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섭의 유럽기행 1



                  베를린 야곱 13번가(街)



아내, 두 딸(지예, 지은)과 함께 나는 2000년3월6일 밤,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야경이 아름다운 베를린의 테겔 공항에 도착했다. 마중나온 백림교회 식구들의 차에 짐을 싣고 20분가까이 달려 도착한 곳이 야곱 13번가에 있는 연립주택 형태의 알테 보눙(옛날 집)이었다. 도로에 면한 큰 문을 열고 들어가자 작은 회랑이 나왔다. 오른쪽으로는 이층으로 올라가는 층계가 보이고 정면으로는 안마당으로 통하는 또 하나의 큰 문이었다. 그 문을 열고 마당으로 들어가보니 왼쪽이 트인 디귿자 형태의 연립식 5층 건물로 되어 있었다. 대충 50여평 정도의 마당 한 가운데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면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또 하나의 문이 있다. 그걸 통과해야 이제 1층에 있는 우리집 현관문 앞에 설 수 있다.

2차 세계 대전 직후에 건축한 건물이라서 그런지 콩크리트 벽이 최소한 50cm는 되어 보였다. 높이는 왜 그렇게 높은지. 내 짐작으로 4m는 족히 되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런지 겨울철에는 따뜻하고 여름철에는 시원했다. 비록 한쪽 면만 마당을 향했기 때문에 한낮에도 구름이 많은 날에는 조명을 켜두어야 할 정도로 어두워서, 흡사 동굴같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그래도 독일 날씨가 늘 건조한 편이라서 방안에서의 생활이 그렇게 불쾌하다고 생각되지 않았다. 방 2개에, 조그만 부엌과 화장실이 딸려 있었다. 방 하나가 대략 6평 정도되니까 총합계 15평 정도 되었다. 월세는 전기세 포함해서 750 마르크, 원화로 환산해서 45만원 정도였다.

우리 건물에 속해있는 마당만 보면 작지만 그 옆의 연립주택 마당이 면해 있었기 때문에 실제로는 훨씬 넓어 보였다. 마당 양쪽에 꾸며진 꽃밭에는 4월부터 10월까지 철을 따라서 아주 다양한 꽃이 피고 졌다. 그런데 우리집 마당의 꽃밭은 집주인이 아니라 우리와 마찬가지로 세들어 사는 사람이 자기 개인 돈을 들여 꾸몄다는 사실을 알고 역시 독일 사람들의 기질이 여전히 살아있다는 생각을 했다. 60세 가량 되어보이는 왜소한 체구의 그 남자가 정원을 손질할 때 몇 번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대학에서는 가톨릭 신학을 공부했고, 잠시 결혼한 적이 있긴 하지만 현재는 작은 개 한 마리를 데리고 독신으로 살면서, 남의 집 고가구 손질을 후구지책으로 삼고 있었다. 우리 식구들이 그 꽃밭에 관심을 보이자 그 남자는 기분이 썩 좋은 듯이 우리에게 적극적인 반응을 보였다.어느날 마당에서 베드민턴을 치며 놀고 있는 우리 두 딸이 얼마나 착하고 예쁜지 모른다며 어디서 구했는지 한쌍의 소녀상을 꽃밭에 설치하면서 그게 바로 우리집 딸들이라고 일러주었다. 그 남자 덕분에 우리는 북향의 허름한 연립주택에 살면서도 오랫 동안 여러 종류의 꽃을 보는 즐거움 속에서 지낼 수 있었다.

우리 집의 큰문을 열고 나가서 왼쪽으로 방향을 틀면 미장원이다. 그리고 길 건너편에는 소방서가 있었다. 그 사람들의 소방차 싸이렌 소리는 왜 그렇게 요란한지 모르겠다. 왼쪽으로 계속 따라가면 터어키 청소년들이 가끔 모여서 노래하고 춤추며 노는 작은 문화회관이 있고, 세제나 목욕물품 등만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가게, 세탁소 등이 있다. 100m쯤되는 곳이 사거리다. 사거리에서 북쪽으로 바라보면 그 유명한 황금빛 "승리의 여신상"(지게스 조일레)이 멀리 보인다. 사거리를 중심으로 "아랄" 주유소, 슈퍼마켓(에 노이 카우프), 꽃가게, 유대인 추모 공원, 주말 장터 등이 있다. 그 슈퍼마켓은 우리 식구가 가장 많이 이용한 곳이다. 매일 아침 마다 나는 그 슈퍼 마켓에 딸린 빵집에 가서 한 개에 35페니히(200원가량) 짜리 빵 "브로첸" 다섯 개를 사왔다. 재수가 좋은 날이면 막구워낸 빵의 온기와 고소한 냄새를 가슴에 품고 올 수 있었다. 주말이면 그 빵집 옆에서 아르바이트 학생들이 "타게스 슈피겔" 주말판 신문을 팔았다.

사거리에서 승리의 여신상 방향으로 200m쯤 가다보면 베를린 시내를 거미줄처럼 감돌고 있는 운하를 만난다. 운하 양쪽으로 길게 산책로가 나 있다. 낚시대를 운하에 드리운 사람들, 물새, 요트, 관광선이 아름다운 풍경을 그려낸다. 듣기로는 네델란드의 암스텔담보다 베를린 운하의 길이가 더 길다고 하는데, 그런 운하가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베를린 사람들은 행복할 것 같다. 상상해 보시라. 대구에도 신천을 중심으로 흘러넘칠 듯 풍부한 수량의 운하가 곳곳으로 뚫려 있는 장면을 말이다.

큰문의 오른쪽(북쪽)으로는 "우정 임비쓰" 식당이 있다. 우리식으로 말하자면 한식, 일식 전문 간이식당이다. 그 옆으로 계속해서 이테리식 레스토랑, 문구점, 치과, 약국, 피자집 등이 있다. 이런 가게들은 대개 1층에 자리하고, 나머지 위층은 사무실이나 개인 살림집이다. 아주 평범하고 약간 가난한 동네 알트 모아빗 야곱 13번가에서 우리는 2001년 2월13일까지 일년간 그 사람들과 함께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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