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섭 목사님의 책과 설교을 통해, 하나님의 은총을 갈구하며 믿음을 잃지않고 종말을 기다리는 신앙을 갖게 됐습니다. 또 정 목사님께서 말씀하시는 기독교 신앙의 신비에 대해 나름 이해하며 따르게 됐습니다. 정 목사님께서 강조하시는(저는 그렇게 받아들였습니다) '종말'의 의미랄까, 중요성이랄까, 그런 것을 받아들이게 됐습니다.

 

어제(20일) 정 목사님과의 질답 시간이 있었습니다. 저의 좀 난삽한 질문에 목사님께서 현답을 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다만 목사님의 말씀을 되새김질하다 더 여쭤보고 싶은 부분이 있어서 글을 올립니다.

 

저의 어제 질문은, 실존하는 개인의 고통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와, 하나님은 왜 계시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다른 이야기도 있었지만, 질문이라기보다는 개인적 생각, 느낌을 말씀드린 수준이었습니다). 그리고 목사님의 말씀은, 대체로 이런 취지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하나님의 뜻과 통치 방식은 알 수 없다/알기 어렵다, 종말에 가서야 드러날 것이다. 목사님의 책과 설교 말씀도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뜻을 그 누구로부터의 영향도 받지 않으시고 홀로 계시는 당신의 자유로운 의지에 따라 인간이 이해하기 어려운/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은폐'하시고 '노출'하시면서 인간의 역사에 개입하신다는 것이고, 이제까지 인간의 역사에 있었던 일들은 '종말'에 가서야 그 의미를 온전히 획득하고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다는 것, 저는 이렇게 이해했습니다. 그리고 이 설명(?)을 (말 그대로) 완전히, 의심하지 않고 받아들였습니다.

 

어젯밤과 오늘 사이, 좀 다른 생각이 듭니다. 정 목사님의 말씀 혹은 해석이 틀렸다는 것이 아니라, 한 가지 질문이, 조심스럽게, 하지만 꼭 여쭤봐야겠다는 생각이 떠오릅니다.

 

어제 정 목사님의 답변 가운데 이런 말씀도 있었습니다(녹음한 것이 아니기에 정확한 단어는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은 알 수 없지만, 종말이 와야 알 수 있지만, 우리는 이 현실에서 하나님의 뜻에 맞도록(이 부분은 정확한 워딩은 아닙니다)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개인과 사회, 국가 문제에 있어서도 하나님께 부합하도록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의 조심스러운 질문은 이것입니다. 목사님의 언술에 미묘한 긴장 또는 모순이 있는 것 아닌가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모르면서 어떻게 거기에 맞게 사느냐는 기본적인 질문도 있습니다. 더 근본적으로는, 지금의 우리가 성경과 (설교 등의) 말씀을 통해 생각/해석하고 행하는/실천하는 것들이, '종말'에 하나님께서 보이실 그 뜻에 맞다는 것을, 무엇이 담지할 수 있느냐 하는 점입니다. 좀 과격한(!) 예를 들자면, 카톨릭 신부님들과 기독교 목사님들을 포함해, 불교와 원불교까지도 '생명 파괴'를 이유로, 즉 하나님(신)의 섭리에 어긋남을 이유로 반대하는 '4대강 살리기(?) 사업'이, 과연 '종말'에 하나님께서도 반대하는 것이 맞다고 하실 수 있는지를, 우리가 감히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많은 분들이 너무도 당연한 것 아니냐, 하나님은 생명을 창조하시는 분이시니, 생명을 죽이는 4대강 사업은 당연히 반대하시지 않겠느냐고, 설명하실 수 있습니다. 저는, 조심스럽게, 과연 그러냐고 되묻는 것입니다(제가 '4대강 사업'에 찬성한다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오해 마시길 바랍니다). 성경을 봐도 하나님의 뜻은, 너무나도 자주, 종종, 인간의 이해와 상식을 뛰어넘었습니다. 구약과 신약을 살펴보면, 그런 부분이 참 많습니다. 그래서 당혹스럽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은 인간의 인식과 사유, 경험을 뛰어넘는 것이고, 언어로 전달하기 어려운/(본질적으로는) 불가능한 영역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정 목사님의 말씀도 그런 것으로 저는 받아들였습니다. 그렇다면 현실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정말 심각하게 자리잡습니다. 위의 예보다 좀 더 급진적으로(!) 생각해보자면, 과연 현실에서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며 산다는 것이 가능한가라는 또다른 조심스런 질문이 나옵니다.

 

역사를 생각해봐도 비슷합니다. 목사님의 말씀을 받아들입니다. 이제까지의, 현재의, 그리고 앞으로의 모든 역사는, '종말'까지는 모두 잠정적입니다. 역시 '종말'에 가서야 그 참된 의미가 드러나리라 믿습니다. 불안과 긴장, 모순은 다음과 같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역사에서 옳다, 맞다라고 지지했던 것들이, 또 틀리다, 그르다라고 손가락질했던 것들이, '종말'에는 전복될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적절할지 모르겠지만 이해의 편의를 위해 또다른 극단적인 예를 들자면, 박정희와 전두환, 이명박이 하나님께 받아들여질지 모른다, 혹은 그들이 그르지 않다라고 하실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목사님이 어제 십자군 전쟁을 잠깐 말씀하셨지만, '종말'에는 인간의 평가가 아닌 하나님의 뜻 안에서 십자군 전쟁이 받아들여질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제가 정 목사님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인다고 고백하면서도, 긴장을 느끼는 것이 바로 이 부분입니다. 자칫 '종말'이 너무나 많은 것들을 상대화시키는 것은 아닐까 하는 점입니다. '종말'에야 알 수 있는 하나님의 뜻은 당연히 인간의 상식과 판단으로 접근하고 잴 수 없다는 점이, 우리 삶의 좌표가 되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오히려 우리 삶에 불안을 더하는 것은 아니냐는 것입니다. 너무나 커서 알 수 없는, 인식을 허락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이, 우리 삶에 활기를 주시고 소망이 되시기보다, 알 수 없음으로 인한 두려움과 때로는 무시의 대상이 되시는 것이 아니냐는, 조심스런 질문입니다.

 

여기서 기도, 믿음, 신뢰 같은 설명이 시도될 것 같습니다. 보이지 않다고 계시지 않는 것은 아니라는 말씀도 가능할 것 같습니다. 저도 그렇게 받아들입니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질문 드립니다.

 

글을 올릴까 말까 많이 망설였습니다. 아이도 아픈데, 그런 고민까지 할 겨를이 있냐, 혹시라도 이렇게 생각하실 분들이 계실까 싶고. 저도, 이런 질문할 시간 있으면 기도를 더 하자 싶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질문을 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저의 신앙을 위해 여쭈보고 말씀을 듣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사실 다비아와 서울샘터교회를 알면서 놀랐습니다. 목사님께 질문도 할 수 있다는 게, 참 고맙습니다.

 

노파심에서 말씀드리는데, 이 조심스런 질문에 대한 말씀은 듣고 싶지만, 제가 이 질문들로 인해 신앙이 흔들리거나 어떤 의혹에 잠겨있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믿음이 없거나 부족해서 질문 드린다기보다, 이 질문을 통해 제 신앙을 더욱 '심화'시킬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어제에 이어 또 난삽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성도님들과 정 목사님의 용서와 이해를 구합니다. 감사하고 고맙습니다. sola grat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