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 성모 동산은, 이미 1980년대에 해당 지역인 천주교 광주대교구의 교구장이셨던
윤공희 대주교님의 명의로, 천주교우들의 출입을 금지했습니다.
해당 교구의 교구장이 사목권으로 그렇게 묶었다면,
전 세계의 천주교우들은(설령 교황님이라 할지라도) 그걸 지켜야 합니다.
그리고, 천주교의 공식적인 교리에서, 성찬례를,
'실체변화'의 교리로 가르치고 있긴 합니다만,
(개신교 측에서 흔히 '화체설'이라 부릅니다만, 정밀한 용어가 못 됩니다)
성찬례를 제정하시고, 엄수하라 명령하신 그리스도의 위임에 따라,
그리스도의 대리자 자격인 집전 사제가 빵과 포도주에,
예수님의 몸과 피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며 축성하더라도,
여전히 빵과 포도주라는 '질료'는 변함이 없다고 분명하게 적시하고 있습니다.
가톨릭 신학 사유의 근간인 토미즘의 원리에 따르자면,
① 빵과 포도주라는 물질은 '질료'이고,
② ● 축성하기 이전의 빵과 포도주 즉, 단순히, '먹거리',
● 축성 이후에 거룩하게 변한 빵과 포도주, 즉,
최후의 만찬 때, 예수님께서 지칭하신 바, 그 분의 몸과 피,
(최후의 만찬 그 당시에도, 빵과 포도주임은 변함 없었지만,
예수님께서 그렇게 축성하심으로써, 변했다는 것입니다)
- 이 두 가지는, '실체'입니다.
③ 빵과 포도주라는, 합당한 질료가 갖춰지고,
예수님께서 성찬례를 제정하시고 명하신 바대로,
최후의 만찬 당시의 예수님의 말씀("내 몸이다, 내 피다")에 따라,
성찬례를 거행하는 구성 요소들을 '형상'이라 합니다.
(토미즘(토마스 아퀴나스) 철학의 '형상'과 '질료'를
철학 사전에서 찾아보시면 이해가 되실 듯)
그런데,
나주 성모 동산에서는,
성체와 성혈(성찬례의 빵과 포도주)이,
실제로 피가 뚝뚝 떨어지는 살점으로 변화한다고 선전합니다.
이건, 대단히 심각한 문제가 있는, 잘못된 가르침입니다.
위에서 제가 설명드린 바에 따르자면,
질료는, 형상에 따라, 실체가 변화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바꾸어 말하자면,
질료가 변하는 건 아니거든요.
예수님께서도, 최후의 만찬 때, 그런 마술을 부리시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당신의 대리자로 세운 사제를 종으로 쓰셔서,
이미, 성찬례 때 당신의 몸과 피로 축성해서,
빵과 포도주가 성체와 성혈이 되었는데,
그것이 다시, 진짜 살점이 된다면,
그 성찬례의 축성 행위는 과연 무엇인 것이며,
예수님은 장난치시는 거란 말인가,
교리와 신앙의 일대 혼란이 빚어지고 맙니다.
(어쩌면, 가톨릭 신앙의 사유 원리, 나아가, 그리스도교 신앙 자체가
와르르 무너지게 될 수도 있지요)
지극히 기초적인 교리와, 보편적인 상식과 이성에 터해 생각할 때,
나주의 기적은, 이단적이라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초자연적인 기현상이 일어난다 할지라도,
(지금도 그런 일들은 계속 일어나는 게 사실이긴 합니다만)
그러한 가시적인 것은,
'믿음'과 직접적인 상관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엄밀하고 정확한 이성으로 사유하는 것에 의외로 아주 둔감합니다.
게다가, 눈에 보이는 것에 사로잡히는 경향이 더 짙지요.
설령, 성체와 성혈이 진짜 살점으로 변했다 하더라도,
그 살점이 정말 '예수님'의 살점일지는 어떻게 보장하겠습니까?
그리고, 설명드린 바와 같이, 조리있게 생각하면,
그 가시적 기현상이, 실은, 신앙에 반하는 것임을 쉽게 알 수 있을텐데,
많은 사람들은 보이는 것에 열광한다는 겁니다.
보이는 것에 주목하는 성향은,
뭇 사람들의 물화(物化)된 속성에 기인할 것입니다.
개신교라고 별다르겠습니까?
만약, 가시적인 기적을 보고 사람들이 믿어 구원을 얻는 게 가능하다면,
주님께서는, 지금껏 이 땅에 살았고, 지금도 살고 있는
수십수백억 각자에게, 골백번씩도 더 나타나셨겠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해서 '믿음'이 생기는 게 아니거든요.
그리스도교가 말하는 '믿음'이란,
그런 따위의 것이 아님을,
여기서도 알 수 있는 게지요.
윤공희 대주교님의 명의로, 천주교우들의 출입을 금지했습니다.
해당 교구의 교구장이 사목권으로 그렇게 묶었다면,
전 세계의 천주교우들은(설령 교황님이라 할지라도) 그걸 지켜야 합니다.
그리고, 천주교의 공식적인 교리에서, 성찬례를,
'실체변화'의 교리로 가르치고 있긴 합니다만,
(개신교 측에서 흔히 '화체설'이라 부릅니다만, 정밀한 용어가 못 됩니다)
성찬례를 제정하시고, 엄수하라 명령하신 그리스도의 위임에 따라,
그리스도의 대리자 자격인 집전 사제가 빵과 포도주에,
예수님의 몸과 피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며 축성하더라도,
여전히 빵과 포도주라는 '질료'는 변함이 없다고 분명하게 적시하고 있습니다.
가톨릭 신학 사유의 근간인 토미즘의 원리에 따르자면,
① 빵과 포도주라는 물질은 '질료'이고,
② ● 축성하기 이전의 빵과 포도주 즉, 단순히, '먹거리',
● 축성 이후에 거룩하게 변한 빵과 포도주, 즉,
최후의 만찬 때, 예수님께서 지칭하신 바, 그 분의 몸과 피,
(최후의 만찬 그 당시에도, 빵과 포도주임은 변함 없었지만,
예수님께서 그렇게 축성하심으로써, 변했다는 것입니다)
- 이 두 가지는, '실체'입니다.
③ 빵과 포도주라는, 합당한 질료가 갖춰지고,
예수님께서 성찬례를 제정하시고 명하신 바대로,
최후의 만찬 당시의 예수님의 말씀("내 몸이다, 내 피다")에 따라,
성찬례를 거행하는 구성 요소들을 '형상'이라 합니다.
(토미즘(토마스 아퀴나스) 철학의 '형상'과 '질료'를
철학 사전에서 찾아보시면 이해가 되실 듯)
그런데,
나주 성모 동산에서는,
성체와 성혈(성찬례의 빵과 포도주)이,
실제로 피가 뚝뚝 떨어지는 살점으로 변화한다고 선전합니다.
이건, 대단히 심각한 문제가 있는, 잘못된 가르침입니다.
위에서 제가 설명드린 바에 따르자면,
질료는, 형상에 따라, 실체가 변화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바꾸어 말하자면,
질료가 변하는 건 아니거든요.
예수님께서도, 최후의 만찬 때, 그런 마술을 부리시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당신의 대리자로 세운 사제를 종으로 쓰셔서,
이미, 성찬례 때 당신의 몸과 피로 축성해서,
빵과 포도주가 성체와 성혈이 되었는데,
그것이 다시, 진짜 살점이 된다면,
그 성찬례의 축성 행위는 과연 무엇인 것이며,
예수님은 장난치시는 거란 말인가,
교리와 신앙의 일대 혼란이 빚어지고 맙니다.
(어쩌면, 가톨릭 신앙의 사유 원리, 나아가, 그리스도교 신앙 자체가
와르르 무너지게 될 수도 있지요)
지극히 기초적인 교리와, 보편적인 상식과 이성에 터해 생각할 때,
나주의 기적은, 이단적이라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초자연적인 기현상이 일어난다 할지라도,
(지금도 그런 일들은 계속 일어나는 게 사실이긴 합니다만)
그러한 가시적인 것은,
'믿음'과 직접적인 상관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엄밀하고 정확한 이성으로 사유하는 것에 의외로 아주 둔감합니다.
게다가, 눈에 보이는 것에 사로잡히는 경향이 더 짙지요.
설령, 성체와 성혈이 진짜 살점으로 변했다 하더라도,
그 살점이 정말 '예수님'의 살점일지는 어떻게 보장하겠습니까?
그리고, 설명드린 바와 같이, 조리있게 생각하면,
그 가시적 기현상이, 실은, 신앙에 반하는 것임을 쉽게 알 수 있을텐데,
많은 사람들은 보이는 것에 열광한다는 겁니다.
보이는 것에 주목하는 성향은,
뭇 사람들의 물화(物化)된 속성에 기인할 것입니다.
개신교라고 별다르겠습니까?
만약, 가시적인 기적을 보고 사람들이 믿어 구원을 얻는 게 가능하다면,
주님께서는, 지금껏 이 땅에 살았고, 지금도 살고 있는
수십수백억 각자에게, 골백번씩도 더 나타나셨겠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해서 '믿음'이 생기는 게 아니거든요.
그리스도교가 말하는 '믿음'이란,
그런 따위의 것이 아님을,
여기서도 알 수 있는 게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