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주(脚註) 없이 성경읽기

빈손 대신 헌금을 가지고 나오라? 출 23:14-17

어떤 어머니의 작은 바람

어떤 어머니 이야기입니다. 환우 한분이 하소연하기를 자기 아들이 아직도 제대로 자리를 잡지못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돈이 붙지를 않는다’는 말 끝에, ‘교회에 헌금을 인색하게 하니, 돈이 붙을 수가 있겠느냐’고 탄식하시는 것입니다. 제가 깜짝 놀라 무슨 말씀이냐고 물으니까, ‘생각해 보시라, 하나님에게 심어야 열매가 맺을 것인데, 헌금을 심어야지, 심은대로 나고 뿌린만큼 거둔다는데, 다만 얼마씩이라도 일천번제하는 정성이 있으면, 분명 하나님이 재물을 허락하실 것인데’하는 이야기에, 제가 놀라 기절할 뻔 했습니다. 

너무 성급한 결론인지 모르겠지만. 그분은 교회에 나가기는 하지만,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것이 아니라, 정성을 다해 치성드리면 복받는다는 식의 미신을 믿고 있는 것에 불과합니다. 물론 성경에 보면 그분의 생각을 뒷받침하는 것처럼 보이는, 그저 언뜻 보면 그렇게 보이는 많은 구절들이 있습니다.

일천번제도 그 중에 하나이고, 또 이런 구절도 있습니다.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 (마 6:20)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 는 말씀 역시 헌금용으로 사용됩니다. 이런 말씀에다가 흔히 ‘뿌린대로 거두리라’고 말해지는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갈6:7)는 말씀과 “삼십 배나 육십 배나 백 배의 결실”(막4: 20)을 거둔다는 말씀도 역시 오용되고 있으며, ‘두렙돈 헌금한 과부(눅 21:1-4)의 헌금이야기’까지 덧붙여지면,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켜서 걷잡을 수 없을만큼 일이 커져버립니다.

그래서 그런 구절을 합해보면, 결론은, 헌금을 하면 하나님이 그 헌금 액수에 따라 복을 주신다는 것이지요. 그렇게 생각들을 합니다.

어떻게 그런 구절들만 줄줄이 외어대는지, 그런데 그런 성경구절이 반드시 헌금을 하면 축복한다는 구절인가? 그렇지 않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물론 저도 그 어머니의 아들이 부자가 되고 돈이 좀 붙었으면 좋겠다는데 전혀 이의가 없습니다만, 과연 그럴까요? 그렇게 헌금을 잘하기만 하면 하나님이 물 붓듯 복을 쏟아 주어서, 그 아들이 부자가 될 수 있을까요?

빈손으로 나오지 말라 – 헌금하라는 말?

우리 병원예배는 믿지 않는 분들도 많이 참석하시고, 또 병원에 진료받으러 와서 갑자기 예배에 참석하시는 분들도 있기 때문에 별도의 헌금순서는 없습니다. 그것은 월요 예배뿐만 아니라 주일 예배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예배에 헌금순서가 없는 것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성경에 하나님 앞에 나올 때에는 빈손으로 나오지 말라 했는데 예배 시간에 헌금을 안 하면 됩니까? 그것은 잘 못된 것이지요’라고 저에게 가끔 설교아닌 설교를 하시는 분들도 계셔서 당혹스러운 경우가 있습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빈손으로 나오지 말라, 는 말을 예배 때마다 헌금을 하라는 것으로 이해를 하다니? 그 말씀이 그런 식으로 해석이 되는지, 어리둥절했습니다.

정말 ‘빈손으로 나오지 말라’는 본문 말씀이 그런 뜻일까요? 예배 때마다 헌금을 하라는 뜻일까요?

그 뜻이 과연 그러한지, 먼저 우리 한글 성경을 살펴보도록 하십시다.
거의 모든 성경 번역본이 비슷하게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빈 손으로 내 앞에 나오지 말지니라” (개역 개정)
“내 앞에 빈손으로 나오지 마라.” (공동번역)
“너희는 빈 손으로 내 앞에 나와서는 안 된다.” (표준 새번역)

일단 세가지 번역본이 모두다 ‘빈손으로 나오지 말라’ 라고 번역했습니다.
빈손의 의미는? 빈손이라고만 했지, 구체적으로 무엇이라고는 하지 않았지만 일반적인 해석은, 그러니 손에 무언가를 들고 오라는 것으로, 더 구체적으로는 헌금을 가지고 오라고 해석을 합니다.

그런데 <쉬운 성경>에서는 아주 극단적인 번역을 해 놓았습니다.
“누구든지 나에게 예배드리러 올 때는 예물을 가지고 오너라”(쉬운성경)

예물을 가져오너라, 여기에서 예물은 다른 말로 헌금이지요.

자, 이번에는 영어 성경을 찾아 보았습니다.
No one is to appear before me empty-handed (NIV)
none shall appear before me empty(KJV)
none shall appear before Me empty-handed.(NASB)

여기서 나오는 ‘빈손’은 그야말로 빈손입니다. 아무것도 들지 않은 손. 인생이란 무엇이냐 표현할 때 즐겨 사용되는 말, 인생은 나그네 길 어디에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구나, 할 때의 빈손이니, 누구나 이해하는 말입니다.
그래서 죽은 사람에게 입히는 수의에는 호주머니가 없다고 하던가요? 인생은 빈손으로 간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그러한 ‘빈손’을 말하니 하나님 앞에 나올 때에 빈손으로 오지 말라, 는 말은 분명 무언가 들고 오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많은 분들이 예배 드릴 때에 헌금을 하라고 해석을 하고 있으며, 헌금을 강조할 때 전가의 보도처럼 쓰이는 구절임이 확실합니다.

해석은 문장 전체를 통하여

그렇다면, 이 본문 말씀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절기를 지킬 때에 예물을 가지고 오라고 한 것이라고 일단 가정하고, 그렇다면 오늘 본문 말씀 중 어느 부분에 강조를 해야 하는가,를 살펴볼까요.

성경 해석과 관련하여 가장 흔히 범하기 쉬운 실수가 하나 있는데, 해석을 하면서 문장 전체를 보지 않고 그 중에 한절만 따로 떼어 보는 일입니다.

일천번제도 그 중의 하나입니다.

일천번제라는 말은 솔로몬 임금이 하나님에게 제사를 지낼 때에 한꺼번에 짐승 일천마리를 한꺼번에 번제로 드린 것에서 유래한 말입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우리 한글 번역에 ‘일천번제’라고 해 놓으니까, 번제 즉 태워 올리는 제사를 번, 한번 두번 할 때의 번(番)으로 오해를 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솔로몬이 일 천 번(番) 제사를 드렸구나, 해석을 하고, 천 번(番)을 헌금하면 솔로몬에게 주셨던 부귀영화를 주실 것이라는 미신 같은 믿음을 가지고 (속보이는) 헌금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일천번제에 대하여는, “일천번제, 그 신기루에서 벗어나라” 참조)

그렇게 한 구절, 한 단어만 따로 떼어 내어 해석하면 잘못 해석하는 경우가 많은데 오늘 말씀도 바로 그러한 경우입니다.
 
‘빈손으로 내 앞에 나오지 말지니라’는 말만 두고 보면, 마치 ‘예배드릴 때 헌금을 가지고 오너라’는 말처럼 들리지만, 앞뒤로 있는 말을 합하여 읽어보면 전혀 다른 말입니다.

15절을 읽어볼까요?
"너는 무교병의 절기를 지키라 내가 네게 명령한 대로 아빕월의 정한 때에 이레 동안 무교병을 먹을지니 이는 그 달에 네가 애굽에서 나왔음이라. 빈 손으로 내 앞에 나오지 말지니라"
 
여기서 무교병의 절기란 바로 무교절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유대인들은 무교절을 어떻게 지낼까요? 그들은 각 가족끼리 모여서 음식을 나눕니다. 그 때 나누어 먹는 음식이 누룩이 들어 있지 않는 음식, 즉 무교병입니다.
그렇게 그들은 집안에서 식구들이 함께 모여서 누룩이 들어있지 않은 음식을 먹으면서, 무엇을 하느냐? 하나님이 그들 민족을 애굽의 압제에서 구원해 주신 일들을 상기하며, 자기들의 생활을 점검해 보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들은 집안에 있으므로 굳이 따로 예물을 바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구절의 주안점은 무교절 절기를 잘 지키라는데 있습니다.

다시 한번 자세히 그러한 절기들을 만들어 지키라는 이유를 살펴보면 (1) 백성들로 하여금 과거 하나님에 의해 구원받았고 (2) 현재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며 (3) 앞으로도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갈 것임을 깨닫게 하는 것이 그 목적입니다.

이러한 논리는 오늘 본문에서 볼 수 있는 세가지 절기에 모두 해당이 됩니다.
따라서 ‘빈 손으로 내 앞에 나오지 말지니라’는 말은 의미가 무엇인가를 생각하기 전에 문장 전체의 뜻에 비추어보면 차지하는 비중이 작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흔히 주장하는 것처럼, 빈손으로 오지 말라는 말, 예물드림은 아주 부차적인 것에 불과합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예물을 드리지 않으면 예배가 아니다, 고 하는 것은 성경을 잘 못 알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들고 가야 하나?

그렇다면, 빈손으로 오지 말랬는데 정작 우리가 들고 가야 할 것, 그 손에 채워가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원어를 살펴보면 알게 됩니다.
원어 성경은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를 살펴봅시다.

여기 '빈손으로'에 해당하는 '레캄'은 '공허하게', '쓸데없이', '헛되이'등의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따라서 '빈손으로'라고 번역하기 보다는 '헛되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더 타당합니다. 따라서 빈손, 이라는 말은 물질 등 구체적으로 눈에 보이는 물건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마음 쪽에 더 중점이 있는 말입니다. 또한 '보이다'에 해당하는 '라아'는 '나타난다'는 뜻 이외에 '방문하다'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으므로, '헛되이 (쓸데없이) 내 앞에 오지 말라'로 번역함이 자연스럽습니다.

즉 이는 아무런 의미 없이 하나님을 찾지 말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는데, 이 말을 다시 해석하자면, 여기 본문에 언급된 세가지 절기를 지킬 때에, 바깥으로 보이는 형식에만 치우쳐 그 근본 정신을 잊지 않도록 깨우치고 있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이러한 말씀은 자칫 타성에 젖어 무의미한 신앙 생활을 하기 쉬운 우리들에게 참된 신앙 생활의 의미를 일깨워 주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빈손으로 내게 보이지 말지니라’라는 말은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예배드릴 때에 헌금을 빠지지 말고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 원래의 뜻은 절기를 맞이하여 하나님을 찾는 그 근본적인 뜻을 잊지 말라는 것이며, 헌금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 앞에 어떤 마음으로 가야 하는지를 의미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구절을 헌금과 연결시키는 해석은 견강부회(牽强附會)에 불과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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