휄째르너제 수양관에서



2000년 10월27일부터 29일까지 2박3일 동안 베를린 근교의 한 수양관에서 백림교회 식구들과 함께 지냈다. 그때 여섯 번의 강의로 공부한 빌립보서의 내용을 기초로 해서 한국에 돌아와 대구 YMCA에서 다시 공부했으며, 그것을 지난 4월에 책으로 낸 사연이 있기 때문에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그분들과 함께 지낸 그 시간들은 나에게 매우 소중한 추억으로 간직되어 있다. 그런데 막상 그때의 일들을 여기서 다시 짜임새 있게 간추려내려고 하니 아무런 기록이 없어서 약간 막막한 심정이다. 이럴 줄 알았다면 약간 귀찮아도 그때그때 뭔가를 적어놓았어야 하는 건데 나의 게으름 탓에 결국 이렇게 빈손으로 글을 쓰게 되었다. 그렇지만 변명 비슷하게 한 마디 한다면, 빈틈없이 작성된 정보와 자료보다는 사람의 기억이 훨씬 진리에 가까울 수도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두 가지 점에서 그렇다. 어떤 의도를 갖고 정보를 기록하다보면 그것을 기록할 당시의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점이 하나이고, 또한 인간의 기억은 기억될만한 것들만 챙기기 때문에 필요 없는 것들이 자연스럽게 걸러진다는 점이 다른 하나이다. 신학대학교 다닐 때 읽은 어느 시인의 글이라고 기억되는데, 시상(詩想)이 떠올랐을 때 당장 시를 쓰지 말고 일단 잊으라는 것이다. 그리고 나중에 다시 그것이 나타나면 그때 언어로 형상화하라고 하였다. 아마 동물의 되새김질 정도가 아닐까 생각되는데, 인간의 생각에는 망각과 회상의 메커니즘을 통해서 어떤 객관적 사실이나 사건을 훨씬 창조적인 차원에서 새롭게 해석해내는 능력이 담겨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사실 지금 내가 연재하고 있는 '유럽기행'의 모든 이야기는 거의 내 직감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에게는 나의 주관적인 해석이 너무 강하게 작용한 것으로 읽혀질지 모르겠다.) 어쨌든지 이런 한계를 안고 휄째르너와 연관되어 내 머리에 남아있는 장면 중에서 두 가지만 풍경화 그리듯이 이야기해볼까 한다.

휄째르너 수양관에서는 전형적인 독일 사람들의 식사가 나온다는 말에 두 딸과 아내와 나는 은근히 먹는 재미가 쏠쏠할 거라는 기대를 안고 첫날 저녁 식당으로 향했다. 예정보다 훨씬 늦은 시간이 도착했기 때문에 짐을 풀기도 전에 교회 식구들이 우선 식당으로 모였다. 이미 다른 독일 청소년 단체들은 식사를 끝내고 자기들끼리 휴식 시간을 갖고 있을 때였다. 이렇게 여러 단체가 같이 모이는 수양관의 식당에는 가능한대로 다른 이들보다 빨리 가야 따뜻한 음식을 제대로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을 많은 경험을 통해서 익히 알고 있던 터라, 제일 늦게 간 게 마음에 걸리기는 하지만 그래도 독일은 우리보다 합리적인 사회니까 뒤에 오는 사람을 배려했을 거라는 간절한 바램으로 식당에 들어서서 늘 하던 대로 침착하게 겉옷을 옷걸이 걸고 식탁에 둘러섰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눈에 들어오는 게 없었다. 탁구대 만한 식탁에 아주 간소한 먹거리가 준비되어 있을 뿐이었다. 우리 식으로 하자면 그저 간식거리 정도였다. 그 어디에도 구수한 수프나 비프스테이크 냄새가 나지 않았다. 이미 구운 지 몇 시간이 지난 빵 몇 조각, 소시지 약간, 마가린, 버터, 못생긴 과일 약간이 전부였다. 그나마 따끈한 커피와 차가 있어 다행이었다. 그나마 없었다면 그야말로 차가운 음식으로 그 날 저녁을 때워야 할 판이었다. 원래 독일 사람들은 아침과 점심은 대충 빵으로 해결하지만 저녁에는 정식을 먹는다는 정보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도착하는 날 저녁은 최소한 스테이크나 생선튀김 정도는 먹겠거니 하고 마음의 준비를 했는데, 영 딴 판이었다. 까칠한 빵에 버터와 치즈를 발라 차와 함께 먹고 식당을 나섰다. 오늘은 우리가 너무 늦게 도착해서 임시방편으로 이렇게 나왔을지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그 다음 날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하루 세끼 중에서 한끼 정도는 소스가 곁들인 따뜻한 음식이 나오긴 했지만 그 수준은 '아니올시다'였다. 80년대 초반 쾔른 대학교 학생식당에 비해서 몇 수 아래의 식단이었다. 교포 신자들의 말을 들어보니 원래 독일 사람들은 이렇게 먹는다고 한다. 형편없이 먹고 열심히 일하고, 차 한잔이나 맥주 한잔 놓고 몇 시간씩 삶과 예술에 대해서 대화하며 산다는 것이다. 먹는 재미로 사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좀 심한 게 아닌가 생각되었다.

일단 그럴듯하게 먹는 건 포기하고 대신 내가 맡은 말씀의 성찬이나 착실하게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 말씀을 묵상하면서 산책을 나섰다. 도착한 전날은 너무 어두워서 보지 못한 호수가 내 시야에 나타났다. 마음 같아서는 호수를 한바퀴 돌고 싶지만 최소한 2,3 시간 걸릴 것 같아서 그만두고 아침 식사하기 전까지 그 근처를 서성이면서 호수의 풍경이 자아내는 평화로움을 만끽했다. 호수 주변은 쭉쭉 뻗은 나무들이 검은 숲을 이루고 있었고, 이름 모를 물새들은 끼륵끼륵거리며 호수 위를 자유롭게 날고 있었다. 일찍 잠을 깬 독일 학생 몇몇이 호수 언덕에 올려져 있던 배를 끌어 호수 위에 띄우고 열심 노를 젓는다. 10월말의 북(北)독의 날씨는 을씨년스럽고 차갑기 때문에 호수 물에 맨발을 넣기가 싫지만 그 아이들은 아랑곳 않고 열심히 배를 끌고 호수 속으로 들어간다. 그게 젊음의 특권이렷다. 우리처럼 나이가 든 사람들은 호수 곁에서 어슬렁거릴 뿐이다. 이게 얼마나 큰 차이인가? 호수 안으로 들어가는 사람과 밖에 머무는 사람의 차이가 말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호수 밖에 있는 사람은 그럴만한 준비가 되어 있기만 하다면 그 안과 밖을 더불어 누릴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profi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