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엘 오스틴 비판적 읽기 - 4
 
다시 서론 – 그의 책들이 수상하지 아니한가?
 
<문득 생각 같아서는 배의 양머리를 손으로 쥐고 바닷속에 축 처 넣었다가 배를 오염시키고 있는 인간, 쥐, 벌레 같은 산 것들을 몽땅 떠 내려가도록 뒤흔든 다음에 깨끗이 씻기고 텅 빈 배를 다시 띄워 놓고 싶어진다. >
(희랍인 조르바, 25쪽)

기독교인 환자의 병상에는 어떤 책들이 있을까? 환우들이 즐겨 읽는 책은 어떤 것일까? 성경? 있다. 성경은 그래도 기본이다. 비록 읽지 않는다 하더라도 병상의 한편에 자리 잡고 있다.
또 어떤 책이 있을까? 조엘 오스틴의 책이다. 그래서 병상에는 예수와 조엘 오스틴이 나란히 놓여있다. 전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지만, 예수와 조엘 오스틴은 병존한다. 그것도 동격으로.

조엘 오스틴의 책들, 참으로 이상한 책이다.
기라성 같은 많은 분들이 추천사를 썼다. 몇 페이지에 걸쳐 우리나라에서 내로라 하는 각계의 권위자, 리더들이 그 책을 읽어보기를 권하는 ‘강추’ 추천사를 써 놓았다. 읽으면 인생이 바뀐다고.
일례로, 한국에서 번역된 오스틴의 베스트셀러
은 한국의 대표적인 복음주의 목회자들의 추천서를 실어 놓아, 마치 조엘 오스틴이 미국을 이끌어 가는 떠오르는 복음주의자인양 소개하고 있다.

또한 많은 독자들이 그 책을 읽고 칭찬을 한다. 이구동성으로 그 책을 읽고 은혜를 받았다고 말한다. 지금까지 그 책을 들고 읽고 있는 환자들 백이면 백 모두다, 그 책을 읽고 힘을 얻는다고 한다. 나에게도 읽기를 권하고, 어떤 분은 일부러 책을 사서 선물하면서 읽어보십사, 간청한다.
읽고 나서 다른 환자들에게 읽혀주기를 바라면서. 지금까지 백이면 백, 이라 하면 너무 과장된 것이겠지만 현실은 그렇다. 그들은 조엘 오스틴의 책에서 힘을 얻는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내가 그 책의 위험성에 대하여 말할라치면, 무슨 소리냐고 힐난하는 표정이다. 책을 펴가면서 여기 저기 짚어주며 설득해 보았으나 “은혜 받고 힘내면 그게 좋은 것 아닌가요?” 라는 대답에, 이제는 개별적인 설득을 포기했다.

또 어떤 사람은 내가 그 책을 읽지 않고 그러는 줄 알고, “그런 좋은 목사님의 책을 읽기나 하시고 비판하시는지요?”라 말한다. 내가 어찌 읽어보지 않았을까? 읽어도 “제대로” 읽었다.

'아니 이런 책이?' 할 정도로 뻔히 그 속이 보이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곳곳에 숨어 있으니 문제라는 것을 '제대로' 읽으면 보이는데, 어찌 그냥 건성으로 읽었을까?

'제대로' 읽은 결과, 그책은 단언컨데 달콤해서 입안에서 살살 녹는 사탕이다. 아니 솜사탕이다. 약으로 치자면 전혀 약효가 없는 가짜 약이다. 아니 약효가 없는 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한번 맛을 들이면, 진짜 약은 전혀 먹으려 들지 않으니 해로운 약이다.

게다가 중독성이 있어, 이제 <긍정의 힘>은 <잘되는 나>를 거쳐 <최고의 삶>에 이르렀다. 어디 그뿐인가? 그 책들은 가지를 치고 줄기를 뻗는다. <실천편>, <직장인 편>, 또는 <성경공부>라는 타이틀로 얼굴을 바꿔가며 인쇄에 인쇄를 거듭하고 있다. 그렇게 잘 팔리니, 아마 지금쯤 어디선가 조엘 오스틴의 다음 책이 준비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이런 오스틴의 해악에 대하여 아무도 그 위험성을 경고하지 않았다는 말인가? 아니다, 이미 많은 경고가 있었다. 그 약은 마약이니 먹지 말라는 경고가 수 차례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런 경고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우선 먹는 맛이 달콤하니 그런 경고가 귀에 들어올 리가 없다.

그러나, 문제는 그들을 그렇게 방치할 수 없다는 점이다. 그렇게 올바른 말씀에 귀 기울이지 않고 그저 달콤한 가짜 약에 홀려 바른 말씀을 배척한다 해도, ‘평양감사도 저하기 싫으면 그만이라는데, 놔두지’ 하는 식으로 포기할 수가 없다. 그래서 이런 글을 쓰기로 한다.

방법은 다른 게 없다. 한 줄 한 줄 읽어가며, 조목 조목 무엇이 문제인가를 따져보는 수밖에. 그래서 그들이 그토록 은혜를 받으며 읽었다는 오스틴의 책들이, 쓰레기에 다름 아님을 알려주는 수밖에 없다.

먼저, 바른 시각을 가지고자 원하는 분들을 위해 조엘 오스틴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가진 책들을 여기 소개하려고 한다. 물론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그런 책들이 있으면 계속하여 여기 소개하려고 한다. .

<그리스도 없는 기독교>, 마이클 호튼, 부흥과개혁사, 91쪽~ 136쪽
<바벨탑에 갇힌 복음>, 행크 해네그래프, 새물결프러스, 83~91쪽
<심리학에 물든 부족한 기독교>, 옥성호, 부흥과개혁사, 198~228쪽
<뉴에이지 신비주의>, 김태한, 라이트 하우스, 31~53쪽
<긍정의 배신>, 바버라 에런라이크, 부키, 175~205쪽

그러나 위에 열거한 책들을 일반 독자들이 한꺼번에 (사서, 또는 구입해서) 읽기는 어렵다. 또한 그 책들에서 조엘 오스틴이 차지하고 있는 부분은 일부분이다, 그래서 종합적으로 조엘 오스틴의 ‘말’들을 분석해 놓지는 못했다. 나는 그렇게 하고 싶다.

그래서, <긍정의 힘>과 <잘되는 나>를 읽고 은혜 받았다는 교인들에게 이래서, 이 부분은 잘못 되었고, 저래서 저 부분은 잘못되었다는 것을 하나 하나 짚어 말해주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오스틴의 책들을 축조식으로 읽어가며. 그 책들이 어떠한 해악을 끼치고 있는지 따져볼 것이다. 그의 책들이 실로 수상하다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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