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섭 목사님께,

우선 저의 질문을 드리기 전에 질문의 배경을 말씀 드리겠습니다.
제가 잘 아는 분으로부터 정목사님의 설교비평을 소개받은 지난 7월 이후에, 저는 상당한 시간을 정목사님 책들과 다비아 사이트의 글들을 읽으면서 보냈습니다. 그리고 그 시간들은 저의 삶과 신앙에 있어서 또 다른 차원으로의 열림을 경험하게 하였고, 아울러서 기쁨과 행복을 선사하였습니다.

저는 이전에도 크리스천의 본질은 외양적 업적이나, 옳고 그름의 문제보다는, 생명 즉 삶과 죽음의 문제로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 문화가 팽배한 한국사회 현실에서, 역설적으로 신앙의 본질에 있어서는 척박하다는 느낌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저의 막연한 답답함과 영적 갈급함이 정목사님의 일련의 글들과 설교를 통하여 목마를 때 냉수를 마시는 것 같은 기분을 맛보게 하였습니다. 특히 정목사님의 CD를 통한 육성설교와 판넨베르크의 설교집을 읽으면서, (물론 모든 것을 동의하거나 모두 다 이해하지는 못한다고 하여도) 예수님의 부활생명을 통한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의 참여를 진지하게 추구함에 따른 생명의 약동과 영적 소통을 느낄 수 있었기에 깊이 감사 드립니다.

저의 질문은 이제부터 입니다.
저는 인간적인 관점에서 예수님의 재림 이후에 도래할 하나님 나라에의 참여와 현재로서 참여하는 삶은, 과거로서의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거듭난 생명 (즉 이미 완료된 구원)이 전제되어야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즉 모든 인류의 각자 인생은 모두 나름대로 다른 삶을 살지라도, 그 실존적 비극은 생명의 원천인 하나님으로부터 떠나있는 것이고, 예수님 통한 구원, 즉 거듭난 생명이 아니고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기 때문이지요. 이때 거듭난 생명이란 달리 말하면 믿음으로 구원받음, 죄 사함을 통한 구원, 예수님을 영접함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됨 등등 다양한 표현이 가능하겠지요.
그런데 정 목사님께는 이러한 과거완료적 구원에 대하여 시니컬하게 표현하셨고, 일련의 저술 및 설교에서도 이러한 구원에 대하여는 침묵하시거나, 부정 또는 반대에 가까운 말씀을 하시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박옥수 목사의 설교비평에서의 구원 언급에 대하여 등) 물론 저도 목사님께서 언급하신 사례들, 너무 흔하게 거론되는 구원의 자기확신, 영접기도, 자기신념, 감성적이고 감상적인 자아도취, 너무 만연된 인간적인 교리적 접근, 주관적 가르침, 억지 방언 등은 아닐 것이라는데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그렇다고 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예수님의 공로로 가능하게 된 성령의 활동에 의해 주어지는 믿음의 구원 (또는 죄 사함, 거듭난 생명, 영혼구원 등)까지 부정해서는 안 되는 것 아닌가요? 혹시 정목사님께서는 부정적인 면을 강조하여 모두 부정하시다 보니, 거기에 은폐된 참 구원까지도 부정하시는 것은 아닌가요? 어쩌다가 구원이 하도 많이 회자되다 보니 참 구원이라는 말을 쓰는 것부터가 이상하기는 합니다.
저의 질문은 이상과 같습니다만 사족으로 부연하여 참 구원이란 무엇일까에 대한 저의 소견을 말씀 드리겠습니다.
구원을 받는 개인은 분명히 하나님을 향하고자 하는 의도는 있다고 하여도, 역시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에 해당하는 신비이므로 그 본질을 언어적으로 정확히 설명할 수는 없겠지요. 그럼에도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그것은 당연히 인간의 외양적인 행위와 업적 또는 율법적 실행에 의해 주어지는 것은 전혀 아닐 것입니다. 그렇다고 인간의 내면적인 의지, 결단, 신념도 아니고, 또한 불교에서 말하는 해탈이나 인식의 획기적인 전환도 아닐 것입니다. 결국 인간 편에서 내세울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는 혼돈과 포기와 절망의 심연가운데서,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한줄기 빛으로, 또는 성령님의 생명의 숨결로 주어지는 것이 아닐까요? 고독한 인간이 단독자로서 하나님 앞에 정직하고 무기력하게 대면할 때, 삼위일체 하나님 (즉 주권적인 하나님과, 예수님의 공로와, 소통활동으로서의 성령)으로부터 주어지는 완전한 은총이 아닐까요?
그러한 구원은 당연히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이므로 자기 공로를 내세우거나 자랑할 이유도 없고, 또한 사람의 관점으로는 완전하게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 관점의 공의가 전제된 은총이기에 제 3자는 누구라도 판단할 수 없겠지요.
그러나 적어도 구원받은 당사자는 인간의 이성과 감성을 통하여 어떤 현상으로든 지 알 수 있지 않을까요? 그 현상의 예를 들면 영혼 깊이에서 울어나는 평안, 이제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평화, 새 생명을 얻음으로 인한 기쁨의 충만함 등이 있지 않을까요? 물론 각자 처한 상황에 따라 다른 현상이 있을 수 있고, 그 정도에 있어서도 드라마틱하거나 아니면 기억할 수 없을 정도로 미미할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적어도 하나님 나라 참여의 전제 조건으로서 개인적으로는 과거완료적인 구원의 계기와 순간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이러한 구원의 사례로서 기독교 역사적 인물로는 정목사님 책에서도 언급하신, 사도바울의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남, 어거스틴의 회심, 마르틴 루터의 믿음, 요한 웨슬레의 중생 등이 잘 알려진 경우이겠지요.

다시 말씀 드리면, 제가 보기에는 목사님께서는 예수님 부활생명과 하나님나라 참여를 통한 구원을 말씀하시면서, 그 전제조건으로서의 거듭난 생명에 대하여는 거의 침묵하시는 것 같습니다. 오히려 그 부분은 부정하시거나 반대하시는 것처럼 보였기에 질문을 드리게 되었습니다.
혹시 제가 오해하였을 수도 있고, 신학을 전공하지도 않은 평신도인 저의 질문내용이나 생각들 중에는 미숙함과 오류나 편협함도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거듭난 생명에 대한 목사님의 의견과 답변을 부탁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