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게 영적 리더십은 없다 (27)
-  리더십 용어 풀이 몇가지  

우리 기독교인들은 너무 순진하다. 예수를 믿는 자들이 지니고 있는 특성 중에 순진하다는 것이 있지 않는가?
그래서 리더십에 대해서 너무 순진하게만 생각하고 있다. 그저 사회의 빛과 소금이 되라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면 사회에서 리더가 되는가 보다, 라고 생각한다. 또 리더가 되기 위해서 좋은 성품을 계발하면 교회에서나 사회에서나 모두 리더가 되고 결국은 그것이 하나님을 믿는 자로서의 모습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너무 순진한 생각이다. 또한 많은 목회자들은 리더십이 교회를 어떠한 모습으로 변질시킬 것인가에 대하여는 별 관심이 없다. 그들의 목표는 오직 목회가 잘 되고, 교회를 성장시킬 수만 있다면 그게 전부다. 꿩 잡는 게 매라고, 어떻게 하든지 교회부흥만 된다면, 그것이 리더십이든 다른 무엇이든 좋다는 것이다. 그게 문제다.      

그래서 리더십에 대하여 막연히 ‘좋은 것’인가 보다 하고 방심하는 사이에 리더십 이론은 마치 간밤에 진주한 점령군처럼 들어와 이제 모든 것을 관장하는 무소불의의 권력을 지닌 존재가 되었다. 그래서 리더십 진영의 총사령관인 존 맥스웰이 틈만 나면 하는 말, “누차 강조하지만 모든 것은 리더십에 달려있다.” (리더십의 법칙, 82)고 말하는 것은 점령군의 포고문에 다름 아니다.

리더십 이론을 점령군이라 표현하는 것은 시에서 빌려온 감상적인 표현이 결코 아니다. 이것은 실제상황이다. 먼저 리더십 진영은 목회자들과 성도들을 거의 포로로 삼았다. 성장이라는 미끼로 목회자들을, 성공이라는 올가미로 성도들을 포로로 만들어 놓았다. 그래서 모드들 그런 달콤한 미끼에 홀려서 리더십 진영이 내려주는 ‘리더’란 관직을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 즐기고 있다. 이제 목회자들은 성경대신에 리더십 책을 서재에 잔뜩 쌓아두고 거기에서 하나씩 골라내어 강단에서 선포하고 있다. “우리의 사령관 존 맥스웰의 말에 의하면………”
그래서 이제 성경말씀은 그저 리더십 이론을 받쳐주는 보조자료로 전락하고 말았다.

“성경의 주된 관심이 리더십이 아닌데 성경을 쥐어짜듯 하여(?) 리더십 이론을 도출하려는 것은 위에서 언급한 첫 번째 오류를 범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하나님 나라와 리더십, 64) 라고 말하던 그들은 이제 성경을 쥐어짜듯 하여 리더십 이론을 성경에서 찾아내는 단계를 이미 지났다. 이제는 오히려 거꾸로 리더십 이론에서 찾아 낸 것들을 성경의 원리라고 강변하는 단계에 와 있다.

<콜린스가 도달한 결론들, “핵심은 보존하되 과감한 개혁을 하라”, “많은 것을 시도해보고 잘되는 것에 집중해라”, “인재를 내부에서부터 양성해라”, “시간을 알려주는 것보다는 시계를 만들어 놓으라”는 성경의 원리와도 상통하는 리더십의 법칙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칼, 162-163)

그러니 이제 리더십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는 사람들은 그들이 말하는 것을 잘 새겨 들어야 한다. 곧이 곧대로 들어서는 안 된다. 반드시 한번씩 걸러 들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그들이 사용하는 용어들의 진짜 의미를 한번 추적해 보았다.

<영향력>

그들은 리더십을 정의하기를 ‘영향력’이라고 한다. 이때 그들이 말하는 영향력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존 맥스웰이 말한 것처럼, 모든 사람은 누구에게나 영향을 주며, 우리자신은 누군가에게 영향을 받고 있다는 식으로 리더십의 영향력을 순진하게 이해하면 낭패를 당한다. 그렇게 영향력은 그렇게 가만 있어도 나로부터 다른 사람에게, 또 다른 사람으로부터 나에게 전달되어 오는 게 아니다. ‘나’도, ‘그들’도 무언가 이익되는 것이 있을 때에만 그 영향력을 수용한다. 그 영향력이 나에게 이익이 없을 때에는 그 내용이 아무리 좋은 것이라고 할지라도 그 영향력을 받아 들일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영향력을 남에게 전하기 위해서는 부득이 어떤 방법을 써야만 한다.

존 맥스웰은 영향력의 확장 방법으로 다음과 같은 방법을 제시한다.
“당신은 머리 있는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 그러나 그들에게 충격을 주는 것은 당신이 그들에게 가까이 있을 때에만 가능하다.”

그렇게 말한 다음에 그 방법을 제시한다.
“1. 이번 주에 당신과 30분 이상 시간을 보낸 사람들을 빠짐없이 적으라.”
그 다음이 중요하다. 그의 진면목이 나오는 대목이다.
“2. 그 시간의 주도권은 당신에게 있었는가 아니면 그들이었는가?”  (리더십의 법칙, 227)

여기 주도권이란 말에 언더라인해야 한다. 심지어 30분 시간을 같이 보낸 사람들 사이에서도 주도권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이게 바로 그들이 말하는 영향력이란 용어의 속 뜻이다. 영향력은 그들에게 ‘주도권을 행사한다’는 말이다.

이 말이 어떻게 실제에서 사용되었는지 그 실례를 보기로 하자.
<결국 청빙 위원장과 몇몇 청빙 위원들이 나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부목사 후보자를 공동의회에 내세웠다. 결국 나의 리더십은 말할 수 없는 타격을 받았다. > (교회를 혁신하는 리더십, 38)    
결국은 리더십은 누구의 영향력이 더 센가를 다투는 기(氣)싸움이다.

<마지막 철야 기도시간, 기도를 마칠 무렵 갑자기 내입에서 찬양이 튀어 나왔다. “승리는 내 것일세, 승리는 내 것일세, 구세주의 보혈로서 승리는 내 것일세,,,,” 하나님이 내입에 승리의 찬양을 올려주셨다.  ….. 공동의회가 열리는 날이었다. ……결국 350대 50으로 부목사 청빙 건이 부결되었다. 하나님은 공동의회를 통해 흔들리는 나의 리더십을 새롭게 세워주신 것이다. ” (38-39)

그래서 자기가 ‘주도권’을 가지고 조직의 일을 처리해 나갈 수 있으면 영향력이 있다 라고 말한다. 그래서 리더십은 결국 자기가 주도권을 얼마나 행사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자기의 주도권이 행사되지 못하게 되면 그들은 리더십이 타격을 받았다고 말하게 되는 것이다.

<비전>

이 비전에 대하여는 이미 지적한바 있다. 그럼 이 말이 가지는 속 뜻은 무엇인가?

<어떤 이들은 주님을 위해 큰 꿈을 꾸고 위대한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설교하지만, 사실 그것이 하나님의 이름을 빙자한 자신의 야망 성취수단일 수도 있다는 점, 역시 주의하여야 할 부분입니다. 과연 우리의 거창한 목표, 원대한 꿈으로 하나님을 감동시킬 수 있을까요?> (하나님 나라와 리더십, 51)

스펄전은 비전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고백을 한다.  
<마을 한복판에 이르렀을 때였다. 갑자기 큰 음성 같은 것이 귓전을 때렸다. 나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어쩌면 단지 착각이었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생생하고 강렬한 느낌이었다. 마치 "너를 위하여 대사를 경영하느냐? 그것을 경영하지 말라"(렘 45:5)는 음성이 들려오는 것 같았다. 그 순간 나 자신을 다른 각도에서 보게 되었고, 내면의 동기와 의도를 깊이 성찰할 수 있었다.> (스펄전의 일화 중에서)  

우리의 비전이 곧 하나님의 비전이 아니라는데 문제가 있다.
비전은 곧 ‘비전이라는 이름으로 투사된 리더자신의 내적 야망과 욕심’에 다름이 아니다. (하나님 나라와 리더십, 50)

<인간관계>

그런데 그렇게 리더십은 영향력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정작 한 페이지만 더 들어가면 딴소리를 하기 시작한다.
정영진 목사는 <사람이 모이는 리더 떠나는 리더> 라는 책에서 이런 말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세계적인 동기부여가 브라이언 트레이시는 “조직이 성공적으로 움직여 나가려면 리더와 조직원들의 인간관계가 90%을 차지한다."고 했다.> (20)
또 이런 말도 한다.
<미국?카네기 공과대학 인간연구소에서 실패자 1만명을 조사한 적이 잇다. 실패의 원인을 분석한 결과, 전문지식이 부족해서 실패한 사람은 7%에 불과했다. 실패자의 93%는 인간관계에서 실패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21)    

인간관계가 문제라는 말은 결국 처세술의 이야기로 귀착이 된다. 그래서 한홍목사도 드디어 그의 책 <거인들의 발자국> 중반을 넘어서면 속내를 들어내 보인다. 리더십을 영향력이라 주장하던 사람이 갑자기 말을 바꾸는 것이다. 리더십이 사람을 다루는 기술이라고 고백을 한다.
<리더십은 사람을 다루는 기술이라 할 수 있고>(151)
<리더십은 어렵다. 사람을 다뤄야 하는 기술이기 때문이다.> (232)
<그러니 사람들을 다뤄야 하는 리더십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알 수 있지 않은가? >(233)
<앞서 말했듯이 리더십은 사람을 다루는 것이기 때문에 몹시 어려운 일이다.> (255)

이러한 고백들은 결국 존 맥스웰의 다음과 같은 말로서 매듭지어진다.
<성공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인은 다른 사람들과 잘 지내는 방법을 터득하는 것이다 라고 테디 루즈벨트는 말했다.> (리더십의 법칙, 232)

그들이 말하는 리더십은 곧 인간관계를 말하며, 인간관계는 곧 처세술이다. 그래서 리더십은 다름아닌 처세술이다.

이렇게 리더십 주창자들은 그들만이 아는 의미를 속에 감춘 채 교언영색으로 꾸며진 말들로 우리들을 유혹하고 있다, 지금도. 그래서 우리는 그들의 말에 숨어있는 의미를 새기면서 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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