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르카이



내가 1983년 여름, 독일로 건너가 쾰른 대학교에 개설된 외국인을 위한 독일어반에서 일년 동안 힘들게 독일어 공부를 하고 있을 때, 독일어 선생님들은 자주 신문이나 잡지에 실린 자연과학이나 생태문제, 또는 시사에 관한 글들을 교재로 사용하곤 했는데, 그 중의 하나가 "외국인 혐오"(Ausslaenderfeindlichkeit)였다. 거의 20년이 지난 요즘도 간혹 소위 "스킨헤드족"이라고 일컬어지는 독일의 극우세력들이 외국인들을 괴롭힌다는 소식이 들리는 걸 보면, 원래 독일민족이 고대로부터 로마에 대한 열등감이 있었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외국인들을 향한 이들의 배타적 심리는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사라지지 않는 것 같다.

그런데 독일의 이 외국인 혐오감은 주로 터키인(독일어로 '튀르카이'라함)들을 향한 것이다. 지금 정확한 수치를 기억하지 못하지만, 우리가 예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최소한 3백만명 이상의 터키인들이 독일에 살고 있지 않을까 짐작된다. 이렇게 많은 튀르카이가 독일에 살게된 거간의 사정은 이렇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다음 라인강의 기적이라고 일컬어지는 구서독의 산업부흥기에 자국민의 노동력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어서 외국 노동자들을 많이 불러들였는데, 대부분이 튀르카이였다. 6,70년대에는 우리 나라의 광부와 간호사들도 꽤나 많이 건너갔으며 그들이 고국으로 송금한 달러가 월남파병으로 인해서 벌어들인 달러와 함께 우리의 경제발전에 상당한 기반이 되었다. 5,60년대에 우리보다 별로 잘 살지 못하던 터키인들에게 서독은 그야말로 꿈의 나라였을 것이다.

독일에 온 터키인들은 독일인들이 별로 일하기 싫어하는 현장 노동자로 취업했다. 터키에 비해서 월급도 많고, 먹거리도 지천이고, 문화시설이나 교육제도 등, 모든 게 월등했기 때문에 비록 육체적으로는 힘들었지만 독일 이주를 잘한 선택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독일쪽에서는 부족한 노동력을 대체할 수 있어서 좋았고, 터키인들로서는 돈벌이가 되어서 좋았다. 비록 인종차별이나 이질문화의 상충으로 인해서 벌어지는 문제들이 계속되었지만 그래도 이 두 민족은 서로간의 이해타산이 맞아떨어졌기 때문에 수십년 동안 이렇게 살아온 것이다.

그러나 배고픈 시절이야 무시를 당하더라도 참을 수 밖에 없었겠지만 이제 어느 정도 경제적으로 안정 상태에 들어섰고, 더구나 1.5세대나 2세대들의 높은 의식 수준으로 인해서 인종차별 문제가 더욱 예민해졌다. 독일 사람들과 똑같이 인격적인 대우를 받으려는 터키 사람들과 터키 사람들 때문에 자기들에게 불이익이 온다고 생각하는 독일 사람들 사이에 긴장감이 근본적으로 사라질 수는 없다. 특히 통독 이후로 실업자가 급증하고 있는 구동독 지역에서 터키인을 향한 테러사건이 자주 발생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이다.

그러나 이렇게 외국인 혐오감을 갖고 있는 독일인은 그렇게 많지 않다. 어쩌다가 터키인에 대한 혐오적 행동이나 더 나아가 폭력을 행사하는 일이 일어나면 훨씬 많은 사람들이 이를 반대하는 평화시위에 가담함으로써 이런 외국인 혐오감을 극복해내고 있다. 기본적으로 독일은 법적으로 외국인과 자국인을 차별하지 않는다. 의료보험이나 교육문제에 이르기까지 모든 게 공평하게 실시된다. 특히 '킨더겔트'(자녀양육비) 제도도 역시 터키인이나 독일인 모두에게 한결같이 적용된다. 독일 사람 중에는 이를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자기들이야 아이를 하나, 또는 둘인데, 이슬람교에 충실한 터키인들은 보통 서너명씩 아이를 낳으니까 자기들의 세금이 결국 터키인들에게 돌아간다는 불평이다. 그렇지만 사실 터키인들에게 베풀어지는 이런 모든 혜택이 공짜는 아니다. 이미 터키인들이 직장생활하면서 그만큼 세금을 냈기 때문에 말이다.

어쨌든지 독일에서 살고 있는 터키인들은 지금 어떤 면에서 기로에 놓여있다. 독일의 극우세력이 득세함으로써 생존권이 위협받게 될는지, 아니면 지금까지 처럼 외국인과의 평화스러운 공동의 삶을 추구하는 평화, 진보세력이 대세를 장악해나감으로써 독일이라는 이질 문화 속에서도 떳떳하게 자신들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살아갈 수 있게 될는지 말이다. 내가 보기에 어느 정도의 위기가 있긴 하겠지만 결국 후자의 가능성이 훨씬 많을 것 같다. 히틀러의 광기를 경험한 독일 사람들이 역사를 다시 그쪽으로 되돌리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본보 1호에서 한번 말했듯이 우리 가족이 1년 동안 살던 베를린 야곱가(街)에 터키 청소년을 위한 쉼터가 있다. 정부 소유가 아니라 개인 소유로 생각되는 그 작은 교실에 터키 청소년들이 자주 모여 노래도 하고 춤도 추면서 자기들의 문화를 지켜내고 있었다. 약간 초라한 시설이지만 그 아이들은 외국인 테러가 일어나는 가운데서도 별로 두려워하지 않고 평화롭게 살고 있었다. 나의 막내딸이 다니던 고츠고프스키 초등학교에도 터기 학생들이 제법 많았다. 딸 아이는 독일어를 잘 모르는 자기에게 친절하게 대해주던 "누룰후다"라는 터키 소녀와 찍은 사진 한 장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머리끝에서 어깨까지 흰천으로 뒤집어 쓴채 크고 검은 눈과 오똑한 코, 수줍은 듯한 표정의 얼굴만 드러내놓은 전형적인 터키 소녀였다. 2천년 전, 바울과 바나바는 이 소녀의 조상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했을 것이다. 현재는 비록 종교와 언어가 다르지만 독일의 튀르카이들이 독일인과 서로 평화롭게 살아가기를.

(위의 사진은 막내딸 지은이와 학교 친구인 터키소녀 누룰후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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