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적 단풍나무 완상(玩賞) – 31

 

제 4 장. 기억회복, 혹은 제정신이거나

 

 1- 2. 꽃이 피고 지는 것을 봄이 어찌 하리오

 

봄이다, 해서 처처에 꽃이 피고 있다. 물론 저 꽃들은 지겠지만, 봄이라 산마다 언덕마다 봄은 꽃으로 세상을 치장하고 있다. 시인 두목(杜牧)은 단풍을 봄 꽃보다 아름답다고 노래했지만, 그것은 가을의 감상이지, 봄에는 달리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해서 봄이면 봄의 감상이, 가을에는 가을의 감상이 따라오는 것을 막을 수 없지 않는가?

 

그렇다면 그런 계절의 변화를 옛사람들은 어떻게 인식하고 있었을까? 고조선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갈 게 아니라, 조선시대 사람들은 자연에 대하여 어느 정도 알고 있었을까? 과연 조선시대 사람들은 자연의 이치를 몰랐을까? 사시 사철이 변하고, 그에 따라 식물이 나고 자라고 낙엽지고 하는 순환의 이치를 모르고 살았을까? 그래서 봄이 되어 피어난 나뭇잎이 여름에서는 녹음으로 왕성히 피어 났다가 가을에는 단풍으로 변하고 결국은 낙엽이 되는 자연의 이치를 이해하지 못하고, 단풍잎을 색깔을 변한다고 타박했을까? 가을이 되어 색이 바래는 단풍나무를 그래서 변절의 상징으로 매도하였을까?

 

그럼 그 당시 사람들이 가졌던 ‘계절의 순환에 대한 생각들을 알아볼까?

도연명의 시를 먼저 감상해보자. 도연명의 시는 조선의 선비들이 즐겨 읽었던 시.

 

사시(四時) - 도연명 (陶淵明)

 

春水滿四澤  (춘수만사택)   봄 물은 연못에 가득하고

夏雲多奇峰  (하운다기봉)  여름 구름은 산봉우리들처럼 떠 있네.

秋月揚明輝  (추월양명휘)   가을 달은 밝은 빛을 비추고

冬嶺秀孤松  (동령수고송)  겨울 산마루엔 큰 소나무 한 그루 서 있네.

 

이 시는 조선시대 기초 한문 교재인 <추구집(推句集)>에도 실릴 정도로 친숙한 시다.

그 시에는 분명 사시 사철을 노래하는데, 계절의 순환을 잘 이해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사시사철이 순환하는 것이 자연의 자연스러운 이치임을 조선시대의 사람들이 몰랐을 리가 없다.

 

시 하나 더 살펴 보도록 하자. 이번에는 조선의 선비 송강(松江) 정철(鄭澈)의 시다.

 

추일작(秋日作. 가을날 짓다) - 정철(鄭澈)

 

山雨夜鳴竹 (산우야명죽)  산 속의 빗줄기가 밤새 대숲을 울리고

草蟲秋近床 (초충추근상)  풀 벌레 소리 가을되니 침상에 가깝네

流年那可駐 (유년나가주)  흐르는 세월 어찌 멈출 수 있으랴

白髮不禁長 (백발부금장)  흰 머리만 길어지는 걸 막을 수 없구나

 

흐르는 세월 어찌 멈출 수 있으랴(流年那可駐), 흰 머리만 길어지는 걸 막을 수 없구나(白髮不禁長) 하면서 인생을 관조하는 조선의 선비가, 자연의 이치를 모르고 단풍을 변절자라고 했을 리가 없다는 것이다.

 

김시습도 노래했다, 계절의 오고 감을. 그래서 꽃이 지는 것을 봄이 어찌 하지 못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시로 승화시켰다.

 

사청사우(乍晴乍雨) - 김시습

 

乍晴乍雨雨還晴 (사청사우우환청)  잠깐 개었다 비 내리고 내렸다가 도로 개이니

天道猶然況世情 (천도유연황세정)  하늘의 이치도 이러한데 하물며 세상 인심이야

譽我便是還毁我 (예아편시환훼아)  나를 칭찬하다 곧 도리어 나를 헐뜯으니

逃名却自爲求名 (도명각자위구명)  명예를 마다더니 도리어 명예를 구하게 되네

花開花謝春何管 (화개화사춘하관)  꽃이 피고 꽃이 지는 것을 봄이 어찌 하리오

雲去雲來山不爭 (운거운래산불쟁)  구름이 오고 구름이 가는 것을 산은 다투질 않네

寄語世人須記認 (기어세인수기인)  세상 사람에게 말하노니 반드시 알아두소

取歡無處得平生 (취환무처득평생)  기쁨을 취하되 평생 누릴 곳은 없다는 것을

 

다산 정약용은 <백련사의 단풍>이란 글에서 일년을 한 악장으로 보고, 사계절의 순환을 다음과 같이 아름답게 묘사하고 있다.

 

<하늘은 일년을 한 악장으로 삼는다. 그 시작에는 피어나고 우거지고 곱고 어여뻐서 온갖 꽃이 향기를 뿜는다. 그 끝 무렵에는 빨간 색과 노란색, 자주 빛과 푸른빛으로 물들이고 단장하여, 넘실넘실 일렁이며 사람의 눈을 부시게 한다. 그런 다음에야 거두어 들여 깊이 간직하니, 그 오묘한 능력을 뽐내고 빛내려는 것이다.>

 

결론? 조선시대 사람들이 단풍을 그런 식으로 이해했을 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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