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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수 509
금일 회사에서 야근 중에 각별한 대학 후배에게 문자가 왔습니다.
"형님~잘살죠? ㅋ 궁금한게 있어서요. 예수님이 유년시절 인도에서 불교를 공부했나요?"
무지 뻔한 질문일 수도 있지만, 마땅히 답할 것이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아마 후배에게 누군가가 물어봤나 봅니다.
그 질문의 요가 기독교의 안티적 성향을 지닌 사람들이 정체성을 흔들기 위한 질문이기도 하구요.
"쓸떼없는 질문말고 데꾸할 가치가 없는 질문이라고 해~!!" 라고 하고는 싶지만...--+
저희 목사님께 여쭤볼 수도 있지만, 이곳에 질문을 드리면 다양한(?) 의견을 접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이렇게 질문드립니다.
이렇게 쓰면서도 이 어이 없는 "글씀"에 제 스스로 엄청 후회하고 있습니다.(__)
ps. 물론 인터넷에서 검색했더니 상세히 설명해준 글들이 있었고, 출처는 안티 기독교 사이트였습니다.
"형님~잘살죠? ㅋ 궁금한게 있어서요. 예수님이 유년시절 인도에서 불교를 공부했나요?"
무지 뻔한 질문일 수도 있지만, 마땅히 답할 것이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아마 후배에게 누군가가 물어봤나 봅니다.
그 질문의 요가 기독교의 안티적 성향을 지닌 사람들이 정체성을 흔들기 위한 질문이기도 하구요.
"쓸떼없는 질문말고 데꾸할 가치가 없는 질문이라고 해~!!" 라고 하고는 싶지만...--+
저희 목사님께 여쭤볼 수도 있지만, 이곳에 질문을 드리면 다양한(?) 의견을 접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이렇게 질문드립니다.
이렇게 쓰면서도 이 어이 없는 "글씀"에 제 스스로 엄청 후회하고 있습니다.(__)
ps. 물론 인터넷에서 검색했더니 상세히 설명해준 글들이 있었고, 출처는 안티 기독교 사이트였습니다.
2007.09.13 23:51:08
스타우로스 님,
이런 질문은 호기심 천국에 불과하답니다.
그래도 친절하게 대답을 해줘아겠지요.
그 대답이라는 게 "나는 잘 몰라."가 아닐는지요.
어쨌든지 그런 동생이 있다는 건 좋아보는군요.
이런 질문은 호기심 천국에 불과하답니다.
그래도 친절하게 대답을 해줘아겠지요.
그 대답이라는 게 "나는 잘 몰라."가 아닐는지요.
어쨌든지 그런 동생이 있다는 건 좋아보는군요.
2007.09.13 23:56:05
스타우로스님:인도의 네루수상이 쓴 '세계사 편력'을 보면 예수가 직접 불교를 배웠다는 증거는 없지만, 불교에 대해서 들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불교를 사탄취급하는 보수 기독교인들이 보면 거품을 물겠지만, 그만큼 그리스도께서 문화적으로 포용력을 가졌을 거라는 거겠죠.
김한국님:산골 나자렛의 목수(텍토노스)로 살았다고 해서, 그리스도께서 세상물정을 모른채 목수일만 한 무식하고 순박한 사람이었다고 생각하시면 오해입니다. 성서고고학자 김성 교수(협성대학교)에 의하면, 당시 나자렛 근교에는 찌포리라는 로마식 대도시 겸 갈릴래아 왕국의 수도가 있었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는 자연스럽게 로마의 선진문명을 배우셨을 거라고 합니다.실제로 예수님의 설교를 보면 갈릴래아 왕국의 군주인 헤로데 안티파스가 분명한 권력자의 절대권력에 대한 대한 언급들이 있고, 유대교 지도자들의 위선을 비판할때 사용한 단어가 연극배우를 뜻하는 그리스말 휘포크리테스인 것을 보면 그분이 찌포리를 통해 로마의 정치와 선진문명을 배웠던게 분명합니다. 교통문제를 말씀하셨는데,성공회 신학자 박태식(요한)신부님에 따르면 로마제국시대 지중해 교통은 로마의 평화(무력에 의한 거짓평화)의 영향으로 상당히 편리했습니다. 해적들은 기원전 67년 폼페이우스의 해적소탕으로 모조리 소탕되어 없어졌기 때문에 어디에나 교통비만 있으면 편리하게 다닐 수 있었다고 하더군요. 육로도 로마제국이 국도를 건설한 덕분에 이동하기 편리했다는 겁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편리한 교통과 헤로데 안티파스의 로마문화이식덕분에 이스라엘 밖에 나가지 않았어도 자연스럽게 식견이 넒은 세계인으로 성장했을 겁니다.
김한국님:산골 나자렛의 목수(텍토노스)로 살았다고 해서, 그리스도께서 세상물정을 모른채 목수일만 한 무식하고 순박한 사람이었다고 생각하시면 오해입니다. 성서고고학자 김성 교수(협성대학교)에 의하면, 당시 나자렛 근교에는 찌포리라는 로마식 대도시 겸 갈릴래아 왕국의 수도가 있었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는 자연스럽게 로마의 선진문명을 배우셨을 거라고 합니다.실제로 예수님의 설교를 보면 갈릴래아 왕국의 군주인 헤로데 안티파스가 분명한 권력자의 절대권력에 대한 대한 언급들이 있고, 유대교 지도자들의 위선을 비판할때 사용한 단어가 연극배우를 뜻하는 그리스말 휘포크리테스인 것을 보면 그분이 찌포리를 통해 로마의 정치와 선진문명을 배웠던게 분명합니다. 교통문제를 말씀하셨는데,성공회 신학자 박태식(요한)신부님에 따르면 로마제국시대 지중해 교통은 로마의 평화(무력에 의한 거짓평화)의 영향으로 상당히 편리했습니다. 해적들은 기원전 67년 폼페이우스의 해적소탕으로 모조리 소탕되어 없어졌기 때문에 어디에나 교통비만 있으면 편리하게 다닐 수 있었다고 하더군요. 육로도 로마제국이 국도를 건설한 덕분에 이동하기 편리했다는 겁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편리한 교통과 헤로데 안티파스의 로마문화이식덕분에 이스라엘 밖에 나가지 않았어도 자연스럽게 식견이 넒은 세계인으로 성장했을 겁니다.
지금부터 2000년전,
교통편도 좋지 않은 시절에,
그것도 넉넉치 않은 목수 집안에서,
설령 조기교육열풍이 불었다손치더라도 그렇지
팔레스틴에서 인도까지 유학을 보낼 부모가 있었을까요?
아무리 강심장 부모라 한들 그 어린 것을 먼 인도까지 보내가며 불교를 공부시키려 했을까요?
유대에도 전설따라 삼천리가 있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