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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기둥과 불기둥

성령강림절 조회 수 23768 추천 수 0 2009.11.23 20:4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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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출애굽기 12:37-42 
 

구름기둥과 불기둥

(출 12:37-42)


세계에서 가장 큰 해양운하는 수에즈운하로 길이가 192킬로미터인데, 1869년에 완공되었다고 합니다. 홍해와 지중해를 잇는 인공뱃길입니다. 이로 인해서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가는 뱃길이 아프리카 남단 케이프타운을 돌아가는 것보다 최소한 1만 킬로미터 이상 단축되었습니다. 바로 운하가 놓인 곳이 구약성서에서 가장 중요한 역사적 사건인 출애굽과 긴밀히 연관됩니다. 출애굽은 기원전 1290년에 일어났다고 하니, 지금부터 대략 3천3백 년 전의 일입니다. 모세는 이집트에서 소수민족으로 학대당하던 자기 민족을 이끌고 나일강 유역의 고센을 탈출해서 지금의 수에즈운하 지역을 따라서 시내반도로 내려왔습니다. 그들이 건넜다고 하는 홍해는 히브리어 원어로 ‘얌숩’인데 ‘갈대 바다’라는 뜻입니다. 아마 수에즈 운하 지역의 어느 갈대 늪지대를 건넌 것으로 추정됩니다. 오늘 본문은 홍해, 즉 갈대 늪을 건너기 바로 직전의 상황에 대한 설명입니다. 그 내용을 간략히 봅시다. 

이집트의 바로는 민족을 이끌고 시내 광야로 나가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겠다는 모세의 요구를 거절했습니다. 밀고 당기는 과정에서 열 가지 재앙이 내리자 바로는 결국 모세의 요구를 받아들였습니다. 바로의 허락을 받은 모세는 사백삼십 년 동안 이집트에서 소수민족으로 살던 사람들을 끌고 광야로 나왔습니다. 가나안을 향해서 긴 여정을 시작한 것입니다. 그런데 북쪽 지중해 해안선을 따라가는 지름길로 갈 수가 없었습니다. 블레셋이 버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광야생활 시작부터 큰 전쟁을 치르기에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많았겠지요. 그래서 홍해가 있는 남쪽으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숙곳을 지나 에담이라는 곳에 장막을 쳤습니다. 성서기자는 여호와께서 낮에는 구름기둥이, 밤에는 불기둥이 그들의 길을 인도하고 지켜주셨다고 합니다.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이 백성 앞에서 떠나지 아니하니라.”(출 13:22) 여기서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도대체 무엇을 말하는 걸까요? 그들이 본 것은 무엇일까요?


그들은 무엇을 보았는가

본문이 가리키고 있는 그 상황으로 돌아가 봅시다. 지금 홍해 앞에 도착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애굽의 고센 지역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애굽의 시민권이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고난의 행군이었지요. 그들의 삶이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출애굽기 1장이 생생하게 보도합니다. 애굽 사람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을 강제 노역을 시켰습니다. 피라미드나 왕궁을 건축하는 일이었겠지요. 성서기자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어려운 노동으로 그들의 생활을 괴롭게 하니 곧 흙 이기기와 벽돌 굽기와 농사의 여러 가지 일이라. 그 시키는 일이 모두 엄하였더라.”(출 1:14) 바로는 급기야 새로 태어나는 이스라엘 아이들 중에서 남자 아이들은 모두 죽이라는 명령을 모든 산파에게 내렸습니다. 끔찍한 명령입니다. 이런 역사적 경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얼마나 큰 두려움을 안고 살게 했을지는 불을 보듯 분명합니다. 사람은 개인이나 민족이나 모두 극도의 고통은 잊지 못합니다. 이것이 결국 정신적 외상, 즉 트라우마로 발전하기도 합니다. 요즘 우리나라에 불법 체류하고 있는 제삼세계 노동자들을 생각하면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고난이 깊어질 때 모세가 등장합니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힘을 결집시켜서 애굽의 바로와 싸웠습니다. 더 이상 노예로 살지 않겠다는 겁니다. 애굽으로부터 독립하겠다는 겁니다. 요즘 중국에서 독립하려고 애를 쓰는 티베트와 비슷합니다. 힘겨루기에서 모세가 이겼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든 살림살이를 싸들고 일단 애굽을 빠져나왔습니다. 완전히 피난민 행렬과 똑같습니다. 애굽의 힘이 닿지 않는 가나안까지 지름길로 보름이나 한 달이면 도착할 수 있다는 야무진 꿈을 안고 엑서더스의 여정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지름길이 블레셋에 막혀버렸습니다. 그들과 전쟁을 벌일 여력은 없습니다. 물론 모세가 전쟁을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은 아니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닙니다. 만약 전쟁에서 지는 날에는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됩니다. 그럴 바에서 조금 우회하더라도 전쟁을 피하는 게 좋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홍해 쪽으로 내려와서 진을 쳤습니다. 전쟁을 피할 수 있으니 다행이긴 했으나 뭔가 처음부터 조짐이 좋지 않은 것만은 분명합니다. 광야를 횡단하는데 계획했던 날짜보다 더 많은 날짜가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아무래도 마음이 조급해지기 마련입니다.

상황이 아무리 열악하더라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목표에 대한 확신과 내적인 정체성만 명백하다면 큰 문제는 아닙니다. 그러나 이 두 가지 모두 별로 분명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의 목표는 가나안 땅입니다.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서 그들에게 준 목표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에게는 거기에 가야할 이유가 분명하지 못했습니다. 가나안 땅은 하나님의 축복이고 약속인데, 그들에게 그게 왜 분명하지 못했다고 주장하나, 하고 이상하게 생각할 분들이 있겠지요. 성서 기자들은 그렇게 표현하고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생각해보십시오. 가나안은 별로 사람이 살기 좋은 땅이 못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살던 고센은 나일강 유역의 기름진 땅입니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고센이 좋았습니다. 그런 것만 놓고 본다면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으로 갈 이유는 하나도 없습니다. 문제는 자유입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 머물러 있는 한 자유는 보장되지 않습니다. 가나안은 비록 척박한 땅이지만 자유가 보장됩니다. 당시 사람들이 어느 쪽에 더 마음을 두었을까요? 자유인가요, 물질적인 풍요인가요? 일반적으로는 후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우리와 다를 게 하나도 없습니다. 다만 모세는 달랐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뜻을 알았습니다. 비록 궁핍하다고 하더라도 가나안에서만 이스라엘 민족이 참된 자유를 누리고 살 수 있으며, 그럴 때만 하나님의 민족으로 자리를 잡을 수 있다고 확신했습니다. 모세와 그를 신뢰하던 몇몇 사람을 제외한다면 아무도 가나안 땅으로 가야한다는 목표에 확신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마지못해서, 또는 애굽의 학대가 너무 심해서 어쩔 수 없이 따라나섰을 뿐입니다.

출애굽 공동체의 정체성도 분명하지 못했습니다. 구약성서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출애굽 공동체는 이스라엘의 단일 민족으로 구성된 게 아닙니다. 당시 애굽에서 학대받던 여러 소수민족의 총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광야에서 떠돌이로 살던 크고 작은 종족의 이합집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을 가리키는 ‘히브리’라는 단어는 그 당시 근동에서 살던 하층민을 의미합니다. 이들이 광야생활에서 단일대오를 유지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먹을거리와 물이 부족할 때마다 그들은 모세에게 불평불만을 터뜨렸습니다. 이럴 바에야 애굽에서 살던 때가 더 좋았다고 민중들을 선동했습니다. 아주 심각할 때는 내전과 비슷한 사건도 일어났습니다. 금송아지를 만들었다는 이유로 모세는 한나절에 삼천 명이나 되는 사람을 죽였습니다.(출 32:28) 일벌백계 식으로 처리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이 출애굽 공동체의 정체성은 사분오열의 상태였습니다.

본문의 상황이 어떤지를 저는 앞에서 네 가지로 설명했습니다. 첫째, 출애굽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정신적으로 깊은 상처를 안고 있습니다. 둘째, 출애굽 초기에 벌어진 상황이 예측에서 어긋났습니다. 셋째, 가나안 땅이라는 목표에 대한 확신이 강하지 못했습니다. 넷째, 그들의 정체성이 서로 갈렸습니다. 정신무장도 시원치 않고, 내부 결속력도 희미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광야를 횡단해서 가나안 땅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미션 임파씨블’입니다. 더군다나 지금 그들이 당도한 곳은 홍해 앞 에담입니다. 그들은 지금 배수진을 친 격입니다. 앞으로 나가자니 홍해가 버티고 있고, 뒤로 돌아가자니 블레셋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 보따리를 싸서 다시 애굽으로 돌아갈 수도 없습니다.

당시에 모세도 불안하고 백성들도 불안했을 겁니다. 그들이 놓인 상황만 놓고 본다면 독안에 든 쥐입니다. 그들에게는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증거가 필요했습니다. 그들이 애굽을 떠날 때 바로에게 임한 열 가지 재앙과 같은 그런 확실한 증거 말입니다. 바로 그 순간에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그들의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런 제일 처음 발견한 사람이 누군지는 성서는 말하지 않습니다. 모세가 그 사람일 수도 있고, 아니면 익명의 어떤 사람이 그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아주 자연스럽게 민중들 사이에 그런 소문이 퍼져나갔을지 모릅니다. 저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바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증거가 아니냐, 하고 말입니다. 거기서 다시 용기를 얻을 수 있었겠지요. 한번 해보자는 결의를 다질 수 있었겠지요.

구름기둥과 불기둥은 화산활동입니다. 낮에는 화산의 구름과 화산재가 분명하게 보였고, 밤에는 용암이 쏟아내는 불꽃이 보였습니다. 고대인들에게 그것보다 더 장엄한 광경은 없었을 겁니다. 산꼭대기에서 짙은 회색 연기와 불길이 솟구칩니다. 그 안에 무엇이 있을까요? 고대인들에게 활화산 현상은 신의 현현으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구름기둥과 불기둥 이야기는 크게 보면 시내 산 전승에 속합니다. 시내 반도 아래쪽에 자리한 시내 산은 모세가 처음 부름을 받은 호렙 산입니다. 출애굽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홍해를 건넌 뒤에 시내 산에 도착하게 되고, 거기서 십계명을 비롯한 여러 율법을 완성했습니다. 시내 산의 장면을 성서기자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셋째 날 아침에 우레와 번개와 빽빽한 구름이 산 위에 있고, 나팔 소리가 매우 크게 들리니 진중에 있는 모든 백성이 다 떨더라.”(출 19:9) 전형적인 화산 폭발의 장면에 대한 묘사입니다.

이 대목에서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할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군요. 하나님이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신다는 본문은 결국 화산 폭발을 하나님의 특별한 행위로 오해한 거냐 하고 말입니다. 하나님의 초자연적 개입이 아니라 단순한 자연현상에 불과한 거냐 하는 질문입니다. 여기서 길을 잃으면 안 됩니다. 가장 확실한 사실부터 확인합시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화산폭발이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또한 그것을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이해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생각도 분명한 사실입니다. 이 두 사실은 모순되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이 자연을 창조한 분이시며, 그 하나님이 바로 이 세상을, 이 자연을 통치하십니다. 따라서 이 세상에서, 이 자연현상에서 하나님의 창조능력과 통치행위를 인식한다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이런 일들은 구약성서가 자주 증언합니다. 시편은 “날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한다.”(시 19:2)는 방식으로 자연을 통해서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만나 이야기도 그렇습니다. 만나는 지금도 시내 광야에서 발견할 수 있는 식물성 먹을거리입니다. 우리가 어렸을 때 칡을 캐 먹는 것과 비슷한 경우입니다. 광야의 이스라엘은 다른 사람들이 눈여겨보지 않았던 만나를 발견하고 그것을 하나님이 내려주신 특별한 먹을거리라고 생각했습니다. 샘물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광야를 횡단하면서 샘물을 만날 때마다 그것을 하나님이 특별히 내려주신 선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이 증거다

오늘 본문이 말하는 핵심이 무엇일까요? 구름기둥과 불기둥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야 할 방향을 지시해 주었다고 합니다. 이건 아주 사실적인 표현입니다. 그들은 낮이나 밤이나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기준으로 가나안 땅을 향한 방향을 잃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고대인들은 광야에서 해나 별을 보고 방향을 잡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날씨가 나쁠 때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습니다. 활화산은 늘 그 자리에서 날씨에 상관없이 사람들이 갈 방향을 지시해 줄 수 있습니다. 당시 시내 반도의 지리를 잘 알고 있던 모세가 이 화산을 놓고 백성들을 이끌고 나갈 수 있었다는 건 하나님의 은총임에 틀림없습니다. 그 사실을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자신들을 이끌어주셨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의 이런 신앙경험을 유치하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들은 화산폭발에 대한 지리학적 지식이 없는 어리석은 사람들이었다고 무시하지 마십시오. 그들의 관심은 하나님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계시였습니다. 하나님을 향해서 그들의 영혼을 집중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에게 집중한 백성들이었기에 만나 경험을 할 수 있었고, 구름기둥과 불기둥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모세는 호렙 산에서 불이 붙었으나 타지 않는 가시떨기 현상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의 눈에는 세계 모든 것이 바로 하나님의 창조 능력이며, 통치 능력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들의 이런 신앙 전통을 이어받은 사람들입니다.

영적인 눈을 떠 보십시오. 그러면 만나가 보일 겁니다. 눈을 감으면 아무리 옆에 만나가 지천으로 널려 있어도 보이지 않을 겁니다. 영적인 눈을 뜬 사람에게는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살아 있는 하나님의 구원 섭리로 보일 겁니다. 눈을 감은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상투적인 것으로 떨어질 뿐입니다. 세상이 따분하게 느껴질 겁니다. 이미 주변에 하나님이 살아 계시고 구원하신다는 증거가 널려 있는데도 엉뚱한 것만 찾아다닐 겁니다.

오늘 우리에게 가장 결정적인 구름기둥과 불기둥은 무엇일까요? 돈인가요? 그렇다고 한다면 우리의 삶은 너무 허무합니다. 도대체 무엇이 우리를 생명의 길로 안내하는 근거입니까? 무엇이 하나님의 임재를 확인해 줍니까? 여러분은 이미 대답을 알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2천 년 전 유대에서 살았던 한 성자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전혀 다른 눈으로 그를 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얼굴에 빛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봅니다. 그게 여러분에게 보이시나요? 예수 그리스도의 운명이 바로 인류 구원의 유일한 길이라는 사실이 보이시나요?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인생 여정을 인도하는 가장 확실한 구름기둥과 불기둥이십니다. 그가 우리와 늘 함께 하십니다. (2009.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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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9]참믿음

November 24, 2009
*.123.6.154

저는 모세시대나 사사시대  왕정시대 포로시대 또 예수님시대,그리고 지금 오늘날 이시대 까지

공통적인것은 인간은 모두 죽음을 대수롭지 않게 보는거 같네요. 죽음후 분명 내세가 있음을 그때나 지금이나

분명 알고 특히 하나님께서 인류를 사랑하셔서 스스로 창조주이시며 여호와이심을 이스라엘 통해   밝히시고

역사적 사실로서 보여주셨는데  또 지금은 주님의 은혜로 더욱더 분명하게

또렷하게 계시해 주었는데 믿는자들 까지도 별로 삶의 최우선으로 두지 않으며 , 모두들 죽음에 대해 별로

두렵고 떨림이 전혀 없는거 같아요 그런걸 보면 전 솔직히 그들이 신기하고 대단하게 보임니다.

저는 솔직히 겁이 남니다. 앞으로 길면 40년인데 죽어서 지옥에 간다면 얼마나 끔직하겠습니까? 어떻게 지옥에서

1시간 아니 10분을 견딜수 있습니까? 영원토록 끔직한 고통으로 산다는것을 안다면 우리가 어떻게 삶의 목표를 잡아야

하겠습니까? 그것이 과연 지금 육체적 욕망 자랑 기쁨과 그 다른것과 바꿀수 있단 말인가요?

신학자나 교수나 목사님이나 모두 지옥에 대해 확신이 없고 그냥 직업적으로 아님 지식을 과시하는 수단으로

자기 만족으로 말씀 전하는거 같아요. 아님 구원에 자신이 있던가?(일반 교인들은 말할거도 없구요)

제가 볼때는 모두들 사도 바울보다 믿음이 좋은거 같네요. 바울도 성경 어디선가 자기는 복음을 전하고 있지만

스스로 구원 받지 못할까 두렵고 떨린다고 고백했는데.

요즘 너무나  하나님에 관하여 아는사람들은(지식)  많은데 그들에게 한가지 묻고 싶습니다.

정말 하나님을 아는지?????

 

목사님!!! 정말 우리의 생명이 되시는분은 오직 주님 뿐입니다.

주님만이 우리의 전부 입니다.  기쁨입니다. 아니 생명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긍휼하심만 바랄뿐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인생 여정을 인도하는 가장 확실한 구름기둥과 불기둥이십니다. 

아멘 주 예수여 어서 오십시요 속히 저희를 구원하여 주시옵소서

 

(신학자나 교수님 목사님 들을 무시하는 글이 절대 아님니다. 그만큼 이분들 책임이 크다는걸

그리고 무지한 사람들을 잘 이끄시라고 하는겁니다. 대부분 잘하시는데 그렇지 못하고 서로

비난하고 또 정치하는 목사님들, 높아질려고 하는 모습이 정말 하나님을 아는지 묻고 싶은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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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98]정용섭

November 24, 2009
*.120.170.243

참믿음 님,

<주님만이 우리의 전부 입니다.  기쁨입니다. 아니 생명입니다.>는 고백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지옥의 고통에 대해서 말씀하셨군요.

지옥의 무엇이 두렵다고 하셨나요?

불길, 구더기, 갈증 등등인가요?

그런 표현들을 사실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면

정작 성서가 말하는 지옥 표상이 희화화되고 만답니다.

죽은 시체는 불도 두려워하지 않고,

구더기도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그 지옥은 예수님에 의해서 이미 힘을 잃었습니다.

기독교인은 지옥이 두려워서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부활생명에 대한 희망으로 하나님을 믿는 것이죠.

저의 설명이 확 와 닿지 않지요?

지옥이 없다는 거냐 하는 질문도 생기지요?

지옥에 대한 성서의 묘사는 하나님이 없는 세계의 비참함을

신학적으로 설명하는 겁니다.

위의 설명이 충분하지는 못하지만,

하여튼 신앙은 지옥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하는 기쁨에서 시작된다는 사실만은 잊지 마십시오.  

좋은 저녁 시간이 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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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6]방랑자

November 24, 2009
*.109.153.14

목사님의 예전 글들을 계속 묵상하면서 요즘은 하나님의 계시에 대해 많이 생각해 봅니다.

(제 사유속에 그토록 오랫동안 한발짝도 못나가게 했던 창조와 진화, 천국과 지옥 등등의 근원적인 의문들

에서 이제 다비아를 통해 조금은 자유함을 얻었는지 어느덧 다른 사유의 세계로 들어갈수 있게 된것 같네요

목사님께 정말 감솨 ^^)

하나님은 계시를 통해 자신을 나타내시며 계시가 곧 하나님이라고 하신 말씀을 보았습니다.

잘 이해되지 않아서 이번에도 우선 외우기로 했는데요 ㅎㅎ  이번 말씀도 연관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저와 같이 미숙한 신앙의 사람들에게 오늘 삶 속에서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발견하거나 판단하기는 어렵지만

우리에게 언제나 변함없이 증거되시는 유일한 분이 예수님임을 알것 같습니다(언젠간 믿음으로 다가오기를...)

이런 가르침이 기성교회에도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나 적지 않은 수구보수 목사님들께는 정 목사님

말씀을 곡해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몇해전 인도네시아 쓰나미를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했던 그 유명한

목사님 같은 분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세계의 모든 현상을 하나님의 통치능력으로 봤던 것처럼 자신도 믿음의

눈으로 보았더니 그렇게 보인 것이라고 할 테니까요. 하기야 또 어느 목사님께선 언젠가 대구지하철참사 등을

비롯해 대구지역에서 사건 사고가 특별히 많이 발생한 것이 그 지역의 종교성향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고(아주 큰

불상을 만든다고도 하고, 한국에서 가장 교인수가 적은 지역이라고..) 하는 설교를 들은적이 있습니다.(그땐 아주

조금은 그럴수도 있겠다 수긍했던 참담한 기억이...ㅜㅜ 죄송.. 회계합니다)  이처럼 많은 교인들이 잘못된 말씀을

듣고도 저와 같이 미혹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아니 이미 미혹되어 있는 것 같은데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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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98]정용섭

November 24, 2009
*.120.170.243

방랑자 님,

위의 대글을 보니 학습의 진도가 빠르게 나가는 것 같군요. ㅎㅎ

구름기둥과 불기둥 이야기에서

하나님이 계시로 존재한다는 명제를 기억해내셨다는 게 좀 놀라워서 하는 말입니다.

지난 2천년 역사에 쌓이고 쌓인 기독교 신앙의 곡간에는

우리가 평생 먹어도 다 먹을 수 없을 정도로 풍부한 영적 양식이 있습니다.

많은 신자들은 그걸 눈치 채지 못하고 있어요.

자기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만 골라서 편식하고 있지요.

햄버거같은 페스트푸드만 먹고 사는 격이라고 할는지요.

주님의 은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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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4]저별과 달

November 24, 2009
*.121.11.80

목사님,  오랫만에 들러서 목사님 설교를 듣고 질문 드립니다^^

목사님의 말씀처럼 이스라엘 백성이 보았던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화산폭발 이었다는 어떤 과학적인 증거가 있나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두려워 떨 정도의 큰 소리와,  화산 폭발이 있었다면 당시 수 백만명 으로 추정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까지 직접 영향을 미칠수 있는 가까운 거리가 아니었을까 싶은 생각이 드는데

그들이  그렇게 위험한 지역을 계속 지나 다닐수 있었을까요?  

이 부분 화산 폭발 이라는 것이 성서 고고학적 으로나 과학적으로 어떤 자료 같은 것이 있나요?

자료를 보여 주신 다면 제가 좀 쉽게 이해 할수 있겠는데요..

 

또한  이스라엘 백성이 건너간 홍해 바다는 갈대밭이었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그럼 그 갈대밭을 뒤 따라간 애굽의 군사들은 왜 갈대밭을 건너지 못하고 다 죽었을까요?

그들이 그 곳 지형을 더 잘 알지 않나요?

이 점  궁금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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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98]정용섭

November 24, 2009
*.120.170.243

별달 님,

질문이 화끈하고 솔직해서 좋습니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화산폭발이었다는 과학적 증거를 물었지요?

일단 상식적으로 성경을 읽으면 자연스럽게 나오는 결과랍니다.

그런데 왜 다른 목사님들과 다른 말을 하는가, 하는 질문도 가능하겠지요.

그건 기본적으로 성경읽기의 태도가 다른 데에 대답이 있답니다.

어떤 사람은 성서를 사실보도로 읽고,

어떤 사람은 신앙고백으로 읽는 거에요.

어느 쪽이 옳은지는 서로 주장이 다를 터이니 더 말할 필요는 없겠지요.

구름과 불기둥이 화산폭발이라는 사실은

최소한의 지성적 판단력이 있다면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실이랍니다.

 

애굽 군사들이 왜 갈대늪 지대를 건너지 못하고 다 죽었냐고 물었지요?

그들이 다 죽었다는 표현을 어떻게 읽으시나요?

다 죽었는지 일부만 죽었는지,

아니면 그런 일이 없었는지는 여기서 별로 중요하지 않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바로의 기마병으로부터 안전하게 지켜서

광야로 인도해 내셨다는 신앙이 중요한 거에요.

그 안에 일어난 실체적 사실을 모두 아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별달 님, 이렇게 성서를 해석하면

결국 아무런 사실도 살아남지 못할 거 같다는 염려는 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오히려 더 신앙의 본질이 살아납니다.

하나님의 능력과 그 신비와 은폐성이,

그리고 우리의 영적인 시각이 더 풍성하게 살아날 겁니다.

나는 그런데,

별달 님은 안 그런가요? ㅎㅎ

주님의 은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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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4]닥터케이

November 25, 2009
*.90.149.35

출애급과 관련한 지금까지의 고고학적 연구의 결과는 "이집트에서 수백만명의 대규모 집단이 탈출하였다는 어떠한 관련 증거물도 찾을 수 없다" 는 것이었습니다. 다만, 산발적으로 수십명 규모의 노예 탈출에 관한 기록들은 있기는 합니다. 이에 대한 가장 합리적인 설명은 출애굽기의 기록은 여러 소규모 집단의 이집트 탈출에 관한 기억들이 모아져서 하나의 민족적 기원을 설명하는 이야기로 집합되었다고 보는 것입니다 (현재까지로는).  저의 사견으로는 포로기 시절에 출애굽기의 내용이 좀 더 가다듬어지고 지금과 같은 형태로 윤색되지 않았을까 (바빌론의 포로상태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열망을 담아서) 하는 의문을 가지고 있습니다. 출애굽기와 포로기 문서에 관해 잘 아시는 분은 답변을 좀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고고학적 증거가 전무하다는 사실에 대해 근본주의자들은 "당시의 파라오가 대규모 노예 탈출과 이집트 군사의 패배라는 부끄러운 사실을 감추기 위해 관련 증거들을 모두 폐기시켰기 때문이다" 라고 주장하던데,  좀 억지스럽다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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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9]김용남형제

November 25, 2009
*.162.15.249

댓글 열기가 뜨겁네요.

정말 인생은 예수로 시작해서 예수로 끝나는 것 같습니다.

천국과 지옥의 이분법적 영계관이 절대진리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현대교회 가운데서

세상의 중심, 알파와 오메가, 처음과 나중, 시작과 끝이신 예수를 보고 싶습니다.

목사님의 '신학과 철학' 강의를 읽으며, 칸트가 선험적 이성, 헤겔이 절대정신, 하이데거가 무(無)로 표현한

그 철학의 공통적인 빈공간을 메우실 분이 곧 예수이시진 않을까 하고 생각해보았습니다.

결국 모든 존재는 소멸하기 마련인데, 궁극적인 실존을 따져보면 그 분밖에 남지 않으니까요.

오트의 말처럼 저런 철학자 분들은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하나님을 위해 자기를 비우게' 되신 것이겠죠?

그러고보면 지금 숨쉬게 하는 생명도 창조의 로고스 자체이신 예수로 말미암은 것인데

죽고나서 그와 격리된 지옥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 큰 비논리로 여겨지는 것 같습니다.

빛으로 싸여 알수 없는 하나님의 영광, 생명의 근원 예수... 그 분께 철저히 촛점 맞춰진 설교에 감사드립니다.

지옥에 관한 목사님의 댓글을 읽으니 샘터교회에 더 마음이 가네요... ㅠㅠ 교회이적에 관해 많이 고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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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98]정용섭

November 25, 2009
*.120.170.243

김용남은 기독교 세계에서 이미 어른이 되었네.

바울도 어른이 된 다음에는 어린아이의 일을 잊어버렸다고 했는데,

앞으로 얕은 물은 잊어버리고 기독교 영성의 깊은 물로 더 들어가도록 하시게나.

앞으로 어떤 깊이로 들어갈지 모르겠으나

지금까지의 과정만 보더라도 대단히 뛰어난 것만은 분명하네.

스스로 잘 가보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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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5]퀄리아

November 26, 2009
*.222.66.211

정말 고등학생이 맞나요?? 믿을 수가 없는 댓글입니다. ^^

블로그를 하시는 듯한데, 형제님 블로그도 궁금하네욤 .. 쪽지로 공유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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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9]김용남형제

November 26, 2009
*.162.15.249

목사님, 과찬과 조언의 말씀 감사드립니다.

아직 갈길이 너무나 먼 것을 느끼며 스스로 가기엔 엄두도 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힘을 얻고 성령을 따라 계속 구도정진하겠습니다.

그리고 퀄리아님, 제 블로그는 싸이월드에서 제가 섬기는 교회학생부 또래나 동생들과도 소통하는 공간이고

거의 펌글 외에는 얕은 내용의 글이 많기 때문에 좀 유치하게 보이실 것입니다.

계속해서 꾸려나갈 것이지만요. ^^;

그래도 알기 원하실 것 같아서 쪽지로 보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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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7]광야.

November 25, 2009
*.188.12.141

 정목사님 안녕하세요?

매주 좋은 설교말씀을 공급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다비아의 공부는 제게 있어 유익한 면도 있고 흔들리는 부분도 있고

또는 아둔하여서 깨닫지 못하는 측면도 있습니다.

그래서 쓰기는 하지 않기로 하고 읽기 공부만 열심히 하기로 하였지요.

(매일 출석하다보니 모두가 식구 같이 친근감이 있음)


성서의 사실적 관계와 신앙고백적 이해와의 차이를 지성적, 인문학적으로

공부하는 분들은 목사님의 설명을 쉽게 이해하리라는 생각이 들지만

인문학적인 성서해석에 있어서 어느 것이 실화이고, 어디까지가 신화이며, 어디까지

꾸며져 내려온 전승인지 명확하게 짚어주면 좋겠다는 생각과 더불어

이번 설교의 「구름기둥과 불기둥」에 대해서 질문을 드리고자 합니다.


“구름과 불기둥이 화산폭발이라는 사실은

최소한의 지성적 판단력이 있다면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실이랍니다.“

목사님이 하신 말씀 중 화산폭발이란 풀이가 매력적이긴 하지만 너무나 이성적이고

지성적인 성서해석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첫째,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유효기간은 어떻게 계산하면 좋을까요? 만나의 유효기간은 40년간 지속되었는데, 그것과 맞물려 구름기둥과 불기둥도 같은 기간으로 보아야 하겠는지요?

“사람이 사는 땅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 자손이 사십 년 동안 만나를 먹었으니 곧 가나안 땅 접경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만나를 먹었더라“(출애굽기 16:35)


둘째,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화산폭발의 자연현상이라면 40년 동안 화산폭발로 백성들이 살아남기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끓어오르는 용암분출과 그 재며 연기를 온통 뒤집어쓰고 광야를 헤메는 사람들의 행색이란 비참하기 그지없지 않겠습니까? 영화에서 보면 화산 폭발은 재앙이지 결코 긍휼의 표상은 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셋째, 아래 말씀을 상기해 보면 불기둥은 백성들이 밤에 진행할 수 있도록 밝은 빛으로

비춰주었다고 합니다. 용암이 이런 역할은 하기 어렵겠지요.

불기둥을 밤에 환하게 비춰주는 어떤 초자연적인 광채로 해석하면 안되는 것인지요?

민수기와 느헤미야의 고백처럼 낮에는 구름기둥이 그들에게서 떠나지 아니하고,

밤에는 그들의 가는 길을 비추인다는 이 말은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야 하는지요?

애굽 군대를 혼란스럽게 하는 불기둥도 뭔가는 잘 모르겠지만 산에서 뿜어져 나오는

용암말고, 십계의 영화의 한 장면을 그냥 그대로 연상하면 안되는 것인지요?(출14:24)


제 생각에는 어쩌면 구름기둥은 한낮 섭씨 40도를 오르내리는 중동의 숨막히는 열기를

식혀주는 그늘막이 되었을 것이고, 불기둥은 한밤 영하 20-30도의 추위를 몰아내주는

온풍기 역할을 하였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하나님의 긍휼과 보호장치가

없다면 출애굽한 백성들은 먹을거리와 더불어 낮과 밤을 지탱하지 못하고 생존하기가

어려웠을 것입니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에서 지켜주고자 하는 가시적인

하나님의 임재 현상으로 본다면 화산폭발이라는 해석은 지나친 표현?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제가 목사님의 설교를 애용하다보니 저의 생각을 말씀드렸습니다.


 (출애굽기 13:21,22)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서 가시며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 기둥을 그들에게 비추사 낮이나 밤이나 진행하게 하시니, 낮에는 구름 기둥, 밤에는 불 기둥이 백성 앞에서 떠나지 아니하니라”

 

(출애굽기 14:19)

“이스라엘 진 앞에 가던 하나님의 사자가 그들의 뒤로 옮겨 가매 구름 기둥도 앞에서 그 뒤로 옮겨”


(출애굽기 14:24)

“새벽에 여호와께서 불과 구름 기둥 가운데서 애굽 군대를 보시고 애굽 군대를 어지럽게 하시며”


(민수기 14:14)

“이 땅 거주민에게 전하리이다 주 여호와께서 이 백성 중에 계심을 그들도 들었으니 곧 주 여호와께서 대면하여 보이시며 주의 구름이 그들 위에 섰으며 주께서 낮에는 구름 기둥 가운데에서, 밤에는 불 기둥 가운데에서 그들 앞에 행하시는 것이니이다”

  

(느헤미야 9:12)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 기둥으로 그들이 행할 길을 그들에게 비추셨사오며”

(느헤미야 9:19)

“주께서는 주의 크신 긍휼로 그들을 광야에 버리지 아니하시고 낮에는 구름 기둥이 그들에게서 떠나지 아니하고 길을 인도하며 밤에는 불 기둥이 그들이 갈 길을 비추게 하셨사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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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98]정용섭

November 25, 2009
*.120.170.243

 광야 님,

혼란스럽게 해서 죄송합니다.

또 제가 속 시원하게 설명할 수 없는 것도 죄송하군요.

그래도 몇 가지만이라도 대답을 찾아보겠습니다.

1. 성서의 사실성 문제

성서는 아주 복잡다단한 이야기 묶음집이기에

사실적인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하기는 간단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보시면 됩니다.

성서는 해석이다.

하나님의 구원 행위에 대한 해석이다.

2. 만나와 구름기둥의 40년 지속성 문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만나를 먹은 건 사실이지만

그것만 먹고 산 건 아니랍니다.

사람은 그것만 먹고는 살 수가 없어요.

다른 동물도 잡아먹고 거상들에게 먹을 걸 사서 먹기도 하고,

어느 정도는 목축도 했겠지요.

그래도 성서기자들은 40년 동안 만나를 먹었다고 쓰는 겁니다.

지난날 우리나라에서도 보릿고개가 되면 초근목피를 먹었잖아요.

“옛날에 우리 어른들은 초근목피로 먹고 살았어.” 하는 말을

곧이곧대로 그것만 먹었다고 해석하면 곤란하지요.

만나가 40년이라고 해서 구름기둥도 40년이라는 건 성서도 말하지 않는데요.

3. 불기둥의 빛에 대해

환하게 비춘다는 말는 시적인 표현이랍니다.

캄캄한 밤에는 촛불 하나만 갖고 있어도

환하게 비춘다고 말하는 것처럼이요.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옆에서 인도한다는 표현도 시적인 의미에요.

광야에서 방향을 찾기 힘들 때

아주 멀리서 화산폭발을 보면서 방향을 잡는 거지요.

4. 섭씨 40도와 영하 2,30도

낮 기온은 40도가 맞지만 밤에 영하 20-30도로 내려간다는 건 금시초문이군요. ㅎㅎ

광야 님,

성서를 바르게 읽으려면 일단 선입견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주일학교 때부터 잘못된 교육으로 길들여져서

성서를 마치 알라딘의 요술램프 처럼 읽는 경우가 한국교회에 많습니다.

그런 방식의 성서읽기에 고착되면

우리는 풍차를 적군 장군으로 착각하고 싸우려고 달려든 돈키호테처럼

세상과 쓸 데 없는 투쟁에 휩싸이게 된답니다.

진화론과 창조론의 공연한 투쟁 같은 거 말입니다.

주님의 은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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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6]맑은그늘

November 26, 2009
*.122.65.16

잠이 오지 않는 밤이네요.

여기서 핵심은 '성서는 해석이다.' 네요. 하나님의 구원 행위에 대한 해석!!

이것을 중심으로 다양한 것들을 통해서 성서를 해석해 나가는 것 말이죠. ㅎㅎ

제가 불기둥 구름기둥 댓글보고 딱 한문장으로 적을 려고 했던것이

-성서는 해석입니다- 이거였는데요.

뒤에 부연설명인 -하나님의 구원 행위에 대한 해석- 을 꼭 기억해야겠네요.

목사님. thank you very mu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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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7]광야.

November 26, 2009
*.188.12.141

정목사님, 답글 감사합니다. 죄송한 건 저인데요.

바쁘신 목사님의 시간 뺏는 것 같아서 글쓰기가 어렵기도 하구요.

그리고 저는 전혀 혼란하지 않습니다.

구름기둥, 불기둥이 화산폭발이든 초자연적인 하나님의 임재이든

상관없습니다. 그것에 따라 하나님이 변하거나 흔들릴 분이 아니니깐요.

해석상의 차이를 두고 무언가를 진지하게 배우고자 할 뿐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구원사건에 집중하라는 것과, 구원사건의 이면에 은폐된 것은

종말에 확인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현재의 예수생명에 선취된 구원과 부활에서

기독신앙의 매력과 차별성이 존재한다는 것.  존재론적인 변화와 지금 여기서는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향하여 믿음의 실재에 서야 한다는 것.

때가 되면 주님은 반드시 재림하셔서 역사의 재창조를 완성하신다는 것.

우리의 희망은 모두 여기에 있어야 한다는 것.

이것이 다비아의 방향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저도 이 희망으로 인하여 감격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설교문에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화산폭발이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라고

말씀을 선포하신 것을 보니 목사님의 경험이 분명하셨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확고부동한 신학적 사유로 결론을 내린 것이겠지요.

제게 다른 주석집이 있었는데 성경공부에 도움을 받고 다비아를 따라가고자 올봄에

국제성서주석을 한질 구입하였습니다.

출애굽기(마르틴 노트) 해당 내용을 읽어보았는데 노트는 분명한 '사실'로 하지 않고

그냥 '추측' 정도로 기록하였더군요. 추측과 분명한 사실은 엄연히 다르고,

추측은 해석의 접근의 가능성이나 개연성을 열어놓지만, 분명한 사실이다라고 못박으면

다른 이론이나 해석의 물꼬는 닫히고 말겠지요.

곁들여 부연한다면, 출애굽한 백성이 장정만 60만명이라고 하니 가솔들까지 합쳐 200만명 정도라고 치고,

이 사람들이 폭양이 내리쬐는 중동의 사막과 광야길을 가는 데 구름기둥이 해를 가리워주고 그늘을 만들어

주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럴듯하지요. 중동의 겨울 고온지대의 밤은 체감온도가 영하 20도 이하로 내려간다고 들었는데, 틀린 정보인가보지요.

중동의 해안지역 과는 달리 내륙지방의 경우 고도가 높은 지역은 추위가 심한편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하여튼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중동의  겨울밤 광야의 날씨는 무척 추웠겠지요. 200만명이 자고 먹고 쉬고 진행하고

보통 일이 아닌데요. 그것도 2주만에 들어갈 땅을 개미 체바퀴 돌듯이 돌고돌아 자그마치 40년을 헤멨습니다.

40도가 넘는 폭염에 아이도 낳아야 하고 어린이를 걸려야 하고 상상을 초월한 더위에 아이로부터 어른까지

쉴만한 그늘이 없다면 어떻게 생존할까를 생각해보았습니다. 오아시스가 있다해도 200만명이나 되는 많은 사람을

쉬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무래도 구름으로 해를 가리우고 그곳에 임재하시는 하나님을 기억할 때 위로와 힘이

솟아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불기둥도 마찬가지로.

진짜 40년인지, 전승인지, 신화인지 모르지만 그것이 40일이 되든지 40년이 되든지 하나님의 구원사건은 하등

영향을 미치지 못하겠지요. 바위에서 샘물이 나왔다고 하는데 정말 그런 것인지, 홍해를 건넜는데

갈대밭을 지났다고도 하고요,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화산폭발이 분명한 사실이라고  하시니, 이걸 다른 방법으로 해석하면 여기서는

왕따 당하는 것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선입견을 가지고 요술램프를 흔들며 뛰노는 돈키호테는 아닙니다.

 

저는 성령 하나님의 다양한 역사를 믿고 있습니다.  신학도 맞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은사체험도 맞고,

신학속에 담겨진 깊은 진리의 탐구를 통하여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도 맞고, 성령의 은사를 통하여 예언, 방언,

신유, 지식, 지혜 등의 은사도 맞습니다. 신학과 지성은 성령의 은사를 배척하고, 성령의 은사를 받은 자는

신학과 지성의 하나님 세계를 배척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봅니다. 하나님은 양자를 모두 사용하시는

다양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다양성에서 통일성을 추구합니다. 달라스신학교 구약학교수 한 분이 있었는데

잭 디어 교수입니다. 그런데 이분이 하나님의 음성을 경험하고 신학을 겸하여 성령의 은사에 대한 경험과 이론을

저술하였는데 신학적인 논리, 사유와 성령의 은사의 경험을 둘 다 주 안에서 인정하고 통용한다는 사실입니다.

(놀라운 하나님의 음성. 은성). 목사님의 화산폭발 현상....좋습니다.

그리고 성령의 다른 견해로  해석하는 것도 인정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종말에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때

희미하던 우리의 이야기가 확연하게 규명되겠지요? 그때에 누가 옳고 그른가는 그리 중요한 것이 안 될테니깐요.

매주마다 메시지를 애독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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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98]정용섭

November 26, 2009
*.120.170.243

어이쿠 광야 님,

내가 급하게 답글을 쓰다보니 너무 거칠었던 것 같습니다.

요술램프, 돈키호테는 광야 님을 염두에 둔 표현이 아니었습니다.

서로 다른 해석을 열어 놓아야 한다는 광야 님의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다만 해석의 보편성을 가능한대로 심화확대해 나가는 것은 중요하겠지요.

그 보편적 지평이 축소되면 기독교 변증의 자리도 역시 축소될 테니까요.

광야 님의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대림절의 기쁨이 넘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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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4]닥터케이

November 26, 2009
*.33.178.234

광야님도 저와 비슷한 고민을 하시는군요....

부족하나마 제가 현재까지 고민하면서 나름대로 얻은 답변을 설명 드리자면, "구약의 사건보도중에서 어디까지가 진짜 역사냐 아니냐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는 것입니다. 저도 처음에는 이게 왜 안 중요할까 고민했었는데, 사유가 좀 더 쌓이면서 자연스럽게 이해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뭐, 100%  다 이해했다는건 아닙니다).

 

어차피 중요한 것은 역사적 사실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내가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알고 믿느냐 하는 것입니다. 구약에 의하면 거대한 기적을 눈으로 직접 본 사람들이 불과 며칠 안되어서 불평불만을 일삼다가 멸망을 자초했다고 합니다. 따라서 수천년이 지난 지금을 사는 사람들이 구약의 사건들을 100% 역사적 사건이라고 믿어야 한다고 우겨봐야 그것이 그 사람의 신앙을 발전시키는데에 눈꼽만큼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구약의 사건들을 100% 역사적 사실로 이해한다고 해서 그 사람의 신앙에 문제가 있는건 아니라고 봅니다. 그것은 그 나름대로의 신앙의 틀을 형성해주는 것이니까요. 다만, 문자에 너무 집착하여 세부적인 내용들에 너무 고착되어 버려서 신앙의 핵심을 놓쳐버리는 일만은 없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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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1]자유의꿈

November 26, 2009
*.15.13.154

구름기둥, 불기둥이 화산폭발에 따른 현상이었을 것이라는 것은

성서고고학에서 일반적으로 잘 알려진 추론이라고 합니다.

 

이 화산폭발이 실제 어느 화산폭발이었는가를 밝히려 하는 것은

창조과학처럼 과학과는 좀 동떨어진 것이겠지만 아래의 글과 책을 참고하세요.

 

* 테라섬의 화산폭발과 출애굽의 열 재앙

http://veryhsw.com.ne.kr/sungi/bible18.html

 

* 김성교수의 성서고고학 이야기

http://www.yes24.com/24/goods/251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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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2]라크리매

November 26, 2009
*.41.16.153

성서공회에서 김성교수의 강의를 들은적이 있는데

책도 쓰셨군요...

성서공회  이번강의 주제가 성서고고학이였는데

아마도 이책을 읽으면 강의내용을 짐작하겠네요

좋은 정보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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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29]유니스

November 26, 2009
*.244.76.39

목사님의 이번 설교에서 '경험자'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경험자는 세 부류로 나뉘어지는데

하나는 경험을 하지만 경험을 하고 있다는 자체를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다음은 어떤 경험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느끼는 것입니다.

끝으로는 그 경험의 근원을 바라보는 경험자입니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어떤 현상적 경험에서 이스라엘인들 혹은 성서 기자가

그들이 경험하고 있는 사실의 근원을 바라보고 통찰하며,

창조주와 창조된 세계, 창조물로서의 인간이  서로 연관됨을 영적 경험으로 고백하는

그 사실에 집중하고 싶습니다.

무심히 지나는 일상에서 동일한 묵상이 있기를 바랍니다.

성령께서 이끌어 주시기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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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98]정용섭

November 26, 2009
*.120.170.243

유니스 님이 분석을 똑 부러지게 잘 하셨군요.

세 부류의 경험자!

과학의 세계도 그렇지요?

예술도 그렇겠군요.

오늘 종강 시간에 학생들과 함께 읽은 판넨베르크의 글 중에

기억에 남는 게 있어서 좋은 대글에 대한 상품으로 드립니다.

"미완료인 채로 좌절되는 역사의 과정 한 가운데,

그리고 지상적인 실패와 무상함 한 가운데 자리하고 있는

참된 것과 궁극적인 것의 현재(Gegenwart)를

우리는 영(靈, Geist)이라고 부른다."

이런 설명을 따른다면

우리가 성령에 충만하다는 게 무슨 뜻인지

좀더 명확하게 다가오겠지요?

그 영은 곧 하나님의 영으로

생명의 근원이랍니다.

생명의 영이여, 오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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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23]모래알

November 27, 2009
*.68.157.228

정 목사님!

이 설교 말씀을 2 년 전에 들었다면 아마 제 반응이 지금과는 상당히 다를 것만은 분명합니다.

어떻게?  그건 말씀 드리지 않겠습니다. ㅎㅎ

그 날이 올 때까지 앞으로도 달라질 가능성은 항상 남아 있으니까요.

 

"기독교가 뭐꼬"에서 개인적 윤리와 사회적 윤리에 대해서 읽다가

미국의 노예제도에 대한 설명이 참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오늘 미국은 추수감사절 명절입니다. 

추수감사절을 나라의 공휴일로 정한 대통령이 아브라함 링컨이라는 글을

어제 읽었습니다.  노예해방령을 내린 1863 년이었다는군요.

오바마 대통령 부인의 몇 대 선조가 노예였다고 하지만

기록되어지지 않는 역사에 대해서도 사람들은 왈가왈부 하곤 합니다.

노예들의 주인이었던 백인 농장주의 피가 섞였다는..

 

구름기둥  불기둥이 무엇이었던 분명 하나님 쓰시는 역사가 있겠지요?

미래에 대한 기대감..  참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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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98]정용섭

November 27, 2009
*.120.170.243

모래알 님,

추사감사절 휴가를 즐기고 계신가요?

칠면조 고기를 한번 먹어 봤으면.... ㅎㅎ

2년 전과 지금의 모래알 님이 기독교 신앙에 대한 시각이 좀 달라졌나보군요.

모쪼록 좋은 쪽으로 달라진 거이길 바랍니다.

대림절의 설레임이 가득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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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3]달팽이

November 28, 2009
*.83.94.22

아, 제가 마지막 댓글을 다는 영광을....

하나님의 창조세계와  통치에 우리의 마음을 집중하기만 한다면

주변에 하나님이 살아 계시고 구원하신다는 증거가 널려 있다는 말씀이 깊이 와 닿네요.

참으로 이 세계는 신비롭고 아득하다는 생각이 드네요.ㅎㅎ

 

참, 목사님

칠면조 고기는 대접 못해도..

그 유명한 지리산 곶감은 마음껏 드시게 해 드릴테니...

아니면 백숙에 동동주도 괜찮을 것 같은데.ㅎㅎ

적절한 시간 되시면 연락 주시길 바랍니다.

 

저와 아내는 언제든지 시간을 낼 수 있답니다.^^

예수님의 성탄과 다시오심을 기다리는 대림절 주일이 다가오네요.

우리의 신앙은 희망의 기다림을 깊이 생각하며

행복한 주말의 밤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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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98]정용섭

November 28, 2009
*.120.170.243

정원주 형제,

잘 기억하겠소.

지리산 곶감, 백숙, 동동주라....

자, 2010년 대림절과 함께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해 봅시다.

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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