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식(外食)



일전에도 한번 말했지만 우리 가족은 베를린에 방을 얻어서 살면서 중간중간에 틈을 내어 여행을 다녔다. 대충 한달에 한번 정도 짐을 꾸린 것 같다. 베를린에 있을 때나 또는 여행 중에 가끔 외식을 했다. 가능한대로 절약하기 위해서 직접 만들어 먹는 일이 많긴 했지만 그래도 나가서 먹을 수 밖에 없을 때가 있었다. 특히 여행 중에는 먹는 일에 시간과 돈을 많이 쏟게 되었는데, 그때 우리가 먹거리를 만들어 먹는 방법은 대충 다음과 같았다. 우선 출발할 때 승용차 트렁크에 여행 일정에 따라 필요한 만큼의 주부식을 꾸린다. 주로 쌀과 밑반찬과 인스턴트 식품이었다. 밑반찬은 아이들이 잘 먹는 오징어포 무침, 진공포장된 김, 그리고 통조림 참치, 분쇄된 소고기 볶음, 집에서 담근 김치, 그 이외에 몇 가지 과일과 라면, 식수 정도였다. 예컨대 고속도로를 주행하다가 식사 때가 되면 휴게소에 들어가서 가스 버너에 라면을 끓여먹을 수 있다. 아주 간단하게 점심을 해결하는 방식이었다. 유럽의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후루륵 소리를 내면 먹는 라면 맛은 아는 사람만 알겠지. 유스호스텔 같은 곳에 들어간 경우에는 아침을 그곳에서 해결할 수 있으니까 문제가 없고, 방을 나오기 전에 미리 전기 밥솥으로 밥을 지어 갖고 다니면서 점심과 저녁을 해결할 수 있다. (나라에 따라서 전기 콘세트 모양이 다르기 때문에 만능 콘세트를 준비해야함). 이렇게 하면 식사비는 정말 저렴하게 들어간다. 그러나 늘 이런 식으로 먹고 다닐 수는 없다. 여행을 하다보면 힘이 들어서 밥해 먹을 생각이 없기도 하고, 어른들이야 밑반찬과 김치만 있어도 여러날 먹고 지낼 수 있지만 식성이 순하지 못한 두 딸들은 곧 실증을 냈기 때문에 우리는 할 수 없이 식당을 찾아나섰다. 가장 많이 들른 곳은 "맥도널드"였다. 유럽 어디를 가나 멀리서도 노랑 색깔의 M자 표시가 눈에 잘 띄었다. 그때 우리는 햄버거와 코카콜라를 마음껏(억지로) 먹고 마셨다. 네 식구가 배불리 먹어도 2만원이 채 들지 않으니까 우리는 가능한대로 맥도널드를 찾았다. 그런데 지금 그곳에서 돌아온지 2년이 다 되어가는대도 우리 부부는 아직 한번도 맥도널드를 찾지 않았다. 우리가 사는 하양에도 똑같은 간판이 있는데 말이다.

베를린에 있는 동안에 가장 자주 들린 곳은 베를린의 중앙역이라 할 수 있는 "쪼로기셔 가르텐" 역 구내에 있는 간이 피자가게였다. 베를린에 도착한지 며칠 지나지 않아 시내 구경을 나갔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서 그곳에서 기다리던 중에 둘째 딸이 피자가게를 발견하고 먹고 싶다고 해서 들어갔다. 여러 종류의 피자 중에서 가장 싼 것으로 네 조각을 주문해서 함께 먹었다. 피자에는 반드시 콜라를 곁들여야만 한다. 그때의 피자맛을 일년 내도록 잊지 못하고 그곳을 지날 때마다 들려서 사먹었다. 물론 값이 맥도널드보다 훨씬 쌌다. 한 사람이 2천원이면 충분했으니까 말이다.

파리에 갔을 때는 기분 한번 낸다고 노트르담 성당 강 건너편 골목에 있는 정식 레스토랑에 들어갔다. 지배인이 건네준 메뉴판을 아무리 들여다 보아도 그게 도대체 무슨 요리인지 알 수 없었다. 그래도 영어 표기도 있어서 어림짐작으로 주문했다. 그런데 옆 테이블에 있는 프랑스 사람이 먹고 있는 수프가 아주 먹음지스러워서 지배인을 불러 저게 무슨 요리냐고 묻자 메뉴판의 한 이름을 지적해주며, 그게 오늘의 스페샬이라고 자랑했다. 나는 늘 적약할 생각만 하니까 그것을 먹을 엄두를 내지 않았지만 아내는 그것을 주문했다. 그리고 먼저 주문한 아내의 것을 취소했다. 그런데 의사소통이 잘못되었는지 오늘의 스페살 수프만이 아니라 먼저 주문한 것까지 함께 나왔다. 지배인을 불러서 말했지만 통하지 않았다. 주인을 불러서까지 취소한 요리가 나왔다고 말했지만 자기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할 수 없어서 비싼 요리 한번 먹는 셈치고 먹기 시작했다. 그런데 오늘의 스페샬 맛을 본 아내는 손사래를 쳤다. 음식이 역겨워서 올라오는 것 같다고 말이다. 나도 역시 먹지 못했다. 그 이후로 우리는 자신 없는 레스토랑에는 다시 들어가지 않았다.

우리가 가장 마음 편하게 들린 식당은 중국집이었다. 베를린에 있을 때나 여행 중이나 밥하기 싫거나 피곤하면 중국집에 들어갔다. 중국집을 애용하게 된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같은 동양 음식이래서 그런지 아무래도 우리 식성에 가장 잘 맞았다. 중국집이라고 해도 우리처럼 면 종류는 별로 없고 여러 종류의 요리가 많았다. 특히 오리고기 튀김을 아주 맛나게 먹었다. 식당에 따라서 약간씩 차이가 있긴 하지만 한 접시에 만원 정도였기 때문에 서로 다른 요리로 세 접시만 시키면 우리 네 식구가 배불리 먹을 수 있었다. 또 다른 이유는 어디를 가나 중국식당을 찾기가 쉽다는 것이다. 옛 동독 지역인 드레스덴을 갔을 때 날은 어두워지고 길은 어디가 어딘지 모르고, 그냥 차를 몰고 썰렁한 거리를 달리다 보니 분위기 좋은 중국식당이 나왔다. 체코의 프라하, 스페인의 바르셀로나에서도 어렵지 않게 중국식당을 찾을 수 있었다. 몇 가지 정보 제공: 웬만한 중국식당에서는 식사가 끝날 때까지 따뜻하게 먹을 수 있도록 요리를 불판에 올려놓는다. 밥은 공짜로 먹을 수 있지만, 마실 것은 돈을 내야한다. 중국식당에 짜장면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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