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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수 509
이 번 주 저희 교회에서 '하나님과 하느님'이라는 주제로 잠시 토론을 벌였습니다.
자료는 이길용 박사님과 L.A.에서 사시는 김구봉 장로님께서 다비아에 올리신 내용을 사용했고요.
저는 얼마 전부터 하나님을 하느님으로 표기하고 있어요.
설교문과 주보에도 그렇고 표기하고 있고 개역성경으로 본문을 읽은 후
공동번역 성서 본문을 주보에 실어 함께 참조하고요.
두 분의 연구에 깊이 공감하였고 또 교회일치에도 마음을 오픈하려는 뜻이지요.
저희 교회 교우들에게도 왜 제가 그렇게 표기하는 지를 설명해야 할 시점인 것 같기도 했고요.
자료를 확인하기 위해 인터넷으로 위키 사전을 클릭하니 다음의 내용이 나오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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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번역성서란? >
공동번역성경은 한국 가톨릭과 개신교 일부 교단에서 교회 일치 운동에 적극적인 교단이 함께 번역한 성서이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로마 가톨릭에서 번역한 성경으로 오해하기도 한다.
1977년 번역된 이래 한국 가톨릭은 이 번역을 사용하고 있었으나, 거의 대부분의 개신교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지금도 개역 한글판 성경이나 개역개정판 성경, 쉬운 성경을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 가톨릭교회에서 최근 천주교 전래 200주년 기념 신약성서를 내놓고, 마침내 최근 천주교주교회의에서 번역한 천주교 새번역 성경을 2005년 전면 채택하여, 현재는 가톨릭과 개신교 어느 쪽에서도 쓰이지 않는 성경이 되었다. 그러나 아직까지 공동번역성서를 사용하는 교회들로는 대한 성공회와 한국 정교회가 있다. 이중 성공회 교회에서는 교회일치운동에 참여한다는 의미로 공동번역성서를 사용한다
구약성서학계의 권위자인 故 문익환 목사(한국 기독교 장로회)와 감리교 목사이자 작가인 이현주가 번역에 참여하여, 시를 읽는 듯한 뛰어난 문체와 정승, 거뭇, 잠뱅이 등 전통적인 단어들이 사용된 큰 장점이 있다. 성서 번역을 하면서 전통적인 단어가 사용된 것은 성서를 토착화하기 위한 즉, 독자들이 친숙하게 읽을 수 있도록 하려는 배려로 보인다. 그 외 어린이들도 쉽게 읽을 수 있을 만큼 쉽게 번역된 현대 한국어 문장도 공동번역성서의 큰 장점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공동번역성서의 큰 장점은 1962년에서 1965년 사이에 있었던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개신교를 '분리된 형제'로 인정한 한국 가톨릭에서 개신교와 '하느님의 말씀'을 같이 번역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의역 때문에 원문의 개성을 제대로 살려내지 못한다는 비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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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하지만 한국 가톨릭교회에서 최근 천주교 전래 200주년 기념 신약성서를 내놓고, 마침내 최근 천주교주교회의에서 번역한 천주교 새번역 성경을 2005년 전면 채택하여, 현재는 가톨릭과 개신교 어느 쪽에서도 쓰이지 않는 성경이 되었다> 라는 대목에 대한 확인을 하고 싶습니다.
2005년에 천주교 새번역 성경이 나왔다는 말을 처음 접하였고, 공동번역 성서를 더 이상 쓰지 않는다는 말도 그렇습니다.
위 백과사전 말대로 가톨릭 교계에서는 더 이상 공동번역 성서를 사용하지 않는가요?
자료는 이길용 박사님과 L.A.에서 사시는 김구봉 장로님께서 다비아에 올리신 내용을 사용했고요.
저는 얼마 전부터 하나님을 하느님으로 표기하고 있어요.
설교문과 주보에도 그렇고 표기하고 있고 개역성경으로 본문을 읽은 후
공동번역 성서 본문을 주보에 실어 함께 참조하고요.
두 분의 연구에 깊이 공감하였고 또 교회일치에도 마음을 오픈하려는 뜻이지요.
저희 교회 교우들에게도 왜 제가 그렇게 표기하는 지를 설명해야 할 시점인 것 같기도 했고요.
자료를 확인하기 위해 인터넷으로 위키 사전을 클릭하니 다음의 내용이 나오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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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번역성서란? >
공동번역성경은 한국 가톨릭과 개신교 일부 교단에서 교회 일치 운동에 적극적인 교단이 함께 번역한 성서이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로마 가톨릭에서 번역한 성경으로 오해하기도 한다.
1977년 번역된 이래 한국 가톨릭은 이 번역을 사용하고 있었으나, 거의 대부분의 개신교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지금도 개역 한글판 성경이나 개역개정판 성경, 쉬운 성경을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 가톨릭교회에서 최근 천주교 전래 200주년 기념 신약성서를 내놓고, 마침내 최근 천주교주교회의에서 번역한 천주교 새번역 성경을 2005년 전면 채택하여, 현재는 가톨릭과 개신교 어느 쪽에서도 쓰이지 않는 성경이 되었다. 그러나 아직까지 공동번역성서를 사용하는 교회들로는 대한 성공회와 한국 정교회가 있다. 이중 성공회 교회에서는 교회일치운동에 참여한다는 의미로 공동번역성서를 사용한다
구약성서학계의 권위자인 故 문익환 목사(한국 기독교 장로회)와 감리교 목사이자 작가인 이현주가 번역에 참여하여, 시를 읽는 듯한 뛰어난 문체와 정승, 거뭇, 잠뱅이 등 전통적인 단어들이 사용된 큰 장점이 있다. 성서 번역을 하면서 전통적인 단어가 사용된 것은 성서를 토착화하기 위한 즉, 독자들이 친숙하게 읽을 수 있도록 하려는 배려로 보인다. 그 외 어린이들도 쉽게 읽을 수 있을 만큼 쉽게 번역된 현대 한국어 문장도 공동번역성서의 큰 장점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공동번역성서의 큰 장점은 1962년에서 1965년 사이에 있었던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개신교를 '분리된 형제'로 인정한 한국 가톨릭에서 개신교와 '하느님의 말씀'을 같이 번역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의역 때문에 원문의 개성을 제대로 살려내지 못한다는 비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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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하지만 한국 가톨릭교회에서 최근 천주교 전래 200주년 기념 신약성서를 내놓고, 마침내 최근 천주교주교회의에서 번역한 천주교 새번역 성경을 2005년 전면 채택하여, 현재는 가톨릭과 개신교 어느 쪽에서도 쓰이지 않는 성경이 되었다> 라는 대목에 대한 확인을 하고 싶습니다.
2005년에 천주교 새번역 성경이 나왔다는 말을 처음 접하였고, 공동번역 성서를 더 이상 쓰지 않는다는 말도 그렇습니다.
위 백과사전 말대로 가톨릭 교계에서는 더 이상 공동번역 성서를 사용하지 않는가요?
2007.09.13 19:43:50
가톨릭에서 공동번역을 안 쓰게 된 이유를 아세요?
혹시 개신교 측이 약속을 안 지켜서 그런 건 아닌지요? (아니길 바랍니다만...)
저는 전도사 시절 어느 신부님께서 쓰신 사복음서 묵상집을 참 유익하게 읽은 적이 있어요.
공동번역을 사용하셨더군요.
2005년이면 제가 국내 소식을 별로 접하지 않던 때라서 좀 놀라고 있습니다.
혹시 개신교 측이 약속을 안 지켜서 그런 건 아닌지요? (아니길 바랍니다만...)
저는 전도사 시절 어느 신부님께서 쓰신 사복음서 묵상집을 참 유익하게 읽은 적이 있어요.
공동번역을 사용하셨더군요.
2005년이면 제가 국내 소식을 별로 접하지 않던 때라서 좀 놀라고 있습니다.
2007.09.13 19:58:43
가톨릭 교회에서 보기에 공동번역 성서로는 충분치 않은 부분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게다가 공동으로 사용하자던 약속마저 실행되지 않은 점도 매우 중요한 이유가 된다고 들었습니다. 너무 급히 공동으로 번역하다보니 미비한 점도 많았던 것이 가장 중요한 원인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직도 공동번역을 사용하기도 하며 점차적으로 새번역성경 사용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2007.09.13 20:20:59
예, 무명재님의 말쌈대로 가톨릭에서는 공동번역이 아닌, 가톨릭 '성경'을 사용하고 있습니다.그래서 성공회 사제인 박태식 신부님이 쓴 신학서적조차도 바오로딸 편집자분들에 의해 공동번역용어들이 모두 가톨릭'성경'의 용어로 음역되어버려서 그분의 책을 읽을때마다 공동번역용어로 바꿔서 읽고 있습니다...바오로딸 수녀님들 미워잉~~~
사족: 전 개인적으로 공동번역성서가 좋습니다. 그래서 성공회교회를 다니기전부터 공동번역을 읽어왔습니다.
사족: 전 개인적으로 공동번역성서가 좋습니다. 그래서 성공회교회를 다니기전부터 공동번역을 읽어왔습니다.
2007.09.13 20:32:46
무명재님과 바우로님 등 다른 분들이 이미 답변을 달아주셨네요. 가톨릭 신도로서 말씀드리자면 윗 분들의 답변이 맞습니다. 정확히는 2005년 11월 27일 대림 제1주일 미사전례부터 공식적으로 채택을 하게 되었구요 (아시겠지만, 대림 제1주일인 이유는 교회력으로는 2006년의 첫 주일이 2005년의 대림 제1주일이기 때문입니다).
하필이면 공동번역판을 새번역판으로 바꿀 바로 그 즈음에 제가 한국을 떠나있게 되는 바람에 저도 아직 활자로 된 성경을 접하지 못했습니다만, ^^ 다소 의역에 가까왔던 공동번역의 말씀을 직역에 가깝게 고치고 오탈자를 수정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또한 개신교와 공동번역을 하느라 다소 무리하게 번역을 했던 부분도 수정을 했다는군요. 한가지 예를 들면, 그동안 주님의 이름을 '야훼'니 '여호와'니 하고 번역해왔는데 새번역에서는 '퀴리오스'를 그대로 번역해서 '주님'이라고 표기합니다.
http://blog.naver.com/humoresque?Redirect=Log&logNo=40018622377에 가시면 새번역과 관련된 한국 가톨릭 교계 인사들의 축사가 있는데 내용 중에는 공동번역을 버리고 새번역을 채택하게 된 배경이 있습니다. 읽어보시면 도움이 될 듯 합니다.
하필이면 공동번역판을 새번역판으로 바꿀 바로 그 즈음에 제가 한국을 떠나있게 되는 바람에 저도 아직 활자로 된 성경을 접하지 못했습니다만, ^^ 다소 의역에 가까왔던 공동번역의 말씀을 직역에 가깝게 고치고 오탈자를 수정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또한 개신교와 공동번역을 하느라 다소 무리하게 번역을 했던 부분도 수정을 했다는군요. 한가지 예를 들면, 그동안 주님의 이름을 '야훼'니 '여호와'니 하고 번역해왔는데 새번역에서는 '퀴리오스'를 그대로 번역해서 '주님'이라고 표기합니다.
http://blog.naver.com/humoresque?Redirect=Log&logNo=40018622377에 가시면 새번역과 관련된 한국 가톨릭 교계 인사들의 축사가 있는데 내용 중에는 공동번역을 버리고 새번역을 채택하게 된 배경이 있습니다. 읽어보시면 도움이 될 듯 합니다.
2007.09.13 20:41:09
소은님께서 잘 설명해 주셨습니다만, 공동번역은 대단히 의역의 성격이 강합니다.
모든 번역이 그렇겠지만, 성서 번역에 있어, 문자적 측면을 중시하는 직역과, 뜻 전달에 중점을 두는 의역, 이 중도를 지향하는 역동적 동등성 번역 방법의 세 가지 정도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원문의 문자적 동등성을 추구하는 직역은, 원문을 철저히 직역하여 제시하는 방법입니다. 예컨대, 한국어에서는 생략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직역의 경우에는 대명사의 반복, 접속사 등을 그대로 내지 최대한 그대로 번역하고, 우리말로 뜻이 전달되지 않더라도, 그대로 곧이곧대로 번역합니다. 따라서, 우리말의 어법과 언어 관습에 안 맞거나 어색해질 수 있으며, 히브리어, 그리스어의 원문의 관용 어법은 전혀 뜻이 전달되지 않습니다(복음서에, '머리 위에 숯불을 올려 놓다', '기대어 눕다'라는 원문을 그대로 옮기면 우리말로는 전혀 뜻이 없거나 엉뚱하게 됩니다. 이 때에는 뜻을 살리는 편이 좋죠. '부끄럽게, 무안하게 하다', '(식사하기 위해 )식탁에 앉다'가 됩니다).
반면, 의역은, 이러한 직역의 단점을 보완할 수 있습니다. 우리말의 어법을 살리고, 뜻을 전달하는 측면에서는 확실히 유리하지요. 그러나, 원전의 문자적 형식 액면을 훼손하게 되며, 히브리어, 그리스어와 한국어가 1:1로 대응되는 언어가 아니므로(세상에 그런 언어는 없습니다), 결국 원전의 액면의 다양한 사전적 의미들 가운데 하나를 택하게 되므로, 완전한 번역이 되지 못하는 경우도 발생합니다. 그리고, 원전의 축어적 형식은 전혀 살릴 수가 없으므로, 예컨대 히브리 시가문학 등, 형식적 측면도 중요한 부분은 놓치게 됩니다.
이 중도를 취한 것이, Good News Bible을 번역한 성서번역가이자, 저명한 언어학자 유진 나이다 박사가 주창한 '역동적 동등성' 번역 이론입니다. 이 이론에 의한 최근의 대표적인 번역본이 NRSV와 표준새번역인데, NRSV의 번역위원장인 신약학자 브루스 메츠거 교수는, NRSV의 머리말에서, "최대한 문자적으로 번역하되, 필요한 만큼 의미를 살려 번역한다"라 했습니다.
문제는, 공동번역이 너무나 실험적인 의역의 부분이 많다는 것입니다. 신완식 목사님께서 인용하신 위키백과의 내용에서도 거론되었습니다만, 우리나라의 토착적 용어들을 살린 번역은, 그 시도가 좋을 수도 있고, 오해의 소지를 낳을 수도 있습니다. 심지어, 잠언의 몇몇 속담들은 우리말 속담으로 바꿔버린 예도 있습니다.
교회의 표준적, 공식적인 번역은, 가급적 직역에 가깝거나(단, 읽어서 이해가 쉬운 범위 내에서), 역동적 동등성을 취한 것이 바람직하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역시 소은님께서 지적하셨다시피, 공동번역의 번역 기간은 대단히 짧았습니다. 1968년에 한국의 신구교 대표들이 번역을 결의하고, 3년 뒤인 1971년에 신약성서가 완간되었습니다. 세계적으로 두 번째로 빨리 나온 공동번역이라지요. 신약성서 전권을 3년만에 완역했다는 것 역시 세계적으로 유례가 드물 것입니다. 외경/제2경전을 포함한 성서 전권은 1977년에 나왔습니다. 초고속이지요. 때문에, 당시 공동번역을 평가하는 공청회에서, 성서 번역에 평생을 헌신하신 전 장신대 신약학 교수이신 나채운 박사님께서도, 이 점을 따끔하게 지적하셨습니다.
개신교 측의 약속 불이행의 점도, 천주교 측이 공동번역을 버리고 새로운 번역을 만드는 이유가 되었을 것입니다. 비록 대한성서공회가 한국 개신교 전체의 연합기관이긴 하나, 성서 번역에 있어서 진보와 보수의 갈등은 훨씬 뒤인 표준새번역 때에도 있었고, 그보다는 덜했지만, 개역개정판 출간 때에도 벌어졌습니다. 물론, 여기에는, 번역의 신학 노선의 갈등도 있었겠고, 주로 보수복음주의 대형 교단들의 교권파 목사님들, 그 교파의 유력한 평신도가 운영하는 사설 성서 출판업자들의 이권 문제들이 개입되어 있었겠지만, 하여간, 천주교와 달리 개신교 측은 성서 번역과 번역본 채택에 있어 의견과 행동을 일치시키기가 지극히 어렵습니다.
더욱이, 공동번역 출간 당시, 고유명사의 음역 문제(이 점은 천주교 역시 겪었던 곤란함입니다. 공동번역의 채택으로, 세례명을 비롯한 수많은 고유명사들의 표기가 바뀐 것은 천주교도 개신교와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나, 천주교는 주교회의의 결정에 따라 채택하는 구조니까), 천주교 및 진보 신학에 대한 반감 등으로 극렬한 반대를 받았었기에(오랜 번역에 집착하는 현상은 근본주의 교파들의 공통점입니다. 미국 개신교 근본주의자들이 KJV에 집착하여, 우리나라에도 들어와 있는 말씀보존학회 등의 KJV 근본주의가 강하게 자리잡고 있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며, RSV 출간 당시, '사탄의 성서'라는 증오와 반발까지 받았었죠), 개신교 측은 공동번역을 사용하지 않게 된 것입니다. 다만, 대한성공회는 공동번역 신약성서의 번역 과정에 참여한 것도 있고(김진만 교수), 성공회의 준정경인 구약성서 외경이 포함된 유일한 한국어 성서이므로, 동 교단의 공식 번역본으로 채택한 것이지요.
아무튼, 공동번역 성서는 어찌 되었건 한국 그리스도교 역사에서 신구교 교회일치의 이정표로서 중요한 의의를 갖기에, 천주교 새번역 성경의 공청회 당시, 천주교의 진보적 신학 단체인 우리신학연구소 측의 여러 인사들께서는, 번역본 교체에 반발하는 의견도 냈었습니다.
천주교의 새번역 성경은 전권 합본 성서가 2005년에 나와 한국 천주교회의 공식 번역으로 결정되었을 뿐, 주석이 실린 단권(창세기, 이사야, 요한복음서 등의 식)들은 훨씬 오래 전부터 출간되었었고, 이 단권 형식으로 완간된 것도 2002년인가, 하여간, 2000년대 초였습니다. 완역하고 나서 다시 최종 검토 작업을 거치고, 오래 전의 번역들은 다시 개정도 하는 등, 대단히 공을 들였지요. 직역의 성향인데, 우리말도 잘 살렸습니다. 저는 대학원 시절(2003년) 신명기 세미나를 들으면서 우리말 대본을 이 새번역과, 개신교의 표준새번역을 사용했는데, 구약의 시가 형식도 히브리어 MT 원전을 잘 살리는 등, 원전의 문자적 측면에도 공을 들였고, 우리말의 조탁과 뜻 전달도 최대한 잘 되게 하려 애썼음을 느꼈습니다. 지금껏 출간된 한국어 성서 가운데, 아주 좋은 번역의 하나입니다.
모든 번역이 그렇겠지만, 성서 번역에 있어, 문자적 측면을 중시하는 직역과, 뜻 전달에 중점을 두는 의역, 이 중도를 지향하는 역동적 동등성 번역 방법의 세 가지 정도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원문의 문자적 동등성을 추구하는 직역은, 원문을 철저히 직역하여 제시하는 방법입니다. 예컨대, 한국어에서는 생략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직역의 경우에는 대명사의 반복, 접속사 등을 그대로 내지 최대한 그대로 번역하고, 우리말로 뜻이 전달되지 않더라도, 그대로 곧이곧대로 번역합니다. 따라서, 우리말의 어법과 언어 관습에 안 맞거나 어색해질 수 있으며, 히브리어, 그리스어의 원문의 관용 어법은 전혀 뜻이 전달되지 않습니다(복음서에, '머리 위에 숯불을 올려 놓다', '기대어 눕다'라는 원문을 그대로 옮기면 우리말로는 전혀 뜻이 없거나 엉뚱하게 됩니다. 이 때에는 뜻을 살리는 편이 좋죠. '부끄럽게, 무안하게 하다', '(식사하기 위해 )식탁에 앉다'가 됩니다).
반면, 의역은, 이러한 직역의 단점을 보완할 수 있습니다. 우리말의 어법을 살리고, 뜻을 전달하는 측면에서는 확실히 유리하지요. 그러나, 원전의 문자적 형식 액면을 훼손하게 되며, 히브리어, 그리스어와 한국어가 1:1로 대응되는 언어가 아니므로(세상에 그런 언어는 없습니다), 결국 원전의 액면의 다양한 사전적 의미들 가운데 하나를 택하게 되므로, 완전한 번역이 되지 못하는 경우도 발생합니다. 그리고, 원전의 축어적 형식은 전혀 살릴 수가 없으므로, 예컨대 히브리 시가문학 등, 형식적 측면도 중요한 부분은 놓치게 됩니다.
이 중도를 취한 것이, Good News Bible을 번역한 성서번역가이자, 저명한 언어학자 유진 나이다 박사가 주창한 '역동적 동등성' 번역 이론입니다. 이 이론에 의한 최근의 대표적인 번역본이 NRSV와 표준새번역인데, NRSV의 번역위원장인 신약학자 브루스 메츠거 교수는, NRSV의 머리말에서, "최대한 문자적으로 번역하되, 필요한 만큼 의미를 살려 번역한다"라 했습니다.
문제는, 공동번역이 너무나 실험적인 의역의 부분이 많다는 것입니다. 신완식 목사님께서 인용하신 위키백과의 내용에서도 거론되었습니다만, 우리나라의 토착적 용어들을 살린 번역은, 그 시도가 좋을 수도 있고, 오해의 소지를 낳을 수도 있습니다. 심지어, 잠언의 몇몇 속담들은 우리말 속담으로 바꿔버린 예도 있습니다.
교회의 표준적, 공식적인 번역은, 가급적 직역에 가깝거나(단, 읽어서 이해가 쉬운 범위 내에서), 역동적 동등성을 취한 것이 바람직하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역시 소은님께서 지적하셨다시피, 공동번역의 번역 기간은 대단히 짧았습니다. 1968년에 한국의 신구교 대표들이 번역을 결의하고, 3년 뒤인 1971년에 신약성서가 완간되었습니다. 세계적으로 두 번째로 빨리 나온 공동번역이라지요. 신약성서 전권을 3년만에 완역했다는 것 역시 세계적으로 유례가 드물 것입니다. 외경/제2경전을 포함한 성서 전권은 1977년에 나왔습니다. 초고속이지요. 때문에, 당시 공동번역을 평가하는 공청회에서, 성서 번역에 평생을 헌신하신 전 장신대 신약학 교수이신 나채운 박사님께서도, 이 점을 따끔하게 지적하셨습니다.
개신교 측의 약속 불이행의 점도, 천주교 측이 공동번역을 버리고 새로운 번역을 만드는 이유가 되었을 것입니다. 비록 대한성서공회가 한국 개신교 전체의 연합기관이긴 하나, 성서 번역에 있어서 진보와 보수의 갈등은 훨씬 뒤인 표준새번역 때에도 있었고, 그보다는 덜했지만, 개역개정판 출간 때에도 벌어졌습니다. 물론, 여기에는, 번역의 신학 노선의 갈등도 있었겠고, 주로 보수복음주의 대형 교단들의 교권파 목사님들, 그 교파의 유력한 평신도가 운영하는 사설 성서 출판업자들의 이권 문제들이 개입되어 있었겠지만, 하여간, 천주교와 달리 개신교 측은 성서 번역과 번역본 채택에 있어 의견과 행동을 일치시키기가 지극히 어렵습니다.
더욱이, 공동번역 출간 당시, 고유명사의 음역 문제(이 점은 천주교 역시 겪었던 곤란함입니다. 공동번역의 채택으로, 세례명을 비롯한 수많은 고유명사들의 표기가 바뀐 것은 천주교도 개신교와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나, 천주교는 주교회의의 결정에 따라 채택하는 구조니까), 천주교 및 진보 신학에 대한 반감 등으로 극렬한 반대를 받았었기에(오랜 번역에 집착하는 현상은 근본주의 교파들의 공통점입니다. 미국 개신교 근본주의자들이 KJV에 집착하여, 우리나라에도 들어와 있는 말씀보존학회 등의 KJV 근본주의가 강하게 자리잡고 있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며, RSV 출간 당시, '사탄의 성서'라는 증오와 반발까지 받았었죠), 개신교 측은 공동번역을 사용하지 않게 된 것입니다. 다만, 대한성공회는 공동번역 신약성서의 번역 과정에 참여한 것도 있고(김진만 교수), 성공회의 준정경인 구약성서 외경이 포함된 유일한 한국어 성서이므로, 동 교단의 공식 번역본으로 채택한 것이지요.
아무튼, 공동번역 성서는 어찌 되었건 한국 그리스도교 역사에서 신구교 교회일치의 이정표로서 중요한 의의를 갖기에, 천주교 새번역 성경의 공청회 당시, 천주교의 진보적 신학 단체인 우리신학연구소 측의 여러 인사들께서는, 번역본 교체에 반발하는 의견도 냈었습니다.
천주교의 새번역 성경은 전권 합본 성서가 2005년에 나와 한국 천주교회의 공식 번역으로 결정되었을 뿐, 주석이 실린 단권(창세기, 이사야, 요한복음서 등의 식)들은 훨씬 오래 전부터 출간되었었고, 이 단권 형식으로 완간된 것도 2002년인가, 하여간, 2000년대 초였습니다. 완역하고 나서 다시 최종 검토 작업을 거치고, 오래 전의 번역들은 다시 개정도 하는 등, 대단히 공을 들였지요. 직역의 성향인데, 우리말도 잘 살렸습니다. 저는 대학원 시절(2003년) 신명기 세미나를 들으면서 우리말 대본을 이 새번역과, 개신교의 표준새번역을 사용했는데, 구약의 시가 형식도 히브리어 MT 원전을 잘 살리는 등, 원전의 문자적 측면에도 공을 들였고, 우리말의 조탁과 뜻 전달도 최대한 잘 되게 하려 애썼음을 느꼈습니다. 지금껏 출간된 한국어 성서 가운데, 아주 좋은 번역의 하나입니다.
2007.09.13 23:45:33
공동번역을 로마 가톨릭교회에서도 사용하지 않는다면,
에큐메니컬 운운하던 나만
이거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는 거 아닌가 모르겠네요.
더구나 비싼 공동번역을 교회에 비치하느라
돈을 만만치 않게 투자했는데,
본전 생각이 납니다요. ㅎㅎ
어쨌거나 샘터교회 교우 숫자가 50명을 넘게 되는 경우에
머떤 역본을 예배 용으로 사용할지 다시 생각해야겠네요.
좋은 정보를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
에큐메니컬 운운하던 나만
이거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는 거 아닌가 모르겠네요.
더구나 비싼 공동번역을 교회에 비치하느라
돈을 만만치 않게 투자했는데,
본전 생각이 납니다요. ㅎㅎ
어쨌거나 샘터교회 교우 숫자가 50명을 넘게 되는 경우에
머떤 역본을 예배 용으로 사용할지 다시 생각해야겠네요.
좋은 정보를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
2007.09.14 00:05:11
교우님들이 쉽고 편리하게 하느님의 말씀을 읽을 수 있다면 본전생각하실 것은 없을 것 같은데요.^^ 적어도 뭔 말이여..라는 소리가 나오는 개역한글판보다는 이해하기 쉽고 잘 읽히는 공동번역이 샘터교회 교우님들의 신앙성장에 도움이 될 줄로 압니다. 비록 개신교와 가톨릭에서 모두 버림받았지만, 개신교와 가톨릭이 같이 번역했다는 점에서 에큐메니컬운동의 중요한 성과이구요.에큐메니컬 만세!
2007.09.14 08:40:08
정용섭 목사님, 그렇잖아도, 목사님 및 샘터교회와 같은 이유 때문에,
대한성공회 2006년 전국의회(타 교단의 총회와 같음)에서도,
공동번역을 다른 번역본으로 대체하는 문제에 대한 안건이 올라왔었답니다.
그런데, 마땅치 않나 봅니다.
외경을 준정경으로 사용하고, 성서일과에 넣고 있는 성공회의 경우,
기존의 다른 번역본을 채택하기가 매우 곤란하고,
(천주교의 새번역 성경을 택하기가 뭣하잖습니까)
새로 자체 번역하자니, 그만한 역량이 교단 안에 없고,
(하다못해, 표준새번역에 외경만 덧붙여 번역한다 쳐도,
70인역을 번역할 인물들이 대한성공회 안에는 없지요.
전체 한국 개신교 안에도 별로 없을텐데)
그래서, 뾰족한 수가 안 나나 봅니다.
성서공회에서는 계속 찍긴 할 것 같은데, 불투명한 건 사실이지요.
대한성공회 2006년 전국의회(타 교단의 총회와 같음)에서도,
공동번역을 다른 번역본으로 대체하는 문제에 대한 안건이 올라왔었답니다.
그런데, 마땅치 않나 봅니다.
외경을 준정경으로 사용하고, 성서일과에 넣고 있는 성공회의 경우,
기존의 다른 번역본을 채택하기가 매우 곤란하고,
(천주교의 새번역 성경을 택하기가 뭣하잖습니까)
새로 자체 번역하자니, 그만한 역량이 교단 안에 없고,
(하다못해, 표준새번역에 외경만 덧붙여 번역한다 쳐도,
70인역을 번역할 인물들이 대한성공회 안에는 없지요.
전체 한국 개신교 안에도 별로 없을텐데)
그래서, 뾰족한 수가 안 나나 봅니다.
성서공회에서는 계속 찍긴 할 것 같은데, 불투명한 건 사실이지요.
2007.09.14 09:58:07
무명재 군,
대한성서공회에서 그런 일이 있었소?
그렇다면 공동번역본은 뒤방 늙은이 신세로세.
나는 가는 데까지 한번 버텨볼 생각이오.
대한성서공회가 공동번역본 인쇄를 포기할 때까지 말이오.
공동번역이 지나치게 의역으로 치우쳤다 하더라도
좋은 점들이 많은 건 사실이오.
찬송가도 그렇지만
성서번역 출판도 돈 문제와 연결되는 건 아닌지 모르겠소.
한번 새로운 판을 찍으면 천문학적 수입이 보장되니 말이오.
그렇지 않기를 바라지만...
대한성서공회에서 그런 일이 있었소?
그렇다면 공동번역본은 뒤방 늙은이 신세로세.
나는 가는 데까지 한번 버텨볼 생각이오.
대한성서공회가 공동번역본 인쇄를 포기할 때까지 말이오.
공동번역이 지나치게 의역으로 치우쳤다 하더라도
좋은 점들이 많은 건 사실이오.
찬송가도 그렇지만
성서번역 출판도 돈 문제와 연결되는 건 아닌지 모르겠소.
한번 새로운 판을 찍으면 천문학적 수입이 보장되니 말이오.
그렇지 않기를 바라지만...
2007.09.14 10:27:50
그러니까, 지금 공동번역 성서의 수요가 있는 계층이,
대한성공회와 한국정교회 뿐인데,
대한성서공회에서 그 적은 수요 때문에 계속 찍기가 어려울 수 있기에,
대한성공회 2006년 전국의회에서 그 문제도 논의된 줄 압니다.
향후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지요.
표준새번역 개정판(성경전서 새번역)이야, 구어체 성서로 많이들 보니, 계속 찍을 수 있는데,
공동번역은 개신교 안에 그 정도까지 보급되고 읽히지는 않는 게 사실이구요.
사실, 성서와 찬송가 출판은 이권 문제와 직결되어 있습니다.
표준새번역 출간 당시, 보수교단들의 파상공세와,
한국성경공회라는 독자 기관을 설립하네 어쩌네 했던,
(결국 설립은 했는데, 그 설립한데서 펴낸 성서라는 것이,
1952년판 개역한글판 성서를 거의 표절한 것이었지요. 번역본도 아닙니다)
그리고, 최근의 21세기 찬송가 출판에 있어,
출판사간 판권 다툼의 마찰,
그런 과거사들을 생각하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요.
대한성공회와 한국정교회 뿐인데,
대한성서공회에서 그 적은 수요 때문에 계속 찍기가 어려울 수 있기에,
대한성공회 2006년 전국의회에서 그 문제도 논의된 줄 압니다.
향후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지요.
표준새번역 개정판(성경전서 새번역)이야, 구어체 성서로 많이들 보니, 계속 찍을 수 있는데,
공동번역은 개신교 안에 그 정도까지 보급되고 읽히지는 않는 게 사실이구요.
사실, 성서와 찬송가 출판은 이권 문제와 직결되어 있습니다.
표준새번역 출간 당시, 보수교단들의 파상공세와,
한국성경공회라는 독자 기관을 설립하네 어쩌네 했던,
(결국 설립은 했는데, 그 설립한데서 펴낸 성서라는 것이,
1952년판 개역한글판 성서를 거의 표절한 것이었지요. 번역본도 아닙니다)
그리고, 최근의 21세기 찬송가 출판에 있어,
출판사간 판권 다툼의 마찰,
그런 과거사들을 생각하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요.
2007.09.14 11:54:06
한국성공회내에서도 공동번역성서를 구하기 어렵다는 불평이 나올 정도로 공동번역성서는 점점 위치가 작아지고 있어서..음. 아쉽습니다. 준정경(신자의 도덕생활을 위해서 읽을 수는 있으나 교리적 도출은 할 수 없는 성서)인 외경이 없어서 그렇지, 표준새번역도 괜찮습니다. 갓피플-말이 갓피플이지 실제로는 근본주의 피플-같은 근본주의일색의 보수 개신교 사이트에서 성공회관련 자료를 소개하거나, 공동번역을 인용할때 반 가톨릭 성향을 가진 근본주의회원들에게 가톨릭자료라느니, 가톨릭적인 자료라느니, 가톨릭에서 읽는 성서를 인용한다느니 하면서 배척당할 일도 없구요..
(새번역 성경은 교회의 공식 용도로 펴낸 번역본으로서, 한국 천주교회의 전례, 출판물, 공식 매체 등에서 전면적으로 사용하도록 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