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변소



똥이나 오줌을 처리해야 할 긴박한 순간에 변소를 찾지 못한 경험이 대개 한 두 번은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일을 외국 여행길에 당했다고 한다면 큰 낭패가 아닐 수 없다. 더구나 어른들이야 오줌보가 크기 때문에 어느 정도 참을 수 있지만 아이들의 경우에는 훨씬 사태가 심각하다. 그래서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나선 외국 여행에서 가장 신경을 써야 할 부분이 바로 이런 배설문제를 미리 미리 해결하는 것이다. 호텔 문을 나가기 전에 미리 몸속의 찌꺼기를 몽땅 처리해야하고, 식당에서 밥을 먹은 다음에는 나가기 전에 반드시 변소에 다녀와야 한다.

그렇지만 모든 생리작용을 호텔과 식당에서 해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루에 소변을 몇 번 보아야 하는지 잊었지만 내 경험에 따르면 아무리 호텔과 식당을 드나들 때 철저하게 용무를 본다고 하더라도 길을 가는 중간에서 처리해야 할 때가 더 많았다. 이런 경우에 두 가지 점을 고려해야만 한다. 한 가지는 일단 유럽에서 공중변소 찾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관광객들이 많은 곳에서는 비교적 찾기가 쉽지만 뜸한 곳에서는 아예 찾을 수 없다. 2000년 여름쯤 백림교회 교우들과 과거 동독 지역을 여행하던 중 상당한 거리를 갔는데도 공중변소를 찾을 수 없어서 어느 개인 집에 들어가 주인에게 양해를 얻고 십여 명이 한꺼번에 볼일을 본 적도 있었다. 그때는 참으로 운이 좋았기에 망정이지 그런 주인을 만나지 못했다면 어쩔 수 없이 들판에 나가서 겉옷으로 간이 변소를 만들어 사용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또 다른 한 가지는 공중변소 사용료가 만만치 않다는 점이다. 여기서 말하는 공중변소는 일정한 장소에 설치된 일반적인 공중변소만을 가리키는 게 아니라 박물관이나 음악회장 건물 안에 있는 변소까지 포함한 말이다. 심지어는 고속도로 휴게소의 변소까지 사용료를 받는다. 경우에 따라서 다르기는 하지만 대개는 변소를 관리하는 사람이 따로 있다. 그들은 변소를 청결하게 유지하면서 손님들이 지불하는 사용료를 수입으로 잡는다. 어떤 곳에는 관리인이 변소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드나드는 사람이 동전 접시에 돈을 놓는지 않는지 관찰하기도 하고, 어떤 곳에는 그저 동전 접시만 놓여 있다. 내가 직접 그 사람들에게 물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 사정이 어떤지 정확하게는 모르겠으나, 손님들이 의무적으로 돈을 내야만 하는 것은 아닌 것 같았다. 식당이나 이발소에서 서비스를 받은 손님이 종업원에게 '팁'을 주는 정도의 개념인 것 같다.

어쨌거나 우리 가족이 주로 머물던 독일의 경우에 한 사람이 50페니히짜리 동전을 지불했다. 만약 4명으로 구성된 가족이라면 한번 변소 사용에 2마르크가 필요하니까 하루에 다섯 번만 간다고 하더라도 10마르크(6천원)가 든다. 그렇지만 최대한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곳을 사용하고 어쩔 수 없는 경우에만 유료 변소를 사용했으니까 여행 중에는 하루에 두 번 정도만 돈을 내고 변소를 사용한 것 같다. 우리 가족은 남자가 하나에 여자가 셋이라서 내가 50페니히로 사용하고 여자 셋은 그냥 1마르크를 내고 한꺼번에 들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관리하는 사람이 없을 경우에, 그리고 마침 동전이 없을 경우에는 공짜로 사용한 적도 적지 않았다. 만약 그 푼돈이 관리하는 분의 전체 수입이었다면 우리 가족은 큰 무례를 저지른 셈이다. 다시 그곳을 여행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변소 사용료만큼은 절대 떼먹지 말아야지.

유럽에서 가장 완벽한 사회질서를 확보하고 있는 독일이라고 해서 모든 공중변소가 깨끗한 것만은 아니다. 통일이 이루어진지 10년이 지났지만 이런 부분에서까지 동독지역과 서독지역 간의 차이는 적지 않았다. 우리 가족이 경험한 가장 불결한 공중변소가 바로 동독 지역에 있었다. 정확한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어느 고속도로 상에 있던 공중변소였던 것 같다. 고속도로를 주행하다보면 우리의 고속도로 휴게소와 똑같은 정식 휴게소도 나오고, 단순히 앉아서 쉴 수 있도록 긴 의자만 준비된 간이 휴게소도 있다. 그런데 간이 휴게소도 공중변소가 딸린 곳과 그렇지 못한 곳이 구별된다. 그래서 고속도로를 주행하면서 안내표지를 정확하게 읽고 들어서야지 그렇지 않았다가는 공연히 시간만 낭비하기 일쑤다. 가까스로 공중변소가 딸린 간이 휴게소 안내표지를 발견한 나는 아내와 아이들을 변소로 보내고 스트레칭을 하면서 바람을 쏘이고 있었다. 그런데 아내와 딸들이 기겁을 하면서 변소에서 뛰쳐나왔다. 도저히 너무 지저분해서 용무를 처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나는 여성용 변소를 들여다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변소 안에 여기 저기 용변 흔적이 수두룩했다. 아마 물세척 장치가 고장이 나서 용무가 급한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그 옆에 실례를 한 것 같았다.

한 달 전쯤 나는 단양을 가기 위해 중앙고속도로를 타고 가다가 안동 근처의 한 휴게소에 있는 공중변소를 사용한 적이 있다. 우리나라에도 이렇게 우아한 공중변소가 있다는 게 참으로 신기하게 느껴졌다. 장애인도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을 뿐만 아니라 전체 분위기가 매우 토속적인 느낌을 자아냈다. 며칠 전 우리 하양읍 사무소에 들렸다가 새롭게 만들어진 공중변소를 발견하고 그렇게 급한 상태는 아니었지만 반가운 마음으로 그곳에서 용무를 처리했다. 사용료를 낼까 말까 신경 쓰지 않고 마음대로 변소를 사용할 수 있다는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유럽에서 사는 것보다 이 땅에서 사는 게 행복한 게 아닌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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