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츠코프스키 그룬트슐레



2000년3월6일 밤 베를린의 테겔 공항에 첫발을 내려 놓았을 때 큰 딸은 한국에서 하양 여중을 졸업하고 하양여고에 입학한 상태였으며, 둘째 딸은 하양 초등학교 3년을 마친 상태였다. 둘 다 휴학을 시켜 놓고, 아내와 같이 네 식구가 낯선 곳에서 일년 동안 지내면서 아무 일도 안 하고 그냥 편안하게 놀구먹을 생각이었다. 그래서 한동안 베를린에서 마음대로 늦잠 자고 아이쇼핑 하고 여행하면서 지냈다.

그런데 경찰서에 가서 거주 등록을 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우리 동네의 초등학교 교장이 내게 편지를 보냈다. 둘째 딸이 학교에 다닐 나이이니까 가능한 빨리 자기네 학교로 보내라는 것이었다. 독일에 사는 사람은 내국인이든 외국인이든 상관없이 무조건 교육을 받아야만 한다는 법조문을 명시하고 있었다. 그래서 원래 계획에는 없었지만 이런 학교생활도 좋은 경험일 것 같아서 보내기로 작정하고 몇 가지 수속을 밟았다. 사실은 수속이랄 것도 없다. 지정된 소아과 병원에 가서 건강진단을 받는 게 모든 것이었다. 소아과 의사는 내 딸의 시력, 청력, 지체발육 상태 등 학교생활에 기본적으로 필요한 것들을 체크했다. 보험만 들어 있으면 학생들에게는 안경도 무료로 제공해주고 치아 교정도 무료인데, 그것 때문에 그 비싼 보험을 들 생각이 없어서 포기했다. 독일 어린이들에게는 흡사 생활기록부처럼 예방접종 기록부가 있었다. 이 소아과 의사는 나에게 한국에 연락을 해서라도 그 기록부를 첨부해야만 소견서를 발부해 주겠다 말했지만, 그래도 이런 저런 형편을 말하니까 일단 학교에 들어갈 수 있게 조치를 취해주었다. 그 학교 이름이 바로 고츠코프스키 그룬트슐레였다. <고츠코프스키>는 학교가 있는 거리 이름이고 <그룬트슐레>는 우리의 <초등학교>라는 뜻의 독일어다.

수업은 비교적 이른 시간에 시작했다. 내 기억으로는 아침 8시였다. 특이하게도 조금 일찍 학교에 온 어린이도 개인적으로 교실에 들어가지 않고 운동장에서 기다리다가 8시 정각에 현관문이 열리면서 함께 들어갔다.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어떤 사고 예방을 위한 조치가 아닌가 생각된다. 학생들은 대개 아침을 먹지 않고 학교에 간다. 대신 빵과 과일을 들고 가서 주어진 간식 시간에 먹는 것 같았다. 점심은 학교가 끝나고 집에 돌아와서 먹었다. 그런데 그곳 한인교회 목사님의 아들을 보니까 인문계 고등학생인데도 학교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 약간 늦은 점심을 먹었다. 그곳의 학생들은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이 우리에게 비해서 현저하게 적은 것만은 분명했다.  

나는 독일어를 전혀 못하는 딸 아이가 낯선 학교에 가서 잘 적응할 수 있을지 내심 염려했지만 거의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가장 중요한 요인은 아마 선생님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담당하는 어린이가 채 20명이 안 되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담임 선생님이 한 아이 한 아이에게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그곳에서 칭찬을 많이 들은 내 딸 아이는 한국에 돌아와서도 학교생활에 자신감이 붙었다. 또 다른 이유는 학교에서 요구하는 학습 수준이 학생들에게 전혀 부담이 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노는 것처럼 학교에 다닐 수 있었다. 약간 다른 말이지만, 학습활동에 필요한 도구나 재료 준비도 철저하게 학교 자체에서 조달했다. 그게 참 이상했다. 한국에 있을 때 두 딸이 매일 아침마다 색종이, 풀, 자, 공책, 각종 악기 등, 준비물을 챙기느라고 정신이 하나도 없었는데, 그런 게 모두 학교에 마련되어 있다는 게 말이다. 그래서 그런지 학교 앞에는 문방구도 없고 구멍가게도 없었다. 겉으로만 봐서는 그 건물이 학교라는 걸 결코 짐작할 수 없었다. 말이 나온 김에, 대학 건물도 역시 그랬다. 울타리를 쳐놓고, 심지어는 정문에서 출입하는 사람들을 관리하는 우리처럼 캠퍼스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단과대학별로 시내 곳곳에 나뉘어져 있었다. 그들은 자기 나라 안에 살고 있는 사람에게는 빈부, 인종, 종교에 상관없이 무조건 최상의 교육 조건을 제공할 책임이 국가에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마 이건 사회정의를 위한 최소 조건의 보장일 것이다.

베를린을 떠나기 며칠 전에 고맙다는 인사를 하러 교실을 찾았다. 복도까지 난방이 잘 되어 있었고, 그 복도에 어린이들이 마실 수 있는 수도 꼭지가 있었고, 아이들의 잠바가 걸려 있는 옷걸이가 있었으며, 그 복도 게시판에 각각 어린이 사진이 붙어 있었다. 교실에 들어가자 독일 어린이들만이 아니라 수건을 머리에 덮어 쓴 터키 어린이, 일본(?, 또는 중국?) 어린이, 그리고 동유럽에서 온 어린이들이 한 교실에 모여 있었다. 평화로운 풍경이었다. 사진을 몇장 찍고 어눌한 독일어로 그 아이들과 선생님께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비록 현재 독일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들이 적지 않지만 여러모로 견실한 교육의 토대가 유지되고 있는 한 그 미래는 비교적 밝다고 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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