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적 단풍나무 완상(玩賞) - 20

 

제 3 장. 만들어진 기억이거나 망상(妄想)

 

4. 섬과 달, 만들어진 기억이 존재하는 곳.

 

영화 <달>을 살펴볼 차례이다. 달, the moon, 그 달, 우리가 매일 밤 보고 노래하는 대상인 달이 아니라, 영화 달이다.

줄거리를 먼저 살펴보자.

<<첫 장면에서, 2주 후에는 3년 간의 근무 기간을 마치고 지구로 돌아가 가족들과 다시 만날 일만을 기다리고 있는 주인공 샘 벨(샘 록웰 분)의 몹시 외롭지만 평화로운 달에서의 하루가 시작이 된다.

<더 문>에서의 분쟁 - 드라마를 구성하기 위한 갈등의 배치 - 은 다름아닌 샘 벨과 샘 벨 간에 발생한다. 이게 무슨 말? 3년 간의 근무를 마치고 지구로 돌아가기로 되어 있던 외로운 우주인 샘 벨이 복제인간이었던 것. 작업 중 사고로 인해 영화에서 처음 등장한 샘 벨이 의식불명에 빠지자 새로운 3년을 시작하게 될 또 다른 복제인간 샘 벨을 시스템이 깨운다.

그런데 문제는 이 새로운 샘 벨이 회사의 지시를 무시한 채 사고를 당한 다른 샘 벨을 구출해오면서 시작된다. 새로운 샘 벨이 회사의 지시를 따라 구조대의 도착을 얌전히 기다리기만 했다면 샘 벨(들)은 영원히 자신(들)이 누구인지 몰랐을 것이다. 지구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아내와 어린 딸이 그저 (심겨진) 기억에 불과하다는 사실도 모른 채 말이다. 그렇게 해서 갑자기 두 사람이 된 샘 벨은 서로가 진짜임을 주장하며 다투게 된다.>>

 

하지만 샘 벨과 샘 벨 간의 갈등이란 결국 자신들이 복제인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는 데에서 시작된다. 둘이 가지고 있는 기억이 모두다 똑 같은 것, 바로 주입된 기억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샘 벨(들)이 가지고 있는 자아의식, 기억에 의해 이루어지는 자아는 온통 주어진 기억에 의해 채워진 것이다. 따라서 기억이 존재를 만들어 자아를 형성한다면, 그 자아는 온통 타자에 의해 주입된 기억으로 채워진 거짓 자아인 셈이다.

그렇다면, 샘 벨은 과연 누구인가? 자기의 기억이 주입된 것이라는 것을 알기 전까지는 분명 자기인줄 알았는데, 그것이 온통 주어진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 혼돈에 빠진다. 과연 나는 누구인가? 그러한 기억을 가지고 있는 내가, 누구인가, 또 나와 똑 같은 기억을 가진 또 다른 샘 벨은 그렇다면 누구인가? 주어진 기억은 그래서 위험하다, 치명적이다.

 

이쯤 이르러 영화 <아일랜드>도 살펴 볼 일이다.

줄거리는 이렇다.

<< 지구 상에 일어난 생태적인 재앙으로 인하여 일부만이 살아 남은 21세기 중반. 자신들을 지구 종말의 생존자라 믿고 있는 링컨 6-에코(이완 맥그리거 분)와 조던 2-델타 (스칼렛 요한슨 분)는 수백 명의 주민들과 함께 부족한 것이 없는 유토피아에서 빈틈없는 통제를 받으며 살고 있다. 회사에서는 지하에 공간을 만들어 복제인간들을 몰래 숨겨놓고 있었다. 그들은 지구가 오염돼 다른 인간들이 멸종됐고 그 중 구출되어 그곳에서 살고 있는 줄 알고 있는데, 실상은 처음 복제인간을 만들 때 이런 기억들을 주입시켜 놓았기 때문이다.

잠자리에서 일어나면서부터 몸 상태를 점검 받고, 먹는 음식과 인간관계까지 격리된 환경 속에서 사는 이들은 모두 지구에서 유일하게 오염되지 않은 희망의 땅 ‘아일랜드’에 추첨이 되어 뽑혀 가기를 바라고 있다.

그런데 링컨이 제한되고 규격화된 이 곳 생활에 의문을 품게 된다. 그리고 곧, 자신이 믿고 있던 모든 것들이 거짓이었음을 알게 된다. 자기를 포함한 그곳의 모든 사람들이 사실은 스폰서(인간)에게 장기와 신체부위를 제공할 복제인간이라는 것! 결국 ‘아일랜드’로 뽑혀 간다는 것은 신체부위를 제공하기 위해 무참히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것을 의미했던 것이다.

어느 날, 복제된 산모가 아이를 출산한 후 살해되고 장기를 추출 당하며 살고 싶다고 절규하는 동료의 모습을 목격한 링컨은 아일랜드로 떠날 준비를 하던 조던과 탈출을 시도한다. 그간 감춰졌던 비밀,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 외부의 모습을 보게 된 이들은 오직 살고 싶다는 본능으로 탈주를 계속하는데…>>

 

여기서도 주인공은 자기가 누구인지를 타자에 의해 주입된 기억에 의지하여 알게 된다.

여기서 특기할 것은 영화 제목이 시사하고 있는 격리성이다. 달과 섬.

그 격리성은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일까? 달에 가려면 부득이 우주선을 타고 가야 하고, 아일랜드 역시 가려면 배를 타고 가야 한다. 그런 면에서 달과 섬은 인간이 쉽사리 도달할 수 없는 어떤 장소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렇게 쉽사리 가지 못 할 장소에서 일은 벌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그 두 장소는 다른 사람으로부터 격리시키는 작용을 하는 도구이다. 자기가 가진 기억이 어떤 기억인지를 객관적으로 쉽사리 검증하지 못하는 장소, 자기가 가진 기억이 어떤 기억인지를 알지 못하게 방해하는 도구이다.

 

온통 주어진 가짜 기억만으로 채워진 자아를 지니고 살아가는 영화의 주인공들은 인생 전체를 비극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그런 상황은 비단 영화 속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기억 중에 그렇게 타자에 의하여 만들어져 주입된 것이 있다면, 우리가 알지 못한다 할지라도 우리 인생의 그 부분만은 가짜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니, 어찌 그것을 비극이 아니라 할 수 있겠는가?

 

여기서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과연 우리가 가지고 있는 기억, 사실이라고 믿고 있는 기억은 과연 경험된 사실의 기억인가, 아니면 누군가에 의해 주입된 기억인가? 우리는 위에 언급한 영화처럼 SF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우리가 가지고 있는 기억 중 어느 것이 혹시 주입된 것은 아닌가? 그래서 우리도 그 주인공들처럼 가상적이고 허위의 세계를 – 그 기억의 한도 내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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