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기행(21)                베네치아



우리 가족은 2000년 10월6일 오후 늦게 이탈리아 여행의 마지막 목적지인 베네치아에 도착했다. 호텔 예약 없이 무작정 목적지를 찾아가던 습관대로 그 날도 어떻게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차를 몰았다. 베네치아 근처까지 왔을 때 꽤 괜찮아 보이는 호텔을 발견하고 베네치아는 워낙 작은 곳이기 때문에 방 잡기가 쉽지 않을 것 같기도 하고, 비쌀 것 같아서 약간 떨어진 곳이지만 이곳의 호텔로 차를 끌고 들어갔다. 다행히 숙박료도 비싸지 않고 주방도 갖추어져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우리의 콘도와 비슷한 구조의 호텔이었다. 그곳에서 일단 짐을 풀고 저녁 먹기 전에 우선 '맛보기' 관광이라도 할 요량으로 베네치아로 들어갔다.

베네치아는 이탈리아 북동쪽에 해안에 위치한 아주 특별한 도시이다. 아니 도시라기보다는 운하가 거미줄처럼 처진 작은 섬에 불과했다. 그곳으로 들어가는 길은 육지와 베네치아를 방파제처럼 연결시킨 도로뿐이었는데, 그 도로는 승용차와 기차가 함께 운행하는, 대충 8차선 정도 넓이인 것으로 기억된다. 표지판만 보고 그 길을 따라 운전하면서 우리는 섬과 연결된 다리를 건너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도로 옆으로는 온통 바다였으니까 말이다. 호텔에서 베네치아의 로마 광장까지 대충 3,40분 정도 걸린 것 같다. 주차장이 어디 있느냐, 시내를 일주할 수 있는 배를 어디서 탈 수 있느냐, 사람들에게 묻고 주차시키고 배(수상 버스)표를 사고, 하는 바람에 시간이 많이 갔다. 가족용 왕복 배표를 끊고 올라타 보니 이미 해가 기울어 순식간에 어둠이 짙어지기 시작했다. 이 날 이미 피렌체에서 이곳에 오기까지 3시간 이상 차를 몰았으며, 저녁 식사도 걸렀고, 더구나 간간이 비를 뿌리는 을씨년스런 날씨 때문에 이색풍경에 대한 우리의 호기심도 약간 주춤했다. 그래도 우리는 우리 눈에 들어오는 모든 모습과 색깔과 풍경과, 귀에 들어오는 소리를 놓치지 않으려고 기를 썼다. 수상 버스를 타고 종착지 도착해서 잠시 내렸다가 그 버스를 타고 다시 돌아오는, 대략 1시간 30분은 족히 걸리는 수상 버스 관광이었다. 말은 수상 버스이지만 실제로는 백 여명 정도 탈 수 있는 배였다. 베네치아는 자동차가 다닐 수 있는 육로가 아예 없었기 때문에 대개 이런 수상 버스를 통행수단으로 삼는다. 어른들만 있었다면 시간에 상관없이 베네치아의 야경을 늦도록 즐기고 싶었지만 아이들이 피곤에 지쳤기 때문에 첫날은 이렇게 수상 버스 일주로 모든 것을 끝냈다.

다시 호텔로 돌아왔을 때 우리는 비록 피곤하고 배도 고팠지만 이렇게 편안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을 확보했다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아주 늦은 저녁밥을 주방에서 간단히 요리해서 먹고 잠시 이탈리아 티브이 방송을 시청한 다음에 잠자리에 들었다. 무엇을 먹었는지 궁금해하실 분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런 여행에서 가장 일반적으로는 준비해 간 쌀로 밥을 하고 몇 가지 밑반찬으로 해결하거나 더 간단하게는 라면으로 때운다. 경우에 따라서 그 지역의 슈퍼마켓에서 다진 쇠고기를 사서 간장을 넣고 볶아 먹기도 하고, 나는 주로 식초로 절인 오이를 사 먹었는데, 이 오이는 병에 담겨 있기 때문에 여러 번 나누어 먹어도 좋았으며, 유럽에서는 구하기도 편했다.

다음 날 우리는 본격적으로 베네치아 관광에 나섰다. 전날 밤에 탔던 수상 버스를 다시 타고 우선 베네치아에서 가장 유명한 산 마르코 광장으로 갔다. 선착장에서 출발해서 에스 자 형의 대운하를 타고 30분 정도 가다보면 로마네스크 양식과 비잔틴 양식이 혼합된 산 마르코 대성당의 모습이 눈에 잡힌다. 그 앞에서 하선한 우리는 일단 대성당이 자리잡고있는 산 마르코 광장에 들어섰다. 그 전날 밤에는 가을비가 오락가락 하더니 이 날은 제법 많이 쏟아졌다. 나폴레옹이 이 광장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응접실'이라고 격찬했다고 한다. 광장 동편으로는 산 마르코 대성당이 있고 남서쪽으로는 두칼레 궁전이 있고, 광장 둘레에 흰 대리석의 열주가 늘어서 있어서 나폴레옹 말대로 아주 큰 응접실에 들어온 느낌이 들었다. 우리는 여기서 무엇을 해야할지 결정해야만 했다. 이 광장 주변에 모여있는 성당과 궁전과 박물관을 차례대로 구경하고, 다른 지역의 볼거리를 찾아 나서야 할는지, 아니면 여기서는 대충 분위기만 감상하다가 다른 곳을 걸어서 구석구석 구경할는지를 말이다. 본격적으로 여행을 하고 싶은 사람은 아이들을 데리고 가지 말라고 충고하겠다. 그 당시 고등학교 1년이 큰딸과 초등학교 4학년이 작은딸은 박물관과 성당을 너무 많이 구경한 탓인지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아 했다. 그 말이 일리가 있기는 했다. 어디를 가나 그림, 조각, 스테인글라스, 파이프올겐, 또는 고대의 유물 등등, 그 아이들 눈에는 비슷하게 보였기 때문에 지루했을 것이다. 결국 우리는 그 광장의 분위기만 느껴보기로 했다. 비둘기가 많았다. 비가 내리는데도 막내딸은 과자 부스러기를 비둘기에게 주면서 놀았고 우리는 그 주변의 상점을 기웃거리기도 하고 열주가 서 있는 회랑을 산책했다. 붐비는 손님들 틈에서 우리도 작은 페스트 식당에 들어가서 간단하게 요기한 다음 아쉬운 마음으로 산 마르코 광장을 떠났다.

그곳을 빠져나온 우리는 흡사 미로찾기 대회에 참석한 사람들처럼 수로와 다리와 골목길로 이리저리 얽힌 베네치아를 도보로 횡단했다. 가다가 막히면 돌아 나오고, 재미있다 싶으면 한참 서서 구경하고, 아름답다 싶으면 기념 삼아 사진 찍으면서 네 식구가 우산을 받쳐들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물의 도시' 베네치아의 이국적인 풍경을 만끽했다.  <정용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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