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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누구인가?

성령강림절 조회 수 19379 추천 수 0 2010.09.26 23:3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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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디모데전서 6:11-19 

하나님은 누구인가?

(딤전 6:11-19)

 

    돈의 지배와 하나님의 지배

     두 주일 전의 설교에서 디모데서는 목회서신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목회서신은 목회활동에서 관심을 기울여야 할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중의 하나가 돈에 대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사는 그리스도인들도 돈의 지배를 받기 때문에 돈 문제를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공교롭게도 지난주일 설교의 성경본문인 누가복음 16장도 돈을 배경으로 합니다. 하나님과 재물을 겸해서 섬길 수 없다고 했습니다.(눅 16:13) 오늘 설교의 성경본문인 딤전 6:11-19절도 돈이 그 배경입니다. 먼저 딤전 6:17-19절을 보십시오. 부자들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지에 대한 설명입니다.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않도록 가르쳐야합니다. 나눠주기를 좋아하고 너그러운 자가 되게 하라고 했습니다. 본문 앞 구절인 딤전 6:3-10절도 부한 자에게 대한 가르침입니다. 9절에서 부자가 되려는 사람들은 시험과 올무와 욕심에 떨어진다고 했고, 10절에서는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이며, 돈을 탐하는 사람들은 믿음에서 떠나게 된다고 했습니다. 굉장히 직설적인 표현입니다.

     이런 말씀이 여러분에게는 어떻게 들립니까? 여러 가지 대답이 가능합니다. 맞는 말이기는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저런 가르침대로 살 수 없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돈이 완전히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생각을 한다고 해서 이상한 게 아닙니다. 또 어떤 분들은 부자가 될 필요는 없지만 세상에서 고생하지 않으려면 어느 정도는 돈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겠지요. 일리가 있는 말입니다. 다음과 같이 생각하는 분들도 많을 겁니다. 무슨 말이냐, 하나님을 잘 믿으면 부자가 되는 거 아니냐 하고 말입니다. 아주 노골적으로 기도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우리 교회에 월 1천만 원 십일조 헌금을 드릴 수 있는 사람들이 10명만 나오게 해 주십시오.” 많은 돈으로 하나님의 일을 크게 하고 싶다는 마음을 담은 거라면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있지만 돈과 재물에 노예처럼 매달린 생각이라면 아예 무시하는 게 좋습니다.

     돈이 지배하는 사회구조와 교회질서를 개인들이 넘어서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것은 인격과도 상관이 없습니다. 어쩌면 신앙과도 상관이 없을지 모릅니다. 인격과 신앙이 좋아도 돈의 지배를 피하기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11절에서 젊은 디모데에게 이런 것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르”라고 하면서 12절에서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고 했습니다. 무슨 말인가요? 돈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영적으로 파멸에 빠지지 않으려면 믿음으로 투쟁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돈의 지배를 받지 않는 일이 간단하다면, 마음먹는 것으로 해결된다면, 기도로 해결된다면 그렇게 ‘싸우라’고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돈을 우습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지금 우리가 경험하는 세상에서는 돈이 못하는 일이 없습니다. 돈이 신처럼 숭배 받고 있습니다. 돈을 대항해서 싸우면 십중팔구는 집니다. 아니 백전백패라고 해야 할 겁니다. 우리의 싸움은 근본적으로 다른 차원입니다. 다른 세계에 들어가야 합니다. 마치 어린아이들이 작은 것으로 싸우는 차원에서 삶의 참된 의미를 생각하는 어른의 세계로 나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미 그런 세계로 나온 사람들입니다만 영적인 긴장감을 놓치는 순간에 다시 어린아이의 세계로 미끄러져 들어갑니다. 신앙의 근본에 두 발을 굳게 딛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의 통치에 사로잡혀야 합니다. 마치 전기에 감전되듯이 말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딤전 6:10절이 말하듯이 돈을 사랑할 수밖에 없습니다. 자동적으로 그렇게 됩니다.

    물론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돈을 사랑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문제는 말은 그렇게 하지만 우리가 하나님의 지배를 별로 받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지배를 받는다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릅니다. 형식적으로 교회에 다니는 것으로는 실제 삶에서 하나님의 지배를 받는 것이 보장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지배를 받지 않는다는 것은 곧 돈의 지배를 받는다는 의미입니다. 이런 문제들이 사람에 따라서 조금씩 차이가 납니다. 어떤 분은 평소의 삶에서 하나님을 전혀 의식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이해타산과 자신의 감정을 만족시키는 것에만 몰두합니다. 어떤 분은 경건 훈련을 통해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지속되기도 합니다. 후자의 삶이 더 바람직하겠지요. 그렇지만 경건의 훈련이 세속적일 경우도 많습니다. 경건훈련을 통해서 자기를 성취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종교적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 하나님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경건훈련도 필요하기는 하지만 경건의 내용이 무엇이냐 하는 게 더 중요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도 필요하지만 하나님이 누구냐를 아는 게 더 중요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본문 15,16절에서 하나님이 누구인지를 설명합니다. 하나님의 속성입니다. 여덟 가지 속성으로 설명하겠습니다. 바울이 이것을 말하는 이유는 하나님을 아는 데서만 돈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선한 싸움을 싸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속성 여덟 가지

     1) 때가 이르면 하나님이 나타나십니다. 이 말은 하나님이 아직은 나타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이 말이 이상하지요? 이상할 것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의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나타나십니다. 그 이전에는 부분적으로만 나타나십니다. 지금 우리가 세상을 부분적으로만 알듯이 말입니다. 바울은 고전 13:9, 10절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지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지금 우리가 경험하는 이 세상은 완성된 것이 아닙니다. 우리 자신도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곧 죽게 될 것이고, 땅에 묻혀 썩고 원소로 변할 것입니다. 아직은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 결정되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실체가 드러나는 순간이 바로 종말입니다. 그 마지막 때 우리도 하나님 안에서 완성될 겁니다.

     2) 하나님은 복되십니다. 이 말은 하나님으로부터만 복이 가능하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복은 복이 아닐 수 있습니다. 그걸 생각해 본적이 있으신가요? 우리가 복이라고 생각하고 매달린 것들은 경우에 따라서 우리에게 화가 되고, 기껏해야 순간적인 자극만 줄 뿐입니다. 하나님의 복은 이런 것과 차원이 다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은밀한 방식으로 우리에게 복을 선물로 주십니다. 이런 말들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공허하거나 막연하게 들릴지 모르겠습니다. 지금 당장 눈에 보이는 복을 받는 게 좋지 확인할 수 없는 복을 기다리는 것은 별로라고 말입니다. 그런 생각은 하나님이 복되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 복의 신비를 모른다는 증거입니다.

    3) 하나님은 유일한 주권자이십니다. 이 말은 하나님만이 참된 능력자라는 의미입니다. 성서가 기록될 때 사람들은 로마 황제를 주권자로 생각했지만 그것은 큰 착각입니다. 황제는 임시로 빌린 힘을 행사할 뿐입니다. 자신의 힘을 절대적인 것으로 생각하면 그 순간에 그의 영혼은 죽습니다. 황제처럼 행세하는 이 세상의 힘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만 참된 능력이 있습니다.

     4) 하나님은 만왕의 왕이시고 만주의 주이십니다. 이 말은 더 긴 설명이 필요 없습니다. 성서시대에 만인지상이었던 왕들 중의 유일한 왕이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의 왕들보다 상대적으로 더 높은 지위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 위에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가리킵니다.

     5)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께만 영원한 생명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바꿔 말하면 영원하신 존재가 곧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모두 유한합니다. 사람만이 아니라 모든 생명체는 죽습니다. 생명체만이 아니라 돌과 흙과 물도 역시 유한합니다. 지구의 나이는 대략 45억 살입니다. 앞으로 이런 정도의 세월이 지나면 지구는 태양과 함께 사라집니다. 하늘의 수많은 별들도 생겼다가 사라지곤 합니다. 모든 것은 죽습니다. 죽지 않는 것은 그 어떤 것도 없습니다. 하나님만 죽지 않습니다. 그분만 영원하십니다. 하나님이 영원하다고 말은 할 수 있어도 그것이 무엇인지 완전하게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죽음이 없는 영원은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이런 세상과는 질적으로 전혀 다르기 때문입니다. 물속에 사는 고기들이 뭍의 세계를 완벽하게 알 수 없는 것과 비슷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경험하는 죽음 너머에서 존재하시면서 이 세상을 통치하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만이 우리를 죽음의 운명에서 건져내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6) 하나님은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십니다. 빛은 절대적인 세계를 가리키는 메타포입니다. 고대인들은 빛을 내는 태양을 절대적인 존재로 생각했습니다. 이것은 물리학적인 차원에서도 옳은 이야기입니다. 태양 빛은 모든 생명의 근원이면서 동시에 아무도 태양에 가까이 갈 수 없습니다. 우리로 세상에 존재할 수 있게 하는 근원이지만 우리가 가까이 가도록 허락되지 않는 분이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호흡처럼 우리와 가까운 분이지만 동시에 도저히 근접할 수 없는 태양과도 같은 분입니다. 그분은 우리와 하나가 되어주시면서 동시에 완전히 다른 분이라는 뜻입니다. 이런 존재가 가능할까요? 하나님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그는 빛이십니다.

     7) 어떤 사람도 하나님을 보지 못했고, 볼 수도 없는 분입니다. 하나님의 일곱 번째 속성은 하나님이 불가시적 존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보았다고 말하는 사람은 착각을 한 것이든지 속이는 것입니다. 아무도 하나님을 볼 수 없습니다. 반면에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볼 수 있습니다. 공기가 보이지 않지만 현미경으로 보면 보입니다. 전기와 소리가 보이지 않지만 기계장치로 확인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하나님만은 확인이 불가능합니다.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라 우리의 감각능력을 초월해 존재한다는 뜻입니다. 죽는 존재는 죽지 않는 존재를 볼 수 없습니다. 여기 코끼리 한 마리가 있습니다. 세균 한 마리가 코끼리 등에서 붙어 있습니다. 세균에게 코끼리가 보일까요? 코끼리는 세균에게 불가시적인 존재입니다. 하나님이 보이게 존재한다면 얼마나 시시할지 모릅니다. 그런 분은 하나님이 될 수 없습니다. 앞으로 나타나실 그분을 기대하십시오.

     8) 그에게만 존귀와 권능을 돌려야 합니다. 이 말은 하나님의 속성이기도 하고, 또한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인이 취해야 할 태도이기도 합니다. 하나님만이 존귀와 권능을 받아야 할 분입니다. 다른 것들이 존귀와 권능을 받으려고 할 때 불행한 일이 벌어집니다. 존귀와 권능은 일종의 칼과 같습니다. 그 칼을 철부지 아이들이 사용하면 사고가 일어납니다. 한 국가의 대통령에게도 많은 권한이 주어집니다. 국가의 엄청난 세금을 집행할 수도 있고, 국가 기관의 책임자를 선정할 수도 있습니다. 자격이 안 되는 사람이 대통령의 권한을 쥐게 될 경우에 불행한 일을 피할 수 없습니다. 존귀와 권능은 오직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우리는 그분에게만 존귀와 권능을 돌려야 합니다.

     저는 위에서 디모데전서가 전하는 하나님의 여덟 가지 속성을 설명했습니다. 하나님이 누군지 좀더 가까이 느낀 분들이 있을 겁니다. 다행입니다. 앞으로 신앙의 연륜이 깊어지면서 하나님의 통치를 더 가깝게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거꾸로 더 복잡해져서 뭐가 뭔지 모르겠다고 생각하거나 하나님이 너무 멀게 느껴진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왜 그럴까요? 한 가지만 말씀드립니다. 하나님에 대한 고정관념이 너무 강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동시에 세상의 삶에 대한 고정관념이 너무 강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아마 후자가 더 큰 이유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세상이 요구하는 조건을 채워야만 행복하다는 고정관점 말입니다. 그것은 설교 앞부분에서 말한 돈에 의한 지배입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그런 고정관념이 점점 강해지고 있습니다. 물먹는 하마처럼 우리 모두의 영혼을 잡아먹고 있습니다. 이런 상태에서는 하나님은 관심의 대상이 아닙니다. 하나님에 대한 설명이 멀리 느껴질 수밖에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바울이 젊은 목회자 디모데에게 공연히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고 한 것이 아닙니다. 그런 긴장감이 없으면 우리의 영혼은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믿음의 선한 싸움은 돈의 지배로부터 하나님의 지배로 돌아서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우선 하나님에 대한 관심을 높이십시오. 세속 사회에서 쉽지 않겠지만, 하나님 자체를 아는데 여러분의 삶을 투자하십시오. 시인이 시에 영혼을 기울이듯이 하나님께 온전히 영혼을 기울이십시오. 하나님을 찾으십시오. 그럴 때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응답하실 것이며, 거기서 여러분의 영혼은 생기를 얻을 것입니다. (성령강림절 후 열여덟째 주일, 9월26일) 0926.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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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9]The One

September 29, 2010
*.39.160.254

"우리가 복이라고 생각하고 매달린 것들은 경우에 따라서 우리에게 화가 되고 기껏해야

순간적인 자극만 줄뿐입니다. 하나님의 복은 이런 것과 차원이 다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은밀한 방식으로 우리에게 복을 주십니다."

이런 말들이 저에겐 전혀 공허하거나, 막연하게 들리지 않습니다

돈의 요상한 속성을 가족관계에서, 인간관계에서 그것도 일찍....적나라하게 체험했습니다.

이곳 중국에서 양극화 현상이 있지만 과거 공산주의 장점중 하나는  돈의 가치를 몰라서 인지,

돈으로부터 자유함을 봅니다. 적게 벌어 만족하게  사는 가난한 중국 사람들, 나누는 모습도

많이 봅니다.  우리가 보기엔 어두워보이는 모습도 우리의 편견이고 제 생각엔 긴장이 없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나님만 복 되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 복의 신비를 더듬어 나가면서

모든 것들로 부터 자유함을 하나님께 구할 뿐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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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September 29, 2010
*.120.170.243

안녕하세요?

노영숙 여사님.

우리 나이가 되면 신학을 전공했든지 않았든지 상관없이 

세상살이를 보는 눈은 비슷해지는가 봅니다.

남한사회와 교회에 팽배한 물신주의를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기독교 영성의 실질적인 내용을 결정하게 될 겁니다.

믿음의 동지에게 주님의 은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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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6]방랑자

September 29, 2010
*.109.153.9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과 감각을 초월한 존재이심을 다시한번 새겨봅니다

하나님을 궁금해할때마다 늘상 어떤 시각적이고 공간적인 형태안에서

상상 가능한 인식의 범주안에서 생각하고 찾으려하니 자꾸만 포기하고 말았는데

이젠 그런 고정관념에서 벗어나고 싶구요 조급해하지 않고 절대적 존재에 대한

경외감으로 조용히 기다리는 훈련을 해야할듯 합니다

 

추석때 모친을 모시고 상경한 관계로 지난주엔 어머님과 함께 집 근처 제법 큰 교회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교회 규모답게 담임목사님께선 아마도 어느 교단 총회장이 되신 것

같았어요 대표기도중에 언급이 되었고 설교중에도 직접 말씀을 하시더라구요

근데 그와 관련한 설교말씀중에 총회장도 하나님이 세운 권위가 있으니 함부로 대하면

안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하시면서 자신이 부총회장 시절에 총회장이 친구여서

경솔히 대했더니 몸살감기에 걸렸고 그 때문인가 싶어 하나님께 회개했더니 낳았다는

예화를 들더군요 물론 온 성도들로부터 아멘 합창이 나온건 당연하구요

그전 같으면 그런 순수한 믿음이 부러웠을텐데 말씀을 들으며 조금 씁쓸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도대체 교계를 대표하신다는 분이 하나님을 고작 그런 존재로 축소시킬수 있는 건지요

설교의 극히 일부분이긴 하지만 그런 말씀을 듣고 감동을 받는 그 많은 성도들이 안타까웠고

역시나 이것이 한국교회의 현주소임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성도들이 돈의 지배를 받는 다면 아마도 큰 교회 목사님들은 명예욕의 지배를 받는거 같아요

한국에서 왠만큼 큰 교회 목사님들은 무슨무슨 회장 직함 몇개씩은 다 가지고 있으니까요

교회갔다 오는 길에 모친 권사님도 은혜를 받으셨는지 왠만하면 등록해서 다니라고 권면하시는데

아마도 저희 집에 계실때까진 당분간 그 교회에 함께 가야할것 같습니다 ㅠ.ㅠ

못 뵈는 동안에도 늘 건강하시고 평안하시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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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September 29, 2010
*.120.170.243

방랑자님,

설교 중에 들었다는 몸살감기 이야기는

아마 성도들이 설교 들으면서 졸지 말라고 던진 

우스개 소리가 아닐까요?

어머님 신경 쓰지 않으시도록

함께 계시는 동안 지혜롭게 잘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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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29]유니스

October 01, 2010
*.104.195.87

하나님은 복되며, 그분으로부터만 복이 가능하며,

우리가 생각하는 복과는 다를 수 있다는 대목에서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이 새롭습니다.

감사함이 앞으로의 좋은 씨를 뿌리는 의미에서

혹은 긍정적으로 바라보라는 뜻에서가 아니라

감사해야 할 범사의 근원적인 것이

복된 하나님으로부터 출발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고정된 생각의 감사의 조건이 아니려면

우리의 생각과 다를 수 있는 복에 대하여

깊이 바라볼 수 있어야겠다 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무척 어렵겠지만 직접적으로 인식 너머에 활동하시는

하나님의 복, 그리고 감사...

눈이 열리기를 기도합니다.

목사님, 감사드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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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October 01, 2010
*.120.170.243

가톨릭교회 미사에는

"하나님은 복되시도다" 하는 문장이 자주 나와요.

그 차원을 우리가 인식하고 살기만 한다면

우리 삶 자체가 전혀 새로워질 거에요.

그 말을 범사에 감사하는 말씀과 연결시키다니, 음,

유니스 님은 이제 옆에서 도와주지 않아도

스스로 기독교 영성의 길을 가게 되었군요.

복된 하나님에게우리 모두의 운명을 맡겨봅시다.

주님은 복되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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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3]눈사람

October 01, 2010
*.179.74.39

세상적인 것에 관심을 가지면 가질수록

마음에 상처를 더 크게 입고

하나님께서 그토록 주고자 하시는 기쁨과 평안이 사라짐을

추석때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목사님의 설교를 들으며

하나님께 나름 집중하며 산다고 생각해 온 저의 어리석음을 깨달았습니다.

 

전 장녀의 남편입니다.

처가 형제 중 가장 어른이기에

나름대로 처남들보다 더 부모님들을 물심양면으로 섬겼습니다.

아들 노릇을 하겠다는 것이었지요.

당연히 저를 아들처럼 생각하고 대하신다고 여겨왔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저의 생각은 여지없이 깨져버렸습니다.

전, 그저 남의 집에서 들어 온 사위일 뿐이었지요.

정말 속이 상했었습니다.

이제 정말 사위로서만 살겠다고 아내에게 선언까지 했었습니다.

상한 속은 그리 쉽게 좋아지지 않더라구요.

제가 처가집에 드나든지 올해로 25년째이니까 말입니다.

결혼한 지 20년 8개월째이니까요.

말로 표현 못할정도로.. 전라도 말로 허벌나게 서운했었거든요.

 

그런데 이것이

결국 세상적인 것에 더 마음을 둔 때문이었다는 것을 다시금 알았습니다.

사위면 어떻고 아들이면 어떻다고..

어떻게 대하든 그것이 뭐 얼마나 중요하다고..

 

하나님께 집중하면

세상의 모든 것이 사소한 것이 될 수 있음을 오늘 체험하고 갑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알려주시는 목사님께 감사합니다.

믿음의 선한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성령님의 도우심을 간구합니다.

profile

[레벨:100]정용섭

October 04, 2010
*.120.170.243

눈사람 님,

잘 지내시죠?

아, 처가집에서 섭한 일이 있었군요.

지금 쯤 다 지나간 일이 되었겠지요.

저는 사람에게, 그 대상이 누구이든지,

큰 기대도, 큰 실망도 하지 않고 살고 있는데요,

그게 좋은 점이기도 하고 나쁜 점이기도 합니다.

나에게 그런 방식이 편하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젖어버린 것 같애요.

좋은 점은 사람에게서 큰 실망을 겪지 않는다는 것이며,

나쁜 점은 열정이 없이 살게 된다는 거지요. ㅎㅎ

어쨌든지 우리가 사람에게 큰 기대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과

하나님과의 관계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고,

모든 영성가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삶의 태도입니다.

공연히 설교 조의 말이 되었군요.

좋은 한 주간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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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9 기타 카리스마 공동체, 8월21일 [1] 2005-08-21 10429
128 기타 희망의 눈, 2005. 8.15. [1] [1] 2005-08-14 10711
127 기타 요셉의 침묵, 8월7일 [1] 2005-08-07 10703
126 기타 바울의 역사인식, 7월31일 [3] 2005-07-31 9291
125 기타 하늘나라와 일상, 7월24일 [2] 2005-07-24 11693
124 기타 야곱의 두려움, 7월17일 [4] 2005-07-17 10633
123 기타 총체적 구원의 길, 7월10일 [2] 2005-07-10 10554
122 기타 삶과 행위, 7월3일 2005-07-04 10913
121 기타 평화의 은총, 6월26일 [1] 2005-06-26 11307
120 기타 죄로부터의 해방, 6월19일 [2] 2005-06-20 11442
119 기타 일꾼을 위한 기도, 6월12일 [3] [2] 2005-06-13 12179
118 기타 약속과 순종의 상호성, 6월5일 [1] [2] 2005-06-05 10976
117 기타 '법'을 넘어서, 5월29일 [2] 2005-05-29 9877
116 기타 삼위일체의 신앙, 5월22일 [2] [2] 2005-05-22 10406
115 기타 영에 속한 사람, 5월15일 [3] 2005-05-17 10953
114 기타 가족공동체를 넘어서, 5월8일 [2] 2005-05-08 10434
113 기타 생존과 번성의 토대, 5월1일 [4] 2005-05-01 10586
112 기타 예수는 어떻게 하나님이신가? 4월24일 2005-04-24 10720
111 기타 신앙의 현실과 삶의 현실, 4월17일 [2] [2] 2005-04-18 10177
110 부활절 희망은 기다림이다 (벧전 1:13-21) 2005-04-10 12793
109 기타 부활의 증인 공동체, 4월3일 [1] 2005-04-04 10192
108 기타 부활을 증거하는 여인 [1] 2005-03-27 9131
107 기타 갈릴래아 나자렛 사람, 3월20일 [1] 2005-03-20 9163
106 기타 하나님의 영광의 신비, 3월13일 [1] 2005-03-13 10310
105 기타 야훼가 말씀하시는 통로, 3월6일 [1] 2005-03-07 9553
104 기타 나는 야훼다, 2월27일 [1] 2005-02-27 9277
103 기타 영은 바람이다, 2월20일 [2] 2005-02-20 9262
102 기타 자유의 길, 분열의 길, 2월13일 2005-02-13 8760
101 기타 환상와 현실, 2월6일 [1] [2] 2005-02-07 9383
100 기타 일상의 영성 안에서, 1월30일 [1] 2005-01-30 11246
99 기타 말의 한계, 1월23일 [2] [2] 2005-01-23 9799
98 기타 세례 요한의 증언, 1월16일 [1] [1] 2005-01-17 13191
97 기타 야훼 하나님의 종, 1월9일 [1] [1] 2005-01-10 9662
96 기타 찬양의 이유, 1월2일 [1] [1] 2005-01-02 12852
95 기타 절대 긍정, 12월26일 [1] [1] 2004-12-26 9800
94 기타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12월19일 [2] [1] 2004-12-20 10725
93 기타 기쁨에서 평화까지, 12월12일 [1] 2004-12-13 9158
92 기타 예수의 길, 요한의 길, 12월5일 [1] 2004-12-05 11324
91 기타 새로운 세상, 11월28일 [1] [1] 2004-11-29 9616
90 기타 앎의 영적인 차원, 11월21일 [1] [2] 2004-11-21 9313
89 기타 만나 이후, 11월14일 [1] 2004-11-14 9560
88 기타 자유로워지는 길, 11월7일 [1] 2004-11-07 9498
87 기타 공간, 울림, 하나님, 10월31일 [1] 2004-10-31 9566
86 기타 기다림의 이중성, 10월24일 [1] 2004-10-24 9870
85 기타 제자도의 본질, 10월17일 [1] 2004-10-17 10367
84 기타 밥, 10월10일 [2] [1] 2004-10-10 9555
83 기타 예레미야의 역사의식, (10월3일) [2] [1] 2004-10-04 9554
82 기타 초대교회의 송영, (9월26일) [3] [1] 2004-09-26 9496
81 기타 제자의 길, 9월19일 [1] [1] 2004-09-20 10126
80 기타 왜 헛것을 보는가? 9월12일 [2] [2] 2004-09-13 9401
79 기타 시나이 산에서 시온 산으로! 9월5일 [3] [2] 2004-09-06 9629
78 기타 평화를 위한 분열, 8월29일 [5] 2004-08-30 8694
77 기타 생존의 길로서의 순종 2004-08-22 9581
76 기타 모세의 소명, 2004.8.15. 2004-08-16 9889
75 기타 기도란 무엇인가? (8월8일) [2] 2004-08-08 13020
74 기타 말씀 망각의 심판, (8월1일) 2004-08-05 8822
73 기타 믿음과 사랑의 뿌리, 7월25일 2004-07-25 9553
72 기타 다가온 하나님의 나라 2004-07-18 9845
71 기타 엘리야의 하나님 야훼여! [1] 2004-07-11 9816
70 기타 하나님에게 이르는 길 [1] 2004-07-05 9541
69 기타 사랑이란 무엇인가? [1] 2004-07-02 15673
68 기타 메시아적 행위와 교회 [1] 2004-07-02 9586
67 기타 돌무더기에 얽힌 사연 [1] 2004-07-02 9864
66 기타 수행으로서의 신앙생활 [1] [1] 2004-07-02 8833
65 기타 무엇이 진실한 예배인가? [1] 2004-07-02 9945
64 기타 노동하는 인간(2) [2] 2004-07-02 9220
63 기타 영광의 경험 [3] 2004-07-02 9571
62 기타 열린 삶, 닫힌 삶 2004-07-02 10241
61 기타 노동하는 인간(1) 2004-07-02 9738
60 기타 묵시와 현실 사이에서 2004-07-02 10245
59 기타 그리스도의 부활과 생명의 힘 2004-07-02 12277
58 기타 본질의 변질 2004-07-02 10703
57 기타 운명과 자유 2004-07-02 10650
56 기타 야훼의 자기 증거 2004-07-02 11598
55 기타 세계의 토대 2004-07-02 12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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