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엘 오스틴 비판적 읽기 - 5

서론  – 그의 책들이 수상하지 아니한가? 
들어가는 말 1 - 의심하는 데에도 용기가 필요하다
들어가는 말 2 – 조엘 오스틴 Vs 베르나르 베르베르
들어가는 말 3 – 냉동칸의 절망, 삼인 삼색.

제 1 장 : 그렇게 ‘힘’이 좋더냐?

1.  “광화문 그 사내” vs “행복의 힘”

<바다에서, 칼을 빼든 적들은 기어코 바싹 다가와 월선 공격을 시도했다. 나는 적에게 근접을 허용하지 않았다. 나는 늘 얼마쯤 떨어진 사정거리 안에서 적을 부수었다. 적병의 숫자는 늘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았다. 육전에서처럼, 적병을 하나씩 죽여서 싸움을 정리하는 전술은 상상할 수 없었다. 적의 배를 깨트리고 불 태워서 한꺼번에 7,8백 명씩 물에 처박지 않는 한 싸움을 정리할 수 없었다.> (김훈, <칼의 노래> 2권, 18쪽)

이 글을 준비하는 동안 조엘 오스틴(이하 ‘오스틴’)의 책이 또 한 권 나왔다. 지난 번 글에, 아마 지금쯤 어디선가 조엘 오스틴의 다음 책이 준비되고 있을지도 모른다, 했던 나의 생각이 단순히 기우가 아니었다. 오스틴의 이 책 저 책을 살펴보는 동안 또 한 권의 책이 출판되었으니, 그 속도가 가히 경이롭다. 내가 그의 책을 읽는 속도보다 그의 쓰는 속도가 빠른가 보다.

이번에 나온 그의 책은 이름 붙이기를 <행복의 힘>라 했다. 참으로 아름다운 제목이다. 행복이 힘이 있다는 것! 아니, 행복해서 힘이 있다는 것인가? 그런데 그 제목에서 어디선가 무척 낯익은 느낌이 든다. 데자뷰? 아니다, 부분적 데자뷰다. ‘힘’이 거기에 있었다. 힘있게. 조엘 오스틴의 출세작, <긍정의 힘>에서 유래했음이 분명한 ‘힘’, 그 한 글자가 여기 <행복의 힘>에서도 보인다.

그런 제목이 노리는 것은 무엇일까? 유사품? 아니면 시리즈물? 아니다, ‘힘’을 팔아먹고자 하는 마케팅 전략이다. 일단 ‘힘’이 대박을 쳐서 잘 나갔으니 이번에도 ‘힘’을 집어 넣어 ‘힘’을 한번 맛본 사람들로 하여금 책을 집어들게 하는 고도의 판매전략임이 분명하다. 그 책의 원제는 전혀 ‘힘’과 관련이 없기 때문이다. 원제는 <Every Day A Friday>이다. 번역해 보자면, <매일을 금요일처럼> 정도가 되겠다. 금요일? 만약 우리나라가 주 6일 근무를 했다면 이 금요일이란 말이 낯설겠지만 이제 주 5일제 근무를 하니 금요일의 의미를 굳이 설명할 필요 없겠다.

이렇게 책 제목에 ‘힘’을 집어 넣은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책 제목이 독자들을 유인하는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책 제목이 그렇게 중요하다고? 물론 책을 쓸 때에 가장 중요한 것은 당연히 내용이다. 두말 할 필요도 없다. 내용이 좋아야 좋은 책이다. 그런데 그렇다고 좋은 책이 반드시 잘 팔린다는 공식은 성립하지 않는다. 내용이 좋아야 하지만 그 내용이 독자들을 당기는 힘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실상은 독자들을 끌어 당기는 힘이 있느냐 없느냐는 책을 손에 들게 한 후에 고려될 문제다. 독자로 하여금 수많은 책 중에서 그 책을 뽑아 손에 들도록 하기 위해서는 뭐니 뭐니 해도 책의 제목이 좋아야 한다. 그래야 스쳐 지나가는 독자의 눈을 확 끌 수 있다.

가장 좋은 실례가 바로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라는 책이다. 그 책의 원 제목은 <Wale done : The Power of Positive Relationships>인데 그 책이 한국어판으로 처음 나올 때에는 다른 제목을 달고 나왔다. <YOU Excellent! : 칭찬의 힘 >. 그런데 그 제목은 독자들의 관심을 전혀 끌지 못했다. 나중에 그 책을 고래 어쩌구 하는 제목으로 재출간하자 사람들의 시선이 쏠리게 되었고, 결국은 베스트 셀러가 되었다. 그러나 실상 그 책의 내용을 살펴본다면 <YOU Excellent! : 칭찬의 힘 >이라는 밋밋한 제목보다는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가 그 책에 적합한 제목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니 애초에 제목을 잘못 잡은 것이다.

그런데 그 때 맨처음 달고 나왔던 제목 <칭찬의 힘>에서 ‘힘’은 맥을 못추다가 그만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에 밀려 사라졌는데, 오스틴의 책에 붙은 ‘힘’은 상당히 센 힘을 발휘하고 있다. <긍정의 힘>을 거쳐 이제 <행복의 힘>이라고 외치기에 이르렀으니 말이다.

그런데 실상 오스틴은 자기 책의 한국어 판 제목에 사용된 ‘힘’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미국에서 출판될 때의 제목은 ‘힘’과는 거리가 먼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긍정의 힘>이라는 제목으로 등장하여 공전의 히트를 친 그 책은 <Your best life Now>이다. 따라서 굳이 번역해 보자면 그의 다른 책 <최고의 삶>.이 오히려 제격이 아닌가 싶은데, 그 제목은 나중에 사용되었고, <긍정의 힘>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자 힘을 얻어 장기 베스트 셀러가 되어 오스틴의 이름을 한국에 알리는데 일등공신이 되었다. 그 뒤를 이어, <잘 되는 나>(Become a better you), <최고의 삶>(It’s your time)으로 줄이어서 출판되었고, 이번에 다시 <행복의 힘>이 나온 것이다.

그런데 가만히 책을 살펴보면, 오스틴이 애먼 욕을 먹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왜냐면 실상 오스틴은 ‘힘’에 대하여 말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의 책들은 우리나라에서 번역이 되면서 출판사에서 책을 더 많이 팔기 위하여 제목장사를 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긍정의 힘>이란 제목이 많은 기여를 했다 싶었기에, 그 ‘힘’에 다시 한번 힘을 빌려보려고 이번에 나오는 책에도 전혀 관련이 없는 것이지만 다시 한번 ‘힘’을 썼다. 행복의 힘!

그러니 오스틴은 자기 책의 제목이 그렇게 역할한 것은 아예 모르는 일일지도 모른다. 한국에서 자기 책이 그렇게 인기가 있어 잘 팔리는 이유가 바로 그 ‘힘’이라는 것 때문이라는 것을 안다면, 오스틴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그런데 ‘말이 많으면 실수도 많다’는 옛말이 빈말이 아니다. 그의 책이 비슷한 내용을 가지고 네 권째 책을 펴내다 보니, 맨 처음에는 실수거니 하면서 그냥 넘어간 것들이 그냥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는 것을 드러내 보이고 말았다. 처음 책에서는 그런대로 봐줄 만 했는데 그 다음 책 또 그 다음 다음 책에서도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면 그게 단순한 실수가 아니지 않는가? 

그러니 잘 됐다, 이왕에 그의 책들을 비판적으로 읽어보려던 차에 또 하나의 책이 나왔으니 오스틴의 허점이 보여도, 더 잘 보이게 되었으니, 바라던 바는 아니지만, 잘 된 일이다.

그의 책 네 권을 앞에 두고, 잠시 생각에 잠겨본다. 이것을 어떻게, 어디서부터 시작할까? 망설이는 동안 서재의 책을 하나 집어 들었는데, 김훈의 <칼의 노래>이다. 마침맞게 이순신 장군이 적병을 대하는 자세를 김훈은 다음과 같이 헤아려 적고 있다.

<육전에서처럼, 적병을 하나씩 죽여서 싸움을 정리하는 전술은 상상할 수 없었다. 적의 배를 깨트리고 불 태워서 한꺼번에 7,8백 명씩 물에 처박지 않는 한 싸움을 정리할 수 없었다.>

이순신 장군의 지혜를 잠시 빌려 볼까 하는데, 나는 오스틴의 책들을 대하면서, 도저히 해전에서의 장군의 전략을 따라갈 수가 없다. 한꺼번에 몇 가지씩을 잡아서 제시할만한  역량에 턱없이 부족하기에 그렇다. 그렇다면, 장군이 제시한 육전에서의 전략, 하나씩, 하나씩, 정리할 수 밖에 없다.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고 나니, 장군이 고맙고, 김훈이 고맙다. 

참, 여기서 충무공이 적병을 쳐부수는 피비린내 나는 병법을 들어 나의 입장을 말했다고 나무라지 마시기 바란다. 내가 김훈의 <칼의 노래>를 다시 꺼내 들어 읽어 위의 부분을 발견하게 된 이유는 단순하다. 책 제목 때문에 튄 책 중에 바로 <칼의 노래>가 들어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 책을 집어 든 것이다. 원래 김훈이 그 책 제목을 <광화문 그 사내>라고 작명하여 출판사로 보냈는데, 출판사에서 그 제목보다는 <칼의 노래>가 독자들을 끌어당기리라 해서 그 책 제목을 그렇게 바꾼 것이다.

어떤가? 혹시 <칼의 노래>를 읽으신 분들, 그 책을 읽으면서 <광화문 그 사내>, 서울의 광화문 앞에 딱 버티고 있는 그 사내, 충무공이 연상이 되던가? 아니면 긴 칼 차고 우수에 잠겨 <칼의 노래>를 부르고 있는 충무공이 떠오르던가? 연상되는 충무공의 모습을 감안해 볼 때에 그 책 제목은 아무래도 <광화문 그 사내>보다 <칼의 노래>가 훨씬 좋지 아니한가?  책 제목은 그렇게 ‘독자’가 책을 다르게 대하도록 만든다. <긍정의 힘>, <행복의 힘>도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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