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적 단풍나무 완상(玩賞) – 33

제 4 장. 기억회복, 혹은 제정신이거나

1- 4. 화무는 십일홍이요 권불십년이라 (花無十一紅 權不十年 )

 

그런 조선시대 사람들을, 단순히 단풍잎이 노랗게 변하는 것을 가지고 변절의 상징이라 여겼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들을 지혜없고 지식없는 원시인 정도로 폄하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 조상들의 지혜가 어떤지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가 하나 있다.

 

화무십일홍’(花無十一紅)이라는 말이 있다. 아직도 어르신들이 모여 노는 곳에 가면

자연스레 흥얼거리는 가락조로 들려오는 노래 가사 중 일부로 전해 내려오는 잠언이다.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늙어지면 못노나니
 
화무는 화무는 십일홍이요 날도 차면 기우나니라.
 
얼씨구 절씨구 차차차.. 지화자 좋구나 차차차>

 

           화무는 십일홍이요, 달도 차며는 기우나니라.”

           전편에 이미 언급한 바 있는 자연 순환의 이치를 노래말에 담아 놓았다.

           그러나 그것은 노래의 가사로 존재하기 전에 하나의 인생철학이다.

           그 뜻은 무엇일까?

 

          화무는 십일홍이라는 것은 화무십일홍이란 말을 노래 가락에 맞춰서 화무는

          십일홍이라고 한 것이다.

           원래 그 말은 화무십일홍이란 말 단독으로 존재하지 않고, 반드시 뒤에 다른 말이

           따라온다. “화무십일홍 권불십년” (花無十一紅 權不十年)이 본래 말이다.

 

          화무십일홍 권불십년” (花無十一紅權不十年)

          아무리 아름다운 꽃도 열흘을 넘기지 못하고, 아무리 막강한 권력이라 해도 10년을

              넘기지 못한다.”

 

           그 말은 눈에 보이는 꽃이 열흘 넘어가는 꽃이 없음을 안다면, 다음으로 눈에는 보이지

           않는 권세 또한 십년 넘어가는 것이 없다는 것을 알아라, 라는 인생 교훈의 경구이다.

           화무 십일홍이란 자연 이치를 눈으로 보면서 권불십년이란 인생이치를 깨달으라는

           잠언이다.

 

           그런 진리를 설파하는 노래를 우리 조상들은 산과 들에서, 일하면서 불렀던 것이니,

           우리 민족은 꽃이 피고 지는 이치를 분명히 알고 있었다는 것이며, 인생과 자연이

           순환하는 이치를 다 꿰뚫어 보고 있었다는 말이다. 게다가 그런 자연이 베풀어주는

           자연스러운 이치를 우리 인생에게 적용시켜 자연의 순리를 따르려는 마음까지 가졌던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슬기로운 조상들을 마치 지혜없고 지식없는 자처럼 여기지 않았던가? 우리 조상들은 열흘 가는 꽃 없고, 십년 넘어가는 권세 없다며, 세상살이의 잠언으로 그런 노래들을 읊조리며 살았는데, 작금의 우리 나라 모습을 보라. 가진 권세가 천년 만년 가는 줄 알고 아무 것이나 덥석 물어 삼켰다가 목에 걸려 토하는 사람들이 어찌 그리 많은지? 우리 조상들의 지혜를 백분의 일이라도 닮았더라면!!! 그러니 우리조상들이 단풍나무를 가지고 변절이니 어쩌니 했다는 말들이 공허하고, 가소롭기까지 한 것이다.

profi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