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거룩한 곳이니, 네 신을 벗어라

제가 이곳 병원에서 원목일을 시작하면서 나름대로 업무 계획을 만들어보기 위해 몇군데 병원의 사례를 조사했습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이 이곳에서는 앉아서 환자들을 기다리는 것보다, 직접 병실로 찾아가 말도 먼저 붙여보고 그들의 고충을, 고통을 같이 나누어 보겠다 생각하고 병실문을 두드리면서 직접 찾아가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며칠 병실을 드나들며 환우들과 대화를 하다보니까, 불편한 점이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구두였습니다. 병실에 들어가려면 부득이 구두를 벗어야 하는데
병실 30여개를 (회복실까지 포함하여 서른 두개) 다니다 보니까 여간 불편한게 아닙니다.

그래서 며칠후에 백화점에 가서 슬리퍼 한 켤레를 샀습니다.
좋은 것으로, 바닥에 지압용 요철이 있는 것으로 샀습니다.
그래서 다음 날 슬리퍼를 신고 병실을 방문했습니다. 아주 기분좋게 발바닥에 지압점 요철로 인해 한걸음 한걸음 걸을 때마다 내 건강이 좋아지는구나, 생각하며 방문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병실에 들어가니까, 어느 환우분이 저를 보더니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아니, 목사님은 왜 슬리퍼를 신은 채 병실에 들어오십니까?”
그말을 듣고 보니, 병실안에 들어가기 전에 벗고 들어가야 하는데, 그만 새 슬리퍼를 신은 기쁨에 그만 병실안에까지 슬리퍼를 신고 들어가 버린 것입니다.

그 환자분이 저에게 말을 아주 부드럽게 하셨지만, 저는 얼굴이 화끈거렸고, 얼굴이 화끈거리는 것도 잠시, 제 마음 속에 바로 출애굽기의 말씀, 모세를 부르신 하나님의 말씀.
“이곳은 거룩한 곳이니 네 신을 벗어라”는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그 환우분이 저에게 하신 말씀, 왜 슬리퍼를 신은 채 병실에 들어오십니까?라는 말이
저에게는 이곳은 거룩한 곳이니 네 신을 벗으라는 말씀으로 들려왔습니다.

저는 거기서 하나 깨달았습니다. 그래, 바로 이곳이 내가 신을 벗어야 할 거룩한 곳이다.
환우들이 고통 때문에 힘들어 하는 곳, 그 고통과 치열하게 싸우는 곳이 거룩한 곳이다.
왜? 바로 거기에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인간이 고통받는 바로 그 자리에 함께 하시는 분이시기에
그 병실, 그곳에 하나님이 계시는 것이며 따라서 그곳은 바로 거룩한 곳이다. 그래서 제가 슬리퍼를 벗었습니다.

그 뒤로부터 제가 병실에 들어가며 슬리퍼를 벗을 때마다 저는 그 말씀을 기억합니다.
<이곳은 거룩한 곳이니 네 신을 벗어라>
 
그래서 저에게는 여러 환우들이 계신,  바로 그곳 병실이 하나님이 계신 곳이요,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곳임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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