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델베르크



'황태자의 첫사랑'의 배경으로 유명한 하이델베르크 방문은 독일 체류가 거의 끝나 가는 2001년 2월초에야 이루어졌다. 한국에서 독일로 들어가는 국제선 비행기가 착륙하는 프랑크푸르트가 바로 하이델베르크 가까운 곳이기 때문에 몇 차례 그 근처를 지나치기는 했지만 일정이 맞지 않아 차일피일 미루다가 마지막 순간에 들렀는데, 마침 날씨가 안성맞춤이었다. 일반인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듯이 독일의 겨울은 인내심 없이는 견디기 힘든데, 그날은 어떻게 된 셈인지 봄기운이 완연했다. 바람도 없고, 하늘은 맑고 기온은 적당하고 아주 환상적인 날씨였다.  

우선 차를 몰고 하이델베르크 성(城)으로 올라가다가 적당한 곳에 주차시킨 다음, 혹시나 하고 이성휘 목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마침 전화를 받은 이 목사는 한 걸음에 성으로 올라와서 아주 세세하게 안내해주었다. 고신 교단에 속한 이 목사는 원래 나와 군목 동기이며, 더구나 1985년에는 몇 달 동안 독일 뮌스터에서 함께 공부한 적이 있는 가까운 사람이었다. 여차여차한 과정을 거쳐 신학과 과학의 연관성을 중심으로 한 '하나님과 시간'(Gott und Zeit)이라는 제목으로 신학박사 학위를 획득했지만 국내에 일할 만한 자리가 없어서 결국 독일에서 여행 가이드를 하면서 계속 연구할 수 있는 길을 찾고 있는 중이었다. 현재도 테마 여행을 중심으로 한 가이드 일을 맡고 있다고 하는데, 연락은 되지 않는다. 그날 우리는 이 목사의 가이드 덕분으로 하이델베르크를 훨씬 가깝게 경험할 수 있었다.

프랑스에는 성당과 수도원이 역사적 무게를 담고 있다면 독일은 성이 그랬다. 프랑스는 이탈리아 못지 않게 로마 가톨릭의 영향을 많이 받았지만, 독일은 영주들의 힘이 훨씬 막강하게 작용한 탓일 것으로 보인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프랑스는 파리에 거주하는 왕에 의해서 중앙집권적인 정치구조로 되어있다면, 독일은 지역의 군주인 영주들에 의해서 지방분권적인 정치구조로 되어 있다. 사실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지방 영주들의 지원에 힘입은 바가 크다. 프레드릭 선제후가 종교재판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루터를 구출하고 자신의 성 '바르트부르크'에 은둔시켰다. 선제후라는 직책은 황제 피선거권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일반 영주들보다 한 단계 높은 자리였다.

하이델베르크 성도 라인지역의 선제후가 살았던 곳이라서 그런지 하이델베르크라는 도시의 크기에 비해서 그 위용이 대단했다. 여행 안내 책자에 의하면 하이델베르크 성은 1300년경에 처음으로 건축된 이래로 400년 동안 계속해서 증개축이 이루어졌다. 성 안뜰에서 외벽을 보면 시대에 따라서 서로 구별된 건축 양식을 찾아볼 수 있다. 지하에는 1751년에 만들어진 약 22만 리터의 와인 술통이 있는데 세계에서 가장 큰 것이라고 한다. 그 당시에는 전쟁이 심심치 않게 일어났기 때문에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서 성 안의 식구들이 일년 동안 마실 수 있는 와인을 준비한 것 같다.

유서 깊은 어느 도시나 아름다운 강과 다리가 있기 마련인 것처럼 하이델베르크에도 네카 강과 그 강을 가로지는 옛다리가 있다. 성에서 내려다보는 구시가지와 네카 강은 가장 전형적인 유럽 도시의 모습이다. 구시가지의 중심에는 마크트 광장이 있고 광장 동편에는 시청이, 서편에는 성령교회가 자리를 잡고 있는데, '마크트 광장'이라는 이름은 그곳에 장(場)이 선 것에 연유한다. 지금도 물론 정기적으로 장이 선다. 성령교회 측면과 뒷면에 붙어 있는 가게들은 손님들을 위한 관광 상품을 팔고 있었으며 광장 곳곳에 꽃 파는 사람들이 제법 많았던 것 같다.

네카 강의 옛다리는 유럽 도시의 다른 다리와 마찬가지로 운치와 격조가 넘친다. 사람들이 강을 건너기 위한 실용의 차원만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의 문화를 담아낸다는 점에서 그들에게 다리는 정신이며 역사였다. 파리 쎄느강의 다리는 두말 할 것도 없고, 프라하 불타바 강의 칼레르 다리가 그런 예에 속하는데, 네카의 옛다리도 그에 못지 않다. 옛다리를 건너면 나지막한 언덕에 학생 기숙사나 개인 주택이 띄엄띄엄 서 있고, 그 사이의 숲속에 '철학자의 길'이 나 있다. 이 다리 북편에서 구시가지와 그 뒤쪽에 솟아 있는 산 중턱의 하이델베르크 성을 바라보는 즐거움도 적지 않다.

우리는 이 목사의 안내로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생 까페에 들어갔다. 한쪽 편에는 그 동안 방문한 명사들의 흔적이 남아있었고, 어둠침침한 실내에 열 댓 명의 손님들이 맥주나 포도주를 간단한 점심 식사와 함께 들고 있었다. 그 까페 이름은 잊었지만 전반적으로 그을음과 손때가 켜켜이 쌓인 실내 장식을 보면 얼마나 구닥다리인지 금방 알 수 있다. 전혀 손질 없이 만들어진 것 같은 식탁과 의자는 그렇다 치고, 피아노는 대충 2백년쯤 묵은 것처럼 보였다. 워낙 음악을 좋아하던 이 목사인지라 자신이 가벼운 피아노 연주를 끝내더니 까페 손님들에게 집사람을 소개했다. 이 여자는 한국의 아무개 음악대학의 피아노 교수인데 피아노 연주를 한번 부탁하겠노라고 말이다. 집사람의 리스트(?) 연주를 들은 손님들은 갑작스러운 동양 여자의 피아노 연주가 과히 싫지 않았는지 연주한 곡의 이름이 무어냐, 한 곡 더 할 수 있는가 하면서 관심을 보였다. 단 하루의 일정으로는 충분한 감상되지 못했지만 일류 가이드, 멋진 날씨, 피아노 연주 등으로 인상 깊은 관광이었음에는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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