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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수 509
아래 질문에 답변주신 목사님과 여러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부족하나마 몇가지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질문을 한두가지씩 올려도 될른지요?
오늘 질문드리고 싶은것은 칼 바르트의 사상에서 Historie 와 Geschichte 의 구분에 관한 것인데요 (사실, 이 부분을 제가 심도있게 책을 읽어본건 아니라는걸 미리 말씀드립니다..), 이러한 구분에 있어서 크리스찬에게 실존적으로 의미있는 것은 Geschichte 의 영역이라는 주장을 읽으면서 이런 의문도 들었습니다.
<질문1> 그렇다면 실제로 일어난 역사와는 무관한 내용이라도 "믿음"의 영역안에서 진짜라고 믿으면 geschichte 가 되는 것인지? Historie 의 영역이라도 내가 의미를 두지 않으면 geschichte 가 아닌것은 이해하겠는데, 처음부터 Historie 와 무관한 것들 (이를테면 신화나 전설 혹은 민담) 이라도 내가 의미있게 받아들인다면 (혹은 진짜라고 믿는다면) geschichte 가 되는 것인지요?
이런 질문을 드리는 이유는, "역사적 예수"와는 무관한 예수상을 가지고 신앙의 대상으로 삼는다면(그것이 근본주의든 민중신학이든 아니면 심지어 불가지론자의 신비주의라 할지라도 뭐든간에..) 과연 그것이 객관적으로 볼때 얼마나 의미가 있는 일이냐는 고민때문입니다.
의미가 있다면 아래의 <질문 2>와 같은 고민을 낳게 됩니다. 그리고, geschichte 라는 것이 "fact"와 무관하더라도 확실한 믿음만 가지고 있으면 충분하다고 한다면 복음서와 서신서의 내용을 글자 그대로 믿는 보수적인 교인들이 차라리 더 속편하고 확신있는(?)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것 아닌가.. 그렇다면 굳이 골치아프게 "역사적 예수"를 규명하거나 성경본문에 관한 양식비평을 하거나 하는 신학적 고민이 필요있느냐는 생각도 해봅니다.
만약 , 의미가 없다면 (즉, 신앙은 Historie에 근거한 Geschichte의 영역만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역사적 예수"와 무관한 그리스도상에 근거한 신앙들은 모두 허무한 것이 되어 버리는게 아니냐 , 극단적으로 표현하자면 기존의 보수적인 교회에서 보수적인 신앙생활을 하는 교인들은 모두 헛고생(?)을 하고 있는거 아니냐는 의문도 자연스럽게 생길것 같습니다.
<질문2> 만약, (1)의 전제가 맞다면 (틀렸다면 이 질문은 의미가 없습니다) 과연 크리스찬의 믿음의 영역의 geschichte 와 타 종교인들이 믿는 geschichte 의 본질적 차이가 있는 것인지요? 단지 소재와 내용의 차이일 뿐 근본적으로는 동일한 차원의 것인지, 아니면 확고부동한 차이가 있는 것인지 (이를테면 성령의 개입으로 인한 개인의 심령의 변화..같은 하나님의 초자연적 의지??)?
만약, 기독교 신앙이나 타종교 신앙이나 모두 Historie 와 그다지 연관이 없는 내용들로 이루어진 Geschichte의 영역으로 구성된 신앙이라면 타종교인에게 기독교를 전파해야할 어떠한 당위성을 주장할 수 있는 것인지? (요건 좀 위험한 질문이기도 합니다만 평소에 고민하던 것이라서... 물론, 이 질문은 "기독교 신앙은 역사적 사실과 무관하게 발전해왔다"는 전제가 성립할때만 의미있는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폐기되어야 합니다. )
<질문 3> Geschichte 의 영역을 강조하는 것은 결국 실존주의 철학의 잔재가 아닌지요? 이렇게 되면 신앙이라는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영역에만 머무르게 되고 공동으로 고백할 수 있는 신앙의 영역은 너무 협소해지는게 아닙니까?
제가 신학적 지식이 부족하여 "Historie" 와 "Geschichte" 의 개념을 오해하는 것인지 좀 불안합니다만... 아무튼 이러한 궁금증 때문에 신앙생활이 여러가지로 힘들때가 많습니다. 교회에서는 이런 이야기를 목사님들이나 교우분들과 자유롭게 나눌수 있는 분위기도 안되구요 (잘못하면 이상한 사람 혹은 위험인물로 찍힐까봐서.. (-.-;;)) 그래도 이곳에서나마 이런 질문을 자유롭게 올릴수 있으니 숨통이 좀 트이는것 같군요. 좋은 답변 부탁드리고 혹시 제가 잘못 알고 있는 부분이 있으면 지적 부탁드립니다.
부족하나마 몇가지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질문을 한두가지씩 올려도 될른지요?
오늘 질문드리고 싶은것은 칼 바르트의 사상에서 Historie 와 Geschichte 의 구분에 관한 것인데요 (사실, 이 부분을 제가 심도있게 책을 읽어본건 아니라는걸 미리 말씀드립니다..), 이러한 구분에 있어서 크리스찬에게 실존적으로 의미있는 것은 Geschichte 의 영역이라는 주장을 읽으면서 이런 의문도 들었습니다.
<질문1> 그렇다면 실제로 일어난 역사와는 무관한 내용이라도 "믿음"의 영역안에서 진짜라고 믿으면 geschichte 가 되는 것인지? Historie 의 영역이라도 내가 의미를 두지 않으면 geschichte 가 아닌것은 이해하겠는데, 처음부터 Historie 와 무관한 것들 (이를테면 신화나 전설 혹은 민담) 이라도 내가 의미있게 받아들인다면 (혹은 진짜라고 믿는다면) geschichte 가 되는 것인지요?
이런 질문을 드리는 이유는, "역사적 예수"와는 무관한 예수상을 가지고 신앙의 대상으로 삼는다면(그것이 근본주의든 민중신학이든 아니면 심지어 불가지론자의 신비주의라 할지라도 뭐든간에..) 과연 그것이 객관적으로 볼때 얼마나 의미가 있는 일이냐는 고민때문입니다.
의미가 있다면 아래의 <질문 2>와 같은 고민을 낳게 됩니다. 그리고, geschichte 라는 것이 "fact"와 무관하더라도 확실한 믿음만 가지고 있으면 충분하다고 한다면 복음서와 서신서의 내용을 글자 그대로 믿는 보수적인 교인들이 차라리 더 속편하고 확신있는(?)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것 아닌가.. 그렇다면 굳이 골치아프게 "역사적 예수"를 규명하거나 성경본문에 관한 양식비평을 하거나 하는 신학적 고민이 필요있느냐는 생각도 해봅니다.
만약 , 의미가 없다면 (즉, 신앙은 Historie에 근거한 Geschichte의 영역만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역사적 예수"와 무관한 그리스도상에 근거한 신앙들은 모두 허무한 것이 되어 버리는게 아니냐 , 극단적으로 표현하자면 기존의 보수적인 교회에서 보수적인 신앙생활을 하는 교인들은 모두 헛고생(?)을 하고 있는거 아니냐는 의문도 자연스럽게 생길것 같습니다.
<질문2> 만약, (1)의 전제가 맞다면 (틀렸다면 이 질문은 의미가 없습니다) 과연 크리스찬의 믿음의 영역의 geschichte 와 타 종교인들이 믿는 geschichte 의 본질적 차이가 있는 것인지요? 단지 소재와 내용의 차이일 뿐 근본적으로는 동일한 차원의 것인지, 아니면 확고부동한 차이가 있는 것인지 (이를테면 성령의 개입으로 인한 개인의 심령의 변화..같은 하나님의 초자연적 의지??)?
만약, 기독교 신앙이나 타종교 신앙이나 모두 Historie 와 그다지 연관이 없는 내용들로 이루어진 Geschichte의 영역으로 구성된 신앙이라면 타종교인에게 기독교를 전파해야할 어떠한 당위성을 주장할 수 있는 것인지? (요건 좀 위험한 질문이기도 합니다만 평소에 고민하던 것이라서... 물론, 이 질문은 "기독교 신앙은 역사적 사실과 무관하게 발전해왔다"는 전제가 성립할때만 의미있는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폐기되어야 합니다. )
<질문 3> Geschichte 의 영역을 강조하는 것은 결국 실존주의 철학의 잔재가 아닌지요? 이렇게 되면 신앙이라는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영역에만 머무르게 되고 공동으로 고백할 수 있는 신앙의 영역은 너무 협소해지는게 아닙니까?
제가 신학적 지식이 부족하여 "Historie" 와 "Geschichte" 의 개념을 오해하는 것인지 좀 불안합니다만... 아무튼 이러한 궁금증 때문에 신앙생활이 여러가지로 힘들때가 많습니다. 교회에서는 이런 이야기를 목사님들이나 교우분들과 자유롭게 나눌수 있는 분위기도 안되구요 (잘못하면 이상한 사람 혹은 위험인물로 찍힐까봐서.. (-.-;;)) 그래도 이곳에서나마 이런 질문을 자유롭게 올릴수 있으니 숨통이 좀 트이는것 같군요. 좋은 답변 부탁드리고 혹시 제가 잘못 알고 있는 부분이 있으면 지적 부탁드립니다.
2007.10.09 13:51:31
콰미님: 그렇지는 않습니다. 저도 historie를 포괄하는 의미로서의 geschichte 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만, 실제적 역사와 무관한 사항들이라도 geschichte가 될 수 있느냐는 질문을 드리는 것입니다. 1번질문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수정했습니다.
2007.10.09 14:57:19
역사란, 역사가와 사실 사이의 상호 작용의 부단한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와의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이다.
-E. H. Carr <역사란 무엇인가>
현재와 과거와의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이다.
-E. H. Carr <역사란 무엇인가>
2007.10.09 16:48:25
성서기자의 진술은 실제적 역사와 무관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그렇게 기술할 수 밖에 없었던 한계가 담겨져 있지요 리얼리티는 팩트를 무시하지 않습니다. 팩트와 무관한 리얼리티는 투르스로 발전할 수 없다고 봅니다.
2007.10.10 09:20:49
같은 그리스도인이라 할지라도 자신의 관점에 따라 역사적 사실을 인식하는 입장이 다른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부활의 역사성을 이해하는 방식에도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도식적 해석이긴 하지만, 창조과학자/근본주의자들이 지나치게 히스토리에 매몰되어 있는 반면, 불트만 추종자들은 게쉬히테에만 집착하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저는 양자의 균형점을 바르트 추종자들의 입장에서 찾고 있습니다만...
창조과학자/근본주의자
: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역사적 사실이며 그것은 과학으로도 증명이 가능하다고 믿는다. 그래서 골고다에서 발견된 예수 부활과 관련된 각종 고고학적 증거물, 무덤의 구조, 무덤입구를 막은 돌의 무게, 예수의 시신을 감쌌던 세마포의 DNA 구조가 어쩌구 저쩌구하면서, 온갖 과학적 증거들을 들이댄다. 그러나 교회 안에서는 너무나 확실한 그 모든 증거들이 교회 밖에서는 객관적 증거로 전혀 채택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은 만에 하나,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역사적 사실이 아님이 과학적으로 입증된다면, 자신의 신앙을 포기할 가능성이 있다. 어쩌면 이들은 기독교보다 사실교를 믿고 있다는 의구심이 든다.
불트만 추종자
: 성경에 기록된 그리스도의 부활에 관한 전승은 역사적 사실이라기보다는 후대 교회의 신화적 해석이다. 그러므로 오늘날에는 부활에 대한 비신화화된 재해석이 필요하다. 그리스도인이 부활을 믿는다는 것은 그 역사적 사실을 믿는 것이 아니라, 예수의 십자가가 우리의 삶을 향해 가지는 구원의 의미를 믿는다는 것이다. 즉 부활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일어난 사건이라기보다는 우리의 마음속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따라서 부활은 그 역사적 사실보다 그 의미가 더 중요하다.
바르트 추종자
: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역사적 사실로 믿고 그렇게 고백한다. 그러나 그것은 줄리어스 시이저가 루비콘강을 건넌 것과는 차원이 다른 역사이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유일무이한 우주적 차원의 하나님의 역사가 시간과 공간 안에서 일어난 사건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객관적으로 증명될 수도 없고 또 굳이 증명될 필요도 없다. 예수의 부활이 비록 역사적 사실로 증명되지 않는다고 해도 신실하신 하나님에 대한 자신의 믿음에는 조금도 흔들림이 없다. 그리고 모든 것은 그리스도의 재림의 날에 증명 될 것이다.
창조과학자/근본주의자
: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역사적 사실이며 그것은 과학으로도 증명이 가능하다고 믿는다. 그래서 골고다에서 발견된 예수 부활과 관련된 각종 고고학적 증거물, 무덤의 구조, 무덤입구를 막은 돌의 무게, 예수의 시신을 감쌌던 세마포의 DNA 구조가 어쩌구 저쩌구하면서, 온갖 과학적 증거들을 들이댄다. 그러나 교회 안에서는 너무나 확실한 그 모든 증거들이 교회 밖에서는 객관적 증거로 전혀 채택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은 만에 하나,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역사적 사실이 아님이 과학적으로 입증된다면, 자신의 신앙을 포기할 가능성이 있다. 어쩌면 이들은 기독교보다 사실교를 믿고 있다는 의구심이 든다.
불트만 추종자
: 성경에 기록된 그리스도의 부활에 관한 전승은 역사적 사실이라기보다는 후대 교회의 신화적 해석이다. 그러므로 오늘날에는 부활에 대한 비신화화된 재해석이 필요하다. 그리스도인이 부활을 믿는다는 것은 그 역사적 사실을 믿는 것이 아니라, 예수의 십자가가 우리의 삶을 향해 가지는 구원의 의미를 믿는다는 것이다. 즉 부활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일어난 사건이라기보다는 우리의 마음속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따라서 부활은 그 역사적 사실보다 그 의미가 더 중요하다.
바르트 추종자
: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역사적 사실로 믿고 그렇게 고백한다. 그러나 그것은 줄리어스 시이저가 루비콘강을 건넌 것과는 차원이 다른 역사이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유일무이한 우주적 차원의 하나님의 역사가 시간과 공간 안에서 일어난 사건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객관적으로 증명될 수도 없고 또 굳이 증명될 필요도 없다. 예수의 부활이 비록 역사적 사실로 증명되지 않는다고 해도 신실하신 하나님에 대한 자신의 믿음에는 조금도 흔들림이 없다. 그리고 모든 것은 그리스도의 재림의 날에 증명 될 것이다.
2007.10.10 09:35:23
저의 질문이기도 한것을 질문해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런데 히스토리는 대강 알겠는데
포괄적 역사개념인듯한 "geschichte"는 뭐여요?
우리말, 또는 최소한 영어로는 무엇입니까?
기초적인 질문을 해서 죄송...
그런데 히스토리는 대강 알겠는데
포괄적 역사개념인듯한 "geschichte"는 뭐여요?
우리말, 또는 최소한 영어로는 무엇입니까?
기초적인 질문을 해서 죄송...
2007.10.10 10:33:54
신학에서 역사를 가리키는 용어는
1.Historie와 2.Geschichte, 그리고 3.Geschichtlichkeit로 구분할 수 있는데요.
1은 실증적인 역사나 연대기적 역사를 가리키고,
2는 해석된 역사나 하나님의 역사를 가리킨다면,
3은 실존적인 역사나 순간적인 역사를 가리킨다고 할 수 있어요.
예컨대 한국의 현대사를 민중사관으로 해석한다면
그것은 2번이지요.
3에서는 객관적인 역사는 전혀 없이
역사를 보는 사람의 역사경험만이 중요하게 다루어집니다.
불트만 같은 이의 실존적 역사가 그것이지요.
부활 사건을 1로 본다면 순적히 사실적인 역사라고 할 수 있고,
2로 본다면 아직은 완전히 드러나지 않았지만 분명한 하나님의 사건으로서의 역사이고,
3으로 본다면 부활이 나의 삶에 끼치는 의미가 중요하게 되겠지요.
한국교회 신자들은 대개 1과 3의 역사에 치우쳐 있습니다.
2는 여전히 해석이 열려 있는 역사입니다.
이게 종말론적 역사 이해에 가장 가깝다고 봐야겠지요.
그렇다고 1과 2가 무조건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1.Historie와 2.Geschichte, 그리고 3.Geschichtlichkeit로 구분할 수 있는데요.
1은 실증적인 역사나 연대기적 역사를 가리키고,
2는 해석된 역사나 하나님의 역사를 가리킨다면,
3은 실존적인 역사나 순간적인 역사를 가리킨다고 할 수 있어요.
예컨대 한국의 현대사를 민중사관으로 해석한다면
그것은 2번이지요.
3에서는 객관적인 역사는 전혀 없이
역사를 보는 사람의 역사경험만이 중요하게 다루어집니다.
불트만 같은 이의 실존적 역사가 그것이지요.
부활 사건을 1로 본다면 순적히 사실적인 역사라고 할 수 있고,
2로 본다면 아직은 완전히 드러나지 않았지만 분명한 하나님의 사건으로서의 역사이고,
3으로 본다면 부활이 나의 삶에 끼치는 의미가 중요하게 되겠지요.
한국교회 신자들은 대개 1과 3의 역사에 치우쳐 있습니다.
2는 여전히 해석이 열려 있는 역사입니다.
이게 종말론적 역사 이해에 가장 가깝다고 봐야겠지요.
그렇다고 1과 2가 무조건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바르트는 -부활 ,구원,믿음- 을 수직적 시간이 아닌 수평적,입체적 시간 즉 영원한 순간으로 이해했다고 합니다. 1번의 질문은 히스토리와 게스시스테를 상충적 개념으로 받아들이기에 생기는 오해가 아닌가 싶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