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래방



우리 가족이 베를린에서 살던 일년 동안 빨래는 거의 내가 맡았다. 거짓말도 아니고 허풍도 아니다. 양말은 일주일 쯤 모았다가 화장실에 있는 욕조에 한꺼번에 몰아 넣은 다음 발로 밟아가면서 빨았다. 물기가 웬만큼 빠질 정도로 두 손으로 비틀어 딴 다음, 방안의 빨래 건조대에 널어두면 그것으로 양말 빨래 끝이다. 독일 날씨는 비가 많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늘 건조한 상태이기 때문에 이틀만 지만 양말이 바짝 마른다. 나머지 빨래는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우리 집에서 두 블록 정도 떨어진 고츠코프스키가(街)에 있는 빨래방에 가서 해결했다. 걸어서 대충 15분 정도 걸리는 이 빨래방에 일년 동안 정기적으로 다닌 탓에 그곳에서의 추억도 적지 않다. 오늘은 이 빨래방에 풍경을 소개해볼까 한다.

빨래방 출입문에 들어서면 전체 세탁기를 조정하는 장치가 왼쪽 벽에 설치되어 있다. 우선 비어있는 세탁기에 빨래거리를 넣은 후에 이 중앙조정기의 동전 투입구에 5마르크(3천원)를 넣은 다음에, 자기가 선택한 세탁기의 번호를 그 조정기에 입력하고, 흡사 커피 자판기에서 커피를 받아내듯 가루비누를 준비된 컵에 받아서 세탁기에 넣고 스타트 버튼을 누르면 준비 끝이다. 원하는 사람은 별도의 금액을 (300원?) 내고 린스를 보충할 수 있다. 세탁에 소요되는 시간은 대충 40분 가량으로 기억하는 데, 정확하지는 않다. 1단계 세탁이 끝난 다음에는 손님들의 취향에 따라서 여러 선택권이 주어진다. 제일 선호되는 순서는 세탁된 빨래를 다시 강력 탈수기로 제2단계 탈수를 한 다음에, 건조대에서 완전히 건조시키는 풀 코스가 그것이다. 물론 각각의 순서에 돈을 따로 지불해야만 한다. 그런데 대개는 건조대에서 한번으로 완전 건조가 되지 않기 때문에 "따블"로 건조시키는 경우가 많다. 어떤 사람은 강력 탈수과정까지만 여기서 해결하고 건조는 집에 가서 한다. 가난한 대학생들이나 외국인 노동자들이 주로 이런 방식을 택한다. 1차 세탁 과정에서 탈수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여기 강력 탈수기는 그야말로 거의 완전하게 탈수를 끝내주기 때문에 그냥 입어도 될 정도이다. 개중에는 돈을 아끼겠다는 생각으로 이 강력탈수 과정을 거치지 않고 1차 세탁에서 직접 건조기로 가는 사람들이 있는데 결국은 훨씬 손해다. 이들은 대개 빨래방 사용에 서투른 왕초자들이다. 또 하나의 부류가 있다. 이들은 가장 단순한 1차 세탁과정으로 모든 것을 끝낸다. 이들과 정반대로 건조 과정으로 끝내지 않고 한 단계 더 거치는 이들도 있다. 대개 노인들이라 할 수 있는 이들은 침대 시트나 커튼의 다림질까지 여기서 해결한다. 2m 가량의 원통 두 개가 맞물러 돌아가는 그 사이에 침대 시트를 밀어 넣으면 깨끗하게 다림질이 되기 때문에 이런 노동이 귀찮은 노인들은 이런 과정을 즐겨 이용한다. 물론 1마르크 동전을 넣어야 한다. 일반적인 풀코스로 빨래를 끝내려면 시간은 대충 1시간 10분 여, 비용은 8마르크(5천원) 드는데, 빨래의 양이 평소보다 약간 많다싶으면 건조기를 두 개 사용하는 게 효과적이다.

이 빨래방의 부분적인 삽화 몇 작품을 그려보자. 주로 전형적인 독일 사람들의 모습은 이렇다. 건조까지 마친 빨래를 흡사 집에서 하듯이 종류별로 차곡차곡 정리해서 가방에 칭겨 넣는 모습이 떠오른다. 이들을 위해서 빨래방에는 세 개의 커다란 받침대가 준비되어 있다. 나는 처음에 대충 가방에 집어 담은 뒤에 집에 와서 정리하다가 어느 사이엔가 나도 모르게 그들을 따라서 그 현장에서 정리하게 되었다. 사람도 원숭이처럼 남의 흉내를 내는 습성이 있는가보다. 젊은 학생들은 세탁되는 시간에 신문이나 소설 따위를 읽었다. 자주 막내딸을 데리고 갔던 나도 그 시간에 성서나 장자를 읽었는데, 손님들 중에는 이런 책에 호기심을 나타내는 이들도 있었다. 반 수 정도는 빨래가 되는 동안에 다른 볼 일을 보러 나간다. 쇼핑도 하고, 산보도 하다가 대충 시간에 맞추어 돌아온다. 그러나 개중에는 시간을 넘기기도 하고, 그래서 그 빨래감이 다른 곳으로 치워지기도 한다. 아주 가끔 일어나는 일이지만, 빨래 주인이 비운 사이에 필요한 옷을 슬쩍 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하는데, 확인해 보지는 못했다. 그곳에 비치되어 있는 세탁기는 대충 20대, 강력 탈수기가 3대, 건조기가 10대 정도인 것으로 기억하는데, 대개의 세탁기 앞면이 상당히 우글쭈글하게 찌그러져 있었다. 그 사연을 어느 날 알게 되었다. 간혹 세탁기가 돈만 먹고 작동하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 이럴 때 성격이 괴팍한 젊은 친구들이 발길질을 하는 것이었다. 독일어로 "샤이쎄!"(개똥같으니라구!)라고 중얼거리면서 세탁기를 괴롭혔다. 아주 간혹 몇 대 맞으면 다시 제대로 돌아가는 세탁기도 있긴 했지만, 대개는 조작이 서툰 경우였다. 안내문에 쓰여진 대로 차근차근 조작하면 대개는 정상으로 돌아가는데, 서둘다보면 기계가 망가진 것으로 오해하고 이렇게 과격하게 행동하는 일이 벌어진다. 물론 결정적으로 세탁기의 문제로 인해서 불거지는 경우도 있다. 가장 난처한 경우는 한창 세탁되는 과정에서 멈출 때다. 세탁물을 빼낼 수도 없고, 작동되지도 않는 경우 말이다. 돈만 먹고 기계가 돌아가지 않는 경우에 대비해서 한쪽 켠에 비상연락 전화번호가 적혀 있기도 하고, 이런 상황을 호소할 수 있는 엽서 크기의 종이가 비치되어 있다. 내 경우에도 한번 이런 일이 있었다. 돈은 넣었는데 세탁기가 돌아가지 않았다. 날짜, 시간, 내 주소를 적어서 그 함에 넣었더니 2주일 쯤 후에 5마르크 짜리 종이돈이 우편으로 배달되어 왔다.

사진설명
위: 빨래방 안에서 막내딸과 기다리는 중에 찰깍!
아래: 빨래방 밖에서 건너편을 향해서 찰깍!
건너편으로 베를린 은행과 노란색 공중전화 부스가 보인다.
베를린의 도로 구조는 대개 차도, 주차도로, 자전거도로, 그리고 인도로 되어 있다.
모든 도로가 그런 건 아니지만 대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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