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주(脚註) 없이 성경 읽기' (2) -- 하와, 선악과를 향해 팔을 뻗다.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창3:6)

창세기에는 뱀과 대화를 마친 후에 선악과 앞에 선 하와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는 장면이 나옵니다. 바로 창세기 3장 6절의 말씀입니다.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뱀과 대화를 마치고 난 직후일까요, 아니면 어느 정도라도 시간이 흐른 뒤일까요? 하와가 선악과 앞에 서서 과일을 바라보고 있는 장면을 성경기자는 마치 옆에서 지켜본 것처럼, 그리고 하와의 마음속을 들여다 본 것처럼 묘사하고 있습니다. 하와의 마음에 선악과의 열매가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게 보였다는 것입니다.

정말 탁월한 심리묘사입니다. 하와의 마음을 자세히 또한 의미있게 그려놓고 있습니다. 의미가 있다는 것은 바로 하와 마음의 변화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하와 마음의 변화란 어떤 것일까요? 그것을 알기 위해서는 뱀과 대화를 나누기 전에 하와가 선악과 나무에 대하여 가지고 있던 생각이 어땠는지를 알아야만 합니다. 비교를 해보면 무언가 변화를 알아 차릴 수가 있으니까요.  

그전, 즉 뱀과 대화를 나누기 전에 하와는 선악과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을까요?
지금 보이는 것처럼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러운 나무였을까요? 하나님이 하와를 시험하기 위해 다른 나무들보다 훨씬 더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탐스럽도록, 그렇게 만들어 놓으셨을까요? 아니면 다른 나무들하고 별반 다를 것이 없는데, 그 때 그 시각 하와의 눈에만 그렇게 보인 것일까요?

성경기자는 이에 대하여 힌트를 주고 있는데, 창세기 2장 8- 9 절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에덴 동산에 있는 모든 나무는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다고 기록하고 있으니 선악과 나무도 그렇다는 말입니다. 그런 선악과 나무가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다”라는 말은 누구에게 그렇다는 것일까요? 보기에 좋고, 먹기에 좋다는 것은 누구를 중심으로 한 말인가요?  
그 답은 하나님 혹은 사람, 그렇게 두 가지로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 가능성은 하나님.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고 잡수시기에 좋다는 말입니다. 일단 그렇게 해석을 해 보면 앞의 부분, 즉 ‘보기’에는 잘 어울리나 그 다음 부분 즉 ‘먹기에’에서 걸립니다. 하나님이 구태여 그 나무에서 나는 과일을 잡수실 필요가 있을까요? 없지요. 또 한국어 번역본으로 살펴보아도 하나님이 이 문장의 대상이라면 존대어를 사용하지 않은 것이 걸립니다. 창세기 1장 4절에는 “그 빛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하여 하나님과 관련된 말은 존대어를 쓰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러니 이런 때에는 한글 번역본이 쓸모가 있는 셈입니다. 성경을 한글로 번역하셨던 분들이 2장 9절의 말씀의 대상자로 하나님을 생각지 않았다는 아주 좋은 증거입니다.  

그러면 이제 남은 가능성은 사람입니다. 사람이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다”고 한 것입니다. 그러니 그 당시 있던 사람에게 선악과를 포함한 나무들은 모두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게 보였다는 말입니다.

그럼 그때 에덴에 있던 사람들은 누구 누구였지요? 창세기 2장의 서술에 의하면 하와는 시간적으로 2장 8-9절의 서술이 있은 후에 에덴에 등장합니다. 그러니 2장 9절에서 에덴동산에 있는 나무들이 누가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게 보였는가 하는 질문에는 아담 혼자라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아직 하와는 이세상에 나오기 전이니까요.

그럼 하와가 나무들에 대하여 품었던 생각들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바로 뱀과 대화를 나누는 과정에서 하와가 한 말이 있는데 그 말속에서 하와의 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뱀은 하와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이런 뱀의 물음에 하와는 답을 하는데 동산에 있는 모든 나무에 대하여 이미 잘 알고 있음을 내비칩니다.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열매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창3: 2-3)

그러니 하나님이 아담에게 동산 나무에 대한 당부의 말씀을 하실 때에 하와는 없었지만 뱀과 이야기를 나누는 시점에서는 하와가 동산에 있는 모든 나무에 대하여 어떤 정보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 정보는 어떠한 정보였을까요? 아담이 가지고 있는 것과 동일한 수준의 정보였을 것입니다. 따라서 하와가 그 나무들에 대하여 가지고 있던 생각은 아담이 가지고 있던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다고”라는 생각과 같은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뱀과 대화를 나누기 전에 하와가 가지고 있던 생각은 선악과는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중의 하나인데 특별히 하나님이 먹지 말라 한 나무였습니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던 하와가 뱀과 대화를 마친 다음에는 어떻게 변했는가? 그게 바로 창세기 3장 6절의 말씀입니다.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뱀과 대화를 나누기 전에 나무에 대하여 품었던 생각과 무언가 달라지긴 달라졌지요?

먼저 그 나무에 대하여 가지고 있던 생각의 순서가 달라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전에는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게 보이던 나무였는데 지금은 그 순서가 바뀌어 먹기에 좋고 보기에 좋은 나무로 생각이 되는 것입니다. 여기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이란 말이 3장 6절의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와 똑 같은 말입니다. ‘아름답다 (pleasing to the eye)’는 말은 ‘보암직도 하다’, ‘먹기에 좋은( good for food)’이란 말은 ‘먹음직도 하다’와 같은 말입니다. 영어로는 두 단어 똑같이 번역되어 있고 원어로는 ‘먹기에 좋은’과 ‘먹음직도 하고’라는 말이 똑 같은 말입니다.
    
생각의 순서라는게 결코 우습게 볼 일이 아닙니다. 가장 먼저 마음속에 떠오르는 것이 무엇인가에 따라 보이는 대상의 속성이 달라집니다. 화가가 빵을 보면서 예쁘다, 라고 느끼면 그 빵을 대상으로 하여 그림을 그릴 수 있지만 먹음직스럽다, 라고 먹고 싶은 마음이 든다면 어디 그림이 제대로 그려지겠습니까? 그림을 대충 대충 그린 다음에 빵을 먹어 치울 것입니다. 하와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껏 먹을 것에 대하여 필요성을 심하게 느끼지 않았던 하와이기에 나무를 볼 때에는 그 나무에 열려 있는 과일이 ‘먹기에 좋은’이라는 생각보다는 보기에 아름다운 나무로 여겨졌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 생각의 순서가 바뀌어 그 나무의 열매를 먹고 싶은 생각이 먼저 들게 되었으니 이 얼마나 엄청난 변화입니까?

그 다음에 변한 것이 또 있습니다.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이란 말 뒤에 하나 더 덧붙여진 것이 있습니다. 바로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입니다. 그전까지 나무는 보기에 좋고 먹기에 좋은 것에 불과했는데 이제 거기에 더하여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로 보이는 것입니다. 그것은 뱀이 말하기를 너희가 그 나무 열매를 먹으면 너희의 눈이 밝아진다는 말에 선입견이 생긴 것입니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과일을 보니 당연히 그렇게 보이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의 순서가 바뀌고 그 생각에 다른 것이 덧붙이게 되었다는 것은 하와가 뱀의 말을 듣고 그 과일을 바라볼 때 어떤 마음으로 변하게 되었는가를 잘 나타내 줍니다. 그래서 아름답고 지혜를 줄만한 .. 그런 생각은 뒷전이고 우선 먹고 싶은 생각이 가장 앞섰기에 ‘먹음직도 하고’가 먼저 나온 것입니다.. 뱀의 말을 듣고 보니까 바뀐 것입니다. 그러니 3장 6절의 기록은 자꾸만 그 과일을 먹고 싶어하는 하와의 마음을 잘 표현해 주는 문장입니다.

'아, 정말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탐스럽구나, 저 열매를 먹기만 하면 정말 우리도 하나님처럼 될 수 있을 것 같구나!' 그렇게 마음 속에 하나님처럼 되려는 교만한 욕망이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시각 하와가 선악과를 따 먹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 뒤에 아담과 같이 이야기를 할 때에도, 동산을 걸으며 산책을 할 때에도 온통 선악과를 먹고 싶은 마음밖에 떠오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와의 머리 속은 온통 선악과를 먹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 차 있으니 말입니다. 이게 바로 생각이 사람을 지배한다는 것입니다.  

온통 하와의 마음을, 선악과를 먹고 싶은 마음이 지배하고 있었으니 창세기 3장 6절, 전반절과 후반절 사이에 시간 간격이 있던 없던 결과는 마찬가지입니다. 하와에게 선악과는 먹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언제 먹느냐의 문제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이윽고 하와는 선악과를 향해 팔을 뻗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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