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타빌



베를린은 유럽에서 신개축 공사가 가장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도시이다. 1999년에 통일 독일의 수도가 본(Bonn)에서 베를린(Berlin)으로 이전된 다음 주로 지난날 동베를린에 속했던 지역이 주요 건축 현장이다. 각국의 대사관 건물도 계속해서 건축중이다. 가장 대표적인 건축 현장은 포츠다머 플라츠라고 불리우는 곳인데, 물론 지난날 동베를린에 속했던 지역으로서 역시 서베를린과 경계를 이루고 있는 곳이다. 브란덴부르크 문으로부터 시작해서 동쪽으로 길게 난, 그 유명한 "운터 덴 린덴"이라고 불리는 거리 양편에는 베를린의 유서 깊은 건물이 밀집해 있다. 물론 동베를린 지역이다. 이렇게 동베를린 깊숙이 자리잡은 지역은 별로 신축할 게 많지 않지만 동서베를린 경계지역은 계속해서 신개축이 이루어지는데, 이 포츠다머 광장이 대표적이다. 그 광장 서편으로는 내가 머물고 있던 시기인 2000년도에 성대하게 개관식을 열었던 "소니 빌딩"이 있다. 그 지역도 역시 동서베를린 경계지역으로서 행정적으로는 서베를린 쪽이었다. 아주 특이하게 건축된 이 소니 빌딩에 얽힌 일화가 있다. 통일이 되기 이전에 소니는 베를린 사람들이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이 땅을 헐값으로 구입할 수 있었다. 동서베를린 경계에 있던 거의 쓸모 없던 땅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몇 년 후에 통일이 되자 베를린 시정부에서는 소니로부터 이 땅을 다시 사들이려고 했다. 그러나 아무리 비싼 값을 준다고 해도 소니는 이 땅을 팔지 않고 자기 회사 건물을 지었다. 포츠다머 플라츠에서 이 소니 빌딩 앞으로 통과하는 도로 이름이 포츠다머 스트라세(가)이다. 이 포츠다머 스트라세를 사이에 두고 유명한 건물이 세 채가 있다. 하나는 위에서 말한 소니 빌딩이고, 다른 하나는 베를린 필 하모니이며, 또 다른 하나는 국립도서관이다. 베를린 필과 도서관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거의 비슷한 시기에 건축된 전형적인 서베를린 문화 공간이다. 그래서 그런지 건물 외형이나 분위기가 비슷한다. 나는 베를린 필과 국립 도서관을 자주 드나들었다. 앞의 것은 집사람을 위한 용무였고, 뒤의 것은 순전히 내 용무였다. 베를린 필은 다음 기회에 한번 소개하기로 하고, 오늘은 주로 국립 도서관에 대해서만 이야기 하겠다.

이 도서관의 정식 이름은 <Staatsbibliothek zu Berlin>인데, 원래는 옛 동베를린 지역인 운더 덴 린덴에 제1관이 있고 서베를린 지역인 포츠다머 33가에 제2관이 있다. 당연히 제1관은 옛날부터 있던 건물이고 제2관은 서독측이 신축한 건물이다. 오늘 내가 말하려는 것은 바로 이 제2관이다. 제1관은 2관에 비해서 건물 크기도 작고 실용성이 떨어진다. 물론 옛날 건물이 주는 장중한 맛은 있지만. 그래서 보통 슈타빌이라고 부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제2관으로 이해한다. 슈타빌은 정식 명칭인 "슈타츠비블리오텍"을 줄여 부른 이름이다.

나는 봄과 여름에는 티어 가르텐 숲속에서 책을 읽었지만 가을과 겨울에는 거의 이 슈타빌에서 지냈다. 아침에 집에서 빵을 먹고 난 다음, 점심용으로 샌드위치와 사과와 바나나 각각 한 개씩, 따끈한 커피가 든 보온병을 챙기고, 성서와 장자와 판넨베르크의 설교집 <Gegenwart Gottes>, 독어사전을 가방에 넣고 집을 나섰다. 승용차를 타고 티어가르텐 중심에 서 있는 "승리의 여신상"을 거쳐 베를린 필 하모니 건물이 있는 근처의 적당한 곳에 주차시키기 까지 대충 15분 정도 걸린다. 아침 일찍 도착하게 되는 경우에는 공부할 자리를 찾는 게 별 어려움이 없지만 간혹 오후 시간에 갈 경우에는 다른 사람이 자리를 비울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베를린 슈타빌의 속 구조는 한 통속으로 되어 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면 다른 건물과 마찬가지로 수백 개의 개인 사물함이 곳곳에 자리를 잡고 있는 로비를 만난다. 출입구에서 자기 소지품을 확인 받은 후 층계를 올라가면 서로 다른 층으로 구분된 열람실이 보이는데, 이 모든 구조가 단조로운 층이나 벽으로 막힌 게 아니라 아주 다양한 높이의 층으로만 구분되어 있다. 그러니까 벽은 하나도 없는 셈이다. 로비가 있는 맨 아래 층에서 여러 전문 분야 도서가 진열되어 있는 5,6층 꼭대기 까지 서로 통하는, 그야말로 열린 공간구조로 짜여있다. 전체가 한 통속인데도 별로 소음을 느끼지 못했다. 모두가 조용한 탓도 있겠지만 바닥이 카페트로 깔려 있고, 또 진열된 책들이 소리를 줄여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베를린 슈타빌의 또 하나의 특징은 공기 정화 시스템이 완벽하게 작동한다는 점이다. 자칫하면 먼지와 땀냄새가 한쪽으로 쏠릴만도 하지만 전체적으로 공기의 흐름이 역학적으로 자연스러울 뿐만 아니라 개인용 책상 가까운 곳에서 계속적으로 깨끗한 바람이 유입되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리 덥거나 습기찬 날이라고 해도 불쾌한 냄새는 전혀 없었다.

집에서 갖고 온 빵으로 점심을 먹고 잠시 쉬는 시간에는 도서관 밖으로 나와 잔디밭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거나, 길 건거편 베를린 필 하모니와 미술관, 교회당 근처를 산책하곤 했다. 독일에서 가장 큰 도시이자 수도인 베를린의 중심인데도 불구하고 사람을 압도할만한 높은 건물이 거의 없어서 마음이 편했다. 특히 차들이 밀리는 경우는 거의 없었으며, 빨리 달리는 차들도 없었기 때문에 그 근처에서 산책하기는 참으로 안성맞춤이었다. 그냥 그렇게 서둘지 않고 걷고 공부하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베를린 사람들을 보면서 약 오를 정도로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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