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어가르텐



1년 가까이 베를린에서 지낼 때 자주 들른 곳이 두 곳이다. 한곳은 베를린 국립 도서관이고, 다른 하나는 오늘 말하려고 하는 티어가르텐이다. 티어가르텐(Tiergarten)이란 이름은 "동물 공원"이라는 뜻인데, 그렇다고 해서 동물원은 아니다. 아마 처음 공원으로 다듬어질 때 동물들이 많았던 탓인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다람쥐나 토끼 정도가 있을 뿐이지 다른 큰 동물들은 없다. 안내문에 적혀 있는 내용을 보면, 자세하게 기억은 나지 않지만, 베를린 주를 다스리던 어느 영주에 의해서 최소한 4백년 전부터 공원으로 조성되었다고 한다. 그쪽 영주들은 민중들을 착취만 한게 아니라 그래도 미래를 내다볼 줄 알았나보다. 작게 시작한 공원이 이제는 그 유명한 부란덴부르크 문으로부터 시작해서 서쪽 방향으로 대략 3km에 이르는 광할한 땅을 차지하고 있다. 공원 서쪽 끝 아래로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베를린 동물원이 연결되어 있으며, 공원 한 중심에 67m짜리 승리의 탑(지게스조일레)이 관광객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푼돈의 입장료를 내고 그 승리의 탑 전망대에 오르면 흡사 녹색 양탄자를 깔아놓은듯한 티어가르텐 숲이 한 눈에 내려다 보인다. 1873년에 건조되었다고 하는 이 승리의 탑 아래 광장은 파리의 개선문 광장 처럼 베를린의 모든 주요 간선도로가 와 닿는 로타리로 활용되고 있다. 부란덴부르크 문에서 이 승리의 탑을 거쳐서 에른스트로이터 광장에 이르는 직선 도로를 6월17일가(街)라고 부르는데, 아직 조사를 못해서 그 유래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지 이 도로는 양쪽으로 티어가르텐 숲을 끼고 있어서 참으로 아름답다. 간혹 아내와 함께 국립 오페라 극장에 다녀오는 밤이면 이 길을 통과해야 했는데, 가로등, 가로수, 조용한 도로의 완전한 조화를 맛보곤 했다. 사족 한 마디. 왜 베를린은 그렇게 조용한가? 특히 밤에는 왜 사람들이 나돌아다니지 않을까? 도시 외곽은 물론이고 번화가도 마찬가지다. 그저 관광객들이나 눈에 뜨일 뿐, 별로 사람들이 없다. 특히 밤에 청소년들은 아예 찾아볼 수 없다. 그 녀석들 학교에서는 "야자"도 안 하나?  

우리 집에서 가장 가까운 티어가르텐까지는 걸어서 대충 20분 걸린다. 대문을 열고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서 1백미터쯤 가면 오전에만 문을 여는 꽃집이 있는 사거리다. 거기서 다시 왼쪽으로 꺾으면 4시30분 방향으로 승리의 탑이 보인다. 운하 위로 난 다리를 건너면 곧 (기술?) 고등학교가 있고, 그 건너편에는 작은 도서관이 있다. 조금 더 걷다보면 도로 위로 가로질러 난 기차길과 만난다. 이렇게 걸어가면서도 행인들 때문에 불편하다거나 건물들 때문에 시야가 가리는 일은 없다. 다만 한 가지 개똥만 주의하면 된다. 승리의 탑 가까이 이르면 길 건너편으로 개신교 교회당과 가톨릭 성당이 각각 티어가르텐 숲과 붙어서 서 있고, 그 옆으로 베를린 은행이 있다. 티어가르텐 숲은 여러 불럭으로 구분되어 있다. 어떤 곳은 간선도로에 의해서, 어떤 곳은 운하나 호수에 의해서 자연스럽게 나뉘어 있는데, 나는 주로 집에서 가까운 서북쪽 지역을 택했다. 그곳 한 가운데 작은 호수가 있으며, 그 호수 동쪽으로 영국 공원과 대통령 궁이 이어져 있다. 그 사이 사이는 온통 나무과 잔디로 채워져 있다. 햇빛이 황홀하게 비추는 날이면 너나 할 것 없이 사람들이 호수 근처의 잔디밭에 천으로 된 깔개 한 장 깔아놓고 일광욕을 즐긴다. 흡사 목마른 사슴처럼, 핵심부분만 겨우 가리고 햇빛을 탐한다.  

봄와 여름 두 절기 동안 아침마다 나는 생수 한통, 사과 한 개, 안동림(역주) 장자, 성서, 필기구를 챙겨 등에 짊어지고 이 숲을 찾았다. 가을과 겨울에는 춥기도 하고 도서관을 가느라고 띄엄띄엄 갔지만. 호수 서쪽 방향에 놓인 긴 의자에 앉아서 개를 끌고 산책나온 노인들을 보고, 선생님과 함께 야외수업 나온 유치원 아이들과 초등학생들의 재잘 거리는 소리를 듣고, 드믈지 않게 알콜 중독자들의 누워있는 모습이나, 아주 간혹 가다가는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여자의 흐트러진 모습을 보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내 관심을 끈 것은 숲과 호수와 그 호수에 살고 있는 오리 가족이었다. 다섯 달 정도 한 곳에 앉아서 숲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온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꽃, 향기, 새, 소리, 태양, 빛, 물, 색, 구름, 모양 ...

그곳에서 성서와 장자를 읽고 쓰며 익혔다. 우리가 현실이라고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그 어떤 참된 현실을 경험한 이들의 증언이라는 점에서 성서와 장자의 세계는 공유되는 부분이 많았다. 과연 성서가 말하는 영의 실체는 무엇인가? 장자가 말하는 도는 무엇인가? 우리가 현재 경험하고 있는 이 현실의 외면이 참인가, 허상인가? 티어가르텐에서 많은 생각을 했다. 이제 존재라는 물속에 들어간 느낌이 무언지 약간 알만하다. 그러나 아직 수영을 익히려면 멀고 먼 길이 남아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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