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동안 "칼바르트의 신학"(김명용 저)을 읽으면서(아직 완독은 못했음) 생각나는게 있어서 이 방을 두드리게 되었습니다. 칼바르트에 따르면, 성서는 인간의 기록물이기 때문에 인간적인 결점들이 드러나지만 그것 때문에 성서를 인간의 종교적 체험을 기록한 문서라고 규정하면 안된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서인지 바르트는 성서의 본질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성서를 한낱 신체험 내지 종교적 체험의 문서로 규정하던 19세기 자유주의신학자들을 신랄하게 비판하더군요. 또 바르트가 성서의 역사비평을 인정했다는 점에서 근본주의자들과는 다르다는 것과 동시에 그러면서도 역사비평의 한계를 인식하고 있었다는 부분에서는 신학자로서 겸손을 배울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궁금한 것은 바르트가 분명히 성서의 역사비평을 인정하였음에도불구하고 그가 말하는, 자유주의자들의 성서이해가 신체험, 또는 종교체험의 문서에 놓여있다는 비판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싶습니다. 제가 이런 질문을 드리는 이유는 정목사님의 글에서, 일례로 복음서는 제자들의 예수부활사건을 체험한 이후에 쓰여진 기록물이라는 말씀을 자주 언급하셨기 때문에 드리는 말씀입니다. 이와 같은 성서이해 또는 성서관이 바르트가 비판하는 신체험적 성서관이나 종교적 체험의 문서로 보는 근거가 되는 것인지요?바르트가 말하는 종교적 체험이라는 것이, 현재 정목사님께서 성서를 이해하는 그런 유의 성서관을 말하는 것인지 알고 싶습니다. 저의 질문에서 혹시라도 종교재판 받는다는 느낌이 들었다면 오해를 푸십시요. 그런 동기는 털끝만큼도 없으니까요. 다만 저는 정목사님의 성서이해에 반감보다는 공감이 더 가고 설득력이 있다고 보는 사람입니다. 또 한가지는 정목사님의 글에서 전적타자, 질적변화, 성서의 놀라운 세계 등등 바르트적 표현이나 요소가 다분히 묻어 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는데, 바르트의 신학을 읽으면서 이런 면에서는 정목사님이 바르트의 신학과 노선을 달리 하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거든요. 저는 바르트의 위대성을 인정하면서도 모든 신학이 바르트적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목사님께서 누누이 주장하신대로 모든 신학은 잠정성을 띠고 있으니까요. 바르트의 성서이해와, 정목사님의 성서이해가 어떤 점에서 일치하며, 혹시 다르다면 어떤 면에서 다른지 설명을 듣고 싶습니다. 정목사님의 대답을 들어봐야 더 깊은 질문이 가능하겠지만 판넨베르크를 공부하신 정목사님이 바르트와 똑같은 성서관을 갖고 있을 거라고는 단정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다르다면 어떻게 다른지 신학적인 설명을 더 듣고 싶어서 이런 질문을 던져 보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