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귀한 자리를 저에게 허락해 주셔서, 감사하기도 하며 기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정말 부담이 많이 됩니다.
어떤 내용으로 이 자리를 만들어야 하는지.. 그래서 일단 세가지로 가닥을 잡아보았습니다. 그 하나는 지금껏 써오던 <영적 리더십>에 관한 글을 계속해서 쓰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그냥 이것 저것 닥치는 대로 쓰는 잡문 성격의 글이 될 것이며 또 다른 하나는 <각주(脚註) 없이 성경 읽기>라는 타이틀 하에 글을 써볼까 합니다.  

<각주(脚註) 없이 성경 읽기>를 시작하면서.

그때, 학교의 휴게실에는 항상 사람들이 붐비곤 했었다. 잠깐 동안의 휴식시간에 학생들이 모여서 간단한 음료와 대화를 나누느라 휴게실은 항상 만원이었다. 그 중에는 한국인 학생들도 삼삼오오 모여 환담을 나누곤 했었는데 주제는 역시 하나님의 말씀이었다. 어떤 주제가 나오게 되면 그 것은 여기저기로 가지를 치다가 결론은 누군가 누군가의 주석에서의 해석을 기억해내곤 그 주석서의 내용을 해설해 주는 것으로 끝나게 마련이었다.
“아 그렇구나, 바클레이가 그렇게 말했다면 그 해석이 맞겠지요.”
“매튜 헨리의 주석에 그렇게 되어 있다면…”
이야기의 결론을 맺는 사람은 어떻게 그런 주석들을 다 꿰는지 모르지만 신기하게도 주석을 줄줄 읊어대니 대단한 노릇이었다. 게다가 견해가 다른 몇 가지씩 말이다. 물론 읊어대는 사람은 가끔씩 바뀌기도 했지만 나는 거기에 한번도 끼지 못하였다. 어디 주석을 읽어 볼 시간이 있었을까? 과목에 맞추어 교과서와 참고자료도 읽기 허덕였으니 말이다. 그래서 주석을 달달 외우는 그들이 부러웠다. 저렇게 성경해석을 거침없이 해 나가야 하는데 …

하지만 또 하나의 기억, 학교에서 한국인들이 모여서 드리는 예배에 설교를 하는 순서가 있었는데 가끔 나에게도 차례가 돌아 왔다. 내 순서가 끝나면 꼭 듣는 말이 있었다. 그 본문은 바클레이가 이렇게 해석하던데, 하는 식의 이야기 말이다. 어떤 평자는 한 술 더 떠서 “그 본문을 이동원 목사님은 이렇게 해석하시던데 ...”라고 까지 말하기도 하였다. 물론 반대로 말하는 평자도 있기는 했다. 듣지도 보지도 못한 해석이라고 혹은 매우 독창적인 해석이라고. 그러나 결국 그 말이 그 말 아닌가?

그래서 그 때나 지금이나 나는 의문이다. 성경해석을 할 때에 주석에 있는 내용대로 해석해야 하는가? 유명한 목사님들이 하신 본문 해석에서 벗어나면 큰일이라도 나는 것일까? 내가 배운 설교학에서는 그렇게 말하지 않던데.. 주석은 참고하지 말라고 까지 말씀하는 설교학 교수도 있었는데…….모르겠다, 한국신학교에선 어떻게 가르치는지…

그러한 의문을 가지고 성경을 읽으면서 떠오르는 생각들을 정리해 본 것들이 바로 <각주 없이 성경읽기>에 포함될 내용들이다. 각주라는 것은 아시다시피 글을 쓸 때에 남의 글을 인용하거나 참고자료를 표시하는 방법이다. 내가 말하는 각주의 내용에는 그래서 당연히 주석도, 유명한 분들이 저술한 책들도 포함된다. 주석도, 유명한 분들의 해석도 단지 그분들의 생각 아닌가? 그분들도 자기들의 생각을 나름대로 정리해 놓은 것이 주석이 된 것 아닌가? 그런데 그런 분들의 반열에 끼지 못하였다고 설교자가 되어서 그 분들이 해석해 놓은 것을 앵무새처럼 따라 해야 한다는 말인가?

어느 정도 해석의 자유쯤은 설교자에게 주어진 것이라 믿는다. 그래서 각주 없이 성경을 읽어 보겠다는 것은 다른 말로 하자면 내 스타일대로 성경을 읽어보겠다는 말이다. 물론 한계는 있다. 내가 생각했다는 게 어디 온전히 내 생각만 있겠는가? 모두 다 어디선가 보고 듣고 한 것일게다. 그래도 각주를 달지 않는다 미리 말했으니 성경읽기에 어느 정도 자유로움은 확보될 것이다. 이렇게 말하지만 실상 내가 노리는 것은 따로 있다. 나의 부족한 독서량을 티 내지 않을 수 있다는 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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