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적 단풍나무 완상(玩賞) – 32

제 4 장. 기억회복, 혹은 제정신이거나

1- 3. 계절은 가는거니, 오는거니?

 

전번에 살펴본 것처럼, 조선 시대 선비들이 읽었던 시에는 분명 사시 사철을 노래하고 있으며, 그 시를 통하여 계절의 순환을 잘 이해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사시사철이 순환하는 것이 자연의 자연스러운 이치임을 조선시대의 사람들이 몰랐을 리가 없다.

그러면 그들은 어떻게 사시사철이 순환한다는 것을 알았을까? 자연의 돌아가는 이치는 살다 보면 깨우칠 수 있었겠지만, 그 깨우침이 누군가에게 일회성으로 끝나지는 않았을 것이고, 따라서 그 깨달음은 전달이란 방법으로 전파되었을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누군가 사시사철의 순환에 대하여 깨달았고, 또한 그 깨달음을 후세에 전달하기 위하여 가르쳤을 것이다. 따라서 그 가르침의 내용을 살펴보면, 그들이 자연의 순환에 대하여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가르침의 내용은 무엇이었을까?

 

조선시대에 기초 한문 교재로 <학어집(學語集)>이란 것이 있다. 일명 <만물집> 이라고도 하며, 우주에 존재하는 천, 지, 일, 월, 성신, 풍, 운, 설, 우는 물론 춘하추동과 초목, 가축, 금수, 어류, 곤충에 이르기까지 92항목에 대하여 설명하면서 각 해당되는 것에 대한 특성을 재미있게 설명하고 있는 기초 한문 교재인데, 그 중 사계절에 대하여 사계절의 변화를 일목요연하게 설명해 주고 있는 부분이 있다.

 

天이라.

天者는 蒼蒼在上하고 輕淸而至高하니 日月星辰이 繫焉이로다.

(천이라 - 천자는 창창재상하야 경청이지고하니 일월성신이 계언이로다)

 하늘이라는 것은 푸르고 푸르러 위에 있고, 가볍고 맑아서 지극히 높으니 해와 달과 별이 매어 있도다.

 

天有四德하니 元亨利貞이요 天有四時니 春夏秋冬이라.

元은 爲春이니 春氣溫而生物하고

亨은 爲夏하니 夏氣熱而長物하고

利는 爲秋니 秋氣凉而收物하고

貞은 爲冬이니 冬氣寒而藏物하나니라.

 하늘에는 사덕이 있으니 원형이정이요 하늘에는 사시가 있으니 춘하추동이라.

원은 봄이 되니 봄의 기운은 따뜻해서 만물을 나게 하고

형은 여름이 되니 여름의 기운은 뜨거워서 만물을 자라게 하고,

이는 가을이 되니, 가을의 기운은 서늘해서 만물을 거두게 하고,

정은 겨울이 되니 겨울의 기운은 차가워서 만물을 감추게 하나니라.

 

四時라.

四時者는 春夏秋冬이니 春去而夏至하고 夏去而秋至하고 秋去而冬至하니 一年之間이 循環無窮이로다.

사시라는 것은 춘하추동이니 봄이 가면 여름이 이르고 여름이 가면 가을이 이르고 가을이 가면 겨울이 이르니 일년의 사이가 순환이 다함이 없도다.

 

一歲에 有四時하니 正月二月三月은 爲春이오 四月五月六月은 爲夏오 七月八月九月은 爲秋오 十月十一月十二月은 爲冬이로다

(일세에 유사시하니 정월이월삼월은 위춘이오 사월오월육월은 위하오 칠월팔월구월은 위추오 십월십일월십이월은 위동이로다)

 

사시라 - 한해에 사시가 있으니 정월 이월 삼월은 봄이고 사월 오월 유월은 여름이 되고 칠월 팔월 구월은 가을이 되고 시월 십일월 십이월은 겨울이 되도다.

 

春이라

正月二月三月은 爲春이니 是時에 東風이 習習하여 百花가 爭發하니 其神曰靑帝로다.

정월, 이월, 삼월은 봄이 되니 이때에 동풍이 솔솔(온화하게) 불어 모든 꽃이 다투어 피니 그 신을 청제라 말하는 도다.

 

春之爲時也 日暖風和하야 草木이 化生하고 百花爭發하니 農夫耕田이로다

 (춘지위시야 일난풍화하야 초목이 화생하고 백화쟁발하니 농부경전이로다)

 

봄의 때가 되니 날이 따뜻하고 바람이 화창하여 풀과 나무에 변화가 생기고 온갖 꽃이 다투어 피니 농부가 밭을 갈도다.

 

夏라.

四月五月六月은 爲夏니 是時에 南風이 薰薰하여 草木이 茂盛하니 其神曰赤帝로다.

사월, 오월, 유월은 여름이 되니 이때에 남풍이 훈훈하게 불어 초목이 무성하니 그 신을 적제라 말하는도다.

 

夏之爲時也 日永風薰하야 草木이 長茂하니 農人이 耘耔로다

(하지위시야 일영풍훈하야 초목이 장무하니 농인이 운자로다)

 

여름의 때가 되니 해가 길고 바람이 더워서 풀과 나무가 자라서 무성하니 농사짓는 사람이 김매도다.

 

秋라

七月八月九月은 爲秋니 是時에 凉風이 蕭蕭하여 塞雁이 呼霜하니 其神曰白帝로다.

 칠월, 팔월, 구월은 가을이 되니 이때에 서늘한 바람이 쓸쓸하게 불어 변방의 기러기가 서리를 부르니 그 신을 백제라 말하는 도다.

 

夏盡秋來에 凉風이 至에 霜露降하야 草木이 黃落하고 百穀이 用成하니 農人收穫이로다

(하진추래에 양풍이 지에 상로강하야 초목이 황락하고 백곡이 용성하니 농인수확이로다)

 

여름이 다하고 가을이 옴에 서늘한 바람이 이름에 서리와 이슬이 내려서 풀과 나무가 누렇게 떨어지고 백가지 곡식이 써 이루니 농사짓는 사람이 거두도다.

 

冬이라.  

十月十一月十二月은 爲冬이니 是時에 北風이 號怒하여 白雪이 飄揚하니 其神曰黑帝로다.

 시월, 십이월, 십이월은 겨울이 되니 이때에 북풍이 세차게 불어 흰눈이 나부끼며 날아오르니 그 신을 흑제라 말하는 도다.

 

秋盡冬來에 北風이 起하고 白雪이 下하니 民乃取茅乘屋하고 墐戶入奧로다

(추진동래에 북풍이 기하고 백설이 하하니 민내취모승옥하고 근호입오로다)

 

가을이 다하고 겨울이 옴에 북쪽 바람이 일어나고 흰눈이 내리니 백성이 이에 띠를 취하고 집을 해 잇고 문을 바르고 아랫목에 들어가도다.

 

어떤가? 가르침 하나 하나가 똑 부러지지 않는가? 물론 현대식의 현란한 설명이야 보이지 않지만, 사시의 순환에 대하여 간단하면서도, 명료한 가르침, 그런 가르침을 받으면 어떨 것 같은가? 사람을 둘러싼 자연의 이치에 대하여 확실한 이해를 가지게 될 것이 분명하다. 그런 조선시대 사람들을, 단순히 단풍잎이 노랗게 변하는 것을 가지고 변절의 상징이라 여겼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들을 지혜없고 지식없는 원시인 정도로 여기고 있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무시해도 유분수지! 우리 선조들이 그런 말들을 못들어서 그렇지, 들었더라면 땅을 치고 통곡할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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