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영장



외국 여행에서 가장 신경을 많이 써야 할 부분은 아무래도 잠자리(숙박)같다. 젊은 사람들이라면 돈을 아끼기 위해서 기차칸이나 역대합실에서 잔다고 하지만 나이도 들고 어린이 까지 낀 가족으로서는 가능한대로 편안한 잠자리를 찾아야한다. 우리는 주로 유스호스텔의 가족용 방을 이용했다. 우리 가족처럼 4명인 경우에 싼 곳이 5만원 가까이 되고 비싼 곳은 6만 여원이 되니까 사실 싼 편도 아니다. 곳에 따라서 관광철만 문을 여는 유스호스텔이 많기 때문에 그걸 반드시 확인해야만 한다. 그 다음으로는 우리의 장급 여관 정도의 호텔을 이용했는데, 하룻밤의 방값이 10만원을 상회했다. 물론 방값에는 아침 식사가 포함된다. 아침이라고 해봐야 늘 빵과 과일, 때에 따라서 요쿠르트 정도지만 말이다. 그래도 이런 아침 식사 제공이 여행객들에게는 큰 도움이 된다.  

오늘 주로 설명하게 될 야영장은 불편한 점이 있긴 하지만 일단 가격이 저렴하고 어떤 면에서 아기자기한 기분을 느낄 수 있어서 우리 가족에게는 좋은 경험이었다. 4인용 텐트 두쪽을 사서 한쪽은 두 딸이 사용하도록 했고 한쪽은 우리 부부가 사용했다. 야영장은 여름철만 개방하기 때문에 돈을 절약하려던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는 아쉬움이 많았다. 야영장 사용료는 사람 숫자, 승용차 유무, 텐트 숫자에 따라서 달라진다. 곳에 따라서 약간씩 차이가 있긴 했지만, 우리의 경우에 인원수 4명, 승용차 1대, 텐트 2쪽으로 계산해서 하루에 대충 2만원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일단 야영장 사무실에 가서 간단한 서류를 작성하면 안내인이 우리가 텐트를 칠 수 있는 자리를 알려준다. 대개의 야영장에는 음식을 조리할 수 있는 간단한 시설과 몸을 씻을 수 있는 샤워장이 갖추어져 있다. 곳에 따라서는 전기가 들어오는 자리와 없는 자리가 구별되기도 하다. 지금 기억으로 우리가 야영한 곳은 파리, 바르셀로나, 그린델발트, 루쩨른, 퓌쎈이었다. 그중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두 곳은 그린델발트와 퓌쎈이다.

그러니까 2000년 8월 중순경 방학을 이용해서 마부르크에 머물러 있던 우리 가족은 일주일 예정으로 스위스를 여행하기로 계획을 짰다. 우선 가장 먼 제네바로부터 거슬로 올라오는 일정이었다. 제네바에서는 유스호스텔에서 이틀밤을 잤다. 그 유명한 레만호를 실컷 보고, 국제도시답게 온갖 종류의 인종이 재미있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았다. 우리가 레만호를 오른쪽에 끼고 뚫린 고속도로를 따라 스위스의 시골 풍경을 감상하면서 쉬엄쉬엄 올라오다가, 그 호수를 내려다 보는 로잔에 들려 잠시 노트르담 성당을 구경한 다음, 스위스의 수도인 베른을 거쳐, 알프스의 빙하가 녹아내려 만들어진 브린쯔 호수와 툰 호수 사이의 작은 도시 인터라켄에 도착한 시간이 해질녘이었다. 이제 인터라켄부터 우리가 야영하게 될 그린델발트까지는 30분여 정도 밖에 걸리지 않는 짧은 시간의 오르막 길이었는데, 호수와 목장과 구릉과 3천 미터 이상의 고봉이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언덕 곳곳에 그림처럼 자리잡은 독립가옥은 아마 알프스 산자락에서 소를 키우며 사는 사람들의 안식처일 것이다. 그 위로는 만년설 봉우리가 의연하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 우리는 알프스 마을 중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는 그린델발트에 들어서서 도로 표지판과 야영장 안내표지판을 보고 개울가에 있는 야영장을 찾아들었다. 그곳에서 우리는 이틀밤을 지냈다. 내복까지 끼어입지만 너무 추워서 밤새도록 새우잠을 잤다. 8월 중순인데 말이다. 더 인상깊었던 것은 우리 야영장 바로 아래로 흐르는 개울물 소리였다. 별로 깊은 계곡이 아닌데도 그 물살이 얼마나 강한지 옆 사람에게도 고함을 치듯 말해야만 했다. 우리는 밤새도록 폭포 소리같은 개울물 소리를 들으면서 잠속에 빠져들었다.

8월 하순 경에 우리는 독일의 남쪽 마을 퓌쎈에서 이틀밤을 지냈다. 독일의 중부 도시 뷔르츠부르크에서 남쪽으로 350km에 이르는 소위 '로만틱 가도'의 끝자락에 오스트리아와 거의 접경해 있는 퓌쎈은 근교의 노이슈반슈타인 성으로 유명하다. 우리는 퓌쎈에서 가장 큰 호수가 내려다 보이는 작은 야영장에 자리를 잡았다. 이 야영장은 소를 키우는 농장인데, 짧은 여름철만 개장해서 부수입을 올리는 개인 소유였다. 앞서 스위스의 그린델발트에서 춥게 잔 경험이 있어서 나름대로 좀더 단단히 준비를 했지만 우리는 여기 더 춥게 잤다. 내복을 입고, 그 위에 조끼 파카를 입고, 오리털 침낭 속에 들어가 얼굴까지 덮어썼지만 추위 때문에 몇 번이나 깼다. 그러나 우리 식구는 그곳에서의 밤을 결코 잊지 못한다. 정말 오랜만에 은하수를 보았다. 나는 친구들과 어울려 놀면서 은하수를 보았던 아스라한 어린 시절의 추억에 잠겼지만, 늘 도시에서 자란 아내는 이런 모습은 생전 처음이라면서 무섭다고 했다. 당장이라도 별들이 쏟아질 것 같은 그 밤하늘의 감동을 두 딸들은 이렇게 표현했다. "아버지, 얼마 전에 베를린에서 본 아이맥스(i-max) 영화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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