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토반



독일의 고속도로를 뜻하는 아우토반은 자동차라는 뜻의 아우토(Auto)와 길이라는 뜻의 반(Bahn)이 합성된 단어로서, 굳이 우리 식으로 말을 붙이자면 자동자 전용도로인 셈이다. 나는 주로 승용차를 이용해서 여행을 다녔기 때문에 이 고속도로를 많이 이용한 셈이다. 앞에서 한번 소개한 것처럼 베를린에서 프랑스 파리를 거쳐 스페인의 바르셀로나까지도 역시 고속도로를 통과했으며, 스위스와 이탈리아도 역시 고속도로를 통해서 갔다. 여러 나라의 고속도로를 달렸지만 아무래도 고속도로의 역사가 가장 깊은 독일의 고속도로가 가장 좋았던 것 같다. 다른 것은 접어둔다고 하더라도 우선 유럽의 다른 나라에서는 대개 고속도로 통행료를 받지만 독일은 무료였으며, 또한 다른 나라에서는 속도제한이 있었지만 독일에서는 없었다. 독일의 고속도로에는 표지판이 지나칠 정도로 많이 설치되어있다. 예컨대 한 군데의 나들목을 지나게 되면 반드시 그 다음에 만나게 될 큰 도시와 작은 도시까지의 남은 거리가 기재된 표지판이 나타난다. 이런 표지판이 초행길인 사람에게는 많은 도움이 된다. 참고적으로 독일의 모든 도로의 코너에는 도시 시골 구분없이 거리 이름과 번지수가 기재된 표지판이 곳곳에 설치되어 있다. 이런 정도로 빠짐없이 설치되어 있는 나라를 유럽에서는 별로 못보았다. 그만큼 독일 사람들이 꼼꼼한 탓인지, 경제적인 여유가 있기 때문이지, 또는 그래야만 마음이 편안할 수 밖에 없는 결벽증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지 우리같이 낯선 사람들에게는 여간 편리한 게 아니었다.

우리 나라에서도 이제는 고속도로가 사통팔달로 뚫려가고 있긴 하지만 독일에 비하면 아직 멀었다. 독일 지도를 펼쳐보면 고속도로가 흡사 거미줄처럼 연결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런데 구동독 지역과 구서독 지역의 고속도로 망과 그 상태는 차이가 크다. 구동독 지역의 고속도로는 그 기반 자체가 부실하기도 하지만 도로 상태가 열악하기 때문에 요즘 고속도로 건설과 보수가 한창이다. 그래도 이 지역의 고속도로 양쪽으로는 조성된 숲은 서독지역보다 훨씬 좋았다.

독일에서는 이 고속도로 번호를 아우토반의 이니셜인 A를 따고 그 뒤에 번호를 붙인다. 그러니까 북쪽의 함부르크에서 출발해서 남쪽으로 브레멘과 뮌스터, 도르트문트, 쾰른을 거쳐 남서쪽의 자부뤽켄에 이른 고속도로를 A1이라고 부른다. 아마 가장 오래된 고속도로가 아닌가 생각된다. 그래서 왕복 4차선으로 좁은 편이다. A2는 베를린에서 서쪽으로 횡단하는 고속도로서, 통일 이후에 확장하거나 보수한 탓인지 모르지만 운전하기가 가장 쾌적했다. 가장 긴 고속도로 이름은 베를린에서 뮌헨까지 이르는, 독일 동부지역을 북에서 남으로 관통하는 물경 580km의 A9(아 노인)이 아닐까 생각된다. 나는 이 A9를 여러번 달렸다. 프랑크푸르트에서 출발해서 스위스를 여행한 다음에 알프스 동쪽 지역을 넘어, 뮌헨을 들려 베를린까지 올 때도 있었고, 베를린에서 이탈리아를 갈 때는 A9를 왕복한 적이 있다. 베를린에서 일단 도시 외곽을 형성하고 있는 A115를 타고 포츠담을 오른쪽으로 끼고 7시 방향으로30분 정도 내려오다가 가로지르는 A10번으로 갈아타고 9시 방향으로 20분 정도 달리게 되면 이제 A9를 만나게 된다. 이제 이 A9 표지판만 보고 대 여섯 시간 남쪽으로 달리다 보면 뮌헨에 도착하게 된다. 내려 오는 중에 루터의 종교개혁 발상지인 비텐베르크와 할레, 라이프찌히, 2차세계대전 이후 전범재판소가 꾸려졌던 뉘른베르크를 거치게 된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 여행길에 여러번 구동독과 서독 지역을 넘나들게 된다는 것이다. 우선 베를린에서 출발하고 약간만 나서게 되면 옛 동독 검문소를 만나게 되고, 그 뒤로는 한참 동안 동독 지역에 머물게 된다. 아마 뉘른베르크에 가야 옛서독 지역으로 들어서는 게 아닌가 생각된다.

아우토반을 달리면서 느꼈던 몇 가지 감상은 다음과 같다. 중간 중간에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장소가 상당히 잘 꾸며져 있었다. 물론 우리와 비슷한 휴게소도 있긴 하지만 그것보다는 화장실과 야외용 식탁 정도만 준비된 간이 휴게소가 많았다. 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다니면서 집에서 준비한 빵을 이런 장소에서 먹는 것으로 식사문제를 간단히 해결하곤 했다. 우리 식구도 여기서 라면을 여러번 끓여먹었는데, 이렇게 간이 휴게소에서 버너로 라면을 끓여먹는 게 합법인지 불법인지는 잘 모르겠다. 아우토반에서 속도제한이 없다는 것은 사실이긴 하지만 모든 곳에서 그런 것은 아니다. 마을을 지날 때나 들짐승들의 출현이 빈번한 곳에서는 철저하게 속도가 제한되어 있다. 내가 신기하다고 느낀 것은 일년 내도록 아우토반을 달리면서도, 속도제한으로 단속할 일이 없기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교통 경찰을 한번도 보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물론 사고가 났을 경우는 제외하고 말이다.

나는 1년 동안 독일의 아우토반을 애용한 사람이긴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그렇게 고속도로를 이곳저곳으로 뚫을 필요가 있는가에 대해서 회의적으로 생각한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산이 많은 지역에서 산허리를 뚫는 고속도로 건설로 인해서 얼마나 많은 생태학적 문제가 발생하는가를 생각하면 가능한대로 고속도로의 건설을 줄여나가는 게 좋은 것 같다. 그러나 기왕에 고속도로 건설이 어쩔 수 없는 이 시대의 요청이라고 한다면 인간과 자연이 조화되는 최적의 상태를 고려해야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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