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바울은 로마서 9장에서
아브라함의 씨가 다 그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이삭으로부터 난 자라야 네 씨라 불린다고 하셨고
쌍둥이가 태중에 있을때 이미 하나님은 택하시고 에서는 미워하고 야곱은 사랑하셨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완악하게 하시는데
이러한 하나님께 불의가 있을 수 없고, 그릇은 토기장이에게 따지지 못한다고 비유를 했습니다.

물론 피조물이 감히 창조주에게 어떻게 따질 수 있겠습니까?
사랑과 은혜에 감사하며 살아가야하겠지요.

그런데 전 이스마엘과 에서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았습니다.
따지고 싶을 것 같습니다.
심지어 에서는 태중에 이미 미움을 당하였다는 말을 그대로 믿는다면
장자권을 판 것도 에서의 뜻이 아니요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이 되는데
에서의 입장에서 보면 은혜가 아니라 저주로 느껴질 것 같습니다.

그래서 로마서 9장에 말한 바울의 비유와 말이 이해가 안됩니다.
로마서 9장을 설교로 들을때
우리는 택함을 받았기에 은혜에 감사하라는 말씀을 들으며 아멘하고
선택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좋은 그릇으로 쓰임받기를 소망하는  식으로 말씀을 받게 됩니다.

또한 선택을 받은 사람들만이 이러한 설교를 듣기 때문에 아무런 반항도 없습니다.

그런데 감히 한낱 피조물에 불과한 제가
바울이 그토록 싸가지 없이 따지지 말라고 말씀을 해놓으셨음에도 불구하고
오늘 이 시점에 감히 따집니다.
왜 에서를 미워하셨는지..  
정말 하나님께서 또는 바울께서 하시고자 하시는 말씀이 무엇인지.
뭔가 로마서 9장 말씀이 제대로 설교되어지지 않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온전한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 싶은 마음에 따지듯이 묻습니다.

정용섭 목사님의 가르침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