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적 단풍나무 완상(玩賞) - 18

 

  3 . 만들어진 기억이거나 망상(妄想

 

 2. 들어가기에 앞서 억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1)  기억은 인간에게 생명이다.

 

<머나먼 다리> ( A bridge too far), 이차대전 시 연합군과 독일군과의 전투를 소재로 한 전쟁영화다. 숀 코네리, 진 핵크만, 라이언 오닐, 마이클 케인, 등등 왕년의 기라성 같은 배우들이 총 출동한 영화인데, 옛날 영화가 되어서 그런지 보신 분들이 많지 않으리라 생각되지만, 그 중 기억과 관련하여 잊혀지지 않는 장면이 있다.

 

해리 소령, 영국인이다. 그런데 그 사람은 전쟁터에서도 항상 우산을 들고 다닌다. 적과 싸울 때에도 그는 우산을 들고 다닌다. 영화 후반부,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관객의 궁금증을 풀어주는 장면이 등장한다. 나도 그 사람 행동이 의아했는데, 다행이다. 영화 후반부, 그가 적군의 총에 맞아, 죽게 될 즈음에 그의 상관이 묻는다, 왜 그렇게 항상 우산을 들고 다니느냐? 그의 대답이 배드 메모리. 기억력이 좋지 않아서요, 암호를 잘 잊어서, 그래서 독일인이 아니라는 것을 보이려고, 영국인이라는 증거로 가지고 다닌다는 게 죽어가면서 그가 말해준 이유다.  

 

총알이 빗발치는 전장터에서 기억력은 그래서 중요하다. 그 해리 소령처럼 기억력이 나쁘다면 적어도 자기자신을 보여주는 우산 정도는 들고 다녀야 하지 않겠는가?

기억력이 나쁘면 그래, 맞아, 우산이라도 들고 다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적으로 몰려 잘못하면 아군의 총에 맞아 죽을 수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기억은 사람에게 생명이다. 생명을 유지시켜주는 도구다.

 

2) 기억은 인간에게 존재, 그 자체이다.

 

다음은 한겨레 신문에 실린 기사중 일부분이다.

< 2009 8월 김영주(가명·32)씨는 서울 서초파출소에서 발견됐다. 경찰은 티셔츠와 바지 차림에 배가 부른 김씨가 불쑥 경찰서로 찾아와 “이름도 집도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다”며 집을 찾아달라고 했다고 한다.

기억상실증에 걸린 듯했다. 경찰은 김씨의 신원을 확인하기 위해 지문조회를 하고, 결과가 나올 때까지 임시로 지낼 수 있게 서울 강남의 한 보호센터로 보냈다. 김씨는 아무것도 기억할 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이었지만 그보다 다급한 건 출산이었다. 이유도 모른 채 아이를 가졌고 정신을 차려보니 임신 8개월이었던 것이다. 우선 아이를 낳고 지낼 미혼모 시설을 찾았지만 김씨의 신원이 확인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대부분 거절당했다. 수소문 끝에 강원도에 있는 한 미혼모시설로 가게 됐다. 그곳으로 옮긴 뒤 아들을 낳았다.

  두 달 뒤, 지문조회 결과가 도착했다. 부모님은 20년 전에 이혼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김씨는 그래도 가족의 끈을 찾으려고 엄마와 아빠의 주소로 편지를 보냈다. 얼마 뒤 작은고모에게 연락이 왔다. 아버지는 10년째 알코올중독으로 병원에 입원중이고 엄마는 이미 재혼했다고 했다. 김씨는 부모님의 근황을 전해듣고는 차마 연락할 용기를 내지 못했다.

처음에는 아이를 입양 보낼까도 생각했지만, 이내 책임지고 기르기로 마음을 바꿨다. 안정을 찾으면서 조금씩 과거의 기억을 찾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때 아버지는 술만 마시면 폭행을 일삼았고, 엄마가 집을 나갔던 사실도 떠올랐다. 자신은 스무살 때 독립했다. 전문대를 나와 한 증권회사에서 일했는데, 사채를 쓴 친구의 보증을 잘못 서 적금을 깨고 7천만원을 갚았다. 사채 보증을 섰다는 사실이 퍼져 회사를 그만뒀다. 그 뒤 우연히 지인의 소개로 소믈리에 일을 배웠고, 서울 한 호텔의 와인바에 취직했다. 한달에 수백만원씩 벌 정도로 자리를 잡았다. 그러던 중 아는 언니의 제안으로 와인바를 차리기로 하고, 1억원을 투자했다. 그러나 또 배신당했다. 그 언니는 사업자금을 갖고 사라졌다.

억울하고 분했지만, 김씨는 포기하지 않았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빚을 갚아나갔다. 2008년 어느 날, 강남의 한 술집에서 친구들과 생일파티를 했다. 그게 기억의 마지막이었다.

그때부터 약 1년간의 기억이 사라졌다. 그 사이에 임신이 된 것이다. 김씨는 병원치료를 받으면서 그 당시의 기억을 복원하려고 노력했지만, 담당 의사는 “나쁜 기억이면 차라리 복원하지 않는 게 더 나을 수 있다”고 말했다. 김씨도 고개를 끄덕이며 현실을 받아들였다.> (‘배신의 상처’ 끊긴 기억 이으며 버거운 홀로서기, 2011.11.28)

 

안타까운 이야기다. 친구들과 생일파티를 한 그 날 이후, 기억이 사라진 그 날부터 김씨의 인생이 달라진 것이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러면 의문이다. 기억이 사라진 이후의 김씨는 과연 누구인가? 진정한 김씨는 기억이 온전하던 때의 시절을 말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기억이 사라진 기간 동안 김씨는 누구로 살아온 것일까

 

성급한 결론이지만 기억은 사람의 존재, 자체가 아닐까하여기억은 사람에게 생명이기도 하고, 존재 자체이기도 하다. 그만큼 기억은 사람에게 소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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