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 차원의 고난, 우리 따라가야 / 마 4:1-11, 히 2:16-18

예수님이 시험받으신 사건을 기록한 곳(마4:1-11, 막 1:12-13,눅4:1-13)에서는 그 사건의 의미를 말해주고 있지 않는데, 히브리서 기자는 그 사건을 다음과 같이 해석해 놓고 있습니다.
<그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느니라>(히 2:18)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이 공생에 시작 전에 마귀로부터 시험을 받은 적이 있는데, 그 때 겪었던 고난을 통해서 우리를 도와주실 수 있다는 말이지요. 즉, 그 시험이 예수님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는 논외로 하고, 우리들이 시험받으며 살아가는데, 도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시험을 경험해 보았으므로 예수님은 시험받는 사람들 충분히 이해하고 도울 수 있다, 그런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의 고난은 시험에 빠진 결과인가?

일단 예수님이 시험받으신 사건은 그런 의미가 있습니다. 그런 의미를 전제로 하고 18절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십시다.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다’는 말 어떻습니까? ‘시험’과 ‘고난’이라는 말이 등장하는데, 이 두 낱말의 관계는 어떤 것일까요?

(잠깐! ‘고난’이란 말, 너무 포괄적이고 막연하니까 대신에 ‘고통’, ‘고생’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면, 그 의미가 조금은 피부에 와 닿을 것입니다. 이하, 그 말들을 같이 쓰도록 하겠습니다.)

개역성경은 그저 무심히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다’고 번역을 해 놓았습니다. 그래서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다’는 말이 마치 ‘시험을 받고 시험에 빠지게 되어서 고통을 당하게 되었다’는 말처럼 들리는데, 과연 그런 의미인지 예를 들어 생각해봅시다.
‘어떤 사람이 사기를 당해서 가진 돈을 모두 잃고 그 후 고생을 했다.’

이런 경우, 사기꾼이 달콤한 말로, ‘이렇게 하면 몇십 억을 순식간에 벌 수 있다’고 유혹을 하는 시점에 시험을 당하는 것이고, 덥석 그 유혹을 받아들여 돈을 건네는 것은 시험에 빠지는 것이고, 그후 그것이 사기임을 알게 되었지만 이미 때는 늦어 돈을 잃은 후에 모진 고생을 하는 것은 고난을 당하는 단계에 해당합니다. 그렇게 ‘시험당함’ – ‘시험에 빠짐’ – ‘고난을 당함’의 순서로 진행이 되는 것이지요.

본문 18절도 그런 순서로 진행이 된 것일까요? 예수님이 시험을 당해 시험에 빠졌고, 그 결과 고난을 당하신 것일까요?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마26:41) 말씀하신 예수님께서 또한 제자들에게 “시험에 들게하지 마옵시고” (마6:13),라고 기도를 가르쳐주신 분이 정작 당신은 시험에 빠져 고난을 당하신 것일까요?

예수님 - 시험을 이겨내시느라 겪으신 고난

예수님이 시험받으신 사건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는 마태복음 4장에서 그 정황을 살펴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마귀의 시험에 지혜롭게 대처하셔서, 마귀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마귀로부터 시험을 받았지만 시험에 빠진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위의 예에서 살펴본 것처럼, 두번째 단계인 시험에 빠지는 단계가 예수님의 경우에는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다만 시험에 대처 – 대항- 하시느라 고난을 당하신 것입니다.

‘시험’과 ‘고난’이라는 두 말의 관계를 알기 위해 다른 성경을 찾아보았는데, 영어 성경에서는 그 관계를 확실하게 해 놓았습니다. 
 
<Because he himself suffered when he was tempted, he is able to help those who are being tempted.> (NIV)
‘그분은 시험 받을 때에 고통을 겪었기 때문에 시험받는 사람들을 도와주실 수 있다.’

시험 받을 때에, 그는 고통을 당했다. 그러니 시험 받으신 것이 바로 고난, 고통이라는 것이지요. 시험을 받고 그 시험에 빠져서 고난을 당한 것이 아니라, 시험 자체가 고난, 고생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시험을 이겨내기 위하여 고생을 겪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예수님이 광야에서 시험 당할 때에 아주 멋지게 하나님의 말씀을 인용해서,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하면서 시험을 바로 – 즉 아무런 고통없이 - 이겨내신 것이 아니라는 말이지요.

마귀가 예수님을 시험하면서 던진 말들이 성경의 말씀으로 포장된 것이기 때문에 그 말들을 듣고 분석하고 그것을 현실, 즉 자신에게 다가오는 시험에 적용하고, ‘그건 아니다’라고 평가를 내리는 것들이 어려운 과정을 거쳐 나온 것이길래, 그게 바로 고난인 것입니다. 마귀의 시험에 대하여 하나님 말씀을 떠올리고 묵상하고, 과연 이 말씀이 그러한가 저러한가 생각해 본 다음에, 본인의 생각을 그 말씀에 얹어서 ‘사탄의 꾀임에 넘어가지 않으리라’ 굳게 결심한 다음에, 대답으로 하나님 말씀을 제시하는 그러한 과정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 고난이었다는 말입니다.

더하여 육신의 허기를 달래기 위해 쉽게 돌을 떡덩이가 되게 하실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생각을 버려야 하는 고통, 모른 척 하고 높은 곳에서 뛰어내려 자기의 능력을 과시하고 싶은 마음을 다스려야 하는 고통, 그런 모든 것들이 쉽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현실세계를 살아가는데 인간의 몸을 가지고 겪어야 할 고통과 고난의 길이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시험을 받을 때에 그런 고난을 받았습니다. 즉 인간의 고통을 느꼈다는 것이지요. 그런 실제적인 상황에 근거한 시험, 그리고 고통, 그런 경험을 해 보신 분이시니까, 역시 같은 시험을 받는 사람들을 도울 수 있다는 것이지요.

우리들 - 시험에 빠져 겪는 고난

그런데 이번에는 상황을 바꿔, 마귀의 시험을 받는 대상이 예수님이 아니라, 우리라 생각해 봅시다.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시험을 받으시면서 예수님은 고통을 당하신 것, 우리가 그런 고통에 동감하는 것은 그 시험이 마귀로부터 왔다는 것을 알기에 그렇습니다. 지금 성경을 읽고 있는 우리에게, 성경기자는 친절하게도 그 시험이 마귀로부터 왔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전지적인 시점에서 성경을 읽어가는 우리로서는 마귀로부터 오는 시험이니 예수님이 뿌리쳐야 하는 것이 당연하며, 그 시험을 이겨냈을 때에 기립박수를 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들 살아가면서, 닥쳐오는 일들이, 그게 시험인지, 아닌지 어떻게 구분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 시험이 마귀로부터 오는지, 아닌지를 그리 쉽게 구별할 수 있겠는가 하는 점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그것이 (마귀로부터의) 시험이라고 인식하지 못할 때, 그러한 일이 우리 앞에 온다면 과연 그것을 고난이라고 생각하겠습니까? 아니면 영광이라고 생각하겠습니까? 천하 만물을 주리라는 유혹 앞에서는 오히려 반색을 하며 받아들일지도 모릅니다. 그런 기회가 주어진다면 아마 사람들은 백이면 백 하나님이 주신 기회라 애써 합리화시켜가며 갖은 힘을 다하여 이루어보려고 애를 쓸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들이 시험에 빠져 고생하는 것은 예수님이 받으신 고난과 차원이 다른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처럼 마귀의 시험을 당하여 그 시험을 이겨내기 위하여 겪는 고생이 아니라, 그 시험에 빠진 다음에 고난을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 차원의 고난, 우리가 따라가야

물론 예수님이 이 땅에 살면서 겪은 고생은 비단 마귀로부터 시험받은 경우에만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계시면서 당한 고난이 한두가지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로마군병에게 붙잡혀 심문을 받으면서 매도 맞기도 하였고 또 모욕도 당했습니다. 또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로 향하면서 그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가느라 몇번이고 쓰러지기도 하셨습니다. 십자가에 달릴 때에는 손과 발에는 못이 박히기도 하였고 십자가에 달려 있으면서 옆구리를 창으로 찔리기도 하셨습니다. 그렇게 육체적인 고통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육체적인 고통만이 예수님이 받으신 고난의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복음을 전할 때에 핍박을 받기도 하고 또 예수님을 책잡으려고 바리새인들은 함정을 파놓고 예수님에게 다가오기도 하였습니다. 그런 것을 생각하면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신 것 자체가 고난입니다.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서 자란 것도 고난이었고 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할 상황에서 하나님의 일을 하시기 위해 나선 것도 예수님에게는 고난이었습니다. 당연히 가족을 돌봐야 하는 처지에서 하나님의 일을 한다며 불쌍한 자, 창녀 세리등과 어울리며 돈벌이를 등한시하였으니 주변 사람들로부터 비난도 많이 받았을 것입니다. 식구들로부터는 물론이고 집안 친척들로부터, 그리고 그 집안을 잘 아는 동네사람들로부터도 그렇게 복음 전하고 다니면 밥이 나오냐 떡이 나오냐 하는 비난을 받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라 사는 우리들, 그래서 예수님이 받으신 그런 고난조차 기꺼이 본 받아야 하겠지만, 특히나 예수님이 시험받으면서, 그 시험을 이겨내기 위하여 겪은 고생을 우리는 기꺼이 따라 해야 할 것입니다. 시험에 빠진 후에 겪는 고난을 이겨내기 위하여 허겁지겁 애를 쓸 것이 아니라, 말씀을 더욱 깊이 묵상하고, 우라 앞에 다가오는 모든 일에 대해서 더욱더 분별력을 길러, 시험을 이겨내기 위하여 고생한다 싶을 정도로 애를 써야 할 것입니다.

차원이 다른 고난, 예수님이 마귀에게 시험받으실 때에 겪으셨던 그 고통, 그 차원의 고난을 따라 하여 예수님이 시험을 이기신 것을 본받아 살아간다면, 우리의 삶은 훨씬 부드러워질 것입니다. 바로 그것이 <그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느니라>(히 2:18) 하신 말씀의 숨은 의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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