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게 영적 리더십은 없다. (29)
- 영적 리더십은 어떻게 행사되는가?

일반 리더십에서는 지난번에 말한 바와 같이 직위에 근거한 권한을 가지고 리더십을 일차적으로 행사하게 되어있다. 그럼 영적 리더십의 경우는 어떠한가? 마찬가지로 지위가 그 역할을 하는가? 영적 리더십 주창자들은 그 누구도 이에 대해 대답을 하지 않는다. 대답을 하지 않은 이유는 그들 스스로 거기에 대한 의문이 없었기 때문이다. 의문이 없었으니 당연히 질문도 없을 수밖에 …

[영적 리더십에서는 리더십이 어떻게 행사되는가?]

한홍목사는 영향력의 행사에 대해 이렇게 말을 한다.
<내가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라, 내가 실력과 인격을 갖춘 사람이 되면 사람들이 자기도 모르게 나의 영향력을 받는 것이다. 즉, 내가 무엇을 하느냐(doing)의 문제가 아니라, 무엇이 되느냐(being)의 문제인 것이다. > (거인, 254)

그러나, 리더십은 그냥 저절로 행사되는 게 아니다. 리더십을 가진 사람이 있으면 그 밑으로 사람이 저절로 구름처럼 몰려와 무조건 순종하고 복종하는 게 아니다. 리더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팔로워들이 리더의 인품에, 정직성에 감화되어서 자기의 주장을 접고 리더의 말에 순종하며 따라가는게 결코 아니다. 현실에서는 한홍목사가 말한 것처럼 그런 일이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그들은 애써 거기에 대해 눈을 감는다. 리더가 되기만 하면 바로 그런 일이 일어날 줄 알고 있는 것일까?

그래서 영적 리더십의 행사방법에 대해서도 고찰이 필요하다. 그러면 그 행사 방법은 무엇일까? 그런데 여기 문제가 있다. 영적 리더십 이론이 일반 리더십이론에서 사용하는 도구를 받아들였다는 것은 이미 말한 바가 있다. 그래서 일반 리더십 이론이 가지고 있는 도구의 한계 때문에 영적 리더십은 도대체 ‘영적’이지 않다고 이야기하였다. 그렇게 영적 리더십 이론은 일반 리더십 이론에서 사용하는 도구를 가져왔는데, 미처 생각지 못하고 가져 오지 않은 것이 하나 있다. 바로 리더십을 어떻게 행사할 것인가의 방법론이다. 그것을 가져오지 못했다. 리더십의 성과를 확보하게 하는 근본적인 그 행사방법을 잊고 가져 오지 않은 것이다. 그러한 행사방법이란 바로 지위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다. 영적 리더십 주창자들은 그러한 인식이 없을 뿐만 아니라, 지위에 대해 부정하려는 모습조차 보인다.

이에 대한 영적 리더십 주창자들의 주장을 한번 들어보자.
<일단 무엇이 진정한 리더십인지부터 확실히 해야 한다. 그것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무엇이 리더십이 아닌가를 알아야 할 것 같다. 첫째, 리더십은 힘(power)이 아니다. ………..또 리더십은 지위만도 아니다. 우리는 능력도, 인격도 안되면서 높은 자리에 올라 목에 힘을 주는 사람들을 얼마나 경원하는가?>(칼, 30)  
<직위가 반드시 리더십은 아니다> (거인, 28)

비단 한홍 목사만이 아니다. 존 맥스웰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리더십을 추종자를 얻는 능력이 아니라 어떤 지위를 확보하는 능력으로 정의한다. 그들은 지위나 서열 혹은 직함을 추구하곤 한다. 그들이 원하는 자리에 올라갔을 경우 지도자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일반적으로 두가지 문제를 야기한다.> (리더십의 비밀, 23)  

<사람은 어떤 지위에 임명됨으로써 통제력을 가질 수 있다. 그는 그 지위를 통해 권위를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진정한 리더십이란 권위를 능가한다.> (리더십의 비밀, 30)
<우리들은 대부분 리더십이란 어떤 지위를 갖는 것이라고 배웠다. 그러나 직장내에서 우리는 사람들이 내가 가진 직책 때문에 나를 따르는게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 (리더십의 비밀, 31)

그렇게 그들은 리더십 행사의 기본이 되는 ‘지위’를 부정한다. 그래야만 그들이 주장하는 리더십이 자리를 잡을 수 있고, 그들이 주장하는 리더의 품성에 무게를 둘 수 있으며, 그 방향으로 이론을 전개해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일반 리더십에서 리더십을 “조직 목표의 최적 달성을 지향하여 개인과 집단행동에 영향력을 미치는 것”이라고 정의하거나 “리더십이란 사람들로 하여금 공동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 또는 “리더가 조직 목표를 달성하려고 노력함에 있어서 하위자의 자발적인 참여를 추구하는 사회적 영향과정”으로 정의되고 있는데, 그 중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기 위한 일차적 근거되는 직위가 자리매김할 수 있는 ‘조직’ 과 ‘조직원’을 삭제해 버린 것이다. 그러니 영적 리더십에서는 직위가 작용할 여지가 원천 봉쇄되어 버렸다.

[영적 리더십에서는 지위에 근거를 둘 수 있는가?]

여기 하나 풀고 넘어 가야 할 의문이 있다. 일반 리더십에서도 지위에 근거한 리더십을 지양한다고 하면서도 일차적으로 지위에 근거하여 리더십을 행사한다고 하지 않았는가, 하는 점이다. 그러므로 영적 리더십에서도 역시 지위를 지양하지만, 일차적으로 지위에 근거하여 리더십을 행사할 수 있지 아니한가 하는 의문이다. 지위에 근거한 리더십을 부인한다는 것은 일반 리더십이나 영적리더십에서나 같은 의미로 받아들이면 될 것 아닌가?

영적 리더십 주창자들이 한가지 간과한 게 있는데, 그것은 일반 리더십 이론은 리더십 이론 자체가 독립되어 운영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리더십 이론은 조직론 중의 한 부분에 불과하다. 그래서 리더십 이론이 홀로 서는 게 아니라 조직을 위한 이론으로서, 그것은 조직론의 다른 이론에 의해 뒷받침을 받고 있다. 그래서 리더십 이론은 다른 조직론의 이론들과 연결하여 운영이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영적 리더십은 리더십 이론만을 떼어 오는 바람에, 살만 떼어 온 격이다. 일반 리더십에서는 그것이 몸에 연결되어 있어 그 살 속으로 피를 통해 영양분이 공급된다는 것이다. 살만 따로 떼어 놓으면 피가 통하지 않아 더 이상 다른 기관에서 영양분을 받지 못하는데, 아직 몸에 붙어 있는 살들이야 그대로 다른 장기, 조직의 도움을 받아 영양분을 받을 수 있는 이치와 마찬가지로 일반 리더십 이론은 조직론의 다른 부분과 분리해서 운영될 수가 없다. 그래서 일반 리더십 이론에서는 리더십행사에 대하여 방법론을 굳이 논의할 필요가 없다. 조직론의 다른 부문에서 리더십이 행사할 근거가 주어지기 때문이다.  

결국, 일반 리더십은 조직의 힘에 의해 뒷받침을 받는다. 그래서 일반 리더십 이론에서 리더십을 행사하기 위하여 ‘지위’에 근거한다는 말을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은 조직의 생리상 이미 전제되어 있는 것이기에, 굳이 리더십 분야에서 다시 ‘지위’에서 우러나오는 ‘권한’을 언급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일반 리더십은 굳이 지위에 근거한 리더십을 강조하지 않아도 이미 다른 차원에서 ‘지위’에서 나오는 리더십이 확보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영적 리더십이 통용되는 교회에서는 다른 조직체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이 지위에 근거한 리더십이 있을래야 있을 수가 없다. 왜냐하면 교회의 조직이 ‘지위’를 전제로 한 조직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영적 리더십 이론은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다른 조직이론의 도움을 받기 위하여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다른 일반 조직과 같은 반열로 놓아야 한다. 아니면 혼자서 행사할 수 없는 리더십 이론을 과감히 버리느냐, 의 두 갈래 길중 하나를 택하여야 한다. 그런데 영적 리더십은 행사방법이 확보되지 않은 리더십 이론을 영적 리더십이라는 멋진 이름아래 선택한 것이다. 그래서 영적 리더십은 알맹이는 없는 이상 야릇한 리더십 이론으로 존재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일반 리더십에서 말하는 그 이면의 스토리를 채 알지 못하고 영적 리더십에서는 조직론 중에서 리더십 부분만을 그대로 떼어와 그것만 받아들이는 바람에, 리더십 행사 방법을 챙기지 못한 채 리더십 이론만을 주장하게 된 것이다.  

[그들이 영향력의 행사라고 주장하는 것들]

영적 리더십 주창자들이 영향력의 행사 방법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두 가지가 있는데, 그것들은 영향력의 행사방법이 아니다.
첫번째, 인간 사이의 관계로 인해 영향력을 행사하는 방법이다.
<중요한 것은 관계로 인해 얻어지는 권위이다.>  (리더십의 비밀, 211)
그러나 실상 그것은 리더십이 승인받게 되는 과정 더 나아가서 리더십이 얻어지게 되는 과정을 의미할 뿐, 그것이 어떻게 행사되느냐의 방법은 아니다.

두번째는, 커뮤니케이션이 영향력을 행사하는 방법 같으나 그것 역시 영향력을 행사하는 과정에서 제기되는 효율성에 관한 사항이지, 행사 방법은 아니다.
그래서 그들은 리더십의 행사방법에 대해서는 침묵한 채 건너뛰고 그 다음 단계로 건너가는 것이다.

[리더십 성공사례들]

리더십이 실제 현장에서는 어떻게 행사되는지 살펴보기 위해서 지난 번에 리더십의 성공사례를 살펴보았다. 거의 사망 직전의 크라이슬러를 살려 놓은 아이아코카의 경우였는데,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러한 기업의 성공사례는 영적 리더십 주창자들이 즐겨 사용하는 예이다. 아직까지 영적 리더십에 관한 책중에서 구체적인 성공사례로 교회를 예로 든 경우는 드물고 대신 일반 기업의 예들을 즐겨 사용하고 있다. 아이아코카는 리더십이란 영향력을 그의 ‘지위’에 근거하여 행사하였다. 그 지위에서 그는 수많은 직원들을 감원하는 등 그야말로 무소불위의 권한을 행사하였다. 영향력이라 일컬어지는 리더십은 일차로 그렇게 행사된다. 그 누구도 그런 사실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리더십을 조직으로부터 분리하고, 지위와 분리하여 다만 ‘영향력’이라고 정의하는 것은 리더십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행사되는가를 생각지 못한 단견의 소치이고, 뜬 구름 잡는 소리에 불과하다.  

[그로 인해 일어나는 현상들]

그런데도 불구하고 영적 리더십 주창자들은 ‘지위’를 부정하고 있다. 그러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교회에서 리더십이 행사되고 있는 모습을 먼저 살펴보자.

교회내에서 리더십이 행사되는 모습을 살펴보면 대부분 지위를 기초로 하여 행사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당회장의 지위에서, 감독의 위치에서, 심지어 성경 공부 리더의 지위에서, 구역장의 위치에서 리더십은 일차적으로 행사된다.  

그런데도 지위에서 나오는 리더십은 열등한 것이라 교회에서는 생각하고 있으므로 자기가 행사하는 리더십은 지위에 근거하여 행사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참된 리더의 품성, 인격에서 나오는 리더십으로 착각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어떠한 일이 벌어지나?

리더의 측면에서는 지위에서 나오는 리더십 행사를 즐기면서도,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리더로서의 품성을 되돌아본다거나, 자기계발 등을 소홀히 하게 된다는 것이다. 한편 팔로워의 입장에서는, 리더가 분명 지위에서 나오는 권한으로 리더십을 행사하는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부인하면서 리더의 품성과 실력에서 나오는 리더십이라고  하니 자연히 리더에 대한 존경의 마음이 줄어 들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리더와 팔로워의 관계가 형식화 될 우려가 다분하다. 일반 조직에서도 리더와 팔로워가 그러한 관계가 된다면 조직에 미치는 영향이 클 터인데 교회에서는 더 말해 무엇하리요? 그 교회의 미래는 암담한 것이다.    

[리더가 되라는 것은 구호에 불과 ]

그래서 리더십을 그렇게 오도한 결과, 영적 리더십에서 그들의 화두는 항상 ‘리더가 되라’는 것이다. 그래서 리더십이란 주제하에 써진 글들을 살펴보면 거의 리더십의 입구에서 뱅뱅 돌고만 있다. ‘리더가 되라’고 외치기만 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영적 리더십에서 다음 단계로 진도를 나가지 못하고 계속하여 리더의 자질만을 문제삼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한계는 바로 거기까지다. 영적 리더십에서 리더십은 행사할 방법이 없으므로 그저 리더가 되라는 구호를 외치고 말 수 밖에 없다. 당신도 리더가 될 수 있다. 리더가 되기 위해서는 이러 이러한 품성을 개발해라. 리더가 되려면 이러이러한 일을 해라. 비전을 가져라, 등등. 그것들은 다만 구호에 불과한 것들이다.

예컨대, 앞에서 이미 언급했지만 한홍목사는 영향력의 행사에 대해 이렇게 말을 한다.
<내가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라, 내가 실력과 인격을 갖춘 사람이 되면 사람들이 자기도 모르게 나의 영향력을 받는 것이다. 즉, 내가 무엇을 하느냐(doing)의 문제가 아니라, 무엇이 되느냐(being)의 문제인 것이다. > (거인, 254)

그러기 때문에 영적 리더십 이론가들의 책에서는 항상 이런 모습들이 보인다.
<이 책의 주된 목적은 리더십의 토대를 형성하도록 돕는 것이다. 따라서 여기서는 당신 안의 리더십을 계발하는데 도움이 될 기초적인 것만을 다루었다.> (리더십의 법칙, 306)
한홍목사의 책 <거인들의 발자국>에서도 무엇이 리더를 리더되게 하는가, 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그러므로 그들은, 이런 일을 한다]

그러므로 영적 리더십에서는 리더십과 관련 없는 것들을 리더십의 영역 속으로 끌고 들어오게 된다. 그래야만 리더십의 역할이 커지게 되고, 그렇게 되어야 그들의 입지가 더 공고해 지기 때문이다. 영적 리더십 주창자들은 그래서 일반리더십에서는 리더십 항목으로 다루지 않고 조직론의 다른 부문에서 다루는 사항들을 리더십의 영역으로 집어 넣기에 바쁘다.      

첫 번째, 그들은 리더를 양성하는 것을 리더십의 영역속으로 집어넣고 있다. 리더를 양성한다는 것은 리더십의 목표가 될 수 없다. 리더 양성은 단지 조직의 목표달성이라는 큰 목표를 위해 거쳐가는 과정에 불과하다. 조직내에 리더를 양성하는 것 자체가 조직의 목표는 아니다. 조직은 리더를 양성하기는 하되, 양성된 리더는 조직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일꾼이지, 결코 조직의 목표 그 자체는 아니다. 결코 조직에서는 리더가 되는 것, 리더의 품성을 기르거나 실력을 쌓는 것을 목표로 삼지 않는다. 그래서 리더를 양성하는 것을 리더십의 주요 과제로 삼는 영적 리더십 이론은 리더십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리더십의 목표가 아닌 것이다. 리더의 양성은 리더십이론에서 주장하거나 맡을 일이 아니다. 이러한 현상은 영적 리더십 이론이 좋은 일은 무조건 모두 리더십 이론 속으로 집어 넣으려 하는 데서 생기는 우스운 일인 것이다.  

둘째로, 더 나아가서 후계를 기르는 것까지 리더십의 영역 속으로 집어넣고 있다. 후계를 기르는 것까지 리더십에서 다루어야 할 문제인가는 묻지 않아도 자명한 것이다.

더 나아가, 요즘 나오는 영적 리더십의 주장을 보면 목회의 거의 모든 분야를 리더십의 영역으로 넣으려고 노력하는 것을 보게 된다.

커뮤니케이션의 문제, 팀목회의 도입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설교도 교육도 리더십이다. 어떤 분은 심지어 건강도 리더십이라고 주장하는 것을 보면 과연 리더십의 끝은 어디까지 일까 궁금해진다. 어디 그뿐인가, 대화의 기술, 시간관리, 유모어도 이제 리더십의 영역 안으로 집어 넣었다. 그들이 말하는 리더십의 영역 그 끝이 어딘가도 궁금한 일이지만 더욱 궁금한 것은 왜 도대체 그들은 그렇게 영역을 넓히려고 하는 것일까 하는 것이다.    

[‘영향력’은 그런 식으로 확대되면 안 된다]

영적 리더십 주창자들은 영향력을 왜 그런 식으로 확장하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단지 리더십의 영역을 넓혀서 영향력을 확장시킬 수 있다면, 그런 영향력쯤은 누가 못 발휘할까?

[리더가 된 다음에는 어떻게?]

그래, 그렇게 리더십 주창자들의 주장을 따라 해서 리더가 되었다 치자, 그 다음은? 어떻게 하라는 말인가?    
정작 리더가 되어서 그가 리더십을 발휘할 방법이 없다면, 리더가 어떻게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단 말인가?

리더십 주창자들이 거기에 대해 침묵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리더쯤 되면 그 정도는 스스로 알아서 하라는 뜻일까? 리더가 되게끔 여러모로, 이 모양 저 모양 가르쳐 놓았으면, 이제 행사방법은 스스로 닦아 나가야지, 그런 것까지 가르치는 것은 리더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것 아닐까? 그들은 리더를 너무 과대평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허기야, 리더가 누구인가? 그들에 의하면 리더는 날개만 달지 않았을 뿐이지 슈퍼맨 아닌가? 슈퍼맨이라면 그 정도는 너끈히 할 수 있으리라.

(이 글을 읽으시고 저의 글 <사람에게 영적 리더십은 없다> 시리즈 두번째 글 <’영적’ 리더십은 이제 어디로 튈까?>를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profi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