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게 영적 리더십은 없다. (23)
존 맥스웰을 다시 본다 (4) – ‘잠재력’ 있는 리더, 존 맥스웰

‘용기와 의지력만 있으면 원하는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하기 위하여 <네가 될 수 있는 모든 것이 되라 ( Be all you can be) >고 제목을 잡은 존 맥스웰이 그의 책에서 맨 먼저 꺼내 든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잠재력’이다. 그가 이 책을 펴낸 것은 1987년인데 그 후 1997년에 <리더십의 법칙>을 쓰면서 존 맥스웰은 ‘잠재력’이란 말 대신 ‘잠재된 리더십’이란 격조있는 말로 바꾸기 시작한다. 그래서 그의 리더십 이론을 이해하려면 먼저 그가 사용한 ‘잠재력’이란 말을 살펴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잠재력에 대해 그가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생각은 이렇다.
<대개의 사람들은 소유한 잠재력의 10%정도만을 사용한다.> (열매맺는 지도자, 30)
존 맥스웰은 우리 인간이 잠재력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10% 정도만을 사용한다는 근거가 어디에서 온 것인지는 몰라도 그는 걱정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 계속하여 그의 말을 들어보자.
<대개의 사람들은 소유한 잠재력의 10%정도만을 사용한다. 만일 25%정도만이라도 사용한다면 천재가 될 것이다. 우리가 잠재력의 사용범위를 10%에서 20%로 증대시키면 우리의 효율성은 배가되지만 그래도 여전히 80%의 잠재력은 미개발의 상태에 놓여있다.> (30)

먼저 그가 말하는 잠재력은 무엇일까? 그는 잠재력에 대해 구체적으로 정의를 내리지 않는다. 잠재력의 25%를 사용한다면 천재가 되고, 10%에서 20%로 증대시키면 효율성을 증대시킬 수 있다는 극히 상식적인 그러나 근거가 없는 평범한 말을 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니 사전적인 정의를 한번 알아보도록 하자. 잠재력이란 말의 사전적 의미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숨어있는 힘’을 말한다. 그러니 사용되지 않고 있는 힘을 말한다. 그런 잠재력은 과연 개발하거나 발휘할 수 있는 것인가? 그래서 잠재력을 50% 발휘했다는 등의 말을 하는데 그것은 어떻게 가능하며 또 측정 가능한 것일까? 예를 들어 10톤을 실어 옮길 수 있는 트럭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그 트럭에 3톤의 짐을 실었다고 한다면 7톤이 아직 더 사용할 수 있는 힘이다. 그러나 그것은 기계이니 그렇게 측정이 가능하지, 그러한 잠재력의 개념을 인간에게 적용하여 잠재력을 10% 사용했다고 말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여기에 대하여 존 맥스웰은 침묵한다. 그러나 그의 다른 말을 통해서 보면 그는 이런 것들이 모두 가능하다고 전제하고 있다. 개발도 가능하며 측정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자, 그러면 그가 주장하는 잠재력을 하나 하나 짚어가 보도록 하자.    
먼저 잠재력은 인간의 내부에 있는 것일까? 아니면 외부의 어디에서부터 오는 것인가? 그는 이렇게 말한다.
<열매맺는 삶을 위한 우리의 잠재력은 무한한데, 그것은 우리의 근원 때문이다. “내가 참 포도나무요”(1절)라는 말씀으로 예수님은 시작하신다. 예수님은 우리의 근원이다.> (15)
이 말은 우리 인간에게 잠재력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의 근원은 예수님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분(하나님)은 우리가 필요한 모든 자원이 되신다. 그리고 그분은 나누어 줄 준비를 완료시켰다. 우리가 할 일은 그저 그분의 콘센트에 우리의 플러그를 끼우는 일이다.>(21)
<우리가 열매맺는 삶을 살 수 있는 잠재력은 예수님이 우리의 자원이기 때문에 대단히 크다. 또한 그분이 우리를 돌보시고 소유한다는 사실은 잠재력을 증대시킨다.>(17)
이렇게 말하는 것으로 미루어 보면, 존 맥스웰은 잠재력은 우리 인간에게 있지 않고 하나님에게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다음 말에서는 약간 다르다.
<포도나무 농부로서 하나님이 행하시는 한가지는 가지치기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깨끗이 가지치기 하실 때 열매맺는 삶을 위한 우리의 잠재력은 엄청나게 증대된다.>(17)  
이 문장은 우리 안에 잠재력이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 말이다.
잠재력의 소재에 대하여 어떤 때에는 사람에게, 어떤 때에는 하나님에게 있다며 오락가락하는 것을 보면, 그는 잠재력의 소재가 어디인지에 대한 확신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여기 한가지 단서가 있다. 그에게 하나님은 어떤 분인가? 존 맥스웰이 하나님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생각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있다.
<우리들이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무한한 자원 – 하나님 그분의 능력- 을 어렴풋이 보게 될 때, 바로 그때만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소명이 무엇이든 우리가 그것을 감당하기에 부족함이 없다는 확신을 갖게 된다.>(15)
그는 믿음이 좋은 것인지 하나님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처럼 말한다. 이로 미루어 보아 그는 잠재력은 하나님에게 있으나 우리 인간이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힘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 듯 하다.    

이렇게 존 맥스웰이 우리 인간이 가지는 잠재력이 하나님에게 있으며,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처럼 말하고 있으나, 실제 그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그의 진정성을 파악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잠재력을 어떻게 개발할 수 있는가에 대한 방법을 알아 보면 된다. 잠재력이 하나님에게 있고 그것이 우리 인간에게 전해져 오는 것이라면,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잘 정립해야 한다. 그가 말한 대로 “우리는 올바른 근원에 연결될 때 열매를 맺게 된다.” 그래서 그 잠재력이 전해지는 통로가 막히지 않도록 하나님과의 관계를 정립하는 방법을 취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 잠재력이 우리 인간에게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면 사정은 달라진다. 그러니 그가 잠재력을 개발하는 방법을 어떤 것으로 하는가 살펴보면 그의 진정성을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자, 그럼 존 맥스웰은 잠재력을 개발하는 방법으로 어떤 방법을 제시하고 있는가?
이에 대해 그는 여러 가지 방안을 제시한다. “어떻게 하면 자신의 잠재력을 풀어 놓을 수 있을까? 여기에 몇가지 방법이 있다.”(30)고 하면서 다음의 네가지 방안을 제시한다.

첫째, 찾으라는 것이다.  
<둘러보아서 당신에게 모범이 되는 사람을 찾아 내는 것이다. 누군가 당신을 알게 되었기 때문에 과거에 그보다 더욱 더 자신의 잠재력을 한껏 발휘하는 사람이 있는가? 부모로서, 고용주로서, 목사로서, 다른 사람의 본보기가 되어 결과적으로 그들의 잠재력을 발휘에 기여하는 일보다 더 멋진 일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다른 사람이 존경하는 사람이 되는 것보다 더 도전적인 일은 있을 수 없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우리보다 조금만 더 크고, 조금만 더 잘하는 사람이며, 그들과 함께 나눌 시간이다.> (30)

그렇게 하여 숨겨진 잠재력을 개발하고자 한다면 당신이 내어 뻗을 수 있도록 해 줄 수 있는 사람과 시간을 보내라는 것이다. 바로 그 사람으로 인해서 다른 사람의 잠재력이 개발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그가 제시한 잠재력 개발방법은 하나님과의 관계에 주안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사람임을 염두에 두고 다음 글을 읽어보자.  

둘째 방법은, 포기하라는 것이다.
<포기하라. 마침내 되고자 하는 모습을 이룰 수 있으려면 자신의 잠재력을 십분 발휘하여 순간 순간 현재의 자기 자신전부를 포기해야만 한다.> (31)
존 맥스웰은 지난번에 내가 짚어 말한 바 있는 ‘리더’다운 말을 하고 있다. 어떻게 하면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에 ‘잠재력을 십분 발휘’하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말은 누가 못할까? 어떻게 하면 집안의 경제적 형편이 나아질 수 있는가 하는 물음에, 돈을 많이 벌면 경제적 형편이 나아진다고 대답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또한 이것 역시 사람 편에서 취할 수 있는 방법이다.  

세째는, 불붙이라는 것이고 넷째는 나타내라는 것이다.
<당신 생애에서 직면하는 도전만큼 당신의 잠재력을 한껏 개발시켜줄 수 있는 조력자는 없을 것이다. >(32)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에 만나게 되는 여러 가지 도전들을 잠재력을 개발시켜 주는 것으로 생각하라는 것이니 이 역시 하나님과는 관계가 없는 방법이다.

그렇게 찾고, 포기하고, 불붙이고 나타낸다면 우리 사람은 (잠재력의) 위로 오르게 될 것이라고 한다.
“우리는 우리들 잠재력의 꼭대기까지 오르게 될 것이다.” (32)

자, 존 맥스웰이 말한 바 잠재력을 개발하는 방법이 인간의 방법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그는 잠재력이 사람에게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그가 앞에 말한 바 우리 인간의 잠재력은 무한한데 그것은 예수님 때문이다, 라고 말하는 것은 그의 본심이 아닌 것임을 알 수 있다.  결국 그는 잠재력을 하나님과 관련시켜 말하지만 실상 인간이 가지고 있는 잠재력을 인간의 방법대로 한번 개발해보자는 것이다. 그러니 하나님으로 포장되어 있으나 막상 그 포장을 열어보면 그 안에는 전혀 하나님이 들어 있지 않은 것이다. 여기 저기 성경을 인용하며 마치 성경적인 것 위장하고 있으나 그 성경구절은 위장용이다. 그러니 존 맥스웰의 책을 읽을 때에 조심을 해야 한다.  

자, 그렇게 잠재력을 개발하는 방법을 여러 가지로 말한 존 맥스웰은 아무래도 미심쩍었던지, 다시 한번 잠재력에 대하여 언급을 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자못 다르다.

“우리는 어떻게 성공을 향해 내뻗을 수 있는가?”(48) 란 질문을 하고는 그에 대한 대답을 다음과 같이 네가지로 하고있다.
당신의 잠재력을 발견하라. 당신의 잠재력을 헌신하라. 당신의 잠재력을 개발하라. 당신의 잠재력을 결코 제한하지 마라, 이렇게 네가지이다.  

결국 맥스웰의 주장은 우리 인간의 어딘가에 잠재되어 있는 잠재력은 우리가 노력하면 개발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가 그렇게 두번씩이나 제시한 잠재력 개발 방법이 실행 가능한 것인가는 논외로 하고 그렇게 해서 잠재력을 개발하는 일이 끝났는가 싶었는데 또 다시 그는 잠재력을 언급한다. 이번에는 잠재력을 ‘비전’과 연관시켜 말한다.
<그러나 위대한 잠재력의 소유자들은 무엇보다도 먼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아야 하며, 사실 그것은 대개는 실망스럽다.>(55)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비전을 받고 그 비전이 우리를 멈춰 서게 할 때, 우리는 우리의 위치를 볼 뿐만 아니라, 감사하게도 우리의 잠재력 까지도 보게 된다. 우리는 우리의 가능성을 보게 된다. 하나님은 우리를 믿으신다는 사실과, 우리에게 우리 자신과 우리의 문제를 내보여 주실 때는 언제나 우리의 잠재력도 함께 보여주신다는 사실은 희소식이 아닐 수 없다.> (55)

여기까지 읽으면 그저 평범한 비전 이야기요, 잠재력의 이야기이다. 그런데 다음 말은 심각한 이야기이다.
<우리가 따라야 할 꿈이 없다면, 우리가 성취해야 할 비전이 없다면 우리는 잠재력을 결코 발휘하지 못한다.> (60)

이게 무슨 말인가? 아까 읽은, 같은 책의 앞부분에서 잠재력을 개발하는 방법을 여러가지로 언급했는데 지금에 와서 비전이 없다면 결코 잠재력을 발휘하지 못한다고 하니, 앞의 말을 철석같이 믿은 사람들은 이런 억울할 데가 어디 있을까? 비전이 없으면 결코 잠재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면 이것을 먼저 이야기해야지, 앞에서는 비전이란 말은 한마디도 내비치지 않은 채 잠재력을 개발하라느니 어쩌라느니 했으니, 그것은 모두 소용없는 말이 아닌가?

이상 살펴본 바와 같이, 안타까운 일이지만, 존 맥스웰은 ‘잠재력’에 대하여 자기가 하고 있는 말이 무슨 말인지도 모르고 있는 모양이다. 과연 그가 잠재력에 대하여 깊은 생각을 해 보았는지, 그 말들을 전후를 살펴가면서 하고 있는지 조차 궁금한 노릇이다.  

그는 잠재력에 대하여 한가지 더 말을 하고 있는데, 성공에 대한 정의를 내리는 중에 언급을 하고 있다.
<성공이란 말은 너무 왜곡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성경적인 의미의 성공을 파악해야 한다.>(37)  
옳거니!! 바로 우리가 찾던 것이 여기에 있다. 오늘날 성공이란 말이 얼마나 오용되고 있는지, 정말 문제가 심각하지 않은가? 그러니 리더십의 대가인 존 맥스웰이 여기에서 속시원하게 말해줄 것을 기대하고 그 다음 말을 읽어보자.

<성공이란 마음과 뜻과 영혼과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우리의 묻혀있는 잠재력을 개발하도록 하는 것, 경건한 목표를 세우고 차선의 만족에 안주하지 않으며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모든 것으로 최선의 삶을 사는 것,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최대의 죄악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잠재력을 십분 발휘하고 있지 않는 것임을 깨닫는 것이다.> (37)
        
잠재력을 개발하는 것을 그는 성공이라고 정의한다. 게다가 잠재력을 발휘하고 있지 않은 것이 하나님 앞에 죄라고까지 말한다. 이게 사실이란 말인가?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하여야 그 죄악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아니 ‘어떻게’를 생각하기 이전에 잠재력을 몇 퍼센트나 발휘해야 죄악에서 벗어나는 것일까? 20%? 30%? 또 그것은 누가 정하는 것일까?
잠재력을 개발하지 않는 것이 하나님 앞에 죄악인데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읽었던 수많은 문학 작품중에서 신부를 찾아가 ‘저는 잠재력을 15%밖에 개발하지 못했습니다’라고 죄를 고백하는 장면을 어찌 읽어본 적이 없을까? 작가들의 ‘잠재력’에 대한 인식 부족일까? 아니면 나의 독서량 부족 때문일까?
  
정말 존 맥스웰은 잠재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 죄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필자가 보기에는 이제는 그렇지 않다. 아니 그는 언제 자기가 그런 말을 했는지조차 잊었을지 모른다.
정말 그가 잠재력을 발휘하지 않는 것이 하나님 앞에 죄악이라고 생각한다면, 그의 책에서 주장한대로 그것이 죄라고 생각한다면 그는 그것을 지금도 계속해서 부르짖어야 한다. 애타고 정말 안타까운 마음으로 성도들을 향해 부르짖어야 한다. 어서 빨리 그 죄악에서 벗어나라고 ….그런데 그의 행보를 보면 그렇지 않다. ‘열매 맺는 지도자’에서 한번 그 말을 언급해놓은 후로는 후속조치가 없다. 심지어 같은 책에서도 후반부에 가서는 한마디도 하질 않는다. 후에 발간되는 그의 책들을 보면  ‘잠재되어 있는 리더십’이란 말이 많이 보인다. ‘잠재력’이란 말은 그의 다른 책에서는 어쩌다가, 가뭄에 콩 나듯이 볼 수 있을 정도이다. 그러면, 이제 잠재력을 개발하지 않는 죄는 죄의 항목에서 삭제된 것일까? 그 뒤로 이에 대한 공식적인 언급이 없으니 독자로서는 답답한 노릇이다.

그 책 이후에는 가뭄에 콩나듯이 잠재력이란 말을 사용하지만 그의 생각이 어디로 튈지 모르니, 그 중 한가지만 살펴보도록 하자.
<사람들이 자신의 잠재능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는 것은 모두 지도자 때문이다.> (리더십의 법칙, 144)
이 무슨 마른 하늘에 벼락 떨어지는 소리? <열매맺는 지도자>에서는 잠재력을 개발하지 못하는 것이 각자 개인의 책임이라고 하면서 그렇지 못한 것은 하나님 앞에 죄악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거기에 비전이 없으면 잠재력을 개발하지 못한다 하지 않았는가? 그랬는데 이번에는 잠재력을 개발하지 못하는 것이 모두 지도자 때문이라니, 도대체 어느 장단에 춤을 추어야 한단 말인가? 가만 있자, 그렇다면 내가 잠재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 누구의 죄인가? 지도자가 책임질 일인가 아니면 내가 책임질 일인가?    

그러니 혹시 지금 서점에 가서 존 맥스웰의 책을 사려고 결심한 분이 있다면, 잠시 기다리기 바란다. 책을 쉬지 않고 쓰는 것을 보니 존 맥스웰은 지금 연구중이다. 조급하게 굴지 말고 기다리다가 연구가 다 끝나 그의 책 완결판이 나온 후에 사보는 게 좋을 듯 하다. 혹시 존 맥스웰이 연구를 열심히 한 결과 이제 ‘리더십을 발휘하지 않는 것이 하나님 앞에 죄악’이라고 주장할지도 모르니 말이다. 그는 충분히 그런 주장을 하고도 남을 정도로 ‘잠재력’이 있는 리더라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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