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에서 운전하기



앞서 내가 베를린에서 대충 13년 정도 된 벤츠를 몰고 다녔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명색이 벤츠이지만 가장 낮은 급이면서 연식이 오래되었기 때문에 3백만 원쯤 주고 산 고물 자동차였는데, 그걸 끌고 다니면서 그들과 우리의 운전 문화가 어떻게 다른지 생각한 바가 있어 여기에 기억나는 대로 대충 짚어보려고 한다.

우선 주차 문제다. 도시마다 주차 제도가 약간씩 차이가 나지만 베를린은 비교적 공간이 넓기 때문인지 주체 문제가 그렇게 심각하지는 않은 편이다. 내가 1년 동안 지내면서 유료 주차장을 사용한 적이 한번도 없는 걸 보면 주차 공간이 충분하게 확보되어 있는 것 같다. 원래 베를린이라는 도시가 넓은 평야 지역이기도 하지만 고층빌딩이 거의 없어서 그렇게 주장 경쟁이 심하지 않다. 뿐만 아니라 모든 도로의 인도에 면한 차선은 주차가 가능하게 되어 있다. 특별한 지역만 주차 금지 표지판이 설치되어 있어서 그것만 주의하면 간선 도로에 주차해도 괜찮다. 도로에 따라서 한 차선을 완전히 주차가 가능하게 하는 곳도 있고, 때에 따라서는 차도와 인도의 경계선을 물고 주차하도록 되어 있는 곳도 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내가 살았던 알트 모아빗 야곱가는 주택가이기 때문에 주차 문제가 매우 심각했다. 낮 시간에는 비교적 수월한 편이었지만 밤에는, 특히 약간 늦은 밤에는 주차 공간을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주차 공간이 없으면 일단 식구들을 집으로 들여보내고 혼자서 동네를 몇 바퀴 돌면서 자리를 찾았다. 그것도 아니다 싶으면 일단 이중 주차를 하고 기다리다가 자리가 비면 그 자리를 차지했다.

내가 자주 드나들던 국립도서관이 있는 포츠타머가(街)에는 베를린 필하모니를 비롯해서 중요한 건물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기 때문에 주차 자리를 잡는 게 쉽지 않았다. 부득불 불법 주차를 했다가 두 번 단속을 당했다. 한번은 바로 필하모니 앞이었는데, 다른 차들이 있기에 나도 모른 척 하고 주차시켰다가 3만원 짜리 스티커를 발부 받았고, 다른 한번은 동물원 앞 간선도로에 세워놓았다가 다른 차들과 같이 견인까지 당했다.

베를린 시(市)의 교통신호 체계는 우리가 약간 다른 점이 있다. 가장 결정적으로는 사거리 신호등에 좌회전 신호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멈춤과 직진만 있을 뿐이다. 직진 신호에서 마주 오는 차가 없을 경우 재주껏 좌회전을 하면 된다.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거의 모든 사거리가 '비보호' 좌회전인 셈이다. 우리는 주로 한 방향에서 좌회전과 직진 신호가 동시에 작동하는 방식이어서 한번 신호를 받으려면 네 번의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려야 하지만 그들에게는 두 번의 신호만 기다리면 된다. 우리가 그들 식으로 신호체계를 바꾼다면 오히려 역효과가 날지도 모르겠다. 이를 위해서는 좀더 정확한 교통 공학이 밑받침되어야하기 때문이다.

'우선 통행권'이 누구에게 있는지 확실하지 않은 경우 그것을 해결하는 방식에서 우리 한국식과 독일식이 서로 다르다. 예컨대 신호등이 없는 좁은 길에서 나는 좌회전을 할 생각이고 상대편은 직진을 할 생각이라면 두 사람 중에 하나는 일단 멈추어야만 한다. 원칙적으로만 보자면 직진이 늘 우선권이 있지만 이런 원칙이 무조건으로 지켜지는 것은 아니다. 그 친구들은 누구든지 먼저 라이트를 상향으로 번쩍여주면 그게 곧 "내가 양보할 테니 당신이 먼저 가라"는 뜻이다. 이게 참으로 편리한 구석이 많다. 운전을 하다보면 이런 경우가 많은데 우리는 상대편에게 내 생각을 전해줄 방법이 마땅치 않다. 우리가 상향등을 번쩍인다는 것은 "내가 먼저 갈 테니 당신 조심해"라는 뜻이다. 물론 우리도 비상등을 깜빡이면 양보의 뜻을 보일 수 있지만 그것도 정확한 의사전달이 되지 못하기 때문에 이런 애매한 순간마다 주춤거리게 된다.

우리도 요즘 비오는 날이나 잔뜩 흐린 날에 전조등을 키는 운전자들이 늘어가는 편이지만, 그쪽 운전자들은 거의 습관적으로 전조등을 키는 경향이 있다. 특히 겨울로 접어들면 우리와 비교할 때 낮의 길이가 훨씬 짧은 탓에 오후 3시쯤만 되어도 전조등을 키기 시작한다. 또한 우리는 신호 대기 중에 미등으로 바꾸는데, 그들은 전조등을 그대로 밝혀둔다. 상식적으로 반대 방향의 운전자들에게 방해가 될 듯한데도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아마 전조등을 그대로 놓아두는 게 추돌 사고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듯 하다.

고속 도로에서 주행 습관에도 약간의 차이가 있다. 편도 3차선인 경우에 우리의 승용차 운전자들은 주로 1,2차선을 오가면 주행하는데, 그들은 대개 3차선으로 주행하다가 추월할 경우에만 1,2차선으로 들어선다. 물론 통행량이 우리와 비해서 적은 탓일 수도 있지만 내가 한국에서 경험한 바로는 3차선이 비어 있어도 승용차는 대개 1,2차선을 고집한다. 아마 우리의 성급한 성격이 이런 데서도 나타나는 게 아닐까 생각된다.

베를린을 비롯한 독일 전체의 주유소에서는 자가 주유를 해야 한다. 주유 탱크는 주로 세 가지가 있다. 하나는 경유, 두 번째는 일반 휘발류, 세 번째는 고급 휘발류다. 원하는 만큼의 기름을 넣으면 자동적으로 양과 금액이 계기판에 표시되고, 계산대에 가서 그만큼 지불하면 된다. 주유소에는 간단하게 앞창과 뒤창을 닦을 수 있는 물과 밀대, 그리고 휴지가 준비되어 있다. 물론 이것은 공짜다. 계산대가 있는 사무실에는 필수품을 파는 간이 가계가 함께 운영되고 있어서 운전자들이나, 또는 일반 가게가 문을 닫은 시간에 물건이 필요한 사람들이 이용하기에 편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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