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엘 오스틴 비판적 읽기 - 7

제 1 장 : 그렇게 ‘힘’이 좋더냐?

3. 행복력이 진정한 경쟁력이라니?

‘지금 이곳에서’(now here) 행복할 수 없다면 ‘어디에서도’(nowhere) 행복할 수 없다. 조엘 오스틴 목사가 전하는 메시지는 바로 이것이다. <긍정의 힘>에 이은 <행복의 힘>이 기다려졌던 이유는 딱 하나다. 행복력(幸福力)이야말로 진정한 경쟁력이기 때문이다. – 송길원 추천사

이것은 <행복의 힘> 책의 뒷날개에 행복발전소 하이 패밀리 대표로 있는 송길원 목사가 쓴 글이다. 추천사에 갈음하는 글이겠다.

“행복력이야말로 진정한 경쟁력이다” 이 말에 동의 하시는가?

행복력(幸福力)이라는 희한한 조어를 만들어낸 그 솜씨가 놀랍다. 행복이 가져다 주는 '힘'이라는 말이겠지. 그러나 그 다음 말이 희한하다. 행복력이 진정한 경쟁력이라는 말.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행복이 가져다 주는 힘으로 경쟁을 하라는 말인가? 행복이 가져가 주는 힘으로 나가서 싸워 이기고 돌아오라, 는 말인가?

어쨌든 사람들은 그 책을 읽어서 행복을 찾아내고, 그 행복에서 ‘힘’을 얻어서 경쟁력을 가지고 그 힘으로 경쟁사회에서 싸워 이겨내라는 것이다.

작년의 일이던가? 이곳 전주시에서 주관하는 교양강좌가 있었는데, 자기들은 좋다고 그렇게 제목을 정했는지 모르겠으나 그 제목을 듣는 순간 가슴에 섬뜩한 그 무엇을 느꼈다. 가정의 달을 맞이하여 서울에서 강사를 초청해서 하는 강좌 타이틀이 <내 가정의 행복이 나의 경쟁력>이라니!! 그러고 보니 그 때의 강사님이 혹시 송목사님이 아니셨는지?

물론 그 취지를 모르는 바는 아니다. 밖에 나가서 가족을 위해 애쓰고 수고하는 가장들에게 포근한 안식처가 되어서, 가정이 행복해야만 된다는 이야기이지만 이 제목에는 엄청난 모순이 들어 있다는 것을 아는지? 

내 가정은 행복해야 한다.
왜?
왜라는 질문에 그 강좌 제목은 치명적인 모순을 안고 있다. 내 가정이 행복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 사회 전체의 행복을 만드는 기초가 되니까, 가 아니라 내 가정의 행복은 밖으로 나가서 다른 사람들과 경쟁하기 위한 기초가 된다는 것이다. 내 가정이 행복해서 가장이 마음이 편안해지고 그런 편안한 마음으로 가정 밖으로 나가서 다른 가정의 가장들과 경쟁해서 이기고 돌아오라,는 것이다.

물론 현대는 경쟁사회이며, 약육강식의 동물적 논리가 철저하게 지배하는 곳이 바로 이 사회이기는 하지만 회사에서 경쟁해서 모두 일 등 할 수 없고 또한 회사끼리 경쟁해서 모두 이길 수는 없는 법이니, 실패하는 많은 가장들이 그래도 가정에서만은 평안을 찾고 위로를 받을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또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이웃의 슬픔과 아픔을 감싸주는 것 또한 내 가정의 행복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가정의 행복이 나의 경쟁력’이라는 구호는 그 타이틀 자체가 내 이웃을 나의 경쟁 상대로 여기라는 부추김이며, 이웃을 사랑의 대상의 아니라 경쟁의 대상으로 삼고 이겨야만 하는 경쟁자 이웃으로 만들어 버린다는 점에서 우리 예수님의 가르침과는 철저하게 다르다.

그런 경쟁의 마음에서 벗어나 예수님이 말씀하신 이웃 사랑을 실천할 때에 자기 사랑에서 이웃사랑으로 흘러가고 그 흘러간 이웃사랑은 다시 자기 사랑으로 흘러올텐데. 그렇게 두개의 사랑은 서로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켜서 더욱 큰 사랑을 만들어 낼 것인데, 그렇게 될 때에 우리 모두는 나의 행복이 이웃의 행복이 되는 그러한 시절이 돌아올 것인데. 송길원 목사의 추천사는 그런 것들을 간과한 것 같아 안타깝다. 

그렇다면 송길원 목사가 추천사에 담은 내용이 과연 조엘 오스틴의 <행복의 힘>을 잘 묘사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라면 오스틴은 공연한 오해를 받게 되는 것이다. 그런 오해를 풀기 위해서라도 그의 책을 제대로 읽어봐야 할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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