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적 단풍나무 완상(玩賞) - 17

 

제 3 장. 만들어진 기억이거나 망상(妄想)

 

1. 들어가기에 앞서 - 단풍나무를 기억하십니까?

 

거의 1년만에 다시 단풍나무를 꺼내들었다. 늘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잠시 생각좀 더하고 글도 더 다듬고 하면서 뭉기적 거리다가 벌써 1년이 흘렀다.

말이 1년이지, 그 일년 동안에 여기 다비아 고정 독자들도 이미 다 잊으셨을 것이다. 나도 그런데 독자들이라고 별 수 있을까?

단풍나무 연재물을 공들여 읽으신 분들도 어느 사이 시나브로 잊으셨을 것이다.

우리의 기억은 한계가 있으므로 1년밖에 되지 않은 일도 잊으셨으리라 생각되는데, 그렇다면 조선시대 단풍나무에 관한 생각들을 마치 어제 일처럼 서술하는 그런 기록들은 어찌된 영문인지 하는 생각에, 쑤셔 박아 놓았던 글들을 가을철이 지나 단풍잎은 모두다 사라지려 하는 이 마당에 다시 한번 집어 들었다.

 

해서 나누어 보고 싶은 생각은 우리 사람들의 기억은 어디까지인가, 하는 것이다.

우리 사람의 기억은 어떻게 형성되는가, 또 그 기억은 어떻게 왜곡되기도 하는가, 등등 단풍나무를 기화로 하여 기억 자체를 먼저 생각해 보련다.

 

다음 말을 이어가기 전에 지난 번 글에서 중간 결론삼아 단풍나무에 대한 현재의 기억을 잠시 인용해 보자면 다음과 같다.

 

<< 결론으로, 위의 주장들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ㅇ 조선시대 궁궐은 물론 성읍 심지어 성, 일반 가정집에 단풍나무는 없었다.

ㅇ 그 이유는 - 단풍나무가 변절의 상징이라 여겨 심지 않았을 뿐더러 - 심겨져 있는 것조차 다 베어냈기 때문이다.

 

묻고 싶다, 그런 일들이 과연 우리 역사의 한 켠에 남아있는 ‘기억’일까? >>

 

난, 궁극적으로는 ‘역사의 기억’을 말하고자 하지만, ‘역사의 기억’도 사람의 기억을 통하여 전승되는 것이 분명하므로 우선 사람의 기억에 관하여 짚고 넘어가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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