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게 영적 리더십은 없다. (22)
존 맥스웰을 다시 본다 (3) – 될 수 있는 모든 것이 되라 하지만  

책을 쓸 때에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당연히 내용이다. 두말할 필요도 없다. 내용이 좋아야 좋은 책이다. 그런데 그렇다고 좋은 책이 반드시 잘 팔린다는 공식은 성립하지 않는다. 내용이 좋아야 하지만 그 내용이 독자들을 당기는 힘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실상은 독자들을 끌어 당기는 힘이 있느냐 없느냐는 책을 손에 들게 한 후에 고려될 문제다. 독자로 하여금 수많은 책중에서 그 책을 뽑아 손에 들도록 하기 위해서는 뭐니 뭐니 해도 책의 제목이 좋아야 한다. 그래야 스쳐 지나가는 독자의 눈을 확 끌 수 있다. 가장 좋은 실례가 바로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라는 책이다. 그 책의 원 제목은 <Wale done : The Power of Positive Relationships>인데 그 책이 한국어판으로 처음 나올 때에는 다른 제목을 달고 나왔다. <YOU Excellent! : 칭찬의 힘 >. 그런데 그 제목은 독자들의 관심을 전혀 끌지 못했다. 나중에 그 책을 고래 어쩌구 하는 제목으로 재출간하자 사람들의 시선이 쏠리게 되었고, 결국은 베스트 셀러가 되었다. 그러나 실상 그 책의 내용을 살펴본다면 <YOU Excellent! : 칭찬의 힘 >이라는 밋밋한 제목보다는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가 그 책에 적합한 제목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니 애초에 제목을 잘못 잡은 것이다.

그럼, 존 맥스웰의 책 한국어판 <열매맺는 지도자>라는 제목은 어떨까? 그 책은 엄밀히 말하자면 리더십에 관한 책이 아니다. 굳이 분류하자면 ‘성공학’의 어딘가를 거닐고 있는 책이다. 그 책은 리더십에 대해 본격적인 진술을 해 놓지 않았다. 그냥 무슨 말을 하다가도 문득 생각난 듯이 지도자라는 말을 가끔씩 덧붙여 놓았을 따름이다. 그래서 한국에서 책을 번역 출판할 때에 존 맥스웰이 리더십의 대가니까, 또 제 1장에 나오는 이야기가 요한 복음 15장의 열매 맺는 삶에 대해서이니 ‘성공’과 ‘리더십’의 두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책 제목을 <열매맺는 지도자>라 했을 것으로 짐작이 된다. 따라서 한국어판을 읽는 독자들은 제목에서 강한 암시를 받아 그 책이 지도자로 하여금 열매를 맺게 하는 생활을 하도록 만드는 책인줄 알고 읽어간다. 그러나 열매 이야기는 극히 일부분이다. 정작 맥스웰이 그의 책을 통해서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는 그게 아니다. 그가 원어판에서 사용한 제목은 그래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가 하고 싶은 내용이 바로 원어판 제목에 담겨있다. <네가 될 수 있는 모든 것이 되라> ( Be all you can be ) 가 바로 그가 하고 싶었던 말이다. 열매맺는 지도자 어쩌구 하는 것이 그가 하고 싶었던 말이 아니라 ‘네가 될 수 있는 모든 것이 되라’는 것이 그의 본심인 것이다.

그러면 이 제목 - 네가 될 수 있는 모든 것이 되라 – 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그 의미가 워낙 심오한지라, 우리들 범인의 눈에는 이상한 점이 포착될 리가 없다. 그러나 어딘가 단서는 있는 법. 오스 기스니의 <소명>에서 그 단서를 발견하였다. 좀 길더라도 그 전후를 알아야 하니 인내심을 가지고 읽어보자.

<또 하나의 …. 입장이 있는데, 그것도 마찬가지로 분명한 약점을 안고 있다. 그것은 다양한 형태의 ‘존재로의 용기(courage to be)’다, 이 견해에 따르면 우리 모두는 자유 - 어떤 이들은 끔찍한 자유라고 여기는-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용기와 의지력만 있으면 원하는 무엇이든 될 수 있다. 우리는 사실상 “우리 자신을 발명할 수 있다”고 한다. 이 입장을 대변하는 고전적인 예는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작품에 나오는 코리올라누스인데, 그는 “인간이 스스로의 창조자(Author)이며, 누구와도 혈연관계가 없는 것처럼” 우뚝 서 있었다. 존 키이츠(John Keats) 역시 훗날 “창조적인 것은 스스로를 창조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러 가지 고상하고 복잡한 말을 했지만 키워드는 ‘우리는 용기와 의지력만 있으면 원하는 무엇이든 될 수 있다.’이다. 이 말을 마음에 새기고 그 다음을 읽어보자. 우리가 찾던 말이 나온다.

<이러한 입장은 오늘날 수많은 방법으로 우리를 유혹하고 있다. 상류사회의 경우를 보면, 최근 프랑스의 한 향수회사가 다음과 같은 광고문구로 영어권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당신이 손수 쓴 대본대로 연기할 때 최고의 인생이 된다.” 얼마 전만 해도 프랑스 지식사회는 거창한 실존주의 용어들을 사용하여, 존재의 용기를 ‘나쁜 신앙’과 궁극적인 부조리에 반하는 영웅적인 ‘진정성’(authenticity)으로 표현했다. 좀 더 피부에 와 닿은 표현으로는 “네가 될 수 있는 모든 것이 되라“(미육군의 인사), ”하면 된다”, “있는 그대로”, “네 꿈을 좇으라”, “자신을 믿으면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등이 있다.>( 47)    

이 대목에서 바로 존 맥스웰의 정체가 드러난다. 지식인들이 거창하고 유식한 용어들을 사용하여 사람들을 현혹하는데 반하여 존 맥스웰은 좀 더 피부에 와 닿는 표현인 “네가 될 수 있는 모든 것이 되라“를 사용한다. 이게 존 맥스웰의 책 <열매맺는 지도자>에 숨어있는 비밀이다. 우리에게 용기와 의지력만 있으면 원하는 무엇이든 될 수 있다고 유혹하는 음성이다.    

그럼 오스 기니스는 그러한 생각에 대하여 어떠한 평가를 내리고 있는가? 그의 평가는 가혹하기 짝이 없다.
<또 현실은 세상에 있는 모든 의지를 동원하더라도 우리가 되고 싶어하는 것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준다. 의지력의 문제에 대해 논하자면, 의지는 흔하지만 능력은 드물다. 진정한 정체성은 스스로 건설하는 것이기보다는 항상 사회적으로 부여받은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스스로 방법을 고안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요컨대 ‘존재로의 용기’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는 뜻이다………..우리의 개별성은 모두 ‘존재로의 용기’에 달려있다는 주장 역시 비현실적인 것이다.> ( 49)

그러한 말들이 공허한 주장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실체가 없는, 들을 때에는 그럴듯하게 들리지만 막상 현실에 가서는 아무 쓸모 없다는 말이다. 오스 기니스의 평가는 그것으로 끝난게 아니다. 더 들어보자.
<그러므로 현대인들은 정체성 문제에 대하여 완전히 거꾸로 생각하고 있는 셈이다. 즉, 하나님에 대해서는 확신하지 않으면서 자신에 대해서는 확신하는체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은 이와 정반대이다. 우리 자신에 대해서는 확신할 수 없지만 하나님에 대해서는 확신을 갖고 있다.> ( 53)

책 제목은 그냥 아무렇게나 붙이는 것이 아니다. 정말 그 책의 운명을 걸고 짓는다. 그 책 속의 내용을 한자라도 더 포함시키기 위하여 작자와 출판사는 애를 쓴다. 그렇게 해서 책은 출판된다. 존 맥스웰의 책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열매맺는 지도자>라는 책은 그래서 <네가 될 수 있는 모든 것이 되라>는 원제목 그대로, 그리스도인들이 가져야 할 자세를 완전히 거꾸로 만드는 책인 것이다.

오스 기니스의 말은 그래서 우리가 항상 명심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입장 - 용기와 의지력만 있으면 원하는 무엇이든 될 수 있다- 은 오늘날 수많은 방법으로 우리를 유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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