교 역시, 사도신경과 니체아신경을 통하여,
'성도의 교제(성인들의 통공)'라는, 교회론의 교리를 고백하고 있을진대,
먼저 간 선배 신앙인들, 특히, 가장 모범과 정점에 위치하는 성모님께,
저 위해 좀 기도해 주슈~ 부탁하는 건 대단히 훌륭한 신앙이지요.
하느님 앞에서는, 산 이나 죽은 이나 모두 다 살아 있다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거니와.
2007.11.02 14:48:16
무명재님과 야고보님의 토론을 재미있게 보고 있기는 한데, 제가 제시한 질문과는 너무 동떨어진 방향으로 흐르고 있는것 같아서... 그만 이쯤에서 정리를 하심이... (^^;;)
2007.11.02 15:34:50
이크 삼천포로 빠졌나요? ^^;
성인통공 얘기를 빼놓고는 그리 어긋나지 않았답니다.
제 생각에 님께서 질문하신
"동정녀 탄생" 의 교리가 기독교 구원론에서 과연 절대적으로 필수적인 요소인 것인가요?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역시 성모론의 4가지 교리를 유기적으로 이해하는 길 밖에는 없다고 봅니다.
정목사님의 아티클은 제가 볼 때 동정녀 탄생을 바라보는 현대 기독교인이 가질 수 있는 바람직한 시각에 관한 글이고
"동정녀 탄생" 의 교리가 구원론과 필연적 관계맺음을 살펴보시려면 성모론을 이해하시는게 제일 합당하다고 생각하거든요.
해석의 방법과 체계-내적 교리에 대한 이해는 다른 것이니까요.
님의 질문에는 "성모론"이 더 맞는 답이라고 생각됩니다.
성인통공 얘기를 빼놓고는 그리 어긋나지 않았답니다.
제 생각에 님께서 질문하신
"동정녀 탄생" 의 교리가 기독교 구원론에서 과연 절대적으로 필수적인 요소인 것인가요?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역시 성모론의 4가지 교리를 유기적으로 이해하는 길 밖에는 없다고 봅니다.
정목사님의 아티클은 제가 볼 때 동정녀 탄생을 바라보는 현대 기독교인이 가질 수 있는 바람직한 시각에 관한 글이고
"동정녀 탄생" 의 교리가 구원론과 필연적 관계맺음을 살펴보시려면 성모론을 이해하시는게 제일 합당하다고 생각하거든요.
해석의 방법과 체계-내적 교리에 대한 이해는 다른 것이니까요.
님의 질문에는 "성모론"이 더 맞는 답이라고 생각됩니다.
2007.11.02 16:15:38
야고보님~~
<삼천포로 빠졌다는> 말 엄청 부담스러워 하는 분들 많으십니다^^.
저희 교우 중 한 분이 그 지역 주변출신이시라 그 내역을 들었습니다.
그 후 안 쓰게 되었지요.
여기 칼럼지기 중 한 분이신 박목사님도 그 곳에 사시고요.
앞으로는 <런던으로 빠졌다>로 하시지요^^.
제가 런던으로 빠졌던 거 아닙니까~~.
토론이 진지하여 한 번 쉬어 가자고 썼습니다.
그럼 계속 하시지요~~~
<삼천포로 빠졌다는> 말 엄청 부담스러워 하는 분들 많으십니다^^.
저희 교우 중 한 분이 그 지역 주변출신이시라 그 내역을 들었습니다.
그 후 안 쓰게 되었지요.
여기 칼럼지기 중 한 분이신 박목사님도 그 곳에 사시고요.
앞으로는 <런던으로 빠졌다>로 하시지요^^.
제가 런던으로 빠졌던 거 아닙니까~~.
토론이 진지하여 한 번 쉬어 가자고 썼습니다.
그럼 계속 하시지요~~~
2007.11.02 16:27:41
야고보의 말은,
마리아론을 교리와 조직신학에서 삭제한 개신교가,
구원론에 결함을 갖고 있다는 게 될 수 있으므로,
야고보의 상론이 필요한 부분이고,
'동정녀 탄생'의 교리는, 가톨릭 마리아론의 믿을 교리 중 하나인,
'평생 동정' 항목과도 일치하는 것은 아니므로,
지금 이 꼭지는, 개신교의 범주 안에서 논의하고 있는 것임도 불구하고,
굳이, 니체아공의회 이후의 마리아론의 확장 부분까지 논의를 연장하려는 건,
(니체아공의회의 교리 확정 시점까지만 논하면 족함)
대단히 가톨릭적인 입장인 나로서도, 납득이 안 가는 바임.
한마디로, 오버라고 사료됨.
내 사견에, 야고보는,
철학, 과학 등(논리적인!)의 패턴으로 사고가 굳어 있다는 감을 짙게 받는데,
가톨릭 모델은, 철학적인 심오함도 강하지만,
그 이상, 그 이전으로, 대중신심을 포용하는 면도 강하며,
가톨릭 교리의 형성, 변천, 발전 과정은,
대중신심을, 교회의 공식적인 교도권이 포용하여,
정통 교리의 준거로 순치해 공식화, 받아들이는 역사였다고 볼 수도 있다는 걸,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임.
사실, 마리아론은,
대중신심, 인간의 정서적 종교심, 신앙심의 요구를,
교리와 교도권의 영역이 수납한 면이 강한 부분이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음.
그러므로, '4가지 믿을 교리'(이것도 로마 측의 범주화일 따름임)가
유기적으로 맞물려 있다는 걸,
(물론, 신학 논리적으로도 그렇긴 한데,)
굳이 여기서 언급하는 건, 논점을 비껴간 부적절한 거론이라고 봄.
* 같은 그리스도교 서방 지역의 범주라도,
개신교 신앙/신학 패턴과 가톨릭 신앙/신학 패턴은,
판이하게 다르지요. 사유 방법에서부터 커다란 차이가 있습니다.
해석학적 차이점이 판이한데, 굳이 그 다른 옆 동네로까지,
이 논의를 확장할 필요는 없겠지요.
마리아론을 교리와 조직신학에서 삭제한 개신교가,
구원론에 결함을 갖고 있다는 게 될 수 있으므로,
야고보의 상론이 필요한 부분이고,
'동정녀 탄생'의 교리는, 가톨릭 마리아론의 믿을 교리 중 하나인,
'평생 동정' 항목과도 일치하는 것은 아니므로,
지금 이 꼭지는, 개신교의 범주 안에서 논의하고 있는 것임도 불구하고,
굳이, 니체아공의회 이후의 마리아론의 확장 부분까지 논의를 연장하려는 건,
(니체아공의회의 교리 확정 시점까지만 논하면 족함)
대단히 가톨릭적인 입장인 나로서도, 납득이 안 가는 바임.
한마디로, 오버라고 사료됨.
내 사견에, 야고보는,
철학, 과학 등(논리적인!)의 패턴으로 사고가 굳어 있다는 감을 짙게 받는데,
가톨릭 모델은, 철학적인 심오함도 강하지만,
그 이상, 그 이전으로, 대중신심을 포용하는 면도 강하며,
가톨릭 교리의 형성, 변천, 발전 과정은,
대중신심을, 교회의 공식적인 교도권이 포용하여,
정통 교리의 준거로 순치해 공식화, 받아들이는 역사였다고 볼 수도 있다는 걸,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임.
사실, 마리아론은,
대중신심, 인간의 정서적 종교심, 신앙심의 요구를,
교리와 교도권의 영역이 수납한 면이 강한 부분이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음.
그러므로, '4가지 믿을 교리'(이것도 로마 측의 범주화일 따름임)가
유기적으로 맞물려 있다는 걸,
(물론, 신학 논리적으로도 그렇긴 한데,)
굳이 여기서 언급하는 건, 논점을 비껴간 부적절한 거론이라고 봄.
* 같은 그리스도교 서방 지역의 범주라도,
개신교 신앙/신학 패턴과 가톨릭 신앙/신학 패턴은,
판이하게 다르지요. 사유 방법에서부터 커다란 차이가 있습니다.
해석학적 차이점이 판이한데, 굳이 그 다른 옆 동네로까지,
이 논의를 확장할 필요는 없겠지요.
2007.11.02 17:25:58
그렇담, "런던으로 빠지지 않고"
"동정녀 탄생" 의 교리가 기독교 구원론에서 과연 절대적으로 필수적인 요소인 것인가요?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어디서 구할 수 있지요?
정목사님의 아티클은 위에서 언급한 바 질문에 대한 답으로는 부적절하고,
토마스형님의 대답은 그냥 개인적 신앙고백 같은데요? (문헌학적 언급이 있지만)
먼저 질문자의 요구사항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네요 ^^;
정목사님 글에 만족하시는 걸 보면 그걸 원하시는 것 같기도 하고...
"동정녀 탄생" 의 교리가 기독교 구원론에서 과연 절대적으로 필수적인 요소인 것인가요?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어디서 구할 수 있지요?
정목사님의 아티클은 위에서 언급한 바 질문에 대한 답으로는 부적절하고,
토마스형님의 대답은 그냥 개인적 신앙고백 같은데요? (문헌학적 언급이 있지만)
먼저 질문자의 요구사항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네요 ^^;
정목사님 글에 만족하시는 걸 보면 그걸 원하시는 것 같기도 하고...
2007.11.02 17:46:13
"부적절하고,"
"그냥 개인적인 신앙고백 같"
- 다고 생각하는 까닭을 서술해야 될 것이며,
(정 목사님과 나의 견해에 대한 폄하가 될 수 있음)
""동정녀 탄생" 의 교리가 기독교 구원론에서 과연 절대적으로 필수적인 요소인 것인가요?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어디서 구할 수 있지요?"
- 이 답을 구하기 위해 닥터K님이 질문을 올린 것이며,
아무튼, 이 건에 대해서는,
야고보가, 정확히 논점을 짚지 못하고,
또한, 관련 정보에 있어서도 충분함과 구체성을 다소 결여한 것 같다는.
닥터K님의 질문은,
니체아공의회 이후 강화, 확장되어 온 마리아론을 전혀 모르는,
평범한 일반 개신교우들도 흔히 던지는 것이고,
지금 이 꼭지의 논점인,
니체아공의회에서 확정된
"성부 하느님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성령으로 인하여 동정 마리아에게서 육신을 취하시어
사람이 되셨음을 믿나이다."
(니체아신경)
"성부 하느님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성령으로 인하여 동정 마리아에게 잉태되어 나시고"
- 라는 교리는,
성모 신심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부분이니,
고로, 이 꼭지의 질문은, 당연히 그리스도론에 관한 것이지,
마리아론에 귀속된다고 야고보가 말한 것은 잘못임.
(*이것은 아주 중요한 문제.
마리아론도, 그리스도론과 교회론에 종속되어 있을 때 유의미하지,
그 자체적으로는, 그리스도교 신학과 신앙의 일부가 될 수 없음.
제2차 바티칸공의회 문헌, 가톨릭교회 교리서 등,
가톨릭의 공식 교리도 당연히 그러한 구조임.
그런데도, 많은 가톨릭 교우들은 그같은 오류를 범하는데,
그러다가, '그리스도교'가 아닌, '마리아교'로 빠지는 것.
이것이야말로 삼천포로 빠지는 것임)
조직신학적, 교리적으로 각 분야간 구획 정리에서,
혼동, 착시 현상을 일으킨 것 같은데.
"그냥 개인적인 신앙고백 같"
- 다고 생각하는 까닭을 서술해야 될 것이며,
(정 목사님과 나의 견해에 대한 폄하가 될 수 있음)
""동정녀 탄생" 의 교리가 기독교 구원론에서 과연 절대적으로 필수적인 요소인 것인가요?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어디서 구할 수 있지요?"
- 이 답을 구하기 위해 닥터K님이 질문을 올린 것이며,
아무튼, 이 건에 대해서는,
야고보가, 정확히 논점을 짚지 못하고,
또한, 관련 정보에 있어서도 충분함과 구체성을 다소 결여한 것 같다는.
닥터K님의 질문은,
니체아공의회 이후 강화, 확장되어 온 마리아론을 전혀 모르는,
평범한 일반 개신교우들도 흔히 던지는 것이고,
지금 이 꼭지의 논점인,
니체아공의회에서 확정된
"성부 하느님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성령으로 인하여 동정 마리아에게서 육신을 취하시어
사람이 되셨음을 믿나이다."
(니체아신경)
"성부 하느님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성령으로 인하여 동정 마리아에게 잉태되어 나시고"
- 라는 교리는,
성모 신심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부분이니,
고로, 이 꼭지의 질문은, 당연히 그리스도론에 관한 것이지,
마리아론에 귀속된다고 야고보가 말한 것은 잘못임.
(*이것은 아주 중요한 문제.
마리아론도, 그리스도론과 교회론에 종속되어 있을 때 유의미하지,
그 자체적으로는, 그리스도교 신학과 신앙의 일부가 될 수 없음.
제2차 바티칸공의회 문헌, 가톨릭교회 교리서 등,
가톨릭의 공식 교리도 당연히 그러한 구조임.
그런데도, 많은 가톨릭 교우들은 그같은 오류를 범하는데,
그러다가, '그리스도교'가 아닌, '마리아교'로 빠지는 것.
이것이야말로 삼천포로 빠지는 것임)
조직신학적, 교리적으로 각 분야간 구획 정리에서,
혼동, 착시 현상을 일으킨 것 같은데.
2007.11.02 20:01:15
켕...;; 얘기가 길어지네요. 의도한 바가 아닌데.
암튼 말씀드리죠.
질문자분은
동정녀 탄생의 "교리"가 기독교 "구원론"에서 과연 절대적으로 "필수적인 요소"인가?로 질문하셔서
(물론 정목사님 글에 만족하신다면 "~"부분의 '표현'에 대해서 제가 오독한 것일테죠.)
"교리"에 관련된 내적 논리에 대한 것이 답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정목사님의 글은 과학시대를 사는"현대 그리스도교인"들이 동정녀 탄생을 바라보는 "바람직한 시각"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이지 "동정녀 탄생 교리"와 "구원론"사이의 "필연적 관계"에 대해서 내적 논리를 말씀하신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더구나 중요한 건 정목사님이 질문자분의 질문에 대답의 형식으로 쓴 글이 아니므로 '폄하'라는 표현은 좀 지나친데요. ^^; 만약 질문자분에 대한 대답으로 정목사님이 그런 글을 올리셨다면 제가 "이의제기"정도는 할 수 있겠으나 그런 게 아니므로 원래 질문자의 의도와 상관없이 정목사님이 해당게시판에 올리신 글에 대해 '폄하'했다는 것은 맞지않습니다.
그리고 토마스 형님이 얘기하신 댓글에 대한 제 표현은 (폄하라고 받아들일 여지가 없는 것이)형님의 "이러저러한 연유로 나는 이렇게 받아들인다"라는 표현에 의거한 것입니다. 저는 어디까지나 질문이 "교리"와 "필수적 요소"의 연관관계를 묻는 논리적인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표현이 정말 그렇잖습니까?) 교리-내적 연관관계만 명시하면 되지, 개인의 해석을 묻는 것은 아니라고 봤기 때문이죠. 그래서 그런 표현을 썼습니다. 혹시 개인의 신앙고백이란 표현이 거슬린다면 그것이 가지는 이미지 때문에 그러시는 것 같은데 전혀 그런것이 아니오라, 모호한 교리사항에 대한 개인의 실존적 생각과 그에 따른 고백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마리아론이 독립적으로 다루어져야한다는 의견은 아니랍니다. 어디까지나 말씀하신바 그리스도론에 종속된 하위법(?)체계에서 인정되는 것으로 알고 있고 또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만 마리아론을 모르는 사람들이 질문을 던진다고 그것이 관계없다는 형님말씀은 논리적으로 오류이고, 저는 동정녀는 마리아고, 그렇다면 마리아론을 다루어야하지 않는가라는 지극히 상식적인 출발점을 제시했을 뿐입니다. 결코 제가 성모신심 운운한 것이 문제의 본질을 흐리지않았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
니케아 공의회의 신조가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까닭은
각각의 문구에 대한 세심한 신학적 고찰과
우리의 자랑스럽고도 위대한 교부들의 고심의 흔적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동정녀 문구에 대해서도 그걸 적용해 본다면
만든자의 입장에서 상식적으로 생각해 볼 때,
전승에 의한 "동정녀 지위"에 대해 마리아론이 거론되지 않을수가 있겠습니까.
제 주장은
질문하신 분의 질문 표현에 "교리 내적-논리"를 묻는 것이 있기에 그걸 제시하면 된다는 것이고
거기에 따라 상기한 바 마리아론의 고찰이 필요하다고 주장한 것 뿐입니다.
그리스도론에 관련해서는 이미 다른 분들이 올려주셨잖아요 ^^
암튼 말씀드리죠.
질문자분은
동정녀 탄생의 "교리"가 기독교 "구원론"에서 과연 절대적으로 "필수적인 요소"인가?로 질문하셔서
(물론 정목사님 글에 만족하신다면 "~"부분의 '표현'에 대해서 제가 오독한 것일테죠.)
"교리"에 관련된 내적 논리에 대한 것이 답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정목사님의 글은 과학시대를 사는"현대 그리스도교인"들이 동정녀 탄생을 바라보는 "바람직한 시각"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이지 "동정녀 탄생 교리"와 "구원론"사이의 "필연적 관계"에 대해서 내적 논리를 말씀하신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더구나 중요한 건 정목사님이 질문자분의 질문에 대답의 형식으로 쓴 글이 아니므로 '폄하'라는 표현은 좀 지나친데요. ^^; 만약 질문자분에 대한 대답으로 정목사님이 그런 글을 올리셨다면 제가 "이의제기"정도는 할 수 있겠으나 그런 게 아니므로 원래 질문자의 의도와 상관없이 정목사님이 해당게시판에 올리신 글에 대해 '폄하'했다는 것은 맞지않습니다.
그리고 토마스 형님이 얘기하신 댓글에 대한 제 표현은 (폄하라고 받아들일 여지가 없는 것이)형님의 "이러저러한 연유로 나는 이렇게 받아들인다"라는 표현에 의거한 것입니다. 저는 어디까지나 질문이 "교리"와 "필수적 요소"의 연관관계를 묻는 논리적인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표현이 정말 그렇잖습니까?) 교리-내적 연관관계만 명시하면 되지, 개인의 해석을 묻는 것은 아니라고 봤기 때문이죠. 그래서 그런 표현을 썼습니다. 혹시 개인의 신앙고백이란 표현이 거슬린다면 그것이 가지는 이미지 때문에 그러시는 것 같은데 전혀 그런것이 아니오라, 모호한 교리사항에 대한 개인의 실존적 생각과 그에 따른 고백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마리아론이 독립적으로 다루어져야한다는 의견은 아니랍니다. 어디까지나 말씀하신바 그리스도론에 종속된 하위법(?)체계에서 인정되는 것으로 알고 있고 또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만 마리아론을 모르는 사람들이 질문을 던진다고 그것이 관계없다는 형님말씀은 논리적으로 오류이고, 저는 동정녀는 마리아고, 그렇다면 마리아론을 다루어야하지 않는가라는 지극히 상식적인 출발점을 제시했을 뿐입니다. 결코 제가 성모신심 운운한 것이 문제의 본질을 흐리지않았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
니케아 공의회의 신조가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까닭은
각각의 문구에 대한 세심한 신학적 고찰과
우리의 자랑스럽고도 위대한 교부들의 고심의 흔적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동정녀 문구에 대해서도 그걸 적용해 본다면
만든자의 입장에서 상식적으로 생각해 볼 때,
전승에 의한 "동정녀 지위"에 대해 마리아론이 거론되지 않을수가 있겠습니까.
제 주장은
질문하신 분의 질문 표현에 "교리 내적-논리"를 묻는 것이 있기에 그걸 제시하면 된다는 것이고
거기에 따라 상기한 바 마리아론의 고찰이 필요하다고 주장한 것 뿐입니다.
그리스도론에 관련해서는 이미 다른 분들이 올려주셨잖아요 ^^
2007.11.02 23:40:24
(* 이길용 목사님께서 아래에 주의를 주셨기에,
경어로 고치겠습니다)
================================
마리아론을 논하지 말자 한 게 아닌데요?
단지, 개신교가 자신의 교리에서 삭제한,
니체아공의회 이후의 확장된 부분에까지,
야고보님이 범위를 넘어갔으니 그러는 것이지요.
'마리아는 예수 잉태와 출산 당시 동정녀였다'
라는 명제는, 실은,
'예수는, 동정녀인 마리아에게 잉태, 출산되었다'
- 는, 그리스도론적 신앙고백의 의미를 깔고 있는 것이니,
(사실 관계가 그러합니다. 니체아공의회까지의 초대교회사는 님도 익히 아실테지요.
문자적 액면의 논리성이 능사가 아닙니다.
에페소공의회의 '하느님의 어머니' 명제도 마찬가지입니다.
문자적 액면으로 보자면야,
'마리아는 하느님의 어머니이다'
라는 문장은, 주어가 성모 마리아이니, 마리아에게 귀속되는 문장으로 읽히겠지만,
실은, 이 문장이 목적하는 바는 그런 게 아니라, 참 하느님이자 참 인간이라는, 그리스도론입니다.
마리아론에 귀속되는 문장이기도 하지만, 그건 '부차'적으로 '파생'되는 것일 따름이죠.
'마리아는 예수 잉태와 출산 당시 동정녀였다'
라는 명제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교의 맥락에 터해, 텍스트를 이해해야지,
문자적 액면만 분절적으로 읽어서는 삼천포로 빠질 수 있다고 한 것입니다)
경전, 교리, 전승 등, 종교 텍스트는, 그 내적 맥락에 터해 해석해야 되는데, 님은,
"동정녀는 마리아고,
그렇다면 마리아론을 다루어야하지 않는가라는 지극히 상식적인 출발점"
- 이라 말씀하셨듯이,
'지극히 상식적'인 물음은 필수적이기는 하나,
내적 맥락과 신학적, 교리적 담론을 잘 이해하지 못한 '상식적(→비전문적)'인 상태에서의 접근은,
그리스도교라는 '이 바닥'의 내적 담론의 연속성과는 동떨어진 접근이 될 수 있다고 저는 보기에,
님과 같은 접근은, 자칫 잘못하면,
그리스도론과 교회론과는 상관 없이, 마리아에 집중하는 분절의 오류를 범할 수 있다고 지적드린 것이고,
"교리-내적 연관관계만 명시하면 되지, 개인의 해석을 묻는 것은 아니라"
- 고 말씀하셨는데,
과연, 역사적으로 퇴적되고, 그것들을 수납, 정립하며 형성된 그리스도교에서,
내적 논리의 연속성이 완벽하게 갖춰질 수 있을까,
(가능한한 내적 논리가 잘 갖춰지면 좋겠고, 저 또한 그것을 바라지만)
단지, 어떤 해석이 그 사람에게도 수긍이 되며,
동시에, 그리스도교의 맥락, 연속성을 담지하고 있다면, 그것으로 좋은 것이고,
정 목사님의 글은, 위의 닥터K님의 질문에 다신 답은 아니지만,
결국, 직접적인 답입니다.
어느 조직신학자든, 그리스도교 교리, 사도신경, 니체아신경을 해설할 때,
이 동정녀 탄생 교리를 설명하면서, 현대인이 갖는 예의 의문을 짚고 넘어가거든요.
신학이라는 것이, 정 목사님께서 쓰신 바와 같이,
그렇게 '해석'할 수 밖에 없습니다.
어차피, 신학이란, 주어진 텍스트에 대한 그리스도교적 '맥락'의 연속선상에서의 해석학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이 꼭지에서 다루는 바는, 동정녀 탄생에 대한 '개신교 신앙'의 차원에서의 의문이므로,
거듭 지적드리거니와, 그 이후의, 가톨릭 신심 및 그 역사의 퇴적에 기인한 마리아론의 확장을 다루는 건,
불필요하다는 것이고,
논점을 흐리지 말자는 것입니다.
"제 생각에 님께서 질문하신
"동정녀 탄생" 의 교리가 기독교 구원론에서 과연 절대적으로 필수적인 요소인 것인가요?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역시 성모론의 4가지 교리를 유기적으로 이해하는 길 밖에는 없다고 봅니다."
- 라는 언급은, 여기서 전혀 나올 필요가 없는 말씀이고,
개신교의 마리아론의 범위와, 가톨릭의 마리아론의 범위의 차이를 간과하는 오류를 범하신 것이고,
실제로, 어떤 조직신학자도(가톨릭 신학자들마저도), 사도신경과 니체아신경을 해설하면서,
예수님께서 동정녀에게서 탄생하셨다는, 과거로부터 전하는 종교 텍스트에 대한 해석만을 할 뿐이지,
님이 주장하듯, 현재 가톨릭이, 성모님에 대하여 4가지 믿을 교리를 굳이 언급하면서,
그렇게 설명하지는 않습니다.
더욱이, 개신교 교리 체계와 신학에서,
동정녀 탄생은, 더욱 명확히, 그리스도론의 영역으로 다루어지고 있지,
(가톨릭에서도 물론 그러하지만, 동시에 마리아론에서도 중요하게 다룸)
굳이, 마리아론까지 언급하게 되면,
이건, 교회론, 성인들의 통공(성도의 교제) 교리, 의화(義化)론/구원론 등등,
다 꼬리를 물고 나오면서,
(적당한 선에서 끊기가 어렵게 됩니다. 다 가지를 치면서,
최소한, 각 가지들에 대하여 간략하나마, 이해는 될 정도의 언급이 필요하게 됩니다)
대단히 논의가 복잡해지며,
더욱이, 가톨릭 신학, 즉 딴 동네로 넘어가버리는 결과를 초래하므로,
사족은, 끊자고 지적한 것이지요.
(이렇게 하는 게 명료하고 경제적이겠지요?)
그리고, 건방지고 언짢게 들으실 만한 소리겠지만(미안합니다~),
제대하시고 나서, 신학도 공부해 보시라고 거듭 권하는 것입니다.
경어로 고치겠습니다)
================================
마리아론을 논하지 말자 한 게 아닌데요?
단지, 개신교가 자신의 교리에서 삭제한,
니체아공의회 이후의 확장된 부분에까지,
야고보님이 범위를 넘어갔으니 그러는 것이지요.
'마리아는 예수 잉태와 출산 당시 동정녀였다'
라는 명제는, 실은,
'예수는, 동정녀인 마리아에게 잉태, 출산되었다'
- 는, 그리스도론적 신앙고백의 의미를 깔고 있는 것이니,
(사실 관계가 그러합니다. 니체아공의회까지의 초대교회사는 님도 익히 아실테지요.
문자적 액면의 논리성이 능사가 아닙니다.
에페소공의회의 '하느님의 어머니' 명제도 마찬가지입니다.
문자적 액면으로 보자면야,
'마리아는 하느님의 어머니이다'
라는 문장은, 주어가 성모 마리아이니, 마리아에게 귀속되는 문장으로 읽히겠지만,
실은, 이 문장이 목적하는 바는 그런 게 아니라, 참 하느님이자 참 인간이라는, 그리스도론입니다.
마리아론에 귀속되는 문장이기도 하지만, 그건 '부차'적으로 '파생'되는 것일 따름이죠.
'마리아는 예수 잉태와 출산 당시 동정녀였다'
라는 명제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교의 맥락에 터해, 텍스트를 이해해야지,
문자적 액면만 분절적으로 읽어서는 삼천포로 빠질 수 있다고 한 것입니다)
경전, 교리, 전승 등, 종교 텍스트는, 그 내적 맥락에 터해 해석해야 되는데, 님은,
"동정녀는 마리아고,
그렇다면 마리아론을 다루어야하지 않는가라는 지극히 상식적인 출발점"
- 이라 말씀하셨듯이,
'지극히 상식적'인 물음은 필수적이기는 하나,
내적 맥락과 신학적, 교리적 담론을 잘 이해하지 못한 '상식적(→비전문적)'인 상태에서의 접근은,
그리스도교라는 '이 바닥'의 내적 담론의 연속성과는 동떨어진 접근이 될 수 있다고 저는 보기에,
님과 같은 접근은, 자칫 잘못하면,
그리스도론과 교회론과는 상관 없이, 마리아에 집중하는 분절의 오류를 범할 수 있다고 지적드린 것이고,
"교리-내적 연관관계만 명시하면 되지, 개인의 해석을 묻는 것은 아니라"
- 고 말씀하셨는데,
과연, 역사적으로 퇴적되고, 그것들을 수납, 정립하며 형성된 그리스도교에서,
내적 논리의 연속성이 완벽하게 갖춰질 수 있을까,
(가능한한 내적 논리가 잘 갖춰지면 좋겠고, 저 또한 그것을 바라지만)
단지, 어떤 해석이 그 사람에게도 수긍이 되며,
동시에, 그리스도교의 맥락, 연속성을 담지하고 있다면, 그것으로 좋은 것이고,
정 목사님의 글은, 위의 닥터K님의 질문에 다신 답은 아니지만,
결국, 직접적인 답입니다.
어느 조직신학자든, 그리스도교 교리, 사도신경, 니체아신경을 해설할 때,
이 동정녀 탄생 교리를 설명하면서, 현대인이 갖는 예의 의문을 짚고 넘어가거든요.
신학이라는 것이, 정 목사님께서 쓰신 바와 같이,
그렇게 '해석'할 수 밖에 없습니다.
어차피, 신학이란, 주어진 텍스트에 대한 그리스도교적 '맥락'의 연속선상에서의 해석학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이 꼭지에서 다루는 바는, 동정녀 탄생에 대한 '개신교 신앙'의 차원에서의 의문이므로,
거듭 지적드리거니와, 그 이후의, 가톨릭 신심 및 그 역사의 퇴적에 기인한 마리아론의 확장을 다루는 건,
불필요하다는 것이고,
논점을 흐리지 말자는 것입니다.
"제 생각에 님께서 질문하신
"동정녀 탄생" 의 교리가 기독교 구원론에서 과연 절대적으로 필수적인 요소인 것인가요?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역시 성모론의 4가지 교리를 유기적으로 이해하는 길 밖에는 없다고 봅니다."
- 라는 언급은, 여기서 전혀 나올 필요가 없는 말씀이고,
개신교의 마리아론의 범위와, 가톨릭의 마리아론의 범위의 차이를 간과하는 오류를 범하신 것이고,
실제로, 어떤 조직신학자도(가톨릭 신학자들마저도), 사도신경과 니체아신경을 해설하면서,
예수님께서 동정녀에게서 탄생하셨다는, 과거로부터 전하는 종교 텍스트에 대한 해석만을 할 뿐이지,
님이 주장하듯, 현재 가톨릭이, 성모님에 대하여 4가지 믿을 교리를 굳이 언급하면서,
그렇게 설명하지는 않습니다.
더욱이, 개신교 교리 체계와 신학에서,
동정녀 탄생은, 더욱 명확히, 그리스도론의 영역으로 다루어지고 있지,
(가톨릭에서도 물론 그러하지만, 동시에 마리아론에서도 중요하게 다룸)
굳이, 마리아론까지 언급하게 되면,
이건, 교회론, 성인들의 통공(성도의 교제) 교리, 의화(義化)론/구원론 등등,
다 꼬리를 물고 나오면서,
(적당한 선에서 끊기가 어렵게 됩니다. 다 가지를 치면서,
최소한, 각 가지들에 대하여 간략하나마, 이해는 될 정도의 언급이 필요하게 됩니다)
대단히 논의가 복잡해지며,
더욱이, 가톨릭 신학, 즉 딴 동네로 넘어가버리는 결과를 초래하므로,
사족은, 끊자고 지적한 것이지요.
(이렇게 하는 게 명료하고 경제적이겠지요?)
그리고, 건방지고 언짢게 들으실 만한 소리겠지만(미안합니다~),
제대하시고 나서, 신학도 공부해 보시라고 거듭 권하는 것입니다.
2007.11.02 23:00:27
잠시 중간에 끼어듭니다.
무명재님.. 그리고 야고보님.. 두분 친분 사이야 알만한 다비안들은 아시고 계시겠지만
다비아에는 그 외 더 많은 눈팅과 또 손님들이 지속적으로 찾아오고 있습니다.
하여 의견을 공개게시판에서 나누실 때에는 가급적 상호 경어를 사용해 주십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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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1.03 04:47:22
무명재님과 야고보님의 대화가 매우 재미있군요... 덕분에 생각하지 못했던 가톨릭 교리에 관한 정보를 얻을수 있어 즐겁습니다 (^^)
아무래도, 제가 올렸던 질문에 대해 부연설명을 조금 드려야겠습니다. 뭐, 대충 짐작하시겠지만, 제가 궁금했던 내용을 좀 더 원색적인 용어를 사용해서 다시 표현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예수님이 처녀 마리아의 몸에서 태어났다는 말이 문자그대로 진짜 역사상에서 일어났던 일일까?
정말로 그랬다면 왜 사도 바울이나 마가복음, 요한복음은 한마디 언급도 안 할까?
실제로 일어났던 일인데 다만 전승과정에서의 문제로 초기에 폭넓게 알려지지 못했던 것 뿐일까?
아니면 후대에 예수의 일생이 신화화되는 과정에서 전설로 덧붙여진 이야기의 하나일까?
(2) 만약, 처녀의 몸에서 태어났다는 이야기가 후대에 덧붙여진 (실제로는 안 일어났던) 이야기라면
"그리스도는 처녀의 몸에서 성령으로 잉태되었으므로 원죄없이 태어난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전 인류의 죄를 대속하는 온전하고 깨끗한 제물로써 하나님께 바쳐질 수 있었고,
그런 예수를 구세주로 믿을때 비로서 우리의 영혼이 구원받을 수 있다"
이렇게 가르치는 보수적인 교회의 구원론이 근본에서부터 무너지는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는 것이지요... 즉, 원죄의 굴레속에 있는 예수가 다른 사람들의 죄까지 어떻게 걸머지고 해결할 수 있겠느냐는 이야기입니다.
(3) 재미있는 사실은, 사도 바울은 동정녀 탄생을 전혀 언급하지 않으면서도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이 온전한 것이었음을 확신하고 있었다는 점인데, 왜 후대의 교회에서는 이성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동정녀 탄생의 전승을 구원론과 연결시켜서 반드시 믿어야 되는 사도신경의 범주에까지 포함시키는 무리수(?)를 두었을까 하는 것입니다. 도대체 왜, 누구에 의해, 언제부터? 이 세가지가 (3)번질문의 세부적인 사항이지요.
정목사님이 과거에 쓰셨던 아티클은 (1)번 질문에 대한 대략적인 범주의 답변으로 생각해도 될 듯 합니다. 그러나 (2)번과 (3)번의 의문점은 여전히 남는군요... 이 점에 대해 좋은 답변 부탁드립니다.
(ps) 성모에 관한 4대 믿을교리의 내용은 제 질문의 범주를 넘어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에 관한 내용부터가 의문의 대상인데 평생동정이니 무염시태니 하는 교리들은 아예 관심밖의 이야기입니다.
아무래도, 제가 올렸던 질문에 대해 부연설명을 조금 드려야겠습니다. 뭐, 대충 짐작하시겠지만, 제가 궁금했던 내용을 좀 더 원색적인 용어를 사용해서 다시 표현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예수님이 처녀 마리아의 몸에서 태어났다는 말이 문자그대로 진짜 역사상에서 일어났던 일일까?
정말로 그랬다면 왜 사도 바울이나 마가복음, 요한복음은 한마디 언급도 안 할까?
실제로 일어났던 일인데 다만 전승과정에서의 문제로 초기에 폭넓게 알려지지 못했던 것 뿐일까?
아니면 후대에 예수의 일생이 신화화되는 과정에서 전설로 덧붙여진 이야기의 하나일까?
(2) 만약, 처녀의 몸에서 태어났다는 이야기가 후대에 덧붙여진 (실제로는 안 일어났던) 이야기라면
"그리스도는 처녀의 몸에서 성령으로 잉태되었으므로 원죄없이 태어난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전 인류의 죄를 대속하는 온전하고 깨끗한 제물로써 하나님께 바쳐질 수 있었고,
그런 예수를 구세주로 믿을때 비로서 우리의 영혼이 구원받을 수 있다"
이렇게 가르치는 보수적인 교회의 구원론이 근본에서부터 무너지는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는 것이지요... 즉, 원죄의 굴레속에 있는 예수가 다른 사람들의 죄까지 어떻게 걸머지고 해결할 수 있겠느냐는 이야기입니다.
(3) 재미있는 사실은, 사도 바울은 동정녀 탄생을 전혀 언급하지 않으면서도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이 온전한 것이었음을 확신하고 있었다는 점인데, 왜 후대의 교회에서는 이성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동정녀 탄생의 전승을 구원론과 연결시켜서 반드시 믿어야 되는 사도신경의 범주에까지 포함시키는 무리수(?)를 두었을까 하는 것입니다. 도대체 왜, 누구에 의해, 언제부터? 이 세가지가 (3)번질문의 세부적인 사항이지요.
정목사님이 과거에 쓰셨던 아티클은 (1)번 질문에 대한 대략적인 범주의 답변으로 생각해도 될 듯 합니다. 그러나 (2)번과 (3)번의 의문점은 여전히 남는군요... 이 점에 대해 좋은 답변 부탁드립니다.
(ps) 성모에 관한 4대 믿을교리의 내용은 제 질문의 범주를 넘어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에 관한 내용부터가 의문의 대상인데 평생동정이니 무염시태니 하는 교리들은 아예 관심밖의 이야기입니다.
2007.11.03 10:07:34
닥터 케이 님,
요즘 정신 없어서 짧은 대글만 처리하느나
이 꼭지글을 읽었지만 대글을 못달았습니다.
복잡한 논의이거든요.
오늘은 아무래도 한 마디는 해야할 것 같군요.
(1)번은 대답이 되었다고 했구요.
(2) 동정녀, 원죄, 구원의 관계는 칼로 무를 자르듯이 끊어서 말할 수 없답니다.
도대체 무엇을 원죄라고 할까요?
원죄라는 생각이 성서에 나올까요?
비슷한 개념이 나온다고하더라도 그것이 곧 원죄 자체는 아니고
기독교 역사에서 그런 개념이 자리를 잡았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해석되어야 한답니다.
이런 설명을 계속하려면 기독교의 죄론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오늘은 아무래도 거기까지는 안되겠군요.
닥터 님의 머리 속에 든 원죄 개념을 일단 내려놓으세요.
아담 때문에 우리 모두가 죄인이라는 게 옳은 이야기인지,
옳다면 왜 그런지를 더 생각해야 한답니다.
요약해서, 예수님이 동정녀에게서 태어났다는 사실은 기독교 교리의 핵심이 아닙니다.
그것은 더 중요한 어떤 교리로부터 나온 귀결이에요.
닥터 님이 인용한 내용은 틀린 말은 아니지만 옳은 것도 아니랍니다.
만약에 그것의 의미를 충분히 해석할 수 있다면 틀렸다고 말할 수 없고,
단지 명시적인 선언에만 머문다면 옳은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닥터 님의 관점을 전제한다면
이 인용은 틀린 것이지요.
즉 동정녀 탄생과 구원의 무조건적인 일치는 틀린 주장이에요.
오히려 거꾸로 말해야지요.
예수로 인해서 구원이 임했기에
그는 동정녀에게서 출생한 분이시라고 말입니다.
그게 그거 아니냐 하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이건 전혀 다른 사태랍니다.
(3) 동정녀 출생과 사도신경 전승의 교리사적 배경은 제가 여기서
일일이 열거하기는 힘들겠군요.
문헌을 참고해야하거든요.
이런 문제와 더불어
개신교과 가톨릭 신앙의 일치점과 차이점에 관해서 자세하게 알고 싶으시면
<하나의 믿음>이라는 책을 참고하세요.
세계적으로 저명한 개신교 신학자와 가톨릭 신학자 30 여명이 함께 집필한 책이랍니다.
질문의 핵심은 초기 기독교가
사도신경에 동정녀 전승을 포함시킨 이유가 무언가 하는 거지요?
왜 무리수는 두었냐 했지요?
무리수가 아니랍니다.
2천년 전을 생각해야합니다.
그 시대 사람들에게는 그게 아주 자연스러운 진술이었답니다.
예수님만이 아니라 동정녀 탄생은 다른 인물들 이야기에도 나오는 거랍니다.
그 당시는 오늘과 같은 실증적 과학과는 다른 방식으로 세계를 이해했어요.
오늘의 시인들처럼 세계를 본 거지요.
사도신경은 로마교회가 세례교육에서 사용한 건데요.
신조(credo)이지만 동시에 일종의 찬양(doxology)이라고 보면 됩니다.
그걸 오늘의 과학적 시각으로 옳다 그르다 하고 말하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거지요.
사도신경이 말하려는 그 영적인 중심으로 치고들어가는 게 최선이에요.
예수에게서 하나님의 구원 통치가 온전하게 일어났다는 고백이지요.
그가 다시 올 때 세계가 완성된다는 고백이며, 희망이지요.
좋은 주말.
요즘 정신 없어서 짧은 대글만 처리하느나
이 꼭지글을 읽었지만 대글을 못달았습니다.
복잡한 논의이거든요.
오늘은 아무래도 한 마디는 해야할 것 같군요.
(1)번은 대답이 되었다고 했구요.
(2) 동정녀, 원죄, 구원의 관계는 칼로 무를 자르듯이 끊어서 말할 수 없답니다.
도대체 무엇을 원죄라고 할까요?
원죄라는 생각이 성서에 나올까요?
비슷한 개념이 나온다고하더라도 그것이 곧 원죄 자체는 아니고
기독교 역사에서 그런 개념이 자리를 잡았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해석되어야 한답니다.
이런 설명을 계속하려면 기독교의 죄론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오늘은 아무래도 거기까지는 안되겠군요.
닥터 님의 머리 속에 든 원죄 개념을 일단 내려놓으세요.
아담 때문에 우리 모두가 죄인이라는 게 옳은 이야기인지,
옳다면 왜 그런지를 더 생각해야 한답니다.
요약해서, 예수님이 동정녀에게서 태어났다는 사실은 기독교 교리의 핵심이 아닙니다.
그것은 더 중요한 어떤 교리로부터 나온 귀결이에요.
닥터 님이 인용한 내용은 틀린 말은 아니지만 옳은 것도 아니랍니다.
만약에 그것의 의미를 충분히 해석할 수 있다면 틀렸다고 말할 수 없고,
단지 명시적인 선언에만 머문다면 옳은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닥터 님의 관점을 전제한다면
이 인용은 틀린 것이지요.
즉 동정녀 탄생과 구원의 무조건적인 일치는 틀린 주장이에요.
오히려 거꾸로 말해야지요.
예수로 인해서 구원이 임했기에
그는 동정녀에게서 출생한 분이시라고 말입니다.
그게 그거 아니냐 하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이건 전혀 다른 사태랍니다.
(3) 동정녀 출생과 사도신경 전승의 교리사적 배경은 제가 여기서
일일이 열거하기는 힘들겠군요.
문헌을 참고해야하거든요.
이런 문제와 더불어
개신교과 가톨릭 신앙의 일치점과 차이점에 관해서 자세하게 알고 싶으시면
<하나의 믿음>이라는 책을 참고하세요.
세계적으로 저명한 개신교 신학자와 가톨릭 신학자 30 여명이 함께 집필한 책이랍니다.
질문의 핵심은 초기 기독교가
사도신경에 동정녀 전승을 포함시킨 이유가 무언가 하는 거지요?
왜 무리수는 두었냐 했지요?
무리수가 아니랍니다.
2천년 전을 생각해야합니다.
그 시대 사람들에게는 그게 아주 자연스러운 진술이었답니다.
예수님만이 아니라 동정녀 탄생은 다른 인물들 이야기에도 나오는 거랍니다.
그 당시는 오늘과 같은 실증적 과학과는 다른 방식으로 세계를 이해했어요.
오늘의 시인들처럼 세계를 본 거지요.
사도신경은 로마교회가 세례교육에서 사용한 건데요.
신조(credo)이지만 동시에 일종의 찬양(doxology)이라고 보면 됩니다.
그걸 오늘의 과학적 시각으로 옳다 그르다 하고 말하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거지요.
사도신경이 말하려는 그 영적인 중심으로 치고들어가는 게 최선이에요.
예수에게서 하나님의 구원 통치가 온전하게 일어났다는 고백이지요.
그가 다시 올 때 세계가 완성된다는 고백이며, 희망이지요.
좋은 주말.
요한복음서에도 없습니다. 마태오, 루카복음서에만 기록되어 있지요.
그러면, 마태오, 루카복음서의 주요한 두 자료였으리라 추정되는,
원마르코복음서와 Q 중에서, Q에 전승되는 사화였겠는가?
그런데, 마르코복음서보다 연대가 더 빠른 바오로의 사목 서신들에도, 예수님의 탄생 사화는,
역시, 언급되지 않습니다.
아마, 바오로는, 몰랐을 겁니다.
만약, 알았다면, 그토록 논리정연하게 그리스도교 복음을 신학적으로 정립한 바오로가,
언급하지 않을 리가 없었을 겁니다.
그렇다고, 신약성서 및, 사도로부터 물려받은 신앙에서 증언되는,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이, '무의미'하다고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저도, 여기까지밖에는 말을 못 하겠습니다.
저 또한 갈등하고 애매모호한 지점이니까요.
허나, 저는, 나름대로 이렇게 받아들입니다.
사람이 예수님을 믿는 것은,
예수님을 만나고, 점점 신앙이 깊어가는 '과정'이라 봤을 때,
제자들이 예수님을 만나고, 그 사역과 십자가, 부활을 경험하고,
초대 교회가 성립하고, 시간이 지나가며 겪은 과정들이,
그리스도교가 예수님을 알아가는 과정이 아니었겠습니까?
구약성서의 야훼 하느님 경험 역시 마찬가지지요.
그렇게 받아들인다면, 신약성서의 그리스도론의 발전 과정도,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처음부터 하늘에서 뚝 떨어진 양 완성된 그리스도론이 주어진다는 것이,
오히려 더 부자연스럽겠지요.
(* 일단, 저는, 이렇게 받아들입니다만,
그래도, 석연찮은 답이라고 저도 생각은 합니다.
여전히, 여러 반문이 가능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