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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수 509
다비아의 글을 읽다보면 1% 부족함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아래와 같은 질문에 대한 답을 여러분들로부터 구한다면 그 부족함을
조금 해소할 수 있을 것 같아 질문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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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마당/성서연구/빌립보서 13강 '부활, 하나님 안에 은폐된 미래의 생명'은 아래와 같은 단락으로 마무리되고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의 영적인 시각을 좀더 심화시켜나가는 일은 신앙성장에도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영적인 눈높이의 심화입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비록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일상적인 삶을 살아가지만 우리게 다가올 영적인 생명의 깊이를 인식할 수 있어야 합니다. 바울처럼 우리의 마음이 그 부활의 생명을 향한 희망으로 가득해야 하겠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기독교 신앙의 본질입니다.'
질문입니다.
1. '영적인 시각을 좀 더 심화시켜나가는 일'이나 '영적인 눈높이의 심화' 또는 '영적인생명의 깊이를 인식할 수 있는 것'은 어떻게 가능해지는지요?
2. 그리고 '부활의 생명을 향한 희망으로 가득하는 것'은 또 어떻게 하면 될까요?
또 성서연구/빌립보서 21강 '영적인 삶을 향하여'의 맨 뒤에서 두 번째 단락은 아래와 같습니다.
'영성은 그게 아니라 생명의 영에 사로잡힘으로써 확대되고 충만해집니다. 우리의 주관적인, 심리적인 자기 발산이나 자기 고백이 아니라 우주를 창조하고 지금도 그 창조를 유지하고 미래에 그것을 완성하실 하나님의 영이 나를 통치하도록 나를 그분의 힘에 맡김으로써 우리의 영도 충만해집니다. 기독교의 영성은 죄책감이 아니라 생명감에 사로잡히는 경험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우리의 영과 함께 하기를 바란다고 축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안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우리 밖에서,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extra nos, in Christo) 우리에게 주어지는 영성에 근거해서 기독교인은 영적으로 살아갑니다.'
질문.
1. '생명의 영에 사로잡히는 것' / '하나님의 영이 나를 통치하도록 하는 것' / '생명감에 사로잡히는 경험'은 어떻게 하면 가능할까요?
2. '나를 그분의 힘에 맡기는 것'은 어떻게 하면 됩니까?
아래와 같은 질문에 대한 답을 여러분들로부터 구한다면 그 부족함을
조금 해소할 수 있을 것 같아 질문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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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마당/성서연구/빌립보서 13강 '부활, 하나님 안에 은폐된 미래의 생명'은 아래와 같은 단락으로 마무리되고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의 영적인 시각을 좀더 심화시켜나가는 일은 신앙성장에도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영적인 눈높이의 심화입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비록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일상적인 삶을 살아가지만 우리게 다가올 영적인 생명의 깊이를 인식할 수 있어야 합니다. 바울처럼 우리의 마음이 그 부활의 생명을 향한 희망으로 가득해야 하겠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기독교 신앙의 본질입니다.'
질문입니다.
1. '영적인 시각을 좀 더 심화시켜나가는 일'이나 '영적인 눈높이의 심화' 또는 '영적인생명의 깊이를 인식할 수 있는 것'은 어떻게 가능해지는지요?
2. 그리고 '부활의 생명을 향한 희망으로 가득하는 것'은 또 어떻게 하면 될까요?
또 성서연구/빌립보서 21강 '영적인 삶을 향하여'의 맨 뒤에서 두 번째 단락은 아래와 같습니다.
'영성은 그게 아니라 생명의 영에 사로잡힘으로써 확대되고 충만해집니다. 우리의 주관적인, 심리적인 자기 발산이나 자기 고백이 아니라 우주를 창조하고 지금도 그 창조를 유지하고 미래에 그것을 완성하실 하나님의 영이 나를 통치하도록 나를 그분의 힘에 맡김으로써 우리의 영도 충만해집니다. 기독교의 영성은 죄책감이 아니라 생명감에 사로잡히는 경험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우리의 영과 함께 하기를 바란다고 축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안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우리 밖에서,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extra nos, in Christo) 우리에게 주어지는 영성에 근거해서 기독교인은 영적으로 살아갑니다.'
질문.
1. '생명의 영에 사로잡히는 것' / '하나님의 영이 나를 통치하도록 하는 것' / '생명감에 사로잡히는 경험'은 어떻게 하면 가능할까요?
2. '나를 그분의 힘에 맡기는 것'은 어떻게 하면 됩니까?
2007.09.14 21:43:29
'생명의 영에 사로잡히는 것'을 항상 생각하며 그것을 푯대삼아 천천히 가겠습니다.
먼저 천천히 가는 것, 서두르지 않는 것을 배워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먼저 천천히 가는 것, 서두르지 않는 것을 배워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07.09.15 16:13:05
그것이 곧 신앙생활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물론 일반적으로 신앙생활을 종교생활 정도로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다른 의미가 되겠지만
진정한 신앙생활이란 결국 '영적 시각을 심화하는 것'
다르게 말한다면 '영적 가치관을 정립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고
그것은 또 '생명의 영에 사로 잡히는 것'이라고도 말 할 수 있을 겁니다.
생명의 영에 사로 잡히려면
결국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는 삶이 되겠지요.
이렇듯 신앙 안에서
일차적으로 개념을 정리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 같습니다.
같은 말을 서로 다르게 쓸 수 있기 때문이고
실제로 그렇게 쓰여지고 있는 것이 현실인 것 같습니다.
즉 지금 이렇게 표현한 것도
실은 저 나름대로 정 목사님의 말씀을 풀어 본 것이기 때문입니다.
혹 이렇게 풀어낸 제 이해가 정 목사님과 다를 수 있기도 하겠지만
저는 그렇게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이렇게 댓글을 다는 이유는
이런 표현들이 아마도 지금 교회 안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쓰이는 용어로 설명한 것이라는 생각에서 입니다.
물론 일반적으로 신앙생활을 종교생활 정도로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다른 의미가 되겠지만
진정한 신앙생활이란 결국 '영적 시각을 심화하는 것'
다르게 말한다면 '영적 가치관을 정립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고
그것은 또 '생명의 영에 사로 잡히는 것'이라고도 말 할 수 있을 겁니다.
생명의 영에 사로 잡히려면
결국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는 삶이 되겠지요.
이렇듯 신앙 안에서
일차적으로 개념을 정리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 같습니다.
같은 말을 서로 다르게 쓸 수 있기 때문이고
실제로 그렇게 쓰여지고 있는 것이 현실인 것 같습니다.
즉 지금 이렇게 표현한 것도
실은 저 나름대로 정 목사님의 말씀을 풀어 본 것이기 때문입니다.
혹 이렇게 풀어낸 제 이해가 정 목사님과 다를 수 있기도 하겠지만
저는 그렇게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이렇게 댓글을 다는 이유는
이런 표현들이 아마도 지금 교회 안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쓰이는 용어로 설명한 것이라는 생각에서 입니다.
질문이 모두 한 가지로 집중되는군요.
영적 심화란 무엇이며, 어떻게 가능한가?
이런 문제는 제가 설교, 성서연구, 특강, 묵상 등에서 여러번 말했고,
반복했고,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그건 단답식으로 주어지는 게 아닙니다.
영적 심화는 영과 깊은 소통 안으로 들어가는 겁니다.
이렇게 생각해보세요.
음악가가 어떻게 음악경험을 할까요?
분명히 음악적으로 심층에 들어간 사람이 있고,
그저 주변에서 서성거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영적 경험도 비슷합니다.
영이 무엇인가를 이해해야겠지요.
영은 생명의 능력입니다.
가장 깊은 생명의 차원을 영이라고 합니다.
영을 이해하는 건 성경과 신학과 실제 신앙생황을 통해서 가능하겠지요.
그뿐만 아니라 생명에 대한 인문학적 공부도 필요하답니다.
이건 학문적인 것만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성령에게 나를 맡긴다는 건
생명의 영에 의해서 자기의 의지가 완전히 줄어드는 상태를 말합니다.
여기에도 분명히 성서, 신학, 신앙생활이 따라와야겠지요.
시인이 되는 지름길을 없습니다.
언어의 존재론적 세계에 들어가야되는데,
그게 무언지는 억지로 배울 수는 없어요.
어떤 순간에 그것이 크게 와 닿을 때가 올 겁니다.
이런 류의 글은 여기 다비아에 많을 겁니다.
천천히 가 봅시다.
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