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적 단풍나무 완상(玩賞) - 15

제 2 장. 인문학에 단풍나무를 묻다.

3. 단풍잎 고운 노을을 흔들어

시는 시인의 손을 떠나는 순간, 해석은 독자의 영역에 속한다 말하지만, 그래도 그렇지 다음과 같은 자료를 읽어보았다면 위와 같은 해설이 나올까, 궁금해진다.

조선왕조실록에 김인후를 문묘에 종사하는 의식을 행하면서 선포한 교서가 기록되어 있다.
정조 45권, 20년(1796 병진 / 청 순치(順治) 1년 11월 8일(기유) 첫번째 기사에 등장한다.

문선 왕묘(文宣王廟)에 술잔을 올린 후에 문정공(文正公) 김인후(金麟厚)를 문묘에 종사하는 의식을 행하고, 교서를 선포하였다.

<자료 21>
<옛날의 큰 유학자인 하서(河西)는 해동의 우뚝한 정학(正學)이었다. 천성적으로 타고난 시로 단풍나무를 노래하여 일편 단심을 담았고, 성인에 가까운 자질에다 근원을 파고들어 오묘한 이치를 탐구하였다.>

다른 글도 아닌, 문묘에 종사하면서 반포한 교서에 나오는 내용이니 그 내용의 엄중함이 다른 경우보다 더하다 할 수 있을 것이다. 단풍나무를 노래하여 일편단심을 담은 하서가 소쇄원사십팔영(瀟灑園四十八詠)에서는 단풍을 변절의 상징으로 사용했다는 것이 가능한 일인지?

이제 그 시에 대해 본격적인 해설을 들어보기로 하자. 고려대학교 한문학과 교수인 朴性奎의 <河西 金麟厚의 自然詩硏究>라는 논문이다.

<자료 22>

<
春入桃花塢 복사꽃 언덕에 봄이 찾아왔는데
  繁紅曉霧低 붉은 꽃송이 새벽안개 속에 고즈넉하네
  依迷巖洞裏 아득하고 희미한 바위골 속이니
  如涉武陵溪 무릉의 시내를 건너가는 듯

  秋來巖壑冷 가을되니 바위골짝 서늘하여라
  楓葉早驚霜 단풍잎 일찍이 서리에 놀래
  寂歷搖霞彩 적막하게 고운 노을을 흔들어대니
  婆娑照鏡光 어른거리는 그 빛 거울에 비치네

위의 두 시에서는 봄과 가을의 경치를 대조적으로 그리고 있다. 소쇄원 주위의 아름다운 풍광은 사시의 변화에 따라 독특한 제 모습을 드러내어 소쇄원의 정취를 한층 고조시켰을 것이다. <瀟灑園四十八詠>중의 하나인 <平園鋪雪>에서 소쇄원에 가득 내린 눈을 보고, 시적 화자가 부귀가 찾아왔다고 들떠 있는 사실을 형상화한 것을 보면, 계절마다 펼쳐지는 자연 모습이 제 색깔대로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위의 앞 시에서 시적 화자는 복사꽃이 화려하게 피어 있는 언덕을 무릉도원으로 묘사함으로써 이곳의 봄 경치가 화려하면서도 樂土의 眞景에 비견될 수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뒤의 시에서는 그 詩題가 시사하듯이 온 골짜기가 붉은 단풍빛으로 물들어 화려하기 이를 데 없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하서는 이같이 소쇄원의 주위에 사계절의 변화가 뚜렷하게 이루어지는 자연 공간을 배치함으로써 소쇄원의 미적 공간을 더욱 확장시켜 원림으로서의 풍류적인 기풍을 잃지 않게 하였음을 파악하였다.
>

하서는 그의 시에서 “온 골짜기가 붉은 단풍빛으로 물들어 화려하기 이를 데 없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는데 그런 단풍이 변절의 상징이라니, 가당키나 한 것일까?

이렇듯, 잠깐 시선을 돌려 그 근원을 찾아보면 단풍의 정체가 들어나는데 왜 사람들은 그럴 생각을 하지 않고 그저 들려오는 풍설에만 마음을 쏟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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